909화 갑자기요? (4)
“어딨지?”
김승규는 드디어 수혁을 시험해 볼 수 있단 생각에 들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또 그만한 케이스를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되지 않았나?
후후후.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뭐가 어딨어요?”
그 미소는 마치 타락 천사 아니, 애초에 천사가 아닌 악한 무언가로 태어난 이가 짓는 표정 같아서 모조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수혁과 대훈을 제외한 모두가 그랬다.
둘은 돈 어딨냐고, 혹은 죽일 놈 어딨냐고 묻는 듯한 김승규를 보며 멀뚱히 되묻고 있었다.
“환자.”
“아. 저기요.”
그러곤 동시에 촬영 감독을 가리켰다.
그와 함께 김승규의 고개 역시 환자에게로 돌아갔다.
환자, 그러니까 촬영 감독은 흠칫 놀랐다.
너무 무서웠다.
‘주여…… 왜 주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게 안 사라지나이까!’
부리나케 몸을 뒤졌는데 하필 오늘따라 어쩐지 카메라가 무겁게 느껴져서, 성경책을 두고 왔다.
배가 아파서 그랬다.
이놈의 배.
이게 아파서 난데없이 검사를 당하더니 급기야…….
‘아……? 나 죽었나?’
죽었구나.
근데 왜 천사가 아니라 악마가 앞에 있을까.
나 교회 열심히 다녔는데?
“제정신이신 거 맞아?”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김승규가 환자의 앞에 우뚝 섰다.
그러곤 환자를 살폈다.
생긴 거야 깡패 그 자체, 깡패의 모범, 깡패의 등불, 그리고 바이블인 그였지만, 놀랍게도 실은 의사지 않나?
환자의 상태를 아주 잘 살필 수 있다, 이 말이었다.
“통증이랑 스트레스 등등이 영향을 미친 거 같은데…….”
수혁이나 안대훈도 딱히 밀리는 사람들은 아니다 보니, 환자 상태에 대해 아주 정확한 판단이 가능했다.
“괜찮을 겁니다. 통증 점수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어요. 영상에서 보이는 병변도…… 병변 자체가 이상해서 그렇지, 악성으로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아, 그래. 그럼 일단 환자 안정 취하도록 하고. 영상을 볼까.”
“그럴까요?”
셋의 인계에 의해 환자는 곧 처치실로 이동되었다.
거기엔 당연하게도 김승규처럼 생긴 사람이 없다 보니, 환자는 급격하게 안정을 되찾았다.
“환자분?”
“어? 저 안 죽었어요?”
“죽기는 왜 죽어요. 병원에 걸어 들어왔다가 죽어 나가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엄청 드물어요.”
“방금 묘하게 되게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하여간 환자분은 안 죽었으니까 걱정 말고 잠깐 계셔요.”
“아…… 네.”
간호사들의 도움 덕이었다.
휴 하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이현종과 이수혁, 그리고 안대훈이 보였다.
‘어…… 그 앞에 왜 아직도 저게……?’
그 앞에는 김승규가 있었다.
가운을 입고 있긴 했지만, 얼굴 때문에 그따위 것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흐음…….”
물론 김승규는 얼굴만 그럴 뿐 진또배기 의사였기에, 계속 CT 영상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였다.
“이게 뭐지?”
그 또한 외과에서 정말이지 잔뼈가 굵다 못해 남들의 몇 배, 그것도 일반적인 외과가 아니라 그냥 외과 교수들의 몇 배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런 건 처음 봤다.
물론 간 이식 전문의로 활동했던 시간이 대략 30년이니만큼, 막대한 경험이라는 것이 편향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학 병원 교수 좋은 게 뭐란 말인가.
좋든 싫든 각종 컨퍼런스라는 이름 하에 강제 수련이 된다는 점이었다.
다른 파트 컨퍼런스 참가가 의무는 아닌 만큼 김승규가 가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으나, 김승규는 의외로 또 성실한 면이 있어서 모조리 참석한 바 있었다.
“교수님도 처음 보시는군요.”
“정관에서 올라오는데…… 흐음…… 대체 이게 뭐지? 비뇨기과 쪽 질환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부위는 복부라서요. 메인 덩이는…….”
“아냐, 아냐. 협진 수술이 좋겠어. 정관이 두 쪽이긴 해도, 하나를 잘랐다가 생식 기능에 문제 생기면 큰일이잖아?”
“아…….”
그런 김승규도 처음 본다고 하니 나머지도 다 놀랐다.
또 이어지는 말에도 놀랐다.
이건 조금 슬픈 이유에서 그랬다.
사실 이현종이나 안대훈, 그리고 수혁 모두 생식 기능하고는 딱히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해당 사항이 없었으니까.
인정을 했건 안 했건, 은연중에는 그랬다.
‘동류…… 아니었나?’
[그러게요. 김승규가 사실 제일 거리가 멀 텐데.]
물론 그것 때문에만 놀란 건 아니었다.
대체 왜 김승규 교수가 생식 기능에 관심을 두고 있나.
이 점이 놀라웠다.
“내가 아는 비뇨기과 교수 있으니까…… 오라고 하지 뭐.”
“한석준이 편하긴 합니다.”
“어, 그래. 걔. 걔가 좀 애가 착해.”
“네네.”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게 반드시 시비를 걸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아서 그랬다.
게다가 생식 기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이 특히나 수혁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그렇지 않나.
암만 본인은 상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환자는 신경을 써야만 했다.
“부르셨나요.”
곧 한석준도 합류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일찌감치 안대훈과 짬짜미가 되어 프락치 역할을 해 왔던 그는 예의 바른 태도로 수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영상을 봤다.
모두가 그를 기대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설마 알겠지, 비뇨기과 의사잖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허나 입에서 튀어나온 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뭐냐니…… 정관에서 나온 건데, 몰라?”
“정관에서 나왔다고 다 알면 그게 신이죠…….”
“비뇨기과 의사 아니야? 맨날 보는 부위가 이런 쪽이잖아.”
특히 이현종과 김승규가 그랬다.
‘한 분야에 정통했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뭐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석좌 교수가 하는 말치고는 좀 상스럽긴 했지만, 어쩌겠나.
얼마간 사실인 것을.
“맨날 보긴 하는데…… 그러게요. 왜 이게…… 이게 뭐지.”
“거참…….”
“아무튼, 수술할 때는 어떨 것 같아. 생식 기능은 살릴 수 있겠어?”
이현종이 혀를 차는 동안, 김승규는 절제술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자르고 이어 붙이는 작업을 주로 하는 사람이다 보니, 고려 사항이 내과 쪽하고는 좀 달랐다.
‘확실히 발상이 달라.’
[그렇네요. 살릴 수 있겠냐…… 흠. 우리는 이런 류의 고민을 거의 하지 않죠.]
‘그렇지. 절제가 아니라 약으로 넘어오면…… 아예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확실히 외과 쪽도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술자에 불과하단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기술자 아냐?’
[꽤 뛰어난 기술자가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수혁과 바루다가 외과 의사들이 들으면 천인공노할 법한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두 외과계 의사들의 대화는 쭉 이어지고 있었다.
“흐음…… 일단 한쪽에서만 기인한 거라,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 해도 생식 기능은 보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양쪽 다 있는 게 좋지 않나?”
“그건 그렇죠. 그런데 문제가, 여기 보시면…… 정관에서 사정관으로 이어지는 여기. 여기가 살짝 넓어져 있거든요?”
“이게 넓어진 거야?”
“네. 이쪽까지 관여했다면…… 우측 정관은 살리기 어려워요. 차라리 다 잘라 버리는 게 나을 겁니다.”
“흐음…….”
김승규가 환자를 돌아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니까 그가 한창 전문의로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저만한 나이면 벌써 애가 있는 건 물론이고 정관을 묶을까 말까 고민해도 될 나이일 터였다.
하지만 요새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미혼일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생식 기능을 보전하는 건 중요했다.
한석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얼굴을 굳히고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이쪽 얘기는 이쪽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슴을 꽉 메우고 있었다.
“저, 환자분?”
그동안, 환자는 간호사들에게 김승규가 여기 의사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받은 참이었다.
최소한 용역 깡패는 될 줄 알았는데, 의사라니.
아무튼, 덕분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참이었고, 심지어 말을 걸어 온 사람은 한석준이다 보니 제대로 답을 해낼 수 있었다.
“아, 네.”
“그 들으셨겠지만…… 환자분, 종양이 있어요. 나쁜 거…… 그러니까 당장 암 같은 거로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한 건 일단 제거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아…… 그…… 종양이요?”
“네. 배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게 누르고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겁니다.”
“그…… 네.”
종양 얘기가 나오자 환자는 진지해졌다.
당뇨나 고혈압은 어쩐지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은 병은 아닌 데 반해, 종양은 죽을 것 같아서 그랬다.
세상에 종양이라니?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나가면서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그 종양이 우측 정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네? 정관이라고 하시면…….”
“정자가 생성되어 배출되는 기관이죠.”
“그럼…… 그…….”
촬영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일세를 풍미했던 짤방 ‘심영’을 떠올렸다.
‘내, 내가 고자라고?’
사실 한석준도 같은 짤방을 떠올리고 있었다.
필사적인 웃참 시즌이 도래했다, 이 말이었다.
물론 한석준에겐 이런 상황이 처음도 아니다 보니 나름 달인이 되어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쪽만 그래서, 반대쪽만 있다면 생식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정자 활동성이 떨어지는 등의 경우가 있어서…… 혹 결혼하셨습니까?”
“아, 네. 결혼했습니다. 저…… 애도 셋이고요.”
“아, 그럼……?”
“이참에 묶어 줄 수 있어요?”
“아하. 이거, 잘됐다고 하기는 좀 그런데, 하여간 다행이군요.”
한석준은 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김승규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없애 달라는데 어쩌겠나.
애가 셋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애는커녕 결혼도 못 해 봤는데.’
비뚤어진 질투심이 슬쩍 꿈틀대기 시작했지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적절한 생각이기에 참았다.
“자, 그럼 수술하러 갈까요?”
수혁과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환자는 계속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검사를 하더니, 이젠 수술이라고?
하지만 수술과 의사들까지 다 와서 무려 다섯 명의 의사가 우글거리고 있었으니, 안 하겠다고 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수술해도 되는 상황이죠?”
“네. 혈당이 좀 높기는 한데…… 뭐, 이 정도는 수술방에서 컨트롤 가능할 겁니다. 제가 들어갈 거니까요. 마취과에서도 시비 안 걸 거예요.”
“그럼 좋네요.”
“그래, 가지.”
게다가 이 인간들도 제일 중요시되어야 할 것 같은 환자의 의사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지들끼리 어디로 전화도 돌리고 하더니, 어느새 침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드르륵.
기자도 옆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괜찮아?”
“하.”
어이가 없었다.
이 질문을 기자만 해 줘서.
“나 전화 한 통만요.”
“왜? 이제 와서 나가는 건 안 될 거 같은데.”
“아, 남편 수술 받는 건 알아야 될 거 아니야!”
“아, 맞네.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