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화 Case 2 (5)
PET CT.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기기였을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 적응증이 수없이 늘어만 가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딱히 그렇지만도 않게 된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익숙해진 것은 이름뿐이고, 영상 자체는 아닐 터였다.
찍은 영상을 보면 솔직히 ‘이게 뭐지’ 싶을 수도 있었다.
파란 배경에 노란 것들이 박힌 모양새였을 뿐이니까.
“우리가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은 두정엽(Parietal Lobes), 전두엽(Frontal Lobes), 후대상회(Posterior Cingulate Gyrus), 측두엽(Temporal Lobes) 이야.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겠지?”
수혁은 그 알쏭달쏭해 보이는, 그중에서도 발군이라 할 수 있는 머리 사진을 보면서 대훈에게 물었다.
뒤에 있던 이들은 죄다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시설 좋은 센터에 반쯤 놀러와 있는 이들만 그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현종, 신현태는 물론이거니와 이 케이스를 물고 온 김승규 또한 그러했다.
이미 밤이 너무 늦어 버려서, 나이 든 이들은 반쯤 지쳐 있어서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 영민한 대머리는 좀 달랐다.
“네. 알츠하이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긴 합니다만…… 진행한 중증 치매에서는 이 모든 부위에서 대사 저하가 나타날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봐야 하겠죠.”
“그래. 그렇지. MRI에서 위축이 보이진 않지만…… 뭐, 급속 진행성 치매라면 대사 저하가 선행되겠지. 그로 인한 위축이 아직 안 온 것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겠고. 하지만…….”
“교수님은 다른 원인을 의심하시는 거죠?”
“그렇지.”
대훈은 나름 수혁과 대화가 됐다.
덕분에 뒤에 있던 이들, 그러니까 반쯤 포기한 채로 뭐 하는지나 보자고 했던 이들의 관심도 또한 쭉 올라갈 수 있었다.
하여간 뭔가 알아들을 만한 얘기들이 나와서 그랬다.
제아무리 치매와 별 관련 없는 과의 의사들이라곤 해도, 대사 저하니 위축이니 하는 말 따위는 알아들을 수 있지 않겠나.
“음…… 두정엽(Parietal Lobes), 전두엽(Frontal Lobes). 이쪽에선 꽤 극심한 대사 저하가 보여.”
그렇게 띄운 영상에서, 머리는 일단 노랗게 칠해져 있었다.
아니, 머리가 아니라 뇌가 노랬다.
이는 그쪽에서 당 섭취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다시 말해서 대사가 활발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몸에서 당을 제일 많이 소비하는 부위가 바로 뇌니까.
허나 수혁이 방금 가리킨 부위, 그러니까 뇌의 두정엽이나 전두엽은 상대적으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대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고, 이는 곧 그쪽 부위가 일을 잘 안 한다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후대상회(Posterior Cingulate Gyrus), 측두엽(Temporal Lobes)에서는 딱히 대사 저하가 있는지…… 소인은 알지 못하겠나이다.”
오늘 온종일 위태위태하긴 했다.
안대훈 입장에서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수혁이 일으킨 일종의 기적이라 생각하지 않았겠나.
그렇지 않아도 풀충전되어 있던 신앙심이 이런 식으로 드문드문 툭 튀어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수혁도 질색했을 테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후대상회가 어딘지 정확히 아네?”
“네? 하하. 굦…… 아니, 교수님 덕이죠. 성은이 망극합니다.”
“지…… 아니. 아냐. 그래, 잘하네. 너 정말 노력하는구나.”
후대상회가 어딘지 아는 신경과 의사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대학 병원에서 치열하게 뛰는 이들이라면, 연차가 너무 아래만 아니라면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과에서?
그건 기대하면 안 되는 종류의 일에 해당했다.
제아무리 수혁이 바루다 때문에 현실 감각이 제법 깎여 나간 참이라 해도, 그런 건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하면 좀 이상하죠. 제가 알림 띄운 거 아닙니까?]
‘뭐가 되었건 내가 올바른 리액션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참 이런 뻔뻔함이 수혁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습니다.]
‘어, 내 장점이지.’
[후.]
중간에 남들은 알 수 없는 종류의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하여간 수혁의 칭찬에 대훈은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저 새끼가 확실히 열심히 하긴 하지.’
‘그러니까…… 아니, 후대상회……? 거기가 어디야?’
‘지금 가리키는 저기잖아.’
‘아니, 그러니까 저걸 어떻게 아냐고.’
‘진짜 미친놈처럼 공부하나 보지. 미래가 밝아.’
‘그…… 그래. 음. 하긴, 저 녀석 수석이지. 만점이고.’
신현태는 내일 자로 발표될 자료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었다.
병원 원장씩이나 되어 가지고, 하잘것없는 데이터인 전문의 시험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있다니.
그냥 누구나 붙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한 것 아닌가.
물론 이번에도 딱히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인데…….
‘우창윤 교수는 이제 보복부에서 블랙 아닐까?’
‘응? 아. 합격률? 그래도 90%는 넘겼잖아.’
‘100% 넘기라고 했는데 그렇게 됐으니 뭐…… 또 싸움 날 거라던데. 국방부랑 보복부.’
‘그야 뭐……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
신현태는 우창윤을 잠시 걱정했고, 이현종은 그저 수혁과 안대훈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같이 다니는 게 당연하다는 듯, 둘의 상념도 보통은 넘었다.
하지만 김승규의 것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저런 인재가…… 왜 내과로만 가지?’
원래도 알고는 있었다.
수혁이 뛰어나다는 것 정도는.
그래서 한두 번쯤 깊이 아쉬워도 했더랬다.
수혁이 내과로 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의 진료를 처음부터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노라니, 그의 상념은 시간이 갈수록 배에 배를 거듭해 결국, 옥상에 닿고야 말았다.
‘이런 망할.’
놓친 대어를 아쉬워하는 김승규를 뒤로하고, 수혁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후대상회의 대사 저하는 꽤 결정적이지. 이게 없다는 건…… 다른 원인으로 인해 환자의 대사 저하가 발생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 또 대사 저하에 비해 심각한 인지 기능 장애가 일어나는 건, 뭔가 다른 물질에 의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혈액 검사 나간 거…… 언제 나오지?”
“그게, 아까 리튬 확인하고 전화로 지시 내리긴 했는데…… 그게 벌써 오후 5시인가 그래서요. 아마 퇴근…….”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퇴근 얘기가 나오면서 잠시 끊겼는데, 이때 맥이 탁 풀려 버린 이가 비단 수혁만은 아니었다.
“이 새끼들이 퇴근?”
뒤에 있던, 그렇지 않아도 수혁 생각에 심기가 뒤틀려 버린 김승규가 몸을 일으켰다.
마치 산중에 있던 대호가 포효하는 느낌이었다.
놀러와 있던 레지던트들과 병동 간호사들, 그리고 산책하던 환자와 보호자들이 혼비백산한 채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어디야.”
보통 이렇게 되면 김승규 역시 자중하는 편이었다.
김승규도 자신이 전국구 조폭이 아니라 세계급 의사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곳이 어디 뒷골목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서 그랬다.
허나 지금은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별로 없었다.
“네?”
원장 신현태는 그런 김승규를 마주한 채 몸을 떨었다.
왜 태화에서 이 양반에게 석좌 교수 자리를 주었을지언정 원장 자리는 못 주었는지 알겠단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 양반이 회의한다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곳에선 회의가 진행될 수 없었다.
반쯤 협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생각나서인지, 지금 물어보는 말도 숫제 협박처럼 느껴졌다.
“진검 교수 집 어디야.”
“어…….”
“빨리.”
“어, 네네.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 제가 수배하겠습니다.”
“그래.”
이렇게 알려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어, 여기.”
심지어 윽박지름을 직접 당한 것도 아닌 이현종마저 허둥지둥 움직였다.
꽤 보기 어려운, 나름 귀한 광경이었다.
이현종은 아들 일이나 환자 일이 아니면 엉덩이가 무겁다 못해 거의 나무늘보처럼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최근 이 두 가지 일에 이기자 교수와의 동거까지 더해지면서 골프까지 잊고 사는 그였기에, 이마에 땀 나게 달리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오. 형 잘 찾네.”
“내가 또 하면 다 잘해.”
“그래, 여기요.”
“음. 바로 앞이네?”
“네. 근데…… 차 타고 왔다 갔다 하려면 시간이…….”
“나 오토바이 타.”
“아.”
오토바이 타시는구나.
할리라도 몰고 다니시려나.
왠지 그럴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미 김승규는 밖으로 나가 있었다.
수혁과 안대훈은 갑작스레 벌어진 소란을 구경하고 있었다.
“참…… 호들갑이시네.”
“그러니까요. 저는 원장님 저러는 거 처음 봤습니다.”
“우리 아빠는?”
“응? 아, 저거 설마…… 이현종 교수님이셨습니까?”
“어.”
“아니, 오늘따라 두 분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이시지…….”
하나는 바루다 덕분에, 또 하나는 종교 덕분에 비합리적인 두려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보니 침착하기만 했다.
두다다다다-
하여간, 김승규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에 올랐다.
생긴 건 깡패지만 어엿한 교수인 만큼 투구 아니, 헬멧도 썼다.
보호용으로 걸친 가죽 자켓 때문에 병원에서보다 더 어엿한 전국구로 보이긴 했다.
띵동.
그렇게 도착한 진검 교수의 집.
퇴근하고 한잔 걸치려던 교수는 인터폰에 뜬 헬멧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보, 뭐 시켰어?”
“아니? 아, 아까 재현이가 치킨 먹고 싶다고 했는데 이놈이 시켰나? 일단 나가 봐.”
“어어.”
나가라는데 어쩌겠나, 나가야지.
아래는 트렁크 팬티, 위에는 나시 티를 입고서 문을 열었다.
“박종국 교수?”
“네?”
“나 김승규야.”
“히익.”
그러곤 끝이었다.
“병원 갑니다!”
김승규는 문 안쪽으로 이 말을 남기곤, 교수를 어깨에 둘러매고 내려와서 오토바이 뒤에 태웠다.
“이거 써.”
“어어.”
“써!”
“아니, 저…… 이게.”
“가서 봐야 하는 검사가 하나 있어. 궁금해 죽겠단 말이지. 죽일 셈인가?”
“아니…… 그건 안 되죠.”
‘죽일 셈인가’가 어쩐지 ‘죽을 셈인가’로 들렸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헬멧을 썼더니 어느새 병원이었다.
“빨리!”
“네네.”
재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채찍질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를 시간 속에서, 교수는 몸을 움직여 수혁의 지시로 내려와 있던 혈액을 들여다보았다.
이것도 돌리고, 저것도 돌리고.
빙글빙글 열심히 돌렸다.
“언제 나와?”
“아니, 조금만 있으면…….”
안 그러면 뒤질 것 같아서, 진짜 최선을 다했다.
-곧 나옴.
그 말에, 센터에 있는 이들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일단 김승규가 눈앞에 없지 않나.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나온다고 했는데 어디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누가 알겠나.
“나, 나왔습니다!”
“오.”
“근데…….”
“근데?”
“히익.”
“일일이 놀라지 마! 내 얼굴 몇 시간을 보고 있는데.”
“히이익.”
“하아.”
김승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스크를 꼈다.
보통의 마스크보다 훨씬 커서 거의 눈만 보이는 느낌이었다.
따로 주문 제작한 것이다 보니 역시나 효과가 있었다.
“결과가 좀 이상합니다.”
“응? 잘못한 거 아냐?”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근데 이게 왜 검출이 되지…….”
“뭐.”
“리튬이요.”
“아, 제대로 된 거야. 빨리 수치 말해.”
“아,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