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9화 Case 2 (2)
“흐음…….”
“왜, 너무 어렵나……?”
응급실을 통해 왔던 환자는 이미 통합진료센터에 입원해 있었다.
실마리?
아직 전혀 잡지 못했다.
환자와의 대화는…… 그야말로 안개 속을 거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어렵네요.”
“음.”
수혁은 머리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긴장성 두통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또 의사다 보니 바로 진통제를 먹긴 했지만 아직 약 기운이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이게…… 내과 환자는 맞는 건가요?]
‘나도 모르겠는데…… 보호자가 희망을 놓지 못한다고는 하는데…… 흠.’
기운이 올라온다고 해서 지금 엄습해 온 통증이 어디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집에 가야 하는데.”
“어르신, 여기 병원이에요.”
“너, 너 누구야!”
“아까 인사드렸잖아요. 담당 간호사예요, 어르신.”
“우, 웃기지 마! 우리 아들 어디 갔어!”
“엄마…….”
“당, 당신…… 왜 나한테…… 엄마라고 해.”
병실 언저리에서 소란이 일었다.
방금 입원시켰던 환자가 일으킨 소란이었다.
간호사도 보호자도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아니…… 이 새끼가 돌았나?’
김승규도 그랬다.
원래 같았으면, 이수혁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는 걸 보면서 좋아했을 터였다.
케이스를 아주 잘 골라왔다는 뜻이었으니.
하지만…….
이건…….
‘치매 환자를 내과에 보내면 뭐 어쩌자는 거야?’
치매로 진단이 안 된 것도 아니었다.
이미 진단은 됐다.
치료?
안타깝지만 치매, 그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으로 분류되는 흉악한 질환은 아직 치료의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저런 연구를 해온 덕에 최대한 진행을 억제하는 방향의 치료가 나오기는 했지만, 글쎄.
개인차가 워낙 심했다.
더군다나 너무 큰 결함이 있었다.
진행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했다.
‘치매에 다른 질환이 의심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치매 환자에서 동반되는 다른 질환이 간과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일단 증상 호소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다가, 의료진 또는 보호자의 관찰도 어려워서 그랬다.
기억을 잃어 종래에는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병은 다른 어떤 병보다도 주변을 빠르게 지치게 만들었다.
‘치매 자체를…… 해결해 달라고 보냈지.’
김승규는 제자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제자의 소재지도 확인했다.
이거 무턱대고 들고 오기 전에 어떤 케이스인지 확인이라도 해야 했는데, 이 새끼가 하도 너무 어려운 케이스라고 해서 덜렁 들고 온 게 잘못이었다.
-거짓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짜 어려워요.
-어려워? 이게 어렵다는 말로 퉁칠 수 있는 거냐?
-그럼 그게 쉬워요?
-아니, 이 새끼가…… 너 어디야.
-저 공항이요.
-공항? 거긴 왜 갔어?
-저 연수요. 이제 뜹니다. 폰 끌게요.
전화를 해도 안 받길래 문자를 보냈더니 이따위 답이 왔다.
그래, 네가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미국으로 튀었구나.
그런데 어쩌나.
동부로는 안 갈 거고, 분명 서부로 갈 텐데, 다음 달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떡하니 학회가 있네?
‘너는 죽었다고 복창해라…….’
김승규는 후우우 한숨을 쉬며 쥐고 있던 캔을 와자작 평면으로 만들어 버렸다.
진짜 무슨 휴짓조각처럼 변해 버려서, 이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너무 무서웠다.
“흐음.”
물론 그 와중에도 수혁은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으음.]
바루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봤을 땐, 그냥 한숨이 나왔다.
치매가 무서운 병이고 또 중요한 병인 것은 맞지만, 진단이나 치료에 방점을 둘 수 있는 질환은 아니지 않나.
아직 이 질환에 대한 지침은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나마 난청 환자에 있어 보청기를 착용한다든지, 지속적인 사회 관계망을 형성한다든지 하는 행위가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어 희망적인 수준이었다.
‘진행이…… 어마어마하게 빨랐지.’
[네. 이 환자, 진단된 지 6개월 만에 중증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급속 진행성 치매(RPD)란 얘긴데…….’
[이 경우, 10% 내외에서 가역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그 확률이 좀 더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 우리나라가 이제 더 이상 약물 청정국가는 아니긴 하지만…….’
대한민국에 마약이 어딨어? 라는 말이 통했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확실히 이런저런 지표에서 마약 중독 환자들의 증가는 두드러지고 있지 않나.
특히 일선에 있는 경찰들은 피부로 느낀다고 들었다.
중독 센터에서도 그랬고.
하지만 미국처럼 일반 응급실에서 메뉴얼로 약물 중독 검사를 해야 할 정도는 아직 아니었다.
[약물로 인한 질환 빈도는…… 통계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그렇다 해도, 일단 이쪽 말고는 들이팔 게 없어.’
[그렇습니다.]
수혁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김승규로선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또 하나의 캔을 우그러뜨렸다.
빠지직.
심지어 이번에는 뭐가 안에 들어 있는 상태로 그랬다.
쓰레기통으로 커피가 줄줄 새어 들어가고 있었다.
‘일단 저 환자의 증상을 종합해 보려면…… 직접 가서 봐야겠지.’
[네. 그게 좋겠습니다.]
물론 수혁은 그런 김승규에게 이미 관심이 없었다.
그저 환자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곤, 지팡이를 짚고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아, 글쎄 나는 집에 가야 된다니까요? 어, 옳지. 저기 선생님 오신다!”
수혁의 얼굴이 환자의 기억 속에 누군가랑 닮은 건지 뭔지는 몰라도, 응급실에서부터 수혁에게만은 꽤 순종적이었다.
뭔가를 막 쥐여 주려고도 했다.
“네, 환자분.”
“네네. 선생님.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뭘 부탁드린다는 걸까.
수혁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내미는 것은 받아들었다.
당연하겠지만, 별거 아니었다.
휴지 뭉탱이였다.
“그…… 선생님, 죄송합니다.”
보호자가 옆에서 대신 사과를 했지만, 수혁은 그쪽은 보지 않았다.
‘우선…… 환자에게 뭘 시키려면, 역할극처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네, 인지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은 고집이 너무 세죠. 적당히 맞춰 주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지.’
대신 환자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거 참 감사합니다. 환자분, 그 대신이라고 하면 좀 뭣하지만, 여기서 저기로 한번 걸어 볼래요?”
“네? 아유, 네. 선생님이 시키시면 해야죠.”
환자는 그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허허 웃으며 수혁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몸을 돌리면서 걸으려 한 거였는데, 운동 능력에 비해 의욕은 과도하게 넘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어어.”
“이거 놔.”
보호자가 잡아 주지 않았더라도 누군가 잡아 줄 수 있는 인력이 있긴 했지만, 하여간 고맙다는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도리어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어린애 같은 반응…….’
[소뇌 기능도 좀 떨어져 있고요.]
‘지금 우측 상지에 떨림 증세가 있지?’
[네. 그리고…… 보십쇼.]
‘그래, 이게 우연이 아니었나 보네.’
환자는 손을 탁 쳐 낼 때까지만 해도 아마 바로 걸음을 내디딜 생각이었을 터였다.
적어도 기세는 그랬다.
하지만 환자는 여전히 첫발도 딛지 못한 상황이었다.
주춤주춤거리는 행위, 어떤 질환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파킨슨(신경세포가 줄어들어 운동능력이 퇴행되는 뇌 질환).
‘해당 병원에서 파킨슨 의증으로 도파민 치료를 시작한 것도 뭐…… 개연성이 있네.’
[네, 하지만 호전은 보이지 않았죠.]
‘응. 오히려…… 다른 증상이 생겼지. 물론 난치성 파킨슨에서는 그럴 수 있긴 해.’
[네, 어려운 질환이죠.]
이쪽 계통의 질환들은 ‘어렵다’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도전적인 질환들이 많았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등.
이름이 일반 대중들에게 익숙해질 만큼이나 유명하고 또 오래된 병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이 질환을 정복하지 못했다.
‘비틀거리고…….’
[사실상 열 걸음 정도 걸으려면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거 이러다 다른 질환으로 안 좋아지겠어.’
[그러니까요.]
낙상.
넘어지는 것.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린 시절에야 뭐 노상 넘어지지 않았나?
머리도 크고, 주의력도 부족하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건 골절을 피할 수 있어서, 또 골절되더라도 회복이 빨라서였다.
허나 노인 인구에 있어서 골절은 너무 위험한 질환이었다.
특히 하지의 골절은 그 예후가 극히 좋지 못했다.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잠깐 들어가서…… 퀴즈 풀어 볼까요?”
“퀴즈……?”
“네. 좀 어려운 거라, 많이 틀릴 거예요.”
바루다와의 대화, 혼자만의 유추는 일단 그만두고, 수혁은 걸음을 멈춘 환자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쪽으로 끌었다.
그런 수혁을 보호자가 도왔다.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고 보면 좀 이상한 느낌이겠지만, 기록을 보면 그럴 것도 없었다.
‘미국에서 살다 왔다고 했지?’
이 보호자는 자기 엄마를 거의 10년 만에 보는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아무래도 좀 심각한 질환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귀국한 그는,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어린 시절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를 잊고 살았던 그는, 이제 그를 잊어버린 어머니를 보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고…… 하소연하고 있는 거죠?]
‘응. 나름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인가 봐. 여기서 안 되면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는데…….’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군요.]
‘아니지. 하지만 뭐, 원래 합리적인 선택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미국으로 간다고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까.
지금 보호자가 바랄 수 있는 건, 다른 질환으로 인해 치매 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이거 한번 풀어 보세요.”
“아…… 네, 선생님.”
“어려우니까, 모르는 문제는 그냥 넘겨요. 저도 다 못 맞혀요.”
수혁은 환자를 안심시키면서 눈치를 살폈다.
이 문제는 지난번에 있던 병원에서도 풀어 본 적 있는 문제였다.
완전히 같은 문제.
허나 환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뭐…… 찾은 거 있어요?’
‘아뇨. 없어요. 이게…… 저번 병원에서도 그렇고, 뭔가 기저질환으로 치료를 받았을 것 같은데…… 환자가 기억을 못 해서 곤란했다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한 환자를 두고, 수혁은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런 환자에게 담당 간호사는 반쯤 탐정이었다.
이런저런 단서를 이용해 무슨 약을 먹는지 다 확인해야 해서 그랬다.
허나 이렇든 저렇든 단서랄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보호자분은요?’
‘아유…… 전혀 모르시죠. 그리고 뭐만 물으면 자기가 너무 무심했다고 하면서 우셔가지고 묻기도 그래요.’
‘음…… 이거 참…….’
수혁은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혀를 차다가, 누군가를 떠올렸다.
왜일까.
이 대머리가 떠오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