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94화 (894/1,303)

894화 우리 과도 아냐 (2)

뇌압이…… 떨어져?

이건 또 무슨 신박한 미친 소리지?

‘무슨 소리냐고……. 아니, 그전에 당신 누구냐고……. 내과 과장님, 이 사람 대체 누굽니까.’

신경과 레지던트는 하아, 허어 하는 헛웃음을 내보이며 수혁과 리처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리처드는 감히 그 얼굴을 대놓고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솔직히 좀 그렇지 않나.

남의 과에 와서 깽판이라니.

한국 사회는 그래도 아직 정이라는 게 남아 있고, 또 위계가 지나칠 정도로 잡혀 있는 곳이다 보니 대충 뭉갤 수 있다손 치더라도, 미국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과는 다른 과.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남이란 얘기였다.

“이해가 잘 안 가시나 본데. 이 환자의 증상을 잘 보세요.”

그러나 수혁은 당당한 얼굴이었다.

그저 환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별 소용은 없었다.

환자는 자고 있거든.

“무슨…… 뭘 봐요.”

“아, 증상을 기억 못 하시나.”

“기억은 하죠!”

“그럼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 기억을 재생해 봅시다.”

“기억을 재생……?”

수혁의 말은 꽤 그럴싸한 면이 있었다.

바루다를 탑재한 그는, 적어도 단기 기억은 그야말로 100% 재현할 수 있어서 그랬다.

물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용량의 문제와 효율의 문제로 대강 토막 내서 정리하게 되기야 하겠지만, 지금 이 기억은 바루다가 특별 취급하고 있는 기억이었다.

그렇기에 수혁은 아까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던 장면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허나 남들은 그럴 수가 없지 않겠나.

‘최면을 얘기하나……?’

미국은 생각보다 미신의 뿌리도 아주 깊은 곳이었다.

대도시는 물론이거니와 마을 단위로 들어가도 오컬트에 심취한 사람들이 있고, 또 심령술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이 신경과 레지던트 또한 애리조나의 작은 마을 출신이었고, 어릴 때 그 비슷한 것을 자주 봐온 바 있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시고요. 저 의사입니다.”

“아, 네.”

그래서 눈에 무언가 종교적인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는데, 이건 또 수혁이 도사처럼 짚어 내었다.

딱히 안대훈한테까지 갈 것도 없이 조태진도 저러지 않나.

해서 따끔한 지적을 해낸 후 말을 이었다.

‘의사는 의사인데, 누구냐고…….’

신경과 레지던트는 여전히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말을 들어야만 했다.

반발심이 들지 않는 건 아닌데, 타이밍을 놓쳐도 너무 심각하게 놓쳐 버렸다.

“환자의 통증 양상은 머리의 각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러니까 머리가 설수록 더 심해지는 양상이었어요.”

“네? 아니, 그걸…… 어떻게.”

“또 환자의 발음을 잘 떠올려 보세요. 명확하던가요?”

“그건 아니었습니다만…… 의식 수준이 떨어지게 되면 발음도 원래 떨어지지 않습니까?”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수혁은 역시 이래서 신경과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라는 곳은 워낙에 기능이 많은 곳이지 않나.

감각기들과 비교해도 그랬다.

눈, 코, 입, 귀는 각각의 감각을 담당하고 있는 데 반해, 뇌는 이 모든 감각이 전해오는 정보를 취합하고, 비로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정보로 만들어 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뇌가 다치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 모든 감각에 혼동을 줄 수 있었다.

“그렇죠. 하지만 환자의 눈을 떠올려 보세요.”

“아……?”

수혁은 실시간 감상이고, 레지던트는 회상이었다.

둘 중에 누가 더 강렬하게 말할 수 있겠나.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분명히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 겁니다. 환자의 의식 수준이 정상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짧은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 그랬나.”

“그렇다면 구음장애(발성 기관에 생긴 기능 이상)가 있다고 봐야겠죠.”

“아…….”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구나.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수혁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가 환자를 본 건 짧은 시간에 불과했으나 알아낸 것은 어마어마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반응이 아주 공격적이죠? 단순히 고통을 호소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어요.”

“탈억제……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짚어 봅시다. 환자는 조절이 되지 않는 두통, 졸음, 초조함, 구음장애, 탈억제, 그리고 여기 보니 일부 기억 상실도 호소하고 있군요?”

“네.”

뇌가 기능이 많은 곳이긴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다양한 증상이 마구잡이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할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특히 뇌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이 어느 특정 부위를 침범하는 질환의 경우엔 더더욱 그랬다.

그런 것에 비하면 현재 환자의 증상은 너무 광범위했다.

“이렇게 광범위한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건…… 원인과는 별개로 환자의 뇌압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아, 네. 그렇죠. 저희는 뇌압 상승으로 보고 치료 중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뇌압을 재고 있지는 않은데요?”

“부차적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중요한 건 두통이고, 뇌출혈도 있었으니까요. 때로는 기다리는 게 답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기다리는 게 답이다.

언뜻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실제로 많이 하는 말이긴 했다.

특히 내과에선 기다려 보자라는 말을 한두 번쯤은 들어 보지 않았나.

신경과 레지던트의 말처럼, 때론 기다리는 게 답일 때도 있었다.

“증상이 명백히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환자의 뇌압 상승 소견은 수술 후 호전되었고,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했는데 뭘 기다립니까.”

“그…… 그래서 뇌압 상승을 피하기 위한 대증 치료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 뭐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수혁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세워 두고 있는 것, 또 아세트아미노펜과 스테로이드 등을 주입하는 것 하나하나가 뇌압 상승에 대응한 조치였다.

“그럼 호전이 있었습니까.”

“그……”

“CT상에 더 이상의 뇌압 상승을 일으킬 만한 다른 소견이 관찰되지 않아서, 대증 치료만 하는 거죠? 그렇다면 대증 치료는 효과가 있어야만 합니다. 증상 조절에 대한 경험만 따지고 보면 현대의학의 역사를 넘어가니까요.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증 치료는 ‘제대로’ 쓰였을 때 그 효과가 상당하죠.”

호전이 있었냐는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레지던트를 향해서 수혁은 계속 말했다.

말한 것이라곤 하지만, 거의 뭐 쏘아붙였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제대로’에는 미국인들이 주로 쓰는 제스처까지 사용했다.

“그…….”

“제대로 쓰이지 않았으니까 호전이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 그렇다고 뇌압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시겠지만…… 뇌압이 약간 떨어지는 건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줄 가능성이 적어도, 뇌압이 올라가면 그건 위험합니다!”

마구잡이로 밀리고 있던 레지던트가 소리를 질렀다.

아마 아까 같았으면 리처드가 나섰을 터였다.

자, 이제 그만하고 도망가자고 하면서.

‘완전 밀리는데……?’

허나 듣다 보니 논리의 주인은 이수혁이었다.

레지던트는 시종일관 끌려다니고만 있었다.

추론에 대한 근거가 빈약해서 그랬다.

그에 비해 저쪽은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뭐 물증이 강한 건 아니었지만, 원래 진단은 이런 식으로 하는 것 아니던가.

“증거라면 영상의학적 증거를 말하는 거죠?”

“네!”

“증상은 무시하고요? 그렇게 말하는 건가, 지금? 임상 의사이신데.”

“아니, 그런…… 그렇게 말씀하시진 말고.”

“뭐, 이해는 합니다. 우리는 영상의학에 엄청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도 맞고요. 자, 그럼 볼까요.”

“그…….”

수혁도 영상에서 뭐가 보일 거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환자가 어떻게 머리를 부딪쳤었는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냥 꿍 하고 만 것도 아니지 않나.

환자는 뇌출혈까지 발생했었다.

수술도 해야만 했고.

‘머리 쪽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죠.]

‘그래. 그렇다면…….’

[바닥이겠죠, 문제가 있다면.]

기전을 떠올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기가 아니면 안 되었다.

이건 억지가 아니라 논리였다.

드르륵.

수혁은 영상을 띄우고 스크롤을 굴렸다.

다시 입원할 때 찍은 영상이었다.

즉 수술 후 CT란 얘기였다.

수술은 아주 잘 되었기 때문에 그 근방은 물론이거니와 머리 전체에도 딱히 무슨 문제가 보이진 않았다.

깨지거나 새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거 보세요. 이건 정상…….”

“정상인데 환자가 이렇게 아파할 수는 없죠.”

“그……근데 왜 자꾸 내려요?”

“문제는 머리의 바닥에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머리의 바닥.

즉 코의 천장.

이곳은 다른 부위에 있는 두개골들과는 달리 굉장히 얇은 뼈로 이루어져 있었다.

과거 아직 부비동 수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을 당시에는, 또 부비동 내시경의 불빛이나 시야 등이 그리 좋지 못했을 당시에는 이걸 그렇게 뚫었다고 들었다.

뇌가 고름인 줄 알고 신나게 갈아 없앤 의사들도 꽤 있었다고 했고.

“어…….”

“뭐가 보이진 않는군요. 하지만…… 보아하니 이런 생각 자체를 처음 해 보신 것 같은데.”

“네, 그…… 이쪽은…….”

“이비인후과 부르죠. 요새는 휴대용 내시경도 있으니 딱히 환자가 움직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 어…….”

“비합리적인 처사라거나 환자에게 해가 될 거라는 판단이 들면, 안 하셔도 됩니다. 주치의는 선생님이지 제가 아니니까요.”

“음.”

레지던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 새끼가 진단하려고 하는 게 비합리적인 것이지…… 지금 이건 지극히 합리적인 요청 같은데…….’

반발심은 드는데 반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 그랬다.

체면 불고하고 지랄하려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리처드도 있고 애초에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부……부르죠. 근데 안 보이면 어쩌죠?”

“그때는 다른 걸 추론해야죠. 환자는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었다.

눈앞의 의사는 분명 젊었다.

아니, 어려 보였다.

동양인들이 대체로 어려 보인다는 걸 감안해도 그랬다.

허나 대화 속에 담긴 인사이트는 대가의 그것이었다.

가만 보면 리처드도 하대하지 못하고 있었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레지던트는 마음을 꺾고, 말을 듣기로 했다.

그 사이 수혁은 리처드를 시켜 무언가를 처방하게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가까이 있었는지 금방 와서 뭔지 확인도 하지 못했다.

“뇌척수액이 새는 건 아닐지 의심된다고요?”

“네.”

“수술력이 있나요?”

“아뇨. 다만 머리에 뭐가 부딪쳐서 신경외과적인 수술을 했습니다.”

“아…… 언제요?”

“일주일 정도?”

“아.”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왜 쉬는 날 그런 걸 확인해 달라고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씩씩대며 들어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분노 조절을 잘한 상황이었다.

‘후우…… 그래, 괜히 모였겠어? 새겠지.’

해서 내시경을 코 안으로 들이밀었고, 뭐가 안 보여서 화가 다시 치밀었다.

그때 수혁이 물었다.

“보여요?”

“아뇨?”

“오케이. 그럼 한 3분 뒤에 해 보죠.”

안 보인다고 했더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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