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화 살아난 환자 (2)
“병리 검사실입니다.”
“네, 말씀해 주세요.”
“보내 주신 검체 확인했는데…… 우선 육안으로 보고 프로즌(수술 간 채취한 조직을 얼려서 확인하는 것)만 돌린 거라는 거 유념해서 들어주세요.”
“네네. 그렇죠. 당연하죠. 어떻습니까?”
수술이 끝나고, 환자는 중환자실 내에 마련된 1인실에 와 있었다.
중환자실에도 1인실이 있나 싶을 수 있을 텐데, 좋은 보험이 보장하는 병원에서는 꽤 흔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환자는 VIP이기도 하기에, 수술했던 인원과 내과 의료진까지 방 안에 있었다.
슬슬 흩어질까 하다가 곧 보고가 있을 거란 말에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수술장에서 봐도…… 좋지 않았어. 흠…….’
그중에서도, 외과 교수는 이수혁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직접 보지도 않고 유추를 한 거지? 그리고 수술은 어떻게 그렇게 유도한 거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준혁도 한동안 이수혁을 잊지 못했으니까.
안마 의자에 앉아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론 늘 이수혁의 리듬 게임을 떠올리곤 했더랬다.
“정맥류가 맞습니다. 범위는 상행 결장까지 침범해 있고…… 이거 안 뗐으면 백 프로 출혈 문제 일으켰을 겁니다. 수술장의 판단이 대단했다고 생각하고요…….”
그 사이에도 병리과 의사는 보고를 이어 나갔다.
감탄한 어조였다.
당연했다.
그 방에 있던 이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다른 곳에 있다가 다 끝난 걸 확인한 이는 어떻겠나.
“완전한 보고는 저희도 염색하고 더 봐야겠지만…… 지금까지만 봐서는 클리펠-트라우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대규모 결장 침범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거 정말 희귀한 케이스인 거 같은데…… 흐음……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던 건지. 누가 메인으로 보신 겁니까? 닥터 리처드?”
병리과 교수는 ‘리처드라면 그럴 수 있나?’ 이런 목소리였다.
리처드가 꽤 유능한 사람이긴 한데, 되겠나 싶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봐, 말해 줘야지.”
그때, 이현종이 리처드의 허리를 푹 찔렀다.
여전히 통화를 끊지 않고 있어서 그랬다.
응급 상황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통화비 걱정이 들기 시작한 레지던트 말고는 딱히 그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수혁과 이현종도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이현종이 돌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보니, 그것도 예민한 곳을 찌르는 행위였다 보니, 리처드는 감히 말을 못 하고 이현종을 바라보기만 했다.
“네?”
“지금 공을 자네한테 돌리잖아. 그럼 안 되지. 이거 누가 했어.”
“아…… 아아.”
허나 이어지는 말을 듣고 나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 않나?
이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동양인 의사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이현종의 아들로 의심되는 이 의사는 200마일, 그러니까 300km 떨어진 어느 호텔 미팅룸에 앉아서 이 희귀한 질환을 진단해 냈다.
‘말이 되냐, 이게?’
한국인이었다면 시벌을 연신 내뱉었을 텐데.
미국인이라 지금 같은 상황에 쓸 만한 적절한 욕이 딱히 없었다.
“아, 아닙니다.”
“응? 듣고 계세요? 지금 학회 아니신가?”
“아, 영상 통화 중입니다. 보고를 받아서.”
“그럼 어떤 식으로든 조언을 주셨겠는데요?”
“아니, 그건 아니고. 같이 있는 의사분이 주셨습니다.”
“같이……? 누구요?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병리과실에 있는 병리 교수가 스피커를 통해, 방 안에 있는 휴대폰과 통화 중인 리처드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괴이한 일이었으나 우선 다들 조용히 있었다.
뭐가 되었건 이 대화는 중요해 보였기에 그랬다.
당장 외과 의사부터가 수혁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기회만 주어지면 검색하려고 하지 않았나.
침묵 속에 리처드가 답했다.
“아닐 겁니다. 한국에 태화 의료원 교수입니다. 통합…… 뭐라고 했죠?”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
“아. 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 교수입니다.”
“어……?”
그 말을 들은 병리과 교수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처음 들어 보는 게 아닌 것 같은, 그런 반응이었다.
암만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미국에 있는 병리과 교수가 대체 어떻게 한국에 있는 내과 교수를 알고 있단 말인가.
막말로 이수혁이 이현종처럼 학회 활동을 오래 한 사람도 아닌데.
“그 사진 주인공 같은데…….”
“무슨 사진?”
“아, 아니. 얼마 전에 국제 학회에서 우리 사진전에 나온 사진에 이수혁 교수가 있었던 거 같아서요.”
보통 이럴 땐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실마리가 잡혀야 하지 않나.
허나 들으면 들을수록 오리무중이었다.
‘뭔 개소리야. 무슨 사진에 나왔다는 건데.’
이 인간이 골방에 틀어박혀서 슬라이드만 보다 보니까 말하는 걸 다 까먹어서 이러나?
리처드가 이런 생각과 함께 가만히 있자 분위기를 감지한, 그러니까 자신을 또라이로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병리과 교수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 아시잖습니까. 저희랑 영상의학과는 사진전 하는 거. 엑스레이나 뭐 슬라이드 사진으로 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 병원에서도 했었는데.”
“아…… 그거. 근데 그건 검체 사진 아닌가……?”
“네, 근데…… 그 요새는 슬라이드를 그냥 저기 뭐야. 띄워서도 보잖습니까? LED 모니터나 이런 데다가.”
“아, 그렇지.”
“거기 몰타 십자가가 떠 있었어요. 이수혁 교수 후광처럼. 대상 받은 사진인데.”
“으음…….”
잠깐 알아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허나 정말 잠시였다.
‘이 새끼…… 진짜 미쳤나……? 사이비? 뭐 이런 거 하나……?’
갑자기 몰타 십자가가 왜 나온단 말인가.
“하여간 뭐, 별건 아닙니다. 하하. 아무튼, 클리펠-트라우네이 증후군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수혁 교수 그 사람 대단하네요, 정말.”
리처드가 병리과 교수의 온전함을 의심하는 사이, 대화는 종료되었다.
다 모여 있긴 하지만 주말이고, 다들 가정을 챙겨야 하는 몸 아니겠나.
물론 리처드는 그 전에 학회를 챙겨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 이거 참. 감사합니다. 뜻하지 않게 커다란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해서 리처드는 전화를 끊은 후 감사를 표했다.
이제 슬슬 학회가 잘 돌아가나 보러 갈 생각이었다.
환자가 안 좋다고 하면 대개 다 봐주는 것이 의사들이지만, 그렇다고 계속 죽치고 있으면 나중에 뒷말도 안 나올 건 또 아니라서 그랬다.
“아니, 잠깐만.”
허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현종이 그를 붙잡았다.
“네?”
“말로만 고맙다고 하기야?”
일단 사람이 깡패인 것을 떠나서, 명분이 있었다.
리처드는 실제로 환자를 잃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기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까지 못 갔을 수도 있고…….’
수술을 못 했다?
환자는 오늘을 넘기기도 어려웠을 터였다.
‘수술해서 좌측 결장까지만 절제했을 수도 있지.’
범위를 좁혔다?
그럼 아까 수혁이 말한 것처럼, 두 달 버티면 오래 버텼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환자를 살린 건 수혁이었다.
물론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허나 예후를 이 이상 끌어올릴 수는 절대 없을 터였다.
“그…… 뭘…… 밥이라도…….”
“아니, 아니. 밥 사 먹을 돈이야 충분히 있지.”
“그럼…….”
“태화 의료원에서 뉴욕에 센터 짓는 거 알고 있나?”
“네? 센터를 지어요?”
리처드는 모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미국 지도를 펴고 보면 매사추세츠랑 뉴욕이 딱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리상으론 300km도 넘게 떨어져 있지 않나.
좀 더 과장을 보태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한국 병원이 따로 센터를 개소한다는 게 뭐 그리 큰일이겠나.
미용 쪽 아니라면 전혀 이슈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 뭐 욕심이 큰 건 아닌데 그래도 어? 열면 환자가 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 그렇죠. 병원 짓는 데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근데 태화에서 하는 거면 괜찮지 않습니까? 거기 정말 기업이 크던데.”
“기업 얘기를 하나 내가 지금? 병원 얘기를 하는 거잖아.”
“아, 네네.”
이현종은 리처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수혁은 무언의 응원만 하고 있었다.
‘도움이 안 되지.’
[생떼 부리는 건 이현종이 세계 최강일 겁니다. 쫄지만 않으면 되는데…… 공권력에 너무 약한 게 아쉽군요.]
‘아…… 하긴. 경찰서에서는 외면하고 싶더라.’
[자꾸 분다고 해서 진짜 조사 들어올 뻔했잖아요. 뭐가 있나 해서.]
뭐 이상한 거라도 불었나 싶었을 텐데, 원내 조사에 의하면 이현종이 불어 본 것이라고는 풍선뿐이었다.
“지금도 봤잖아. 열게 되면 환자 좀 보내 봐.”
“아…… 환자를요. 음. 근데 이수혁 교수님이나 교수님이 계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화기는 부서졌냐? 전화로 하면 되잖아.”
“아니, 그게…….”
“거기는 아예 원격 의료 시스템을 쫙 갖출 거라고. 영상 통화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게 될 거야. 그럼 더 양질의 진료가 가능하지. 아니지, 방금 봤잖아. 이런 상황에서도 진단을 하는데 어? 믿음이 없네, 이놈이.”
“아…… 그. 네. 음. 하긴 그렇긴 합니다. 뭐…… 안 그래도 과장 모임이 있으니까 거기서 말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아시죠? 저희 그…… 자존심이 장난이 아니에요.”
리처드의 얼굴에는 진심이 떠 있었다.
돕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자존심 얘기도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현종 정도 되는 의사 아니고서는, 국제 학회에서 말발이 서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미국놈들이 그게 제일 심했다.
동양에 대한 뿌리 깊은 무시가, 이제는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곤 하지만 옅어져 간다는 건 곧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과 동일시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노력을 하라고. 우리 쪽에서도 노력을 할 거니까.”
이현종이 그걸 모르겠나.
누구보다 차별에 맞서 싸웠던 사람인데.
‘한인 커뮤니티 쪽으로 홍보한다고 했지?’
[네. 서부에는 동부보단 적다고 하는데, 그래도 뭐 얼기설기 돌아가긴 할 거라고 했습니다.]
‘얼기설기?’
[신현태가 한 말입니다.]
수혁과 바루다가 하나 마나 한 말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동안 대화는 끝났다.
나름 건설적인 대화였다.
리처드면 그래도 방귀깨나 뀌는 인물이니까.
허나 변화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음…… 나무위키가 있네? 영문 버전이 따로…… 있어?’
외과 교수는 아까 주워들은 이름을 검색해 보곤 조금 놀랐다.
기껏해야 병원 홈페이지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위키에 등재되어 있지 않나.
게다가 그 퀄리티가 무슨 할리우드 연예인 같았다.
‘아, 이 사진이구나…… 몰타…….’
사진도 있었다.
몰타 십자가를 배경으로 한, 어딘지 모르게 좀 성스러워 보이는 사진이.
“저기.”
“아, 네. 환자분.”
그때, 환자가 눈을 떴다.
외과 교수는 집도의의 책임감으로 인해, 또 VIP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런 외과 교수에게 묻는 환자의 눈은 영명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