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화 시험 (2)
“네, 자기소개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명의를 향해 한수혁 두수혁 나아가고 있는 안대훈이라고 합니다."
“아......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기자는 진짜 특이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면서 나이를 물었다.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머리에서 시선을 재빨리 거두었다.
안대훈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달려가고 있습니다.”
“네?”
기자는 '네?'라고 하면서 대박이라는 생각을 했다.
야외이기도 하고 대강 준비해서 온 터라 모니터링은 안 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일 거라고.
카메라 감독의 얼굴도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소개가 특이하신데 ...... 무슨 뜻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별거 아닙니다. 이수혁 교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에 반해, 멀리 있던 이현종은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나름 태화에서 밀고 있는 애 아닌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조커 카드라고 봐도 좋았다.
이수혁 같은 괴물이 또 하나 있는 게 아니라면, 저놈보다 잘할 수 있는 애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
헌데 인터뷰라는 복병이 있을 줄이야.
"이수혁...... 교수님이요?"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기자가 '교수님이요?' 하며 말끝을 올리고 나서부터, 안대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혹자는 홍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수혁은 알 수 있었다.
“쟤는 무슨 얘기를 하길래 저렇게 화가 났어요?"
바루다 없이도 안대훈의 감정 정도는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지내온 덕이었다.
"이수혁 교수님도 모르면서 무슨 의학 전문기자란 말입니까!"
그 순간, 안대훈의 일갈이 공간을 잠식했다.
긴장한 얼굴로 시험장으로 향하던 이들도, 그런 레지던트 3~4년 차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기 위해서 왔던 교수들도 죄다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기자는 이제 대박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당황했다.
"네? 저....전 의학 전문기자 아닌데…”
“근데 여긴 왜 왔어요?"
“유수의 대학 병원 교수님들이 다 오셔서요...... 작년에 내과 합격률이 사상 최악이기도 했고…… 나름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카메라 감독은 저게 무슨 기자냐 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자는 그런 눈빛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따박따박 현 상황에 대해 늘어놓을 수 있으면서…… 이수혁 교수님은 모른다고요?"
"그…… 죄송합니다."
“잘 들어요. 이수혁 교수님은.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이신 이수혁 교수님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의사십니다."
"아…… 네.”
이쯤 되니, 기자는 이 사람이 진짜 시험장으로 가는 게 맞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다.
'이상한 사람 아니야, 이거?'
원래 선거 시즌이나 이럴 때 되면
출몰하지 않던가.
쉬쉬해서 그렇지, 방송국에서 열성 지지자라고 판단해 인터뷰했던 이들 가운데서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던 이가 더러 있었다.
"저기 계시네요!"
그때, 안대훈이 수혁을 발견했다.
수혁은 후회했다.
안 들린다고 가까이 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뭘 하든 말든 버스 안으로 숨었어야 했는데.
"아, 저분이?"
기자도 안대훈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수혁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차라리 당당하게 가죠.]
'그게 좋겠지?'
[네.]
허나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마치 지목당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인 것처럼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서 있었다.
최대한 친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오늘 뭔 날인가?'
기자는 대박이라는 생각에 일단 달렸다.
안대훈도 함께 내달렸다.
카메라 감독도 달렸다.
수혁은 차분한 얼굴로 그들을 기다렸다.
최대한 잘생겨 보이는 앵글을 비추기 위해, 미세하게 고갯짓을 하면서였다.
- 와...... 교수님 젊다.
- 제자는 또라이고 교수님은 멋있네.
- 제자가 저렇게 열 낼 정도면 진짜 좋은 사람일 듯?
반응은 꽤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 자체가 잘생겨지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상황이 좋아지면서 잘생겨 보이게 되는 사람들은 꽤 있지 않나?
용 됐다는 말이 괜히 흔히 쓰이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수혁도 그랬다.
어렵고 어려웠던 학생 시절에 비해, 지금은 그야말로 여유가 넘치는 삶이었다.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결코 일을 적게 하는 게 아니지만, 워낙에 능력이 좋다 보니 실제 일하는 시간은 다른 교수들보다 적을 때가 훨씬 많았다.
“안녕하세요, 이수혁 교수님이신가요?"
“아, 네.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와…… 나이가 젊어 보이시는데…… 부센터장이시군요."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이런 쪽으로는 재능이 있기도 하지 않던가. 말이 이쁘게 나갔다.
"응원도 나오시고......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도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기자의 말에 수혁은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애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가르치는 데 관심은 많은 편이고.
허나 진짜 '제자'라고 생각하는 범위는 좁은 편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 안에 안대훈은 당연히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이죠."
해서 수혁은 안대훈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으, 으앗.”
안대훈이 정신을 놓을 뻔하는 사고가 있긴 했지만, 동시에 발끝을 밟았기 때문에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메라는 수혁을 잡고 있었다.
그의 훈훈한 눈을.
"그중에서도 우리 안대훈 선생은 제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제자입니다."
“아...... 네. 그럼 합격은 당연하겠군요?"
"합격이요? 하하하."
철저히 계산된 타이밍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가 얼타고 있는 사이, 수혁은 말을 이었다.
지긋이 안대훈을 바라보면서였다.
안대훈은 떨려서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고… 오늘 죽어도 여한이……'
이대로 승천할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제 생각에 우리 대훈이는 수석을 해야 마땅한 인재입니다. 어쩌면 만점을 노려볼 수도 있죠."
"네? 전문의 시험 만점은…… 굉장히 어려운 거 아닙니까?"
“제가 만점이었거든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와......."
“아무튼, 이쯤 하죠. 대훈이랑 잠시 얘기를 나눠야 해서."
“아, 네네.”
수혁은 안대훈을 띄워 주면서 동시에 자기 자랑도 하고, 그대로 안대훈을 끌고 버스 쪽으로 갔다.
환영은 없었다.
“수, 수혁아…… 방송에다 대고 만점 드립을 치면 어쩌냐."
신현태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안대훈의 멘탈이 강하다고 치자.
어지간한 요구에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신현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방송에서?
"아니, 이놈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 국민 앞에서."
혹시 이현종하고 합의가 되었나 하는 생각에 옆을 노려보았지만, 이현종도 놀란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대훈아, 잘할 수 있지?"
수혁은 뻔뻔한 얼굴로 둘 말고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신현태와 이현종도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하긴 안대훈이 중요하긴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소인, 이 빵이 식기 전에 만점을 따오겠나이다.”
“아까는 뭐라도 깨달은 사람처럼 차분하게 굴더니 갑자기 관우가 됐어.”
"그럼."
"야. 커피는!"
“이미 내일 잠까지 다 깼습니다. 하하!”
안대훈은 긴장의 'ㄱ'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애초에 만점을 노리고 오지 않았겠나.
선언도 했더랬다.
-이제부터 우리는 만점을 노린다.
수혁이 만점을 했으니 우리가 그 전통을 이어야 하지 않겠나!
다음 대에도 우하윤이 있으니 걱정 없을 터였다.
“패기 보소….”
“쟤도 진짜 특이하긴 해."
그런 안대훈의 뒷모습을 보며 신현태와 이현종이 중얼거렸다.
"만점 받아라."
수혁은 영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을 배경음 삼아, 안대훈은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머릿속으로는 그간 보아 왔던 케이스들을 돌려 보고 있었다.
컴퓨터라면 위잉 하는 소리라도 들렸을 정도로 맹렬하게 돌아갔다.
'만점이라.'
안대훈은 지난 3년을 돌이켜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쏜살같이 흘러간 세월이겠지만.
그에게는 정말이지 기나긴 세월이었다.
인고의 시간이었나?
그건 아니었다.
수혁의 곁에 있었으니.
허나 편안한 3년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노력?
그간 안대훈이 해온 것을 단순히 노력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을까.
대체 어느 인간이 머리털을 희생해가며 공부하고 진료하고 또 한 사람을 추종할 수 있단 말인가.
일종의 광기요, 집착이었다.
그 끝에 사람을 살리는 일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지경이었다.
“아, 대훈아."
그런 대훈에게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동기였다.
“아.”
"자신 있냐?"
동기의 말에 대훈은 씨익 웃었다.
“당연하지."
“너라면 그럴 만하지."
안대훈의 광기는 비단 안대훈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이가 보기에도, 안대훈은 최선을 다했다.
오히려 윗사람이 아니라 동기들이 볼 때 제일 두드러졌다.
애초에 수혁에게 가기 전에 안대훈에게 먼저 들러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드르륵.
안대훈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세로로 네 개의 줄로 책상이 늘어서 있었다.
1, 3줄은 재활의학과가 앉고 2, 4줄은 내과가 앉아서 시험을 보는 시스템이었다.
컨닝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컨닝할 생각이나 할 인간은 의사를 하면 안 되지만, 하여간 시스템은 그렇게 갖추어져 있었다.
“흠."
안대훈은 앉아서 정리된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런 안대훈을 보면서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내과 레지던트치고 그를 모르는 이가 없어서 그랬다.
딱히 특이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제자 왔다.'
‘저 노트 좀 봐라…... 얼마나 공부를 했길래……'
그의 실력은 꽤 정평이 나 있었다.
수혁만큼은 아니겠지만, 수혁이 열어 둔 길 덕분인지 주목은 오히려 더 받았다.
물론 안대훈은 그런 수군거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소의 뿔처럼 자기 할 일만 똑바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그럼 내과부터 시험지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덮어 놓고 계시고...... 종치면 그때부터 푸시면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험지가 나누어졌다.
안대훈은 차분히 눈을 감고, 최대한 수혁의 느낌을 살리다가 종이 치자마자 뒤집었다.
대훈은 일단 문제를 훑었다.
'문제지가…… 엄청 두껍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였다.
평년보다 쉽게 나온다더니, 문제지 두께가 어마어마했다.
괜찮았다.
다 맞추면 그만이니까.
'이게 교수님이 내신 문제로군.'
그러다 어느 한 문제에서 멈추었다.
비슷비슷한 양상의 문제들이 꽤 있었지만, 느낌이 아예 다른 지문이 있었다.
수혁의 베베 꼬인 인성과 더불어 역시나 꼬여서 나온 문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안대훈은 합장을 한 후 그 문제부터 풀기 시작했다.
'쉽다며?'
'시발 이 미친 교수 새끼들.'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듯 욕설이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