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5화 (865/1,303)

865화 Case 1 (4)

수혁은 자리에 앉았다. 머릿속 한구석엔 내내 아까 전원 받은 환자가 들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환자를 안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아직 원장과 사모도 입원 중이었다.

둘 다 이미 일반 병실로 이동해서 같이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한 시간은 뚝딱이었다.

'처음엔 그래도 보육원 걱정 많이 하시더니……'

[태화에서 일단 전담해 주고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합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돌변해?'

[뭐…… 홀가분해 보이긴 합니다.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어찌나 옛날이야기가 많이 나오던지. 솔직히 말하면 수혁은 이제 기억조차 안 나는 일들이 더 많았다. 아무튼, 사모님은 이제 그냥 다 나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물론 냄새도 못 맡게 되었지만.  헷갈리게 만들었던 후각이었던만큼, 오히려 지금이 더 낫다고 볼 수 있었다.

'원장님이 걱정인데……'

[이제 남은 건 하늘이 할 일이라고 봐야죠.]

'혈종이랑 방사선 종양학과에서 하는 일 아니냐?'

[은유적 표현이라는 걸 아예 모르는군요. 수혁은.]

원장도 사실 희망적이었다. 그게 간세포암종이었다면 지금쯤 임종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했을 테니까. 그만큼, 간암은 현대의학이 발전한 지금도 정말이지 무서운 병이었다.

'일단 검사가 좀 더 나왔군.'

그 둘을 포함한 환자들을 쭉 둘러보고 나서야 수혁은 오늘의 환자를 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검사 결과가 다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면역 관련한 검사들은 시간이 좀 걸려서 그랬다. 빨리 한다 해도, 내일은 되어야 결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닦달해서 빨리 나오는 종류의 검사라면 이현종을 출동시켜서라도 보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게 아니었다. 아니, 지금은 이현종도 없었다.

요새 저녁이 되면 칼같이 이기자를 보러 가서 그랬다.

‘그…… 대리 뮌하우젠 겪었던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다던데.'

[아. 뭐...... 엄마 아빠 나이가 너무 많은 건 단점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아이 아버지는 눈앞에서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조사상 적어도 방관자였다는 것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었다. 근데 아이를 그 아빠 밑에서 키우게 해?

뭐 대한민국 법이 그렇진 않지만, 이건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지 않나. 게다가 태화에서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일이 제대로 되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여간...... 혼자 봐야겠네.'

[둘이죠.]

‘아, 그래. 둘이 보면 되겠네.’

[보시죠.]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검사 결과를 띄웠다. 우선 확인 가능한 것은 역시 기본 검사, 그중에서도 CBC(일반 혈액 검사)를 보았다. 일차적으론, 혈소판이 감소해 있었다.

원래도 감소해 있었는데 그 정도가 더 심해져 있었다. 그 외에 빈혈도 더 심해져 있었다.

'희석으로 보이진 않아.'

[네. 이건 명백한 경향성입니다. 인위적인 개입이라기보다는…… 질환이 진행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그렇지.'

원래 병원에 오고, 특히 수액을 맞고 나면 수치가 살짝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병원에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여부도 중요했다. 괜히 검사할 때 밤에 뭐 먹지 말고 오라는 게 아니지 않겠다. 때문에, 사실 검사 결과를 볼 때는 이러한 것도 잘 봐야 했다.

'살짝...… 크레아티닌이 올랐네 (신장 기능이 저하될 때 상승).'

[이것도 경향성이라고 봐야 합니다. 수액이 들어가고 있고, 탈수 정황이 전혀 없는데 올라갔다면 이상한 거예요.]

'그래. 음...… 확실히…… 신장에 이상이 있어.'

[면역 관련한 질환일 가능성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물론, 패혈증도 심하면 신장이고 뭐고 다 망가뜨릴 수 있는 질환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패혈증에 의해 이런저런 기능이 망가지고 있다면, 환자는 죽어 가고 있어야 했다. 허나 환자의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할지언정 죽기 직전은 아니지 않나.

수혁과 바루다 모두 면역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었다. 허나 어떤 질환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하나의 질환군이긴 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영역이기에 그랬다.

'쿰즈 검사(Coombs' test, 면역 질환 검사)도 양성이고.'

[림프절이 살짝...... 커져 있었습니다.]

'경미했지.'

[네. 감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전신적 염증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겠죠.]

‘그렇지. 그게 합리적이야. 아, CT도 찍었네, 이것도 좀 보자.'

[네.]

혈액 검사 중 결과가 나온 것들은 정리한 상황. 여기서 더 해야 할 것은 역시나 영상 검사 리뷰였다.

CT가 흔해지다 보니 가치가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었다. CT는 여전히 진단에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드르륵.  수혁은 CT 영상을 띄우고 마우스 스크롤을 굴렸다.  그런 수혁을 당직 레지던트들이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교수도 눈에 띌 텐데, 이건 수혁이니까. 물론 그 안에서도 유독 더 열심히 보는 사람이 있었다.

- 어때?

- 아주 흥미롭게 보고 계십니다.

- 좋아.

김승규의 사주를 받은 이였다.

아니, 사주라고 하면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터였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시발.'

편의점에서 마주친 김승규는 저승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내과?

-네.

그런 사람이 대뜸 내과냐고 묻는데 어찌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뒤늦게 명찰을 비벼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끌려가서 들은 말이 그렇게까지 비합리적인 건 아니란 점이었다. 그냥 수혁이 지금 환자를 열심히 보고 있는지, 그것만 얘기해 주면 되었다.

"음......."

수혁은 뒤에 붙은 레지던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영상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장막에 부종이 있어.'

[이건 내시경에서도 확인했던 병변이지 않습니까?]

'설사의 결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복수가 있군요.]

'그래, 복수는 설사 좀 한다고 생길 수 있는 게 아니지. 거기다 흉수도 있잖아. 이건 다발성 장막염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봐야 해.'

[그럼...... 결과면서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는 겁니까?]

'얘기가 복잡해지는데……… 원래 우리 몸이 그렇잖아?'

[그렇긴 하죠.]

몸은 기계가 아니지 않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각기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었다.

‘살짝…… 신장에도 물이 좀 찼네. 검사 결과만 그런 게 아니었어.'

[신기능에 장애가 있군요.]

‘뼈...... 뼈 세팅으로 바꿔 보면…… 이게 애초에 타겟이 아니었어서 잘 안 나오네.'

[뭘 의심하는지 알겠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확실히… 흠.]

마지막 뼈.  이건 사실 영상의학과 의사라고 해도 답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소견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영상이 진단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을지언정 영상만으로 진단을 내릴 수는 없지 않던가.

어떻게 본다 해도, 현재까지 나와 있는 영상은 그림자를 보는 것일 뿐이었다. 임상과 연계하지 않으면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했다.

이 두 연계만 제대로 되어도 놓치는 질환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현재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

있었다.  여기.

“정리해 보면……...”

잘난 척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

이수혁.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여태까지 축적한 데이터상으로 가장 있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침 방금 의미심장한 말을 해 놓은 참이다 보니, 뒤에 있던 당직의들의 귀가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간호사들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들 보고 있습니다.]

'좋아.'

[근데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그래야 머리가 더 잘 도는 걸 어떡해. 네가 그랬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대체 인간이 왜 이러냐고요.]

'그건 나도 몰라. 나중에 내 생물학적 부모님 혹시 찾게 되면 조사해 봐.'

[말을 또 이렇게 하네?]

잘 모르는 사람이 내막을 들여다본다면 진짜 잘난 척에 환장했구나 싶겠지만. 사실 수혁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수혁은 머리를 더 잘 굴릴 수 있었다.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바루다를 통해 입증해 낸 과학적 사실이었다.

“이 환자의 문제 목록은…… 일단 발열, 복통, 설사. 이 모든 증상은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심해지고 있고…… 변과 혈액 배양 검사에서는 지라는 게 없었지.”

수혁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도 되게 있어 보이게 읊을 수 있는 재주를 익힌 바 있었다. 그리고 그 재주를 불철주야 갈고닦은 덕에 이제는 신묘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당직의는 물론이거니와 딱히 담당 간호사가 아닌 이들조차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모여든 이들 가운데 집중력이 흩어진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혈구 수에서도 이상을 보이고 있지, 혈소판이 감소해 있고……. 빈혈 수치는 애매하지만 성별과 나이를 고려할 때, 그리고 경향성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대로 좀만 더 있으면 빈혈도 생길 거야. 거기에 더해…… 다발성 장막염 소견을 보이고 있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럴 터였다.

수혁은 어느새 검사 결과에 내시경 사진과 CT 영상을 띄워 놓고, 마우스로 문제가 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 놓고 있었다.

“그로 인해 흉수와 복수가 있고…… 수신증도 있고, 크레아티닌이 증가해 있어. 골수는…… 흠. 이건 애매하긴 한데……?”

수혁은 딱 말끝을 올리면서 눈을 떴다. 그러곤 모여들었던 이를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그의 눈을 따라갔다.

“영상의학과에 뭘 해 봐야 나오는 건 없을 거야. 왜냐면 충분히 정상 소견도 줄 수 있는 사항이거든. 하지만…… 우리는 이 환자가 혈구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고 빈혈도 진행 중이라는 걸 알지. 그 생각을 하고 보면 어때."

그러다 결국엔 수혁이 가리킨 곳을 보게 되었다. 그 끝에는 환자의 척추뼈, 정확히는 그 안이 있었다.

‘존나 모르겠는데………’

당직의 둘이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말은 안 했지만 알 수 있었다. 서로가 뭣도 모른다는 걸.

'본적 있어?'

'아뇨.'

간호사 둘도 비슷한 의견을 교환했다. 누굴 탓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런 거 모른다고 해서 흠이 되진 않을 테니. 아니, 수혁조차도 정말 이게 맞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다.

그냥 씨불이는 것이었다. 홍분되면 머리가 더 잘 돌 테고, 그럼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골수에 섬유화가 살짝 진행 중인 것으로 보여. 정확한 건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그렇다고 환자 골수에 바늘을 박을 거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말이 바늘이지, 바늘 형태를 한 드릴 같은 것이라 그랬다.

그런 짓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확신이 있어야만 했다.

“일단 넘어가고. 면역 질환 인자는 아직 안 떴지만…… 쿰즈 검사(Coombs' test)에 대해서는 양성 소견을 보였지. 면역 질환일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봐야 하고...… 거기에 더해 경미한 림프절 병증도 있어.”

수혁은 놀란 얼굴의 나머지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커질수록 머리도 빨리 도는 느낌이었다.

[와 이게 되네. 진짜 빨리 돌고 있어. 카페인 열 잔 먹어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정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나 할까.'

[잘난 척이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하여간, 뭐라도 나올 거 같지?"

[이 속도라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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