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52화 (852/1,303)

852화 외과 장준혁 (2)

‘미친놈인가…….’

[호오, 음 기법이 대체 뭘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저 사람 상상 속에서 펼쳤던 무언가 같은데.’

[거참. 병원이 커서 그런가, 진짜 이상한 사람이 많네요.]

수혁은 일단 장준혁과 좋게 좋게 헤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뭐가 되었건 최선을 다해서 원장을 수술해 준 사람이지 않나.

거기서 괜히 얼굴 붉히고 할 일은 없었다.

장준혁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 새끼 그거 뭐…… 교수 휴게실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있었더구만……?”

“제가 진짜 그 자리에서 스타일러 제안서 찢어 버리려다가…… 참았어요.”

“잘했어……. 어쩌겠어, 한번 크게 신세 진 셈인데. 모르긴 해도, 수혁이가 보기에 수술이 아주 잘된 모양이잖아?”

“그건 그래요. 쟤가 어떻게 그런 걸 알까…… 싶긴 해도, 또 쟤니까 알 거 같기도 하고?”

원장과 전임 원장이 그의 사소한 비리를 넘어가 주게 되었으니.

하여간 일행은 그 길로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아까는 집도의가 환자를 확인하고 또 처방하고 있어서 그냥 있었지만, 이제 일이 얼추 끝났으니 환자를 보기 위함이었다.

슈욱. 슉.

원장은 당연하게도 의식이 없었다.

재워 두고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었다.

지금 봐야 할 것은 의식 수준이 아니라, 상처와 나머지 바이탈이었다.

“뭐…… 워낙 꼼꼼하게 봉합을 해 놔서.”

“그러니까 말이야.”

이현종, 신현태, 안대훈 그리고 조태진은 훌륭한 내과 의사였다.

안대훈이 여기 끼는 게 미안할 정도로 나머지 셋은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이현종은 월드 클래스였고.

허나 내과 의사가 어찌 외과 처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그저 겉에 드러난 상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드레인되는 건…… 색 괜찮네.’

[괜찮은 정도가 아니고…… 피가 거의 안 나오는데요?]

허나 수혁은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리지 않았나.

다리 때문에, 또 타고난 피지컬 때문에라도 전설적인 외과 의사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식은 탁탁 쌓을 수 있었다.

‘발열도 없고……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데도 그래.’

[아무래도…… 아까 나오기 전에 마취과에서 일부러 매뉴얼 배깅을 몇 번 해 준 것도 있고요. 애초에 수술 시간도 예상 시간의 절반이었습니다.]

드레인과 발열.

바이털과 수술 부위의 발적 등을 제외하면 수술 직후 제일 면밀히 봐야 할 두 가지라고 보면 되었다.

“수혁아, 뭐 좀 알겠어?”

“아, 네.”

이현종은 본인이 알아볼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의학적인 흥미가 대부분 내과적인 곳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랬다.

‘외과 놈들 뭐…… 칼질하는 놈들이지.’

외과 의사가 듣는다면 천인공노할 만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게 내과 평균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내과 의사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높게 쳐 주는 사람이 장인?

어느 정도 수준이 되지 않으면 칼질하는 놈이란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일단 색이 좋아요. 피가 안 나고 있다는 거죠.”

“피? 당연히 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지혈이랑 다 하고 나왔잖아. 혈관도 묶고.”

“아니…… 그래도 우징(새어 나오는 것)이 되기는 하죠. 눈에 보이는 혈관만 있는 건 아니니까.”

“거기서도 피가 안 나면 안 좋은 거 아니야?”

“간혹 아주 깔끔하게 떨어져 나오면 이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수혁도 그랬더랬다.

언제 마음을 고쳐먹었는가 하면, 백강혁을 목도하고 나서였다.

‘괴물……?’

[오늘 장준혁은 괴물이었습니다.]

‘인정.’

모든 칼질에 이유와 근거가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았다.

아마 더 많은 수술을 목도했다면 더더욱 그런 면을 배울 수 있었을 터였다.

그래서 일부러 외면했다.

계속 수술을 봤다간 외과 의사로의 꿈을 꾸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혁은 내과 의사입니다!]

바루다가 지랄하기도 하고.

“그리고 수술 시간이 짧아서 무기폐(폐가 쭈그러든 상태, 수술 후유증)도 전혀 없어요. 물론…… 뭐…… 앞으로는 생길 수 있겠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래요. 수술은 현장에서도 그랬지만, 지금 봐도 아주 잘됐어요. 이 이상을 바라기는 어려울 정도로.”

“허어. 그렇게 잘했어? 백강혁 교수랑 비교하면?”

“오늘은 그 정도 했을걸요.”

“와.”

하여간 백강혁 얘기가 나오니 이현종, 신현태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은 외과 의사로 퉁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죽을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지 않나.

아니, 사람은 맞나 싶었다.

“하여간……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하긴 하는데…….”

수혁은 중환자실에서 딱 상태만 보고 빠져나왔다.

안에 사람들이, 그것도 높은 사람들이 우르르 있으면 간호사들이 일을 할 수 있겠나.

인턴도 밖에서 눈치 보고 왔다 갔다 하는데.

그리 중요한 처치는 아니겠지만.

그러한 처치가 밀리기 시작하면 결국엔 안 좋은 예후로 연결되는 법이었다.

“그 방식이 이상해졌네…….’

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식당이었다.

역삼 부근 새로 생긴 호텔에 딸린 곳이었는데, 보나 마나 이현종이 예약한 곳이었다.

돈 벌어서 쓸 일이 먹는 데 말고는 없다는 평소 말처럼 엄청 비싼 곳이었다.

“와…….”

“어, 수혁아. 먹어. 스트레스받았지.”

“제가 아니라…… 원장님이랑 사모님이 드셔야 되는 거 아닐까요?”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내가 사 드릴게. 오늘은 너 걱정만 하자.”

“아, 네.”

생각해 보면 황당한 일이었다.

아픈 사람이 아니라 보호자에게 이런 걸 사다니.

물론 수혁은 바루다 때문이 아니라 해도 굳이 먹는 것 앞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일단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나.

시비를 가리는 일은 금강산에 비할 일이 아닌 데다가, 눈 앞에 펼쳐진 만찬 또한 조선 시대에 먹던 음식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음.”

잘 먹고, 주말 동안 하루 두 번씩 두 은인이 있는 중환자실을 왕복하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

“안녕하십니까, 이수혁 교수님.”

수혁은 센터 앞에서 장준혁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니, 맞이해야만 했다.

“음.”

“뭐 어디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시군요?”

“아니, 아뇨.”

“호오를 안 하시길래.”

“무슨 말인지 도통…….”

수혁은 뒤통수를 긁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쁘니까 가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벌써 회진도 다 돌았고, 진료 지침까지 다 내려서 그랬다.

할 게 없다, 이 말이었다.

“그, 시간 괜찮으시면 수술방 한 번만 같이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그렇다고 해서 수술방에 가는 게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아…… 응급실 가려고 했는데.’

사실 최근 들어 환자가 늘어 버려서, 취미 생활할 시간도 없지 않나.

오늘 같은 날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아…….]

돌림판 돌릴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안대훈도 드디어 공부하러 가지 않았나.

수혁이 합격이 아니라 수석을 주문했더니, 화들짝 놀란 덕이었다.

‘어쩔 수 없지.’

[네. 확실히 원장의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아까 중환자실에서 본 원장은 놀랍게도 깨어 있었다.

수술이 워낙에 잘되어서 그랬다.

그 수술은 해낸 주인공이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뭘 어쩌겠나.

가야지.

“네, 가시죠…….”

해서, 수혁은 한숨과 함께 장준혁을 따라나섰다.

그런 수혁과는 달리 장준혁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좋아. 이제 나도……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포기했던 꿈, 백강혁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으니.

‘수술을 보면서…… 배울 게 있겠지.’

[있을까요? 저는 이미 백강혁의 수술을 데이터화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수술 종류가 다양하잖아. 게다가 이 사람은 간담췌야. 아마…… 수술 종류가 많이 다를 거야. 애초에 그 뭐야…… 내과랑 연관도 좀 있고?’

[역시 수혁은 긍정적인 인간입니다.]

수혁은 그런 장준혁의 활기찬 발걸음에 이끌려, 그 뒤를 따라서 걷고 있었다.

수술실이 본관에 있어서 꽤 많이 걸어야 했다.

신체적인 한계로 걷는 걸 싫어하는 수혁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응급실도 본관에 있긴 한데, 그러한 사실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수혁은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랬다.

드르륵.

하여간 곧 수술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니 대기실에 환자들이 진짜 주르륵 누워 있었다.

이런 건 인턴 이후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맨날 응급으로 밀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주말에 하는 수술이나 따라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와……. 우리 병원 수술 진짜 많이 하는구나.’

[이 정도면 공장 아닙니까.]

그때 봤던 수술 대기실은 한가로웠다.

제아무리 큰 병원이라고 해도 응급 수술이 막 끊이지 않고 생기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 시기에 비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뭐라고 해야 할까…….

‘도떼기시장이네, 진짜.’

[그러니까요. 미쳤네. 수십 명이…….]

아침 첫 수술 시간은 모든 과를 막론하고 다 같지 않나.

그래서 그런가, 환자들이 죄다 몰려서 일종의 병목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 저희 환자는 저기 계십니다. 오늘 간장 공장문합술을 할 예정인데…….”

“위플(췌장의 악성 종양 제거 수술)이요?”

“네.”

“어려운 걸 하시네……”

“네, 그렇죠. 하하. 제 특기이기도 합니다. 다만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벽에 부딪쳐 있어요. 오늘 그 벽을 깨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군요.”

수혁은 장준혁이 지목한, 오늘 수술받을 환자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상태는 나빠 보였다.

당연했다.

위플 수술이라는 게 아무한테나 하는 게 아니니.

[췌장암. 그나마 수술을 할 수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지. 음…… 예후는…….’

[수술이 정말 잘된다고 해도…… 아주 좋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음?]

‘왜?’

그렇게 절망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던 바루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하면서 생긴 습관대로 이리저리 살피고 있던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괜히 이러지는 않았을 터였다.

적어도 수술 대기실에서 장난칠 만큼, 지각없는 인공지능은 아니니까.

[저기. 저 환자 말입니다.]

‘응. 뭐.’

바루다가 보라고 한 환자는 12살인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병동 침대에 실려 내려왔기 때문에 병명도 보였다.

충수돌기염.

잘못된 이름이지만, 보다 대중적인 이름으로 말하자면 맹장염이었다.

‘저게 뭐, 인마.’

틀릴 가능성이 있을까?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남자아이이지 않나.

여자아이라면 안의 구조가 복잡해 헷갈릴 여지라도 있겠지만, 남자는 그렇지도 않았다.

태화 의료원 같은 병원에서, 그것도 꽤 심혈을 기울여 키우고 있는 외과에서 실수를 한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점상 발진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응……?’

허나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저기, 교수님? 이제 저희 들어가는데요?”

“잠깐만요.”

“아니, 거긴 맹장…… 어려울 것도 없는 수술입니다.”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수혁은 부리나케 아이에게로 향했다.

장준혁도 따라가야만 했다.

도리가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