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1화 외과 장준혁 (1)
“후우…….”
환자를 중환자실에 넣고, 처방을 내린 후, 장준혁은 교수 휴게실로 돌아왔다.
나름 원장단에서 신경 써 준답시고 사다 준 안마 의자는 늘 비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여기 있고 싶어 하겠나.
그냥 연구실로 튀어 버리지.
수술방에서 시달리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지는 법이기에 그랬다
‘개꿀.’
허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제아무리 교수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해도 밀리는 시간엔 밀리니까.
게다가 교수 연구실이 죄다 이 건물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짬밥에서 밀리거나 하는 교수들은 이름만 연구실이지, 거의 폐허나 다름없는 곳에 있어야만 했다.
냉정하게 계산하면 왕복하는 데만 거의 한 10분은 잡아먹는 셈이었다.
위이잉.
해서 장준혁은 일찌감치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곳을 개인 방처럼 쓰기로.
얼마나 좋은가.
어차피 여기로 들락거리는 사람도…….
벌컥.
그래.
들어오는 사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옷만 갈아입고 나갈 터였다.
이 안에 잠시라도 앉는 사람을, 장준혁은 보지 못했다.
“이야, 되게 좋네?”
“그러니까. 나는 맨날 사진으로만 보고받아서 무슨 그지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그거 맨날 건의 올리는 게 누구야?”
“장준혁 교수.”
“이상한데? 너무 좋잖아. 게다가 사람은 또 왜 이렇게 없어.”
“그러네. 아까 이쪽으로 들어왔다고 했지? 어디 갔어? 왜 이렇게 넓어, 여기.”
오늘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너무 크게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외과 계열도 아닌 사람들이 왜 수술실에 딸린 교수 휴게실까지 들어온단 말인가.
심지어 하나는 현직 원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직 원장이었다.
“네, 제가 분명히 봤어요.”
지금 들어 보니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나도 봤어.”
아니, 넷?
“저도 봤습니다, 교수님들.”
다섯……?
미친놈들이.
왜 내 평화로운 곳에 쳐들어와서 난리법석을 피우지,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리 길게 유지되지는 못했다.
당연했다.
‘아 씨……. 이거 걸리면…… 이제 발뮤다 커피 머신도…… 스타일러도…… 다 물 건너가는 거 아니야…….’
켕기는 게 있었으니까.
막말로 여기 왜 스타일러가 필요하냐는 말을 외과 교수도 했더랬다.
어차피 수술복만 입고 드나드는 곳인데.
허나 내과 놈들은 아무것도 몰랐고.
-응급 상황에서는 바로 수술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외출복을 여기다 벗어 놓고 들어왔다가 또 환자 만날 때는 그 옷을 입어야 하는데……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오는 옷이다 보니 구겨져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사고를 당해서 마음이 좋지 못할 보호자들에겐 예의가 아닙니다.
이따위 핑계가 먹혔다.
“아, 여깄네. 팔자가…… 팔자가 좋으시네…….”
그렇게 고민하느라, 또 노곤해진 몸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더니 이현종이 까꿍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 네네. 그.”
“아니, 누워 있어. 보기 좋네. 아주 그냥. 나도 안마 의자 하나 놓을까 싶어지는데?”
“이게 왜 안 꺼지지.”
“그냥 있으라니까. 그대로 누워 있어. 우리 이수혁 교수가 할 말이 있다니까.”
“아니, 이게 왜…….”
당황해서 그럴까.
수술방에서는 복부 대동맥이라도 터지지 않는 한 아니, 설령 대동맥이 터지더라도 어느 정도 침착한 대응이 가능했던 장준혁이었지만 지금은 허둥지둥했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버튼조차 누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수혁이 장준혁 앞에 섰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곤 큰절을 올렸다.
사실 장준혁이 본 것은 이수혁인 몸을 숙이는 장면뿐이긴 했다.
안마 의자가 한창 레벨 올려서 돌아가느라 몸을 뒤로 한껏 젖혀서 거의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 야. 너 다리도 성치 않은 애가 큰절을.”
“와…… 누워 있는 사람이 큰절을 받네. 죽은 사람 아니면 로마 황제급 아니냐?”
“장 교수님은 지금 자기가 어떤 영애를 받은 건지 알고 있을까요?”
“대훈아. 화는 내지 말고. 지금 우리 여기 감사 인사하러 온 거야.”
다만 들려오는 대화가 이렇다 보니 유추가 가능했을 뿐이었다.
위이이잉.
하여간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해도, 장준혁은 지금 자신이 대단한 결례를 범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당연했다.
‘시발. 왜 안 꺼져!’
사람이.
그것도 딱히 아랫사람이 아닌 사람이 절을 올렸다.
근데 자신은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도 아니고 윙윙 돌아가는 안마 의자 위에 누워 있어?
미친놈인가?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비록 외과 의사는 아니지만…… 오늘 교수님이 수술할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주셨다는 건 알겠더군요.”
“아아. 그게.”
아니, 이제 예의 운운할 때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인간…….’
이수혁.
이 인간.
수술할 때 보여 준 모습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니 오늘 수술 딱 하나 했는데 이렇게 힘들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토요일이지 않나.
원래 같았으면 안마 의자는 개뿔.
그냥 씻고 집으로 갔을 터였다.
‘오늘 날 채찍질하는 솜씨가 진짜 장난이 아니었어. 흡사…….’
허나 오늘은 달랐다.
이 온몸을 짓누르는 탈력감.
이 어마어마한 체력 손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마치…….
‘백강혁…… 그 사람하고 일했을 때. 그때…….’
김승규?
그 인간도 무섭긴 하지만 백강혁에 비할 건 아니었다.
주먹질을 논하자는 건 아니었다.
일단 김승규의 얼굴을 두고 주먹 운운하는 건 반칙에 가깝기도 하거니와, 김승규한테 맞나 백강혁한테 맞나 어차피 죽을 테니 의미가 없었다.
허나 수술장에서의 날카로움은 비교를 불허했다.
이는 김승규도 확실하게 인정하는 바였다.
“저기. 그. 아, 이제 꺼졌네. 휴.”
필사의 노력을 다한 끝에 장준혁은 안마 의자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머리가 다 눌렸네.”
“주무시고 있었나.”
“수술이 그렇게 힘들었나……? 그거 뭐 얼마나 했다고.”
“어허, 대훈아! 다른 과 교수님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못 써요.”
그 모습을 보며 이현종, 신현태, 안대훈 그리고 조태진이 한마디씩 했다.
솔직히 수혁도 입이 근질근질하긴 했다.
그만큼 볼썽사나운 모습이긴 해서 그랬다.
[이 사람…… 진짜로 수명이 깎였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성장한 거예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소년만화야?’
[저도 모르죠. 하여간…… 뭐. 벌어진 현상일 뿐입니다.]
허나 수혁은 참았다.
바루다가 말한 것처럼, 아까 있었던 일.
그러니까 수술은 어마어마한 일이어서 그랬다.
이 인간은 진짜…….
오늘 최선을 다했단 말로는 부족할 만큼 노력했다.
“그. 이수혁 교수님. 수술에도 조예가 깊으십니까?”
그러한 연유로 야유를 참고 있었더니, 비로소 정신을 차린 장준혁이 말했다.
이수혁과 함께 있던 나머지로서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말이었다.
‘잠에서 덜 깼나?’
‘분위기 훈훈한데, 좀 조용히 해 봐.’
‘설마…… 선지자……?’
‘어? 그러니? 그래 보여, 대훈아?’
각기 성격대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이,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호오’니 ‘음’이니 했던 기억이 없어서 그랬다.
그냥 바루다와 대화를 하면서, 무아지경 속에서 내뱉은 단어들일 뿐이었다.
“네?”
해서 ‘뭔 소리예요’ 하는 얼굴로 되물었고, 장준혁은 제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수혁…… 다들 천재라고 하지. 진단의 천재…… 논문의 천재…… 강의의 천재…….’
아닌 게 아니라, 수혁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 천재라는 소리가 파다했으며, 최근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문제도 잘 낸다는 말이 있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아예 다른 과들도 나중에 내과 문제를 참고해서 내면 좋겠다는 말이 보건복지부 측에서 공공연히 돌고 있을 지경.
‘근데 왜…… 수술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다곤 해도, 수술은 또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머리만 써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나.
순발력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피지컬이 필요했다.
괜히 대부분의 외과 의사들의 전성기가 50대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순발력과 피지컬.
이 둘은 노화에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것들이기에 그랬다.
‘수술도 잘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천재야. 그것도…… 백강혁급의.’
장준혁급의 외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그냥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 생각이었는데.
장준혁은 지금 너무 힘들기도 하고, 또 아까 했던 경험이 강렬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안마 의자에 누워 원치 않던 결례를 범해 버린 일 때문에 정신이 나가서 제대로 된 사유가 불가능했다.
“겸손하시군요. 저는 오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해서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이현종과 신현태는 수혁을 애정하지만 종교적인 방면으로 애정하는 건 아니었기에, 이 새끼가 미쳤나 싶었다.
허나 안대훈과 조태진은 달랐다.
둘은 살짝 미쳐 있었고.
하필이면 그 방향에 종교가 닿아 있었다.
‘뭔가…… 교신이 있었나.’
‘그런가 본데…….’
‘소인…… 질투가 나는데 괜찮을까요?’
‘나도 질투가 나긴 하는데…….’
‘그럼 괜찮은 거 아닐까요?’
‘아니. 불경한 일이지. 회개해야지.’
해서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수혁은?
‘뭔 미친 소리야 이게.’
[은인에게 미쳤다니요?]
‘미친 소리를 하잖아?’
[그래도 장단 맞춰 주시죠. 불쌍하기도 하고. 고맙지도 않습니까? 이러고도 수혁이 사람입니까?]
‘하.’
당연히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바루다의 의견도 옳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나.
오늘 수술로 인해 원장님이 살아날 가능성이 대폭 올라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장준혁의 수술은 대단했다.
초반엔 솔직히 그냥 대가의 솜씨에 불과했는데, 나중에는 이게 백강혁인지 장준혁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 네. 제가 미욱하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영광입니다.”
[말을 또 왜 그렇게까지 해요?]
‘장단을 맞추라며, 니가!’
[안대훈 느낌 나는 단어를 썼는데…… 저도 모르게 닮아가나.]
‘무서운 소리 하지 말고.’
그런 수혁을 장준혁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백강혁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헛된 꿈.
그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그렇게 여기고 그냥 자기만의 길을 걷기로 했다.
보다 위를 향한 훈련이 아닌, 지금 걷는 길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훈련을 했다.
헌데 오늘 빛을 보았다.
‘이 사람이 도와주면…… 가능해. 하필 다리를 다친 게 한이지만……. 그냥 뒤에서 조언만 해 줘도…… 난 위로 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즉시, 장준혁은 무릎을 꿇었다.
“?”
수혁은 그런 장준혁을 내려다보았고.
장준혁은 말을 이었다.
“수술…… 한 번만 더 들어와 주십시오. 호오, 음 기법을…… 한 번만 더…….”
“?”
무슨 소리일까.
이제 이 방 안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장준혁을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신현태는 장준혁이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았는지 가늠하고 있었다.
안 받았으면 어떻게든 자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