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50화 (850/1,303)

850화 전문의 시험 (4)

“네? 다시 오라고요?”

“뭐…… 그럼 제가 과장님께 전화해요? 지금 영화관 같은데…… 우리 박 교수 땡땡이치고 있다고 해요?”

“아니, 다시 오라고 하셔서 즐겁다는 의미였습니다. 벌써 밖으로 나왔습니다. 네.”

까라면 깐다.

서기관이 까라고 해서 우창윤과 동종헌은 까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이 까니까 밖으로 나갔던 모두가 까여서 돌아오고 있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수혁은 이미 문제를 다 내고 가방을 싸고 있었다.

“동종헌 교수님?”

“네?”

동종헌은 바빴다.

그리고 쩔쩔매고 있었다.

다시 오는 교수들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아서 그랬다.

아무리 아랫사람들이라곤 해도 할 짓이 있고 못 할 짓이 있지 않겠나.

가라고 했다가 다시 부르다니.

“문제…… 이렇게 내라고요?”

“어…… 네. 이렇게 해 주시면 됩니다.”

“아까는 족보 타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죄송합니다. 그게, 어.”

천하의 우창윤도 쩔쩔매고 있었다.

그로서는 정말 드물게 정수리를 보이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일임을 알겠지만 주니어 교수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이 잘못하면 사과하는 게 맞지 않나.

그걸 안 하면 사람이 아니었다.

“동종헌 교수님?”

하여간에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기관은 자신이 만든 작은 지옥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내 일 아니지, 뭐.’

어차피 출장 끊어서 온 몸 아닌가.

서기관이라고 해 봐야 여기저기 드러낼 일이 잘 안 생기는데, 이 정도면 훌륭히 생색도 낼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해야 할 시간에 하는 건데 뭐’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수혁은 동종헌 교수의 어깨를 쿵 하고 두드렸다.

“어, 왜요.”

동종헌도 부르는 건 알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깨까지 두드리니 별 수 있나.

돌아보는 수밖에.

따지고 보면 이 인간이 문제를 너무 잘 내서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긴 하지만, 또 따지고 보면 이 인간만 열심히 낸 거긴 했다.

그렇게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환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반구정 안 가요?”

“아…….”

돌아온 답은 참 의외의 것이었다.

‘미치셨나.’

미쳤냐고 하고 싶었다.

아까랑 상황이 달라진 거 안 보이냐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는데, 수혁의 표정이 너무 진중했다.

[가야 됩니다. 검색해 보니까 진짜 미쳤는데요?]

‘어, 나도 이번만큼은 진심이야.’

수혁도 수혁이지만 바루다 때문이었다.

바루다야말로 식충이 그 자체이지 않나.

그리고 수혁은 바루다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편이었다.

“음.”

동종헌은 난감한 얼굴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들이 과연 자기가 없어도 노력해 줄까?

아니, 아니었다.

자기가 있어도 분노를 숨기지 않는데, 만약 자신이 없어지면?

게다가 병원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반구정에 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

이곳은 거대한 뒷담화장이 될 터였다.

“혼자…… 혼자 가시면 안 될까요?”

“네?”

“혼자…….”

“카드 있어요?”

해서 되게 미안한 말을 하는데, 수혁은 별 상관없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법카를 꺼낸 동종헌 교수의 손에서 카드를 들고 날랐다.

그렇게 남게 된 동종헌은 빈손을 잠시 내려보다가.

“여기를 이렇게 내라고요?”

이미 한참 전에 이해했지만, 화를 낼 대상이 필요한 주니어 교수에게 불려 갔다.

우창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수혁은 홀로 나와 차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사실 내가 돈이 없어서 못 먹고 다니는 건 아닌데.’

[하지만 남이 사 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법이죠.]

‘넌 인공지능인데…… 그런 심리가 있냐?’

[초고도로 발달된 지능이라서요.]

‘그래, 뭐……’

지 입으로 초고도니 뭐니 운운하는 게 어이는 없었지만.

뭐라 하겠나.

실제로 현시점에서 가장 발달한 인공지능이긴 할 텐데.

하드웨어가 수혁의 뇌라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진짜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

‘근데 그보다…… 문제를 다 저렇게 내면 결국, 쉬운 건 아닐 거 같긴 한데.’

[쉽지 않나요? 다 기본적인 질환들만 다루게 될 텐데요?]

‘그건 그렇지만…… 기본적인 질환이라고 해서 실수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런 실수를 하는 놈은 전문의가 되면 안 되죠.]

‘네가 하는 말이 그런 거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문제가 걱정이었다.

‘나처럼 딱 난이도 맞춰서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상황에서 또 자기 자랑을 엮는다고요? 미치셨어요?]

‘아니…… 잘 생각해 봐, 인마. 되겠어? 난이도가 되겠냐고. 나도 여기 오기 전에 애들 싹 면담하고 나서야 실력 파악이 됐다고. 그런 파악 자체도 쉽지 않은데 실력에 맞춰서 내는 건…… 어때. 어렵지 않겠냐?’

[저들도 교수인데 뭐. 설마 이상하게 하진 않겠죠.]

‘뭐, 나중에 문제 받아 보면 알겠지.’

[그래요. 일단은 달립시다. 장어라니. 실로 오랜만이지 않소.]

‘뭔 말투야 이건 또.’

물론 지금 와서는 다 알 바가 아니긴 해서, 수혁은 액셀을 밟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날 저녁이면 문제를 받아 볼 수 있지 않겠나 싶었다.

허나 수혁의 말대로 다른 이에게 이런 식의 문제를 내는 건 더럽게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필요한 정보가 들어가면서, 동시에 문제로 낼 만한 정보는 숨기는 지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혁은 원장 수술이 있는 날까지도 문제를 받아 볼 수 없었다.

원장 수술 때문에 긴장도 되었겠다, 투덜거림이 시작되었다.

“아니, 교수란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뭘 며칠씩 내고 있어.”

“그러니까 말이다. 나였으면 벌써 문제 다 냈지.”

간신 이현종은 그런 수혁의 비위를 맞췄다.

‘솔직히…… 네가 낸 문제를 보니까 푸는 사람은 쉬울 수 있어도 내는 사람은 골 깨지겠더라…….’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다른 모든 이들을 까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문제를 낼 거다 하고 말을 했어야지, 말이야. 응?”

신현태도 그랬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지 않나.

수혁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수술받는 날이었다.

그것도 작은 수술이 아니라 암 수술.

이런 날 괜히 바른 소리 한다고 나섰다간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타박받을 터였다.

“저기 좀 조용히 해 줄래요?”

물론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집도의.

외과 간담췌 교수 장준혁이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네네.”

그도 아주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쉬울 리가 없어.’

암이 그냥 크기만 한 게 아니라 터졌다.

이런 수술을 하게 될 줄이야.

도전 정신도 뭉글뭉글 샘솟고 있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칼.”

허나 그 모든 두려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한 발짝 나서야만 하는 사람이 외과 의사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칼잡이의 숙명이었다.

본래 같으면 외롭기 그지없는 길이었을 텐데.

오늘은 같이 가는 이들이 있었다.

딱히 힘이 되지는 않았다.

‘구경꾼 새끼들…….’

말이 구경꾼이지, 달리 말하면 감시자들 아닌가.

성질 같아서는 다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지이익.

해서, 그냥 무지렁이들이라고 생각하고 보기로 했다.

외과가 내과에 무지한 것처럼 내과도 외과에 대해 무지할 테니 그렇게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그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수혁만은 예외였다.

그는 백강혁의 수술 아니, 예술을 본 경험이 있었고.

바루다 덕에 모든 수술을 데이터화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수술에 대한 지식도 죄다 쌓아 두고 있었다.

“호오.”

그렇다 보니, 수술을 보면서도 실로 교묘한 타이밍에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으음.”

톤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는데, 느낌은 정반대라고 볼 수 있었다.

“호오.”

“으음.”

옆에 있는 이들은 수혁이 그냥 또 이상한 짓을 한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

‘좀 더 심해지면 약이라도 먹여야 하나?’

‘무슨 약을 먹여. 무슨 증상인지도 모르는데.’

‘하여간 이상하긴 하잖아.’

‘괜히 눈치 주지 말고. 더 이상해진다?’

‘응.’

두런두런 이따위 대화나 나누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허나 장준혁은 그러기 어려웠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어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수술을 이해하고 있나?’

호오.

저건 어떻게 봐도 자신이 만족스러운 절개나 처치를 했을 때 튀어나오고 있었다.

으음.

이건 어떻게 봐도 좀 이상하게 했거나 혹은 의미 없이 그었을 때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수혁…….’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 전에 거슬리기만 했다.

허나 이젠 아니었다.

“호오.”

봐.

지금도 그렇지 않나?

기가 막히게 지금 간을 들여다보고 있거든.

다른 거 싹 젖히고 간암이 있는 부위를.

터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으음.”

그래, 방금은 인정.

나도 모르게 건드렸네.

‘시벌.’

어느새 장준혁은 수혁의 장단에 맞춰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수혁은 수술 장면과 위에 뜨고 있는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있어서 그런가, 얼굴을 보면 정신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친 건 아니었다.

저건 그러니까, 천재의 증표 같은 것이었다.

‘앞으로 호오만 노린다.’

장준혁은 불타올랐다.

그 또한 천재를 자처하는 몸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치 리듬 게임 하는 듯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수술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아니, 원래 같으면 그랬을 텐데 이 자리에는 수혁이 있었다.

바루다를 탑재한.

[뭔가 변했는데요.]

‘나도 느꼈어. 칼끝이 섰다고 해야 하나?’

[호오…….]

‘호오…….’

집중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혈관을 묶고, 관을 조정하고, 마침내 간을 자를 때까지도.

그 집중은 한 번을 깨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종래에는 수혁의 호오 소리마저 듣지 못하고 있었다.

무아지경?

아니, 그는 성장하고 있었다.

“호오…….”

마침내 그가 다른 소리를 듣게 된 건, 수술이 끝나고 나서였다.

“후.”

장준혁의 좁아져 있던 시야가 수술장 전체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숱하게 많은 수술을 해 온 그에게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넌 아직도 성장할 가능성이 많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언젠가 백강혁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음.”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또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그만큼 수술은 완벽했다.

“어…… 끝나신 거죠?”

마취과 의사도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왜요?”

“평소보다…… 수술 시간이 훨씬 짧아서요.”

“그래요? 어, 그렇네?”

장준혁이 뒤늦게 놀라올 때쯤, 수혁은 예후 계산에 빠져 있었다.

‘저 정도면…… 진짜 완치도 가능하지?’

[네. 살 거 같습니다. 물론 변수가 많기는 하겠지만…… 수술이라는 최대 변수는 완벽하게 끝났어요.]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네.’

[이 정도면 해야죠. 수명이 짧아졌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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