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48화 (848/1,303)

848화 전문의 시험 (2)

수능 시험은 어디 이상한 골방에 틀어박혀서 내고, 수능 볼 때까지 나오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전문의 시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과 교수들과 달리, 의대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가 주업이 아니라 진료가 주업이지 않나.

어찌 보면 교수라는 직업보다는 의사라는 직업에 더 충실한 존재들이었다.

현업의 스페셜리스트, 가장 대가들이 학교에 있다는 것이 대부분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시험 문제를 낼 때만큼은 아니었다.

“여러 교수님들. 일단 여기 서약서에 사인해 주시고요.”

“네.”

“진짜 절대 유출하시면 안 됩니다? 어차피 나가실 때 이거 다 보는데, 걸리면 진짜 개쪽이에요.”

“네.”

애초에 문제 내는 것도 잡일로 느끼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당장 돌아가서 저녁 회진 돌아야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해서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직원과 학회 행정직원, 그리고 학회 이사 등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다.

물론 휴대폰도 걷고 하기 때문에 문제 자체가 쌩으로 유출될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 그랬다.

-내과 전문의 시험 문제 유출! 국민 생명 다루는 의사 이래서야 되겠나!

만약 유출을 했다고 생각해 봐라.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게 걸려?

바로 대서특필될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라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다 기름 붓는 짓거리이지 않나.

“교수님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 전문가로서 양심을 지킵시다.”

해서 우창윤과 동종혼은 눈에 띄게 긴장한 얼굴로 여러 교수들을 지나쳐 가며 말했다.

다행인 일이라면, 주니어 교수들은 나름 자부심이 넘쳐흐른다는 점이었다.

전문의 따고도 몇 년을 개고생해서야 겨우 따낸 교수 자리 아닌가.

병원이 점점 더 악랄해지고 있어서, 전임 트랙이 아닌 진료 교수, 임상 교수 트랙이 계속 생기는 와중에 전임을 딴 사람들이니만큼 딴짓할 염려는 적다고 봐도 되었다.

‘문제 이게 뭐라고 유출을 하나…….’

[그러니까요. 발로 풀어도 될 문제만 내면서…….]

‘작년에도 어렵다, 어렵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물시험이었죠. 이번에는 역시 어렵게 내야 합니다.]

물론 안심은 금물이었다.

개중에는 수혁처럼 완전히 딴짓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니.

하여간 수혁이 그렇게 바루다와 함께 심기일전하고 있으려는데 보건복지부 직원이 앞으로 나왔다.

“아아. 지금 말하면 되나요?”

“아, 네. 말씀하시면 됩니다.”

보통의 직원이라면 암만 보건복지부 직원이라고 해도 우창윤 교수 정도 되면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진 않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우창윤은 조르르 달려가 마이크를 쥐어다 주고 거의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꺾어 예를 표했다.

‘와…… 진짜 권력에 아첨하는 모습이 이런 거구나.’

선수를 빼앗긴 동종헌은 뒤에 물러나 입맛만 다셨다.

대체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성공을 했나 했더니, 허리가 폴더처럼 망설임 없이 접히는 면모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보건복지부 서기관 최우식입니다.”

서기관.

4급 공무원.

나이만 따지고 보면 30대였다.

우창윤보다 훨씬 젊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 앞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국가 연구비의 심사를 이 서기관들이 하기에 그랬다.

그들도 본인 위치를 알기 때문에 일부러 무례하게 구는 경우도 드물고, 앞에 나서는 일도 드물었으나 오늘은 예외로 치기로 한 모양이었다.

“작년…… 정말 초유의 사태가 있었습니다.”

이를 갈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다른 교수들은 왜 그러는지 다 알겠단 얼굴이었다.

‘작년……?’

수혁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죠?]

바루다도 그랬다.

‘그냥 평이하지 않았나?’

[나름 문제 푸는 맛이 있기는 했는데…… 난이도는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서기관이 말을 이었다.

“저희가 2차 시험에서 최대한 구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공보의로 갈 수 있던 내과 의사가 단둘이었어요. 국방부에서 양보를 안 해서요.”

공보의, 공중보건의사.

대한민국의 지방 의료, 그중에서도 도서·산간 지역의 의료를 책임지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되었다.

주로 섬에 배치되거나 시골 보건소에 배치되는 이들이었다.

있을 때는 딱히 뭐 있나 없나 같은 거 아닌가 싶겠지만.

막상 없으면 주민 삶의 만족도가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살 수 있는 사람이 죽기도 했다.

“그나마 그 위에 있는 2년 차, 3년 차 공보의들을…… 그대로 지방에 잔류시키는 초강경책을 써서 의료 공백 위기를 최대한 막기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내과 의사가 가야 할 자리에 외과나 다른 과 의사들이 갔어요.”

서기관은 작년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리는지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민원이…… 민원이 진짜 미친 듯이 들어옵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듯 했다.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고 해도 1년 지난 일로 저렇게 부들부들 떨기는 어려울 테니까.

“솔직히…… 네, 압니다. 31살, 32살에 군 대체 복무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결혼했는데 처자식 놓고 섬으로 간다는 게…… 그래요. 그래서 저희도 격오지 점수를 적용해서 뭍으로 올려보내는데, 작년에는 그게 안 됐습니다. 지금 2년 동안 섬에 계신 분들도 있다고요!”

그의 분노를 들으면서 우창윤과 동종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우리가 낸 게 아닌데…….’

‘그냥 닥치고 있죠. 지금 입 열었다가는 연구비 떨어질 거 같은데.’

‘그러죠.’

‘네.’

그러곤 눈을 깔았다.

그 후로도 한동안 분풀이가 이어졌다.

그렇게 한 10여 분이 더 흐른 다음에서야 안정을 되찾은 최우식 서기관은 이렇게 말했다.

“쉽게. 쉽게 냅시다. 족보 그대로 내도 눈 감겠습니다. 발로 풀어도 될 수 있을 정도로 내요. 작년에 떨어진 사람 다 붙게. 제가 진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그러곤 큰절까지 올렸다.

당장 국가 연구비 심사 때 최우식한테 당한 적도 있던 이들이 있어서, 주니어 교수들은 죄다 긴장했다.

“아, 아니.”

“저희가, 네, 쉽게 내겠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모두 그를 만류했다.

“아…… 씨…….”

수혁만 짜증이 났다.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저도 모르게 씨를 내뱉었을 정도.

다행인 것은 그걸 눈치챈 사람이 우창윤뿐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왜 여기서 씨를…….’

미쳤어?

서기관이야, 서기관.

‘어떻게 하지. 음. 어렵게 내면 안 된다……?’

[문제가 어려워야 변별력이 있죠.]

‘근데 다 붙이라잖아.’

[말이 되나요? 다 될 거면 뭐 하러 시험을 봐?]

물론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정당해 보이는 생각이지만 실은 아니었다.

모든 내과 3년 차는 6년간의 의대 교육을 받고 의사 면허를 딴 사람이었다.

유급당하는 비율이 한 10%, 면허 못 따는 비율이 한 10%.

거르고 걸렀다는 말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라 또 1년간의 인턴, 3년간의 내과 수련을 받아야 했는데, 여기서 또 한 10%가 갈려 나갔다.

다시 말해 전문의 시험은 그 과정이 제대로 되었는지에 대한 확인이었고, 주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인 대한민국의 대학 병원 시스템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10%는 또 갈려 나가긴 하는데…….

‘그럼 어렵지 않고…… 재밌는 문제를 내볼까.’

[그게 가능할까요?]

이번에는 저 마지막 10%를 갈지 말라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그냥 어렵게 내야지 하고 있었지만.

듣다 보니까 작년에 난리도 아니었긴 한 모양이었다.

서울이야 원체 의료 시스템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 갖추어져 있는 도시니 체감이 안 되고, 또 지방에 발생한 1년짜리 문제가 이슈되기도 어려워서 언론도 타지 않았지만.

현장은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려서, 군에서도 미안해진 나머지 대민 지원으로 군의관 진료까지 해 주고 있다니 말 다한 셈이었다.

이쯤 되면 수혁도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나라가 박살 났다는데…….’

[우리만 어렵게 내는 건 어때요?]

바루다는 고쳐먹을 마음이 없어서 그런가 고집을 부렸는데, 수혁이 그나마 인간이라 좀 나았다.

‘아니야…… 여기서 그랬다간 죽을 거 같아.’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서 그랬다.

수혁은 문제를 내기 위해 이동한 방까지 따라와 지키고 서 있는 서기관을 보며 바루다에게 말했다.

[죽어요?]

‘응. 저 눈을 봐라. 사람 눈이 아니야.’

[하긴. 분노 그 자체네요.]

바루다가 없어도 분석될 만한 상황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모두가 쉽게 내는 데 동의한 채, 문제 출제가 시작되었다.

어떤 교수는 애초에 별생각이 없었는지 진짜로 족보에서 툭툭 뽑아다 왔다.

시간도 1시간도 안 걸렸다.

‘와…… 요즘 애들 진짜…….’

우창윤은 그런 교수를 바라보았다.

MZ?

뭐 이런 얘기 하더니.

시니어 교수들도 하루 종일 자리 지키고 있을 텐데 이렇게 해?

아무리 족보를 섞어도 된다곤 해도 그렇지.

“그래…… 수고했어요.”

하지만 어쩌겠나.

다 냈는데 더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문제 낸 교수는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서는 행방을 알 수 없을 테니, 이대로 나가서 만화방이라도 갈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까?

“저도…….”

“저도 다 냈습니다.”

각기 맡은 파트의 족보를 더욱더 맹렬히 찾아내더니 하나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미꾸라지가 하나뿐일 때는 그게 참 밉살스러워 보이지만, 여러 마리가 되면 죄다 흙탕물이 되어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기 마련이지 않나.

“잘한다. 좋다.”

더욱이 그걸 보면서 서기관이 좋아하니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창윤과 동종헌도 그냥 이대로 점심 전에 끝내고, 다 같이 먹으려고 했던 학회비로 어디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나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구정 어때요?’

‘파주?’

‘네. 거기 장어가…….’

‘좋죠. 가죠. 시간이야 충분하겠는데요?’

해서 쭉쭉 시험 문제를 받다 보니 딱 한 사람이 남았다.

“하.”

“어후.”

딱 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만만한 인간은 아니었다.

이수혁.

그가 남았다.

“음…….”

그것도 얼굴이 벌게진 채로.

엄청나게 고심을 하면서.

당연한 일이었다.

어렵고 재밌는 문제는 얼마든지 만들 자신이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국시 문제 전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쉬운데 재밌는 문제?

이건 거의 환상수라고 보면 되었다.

“으으으음…….”

뭐 마려운 사람처럼 신음하는 수혁을 보다가, 우창윤은 시계를 보았다.

‘반구정은 니미…….’

파주 가서 먹으면 이제 점심이 아니라 점저가 될 터였다.

“저기…… 저분은 뭔데 저러고 있어요?”

최우식 서기관이 끙끙대는 둘을 보다가 답답한지 다가왔다.

원래 같으면 바로 문제 내는 사람한테 갈 텐데,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좀 무서워서 참았다.

잘한 일이었다.

“이수혁 교수라고…….”

“아, 저분이……? 족보대로 내면 되는데 왜…….”

“모르죠, 저는.”

“선배 교수님이신데 가서 물어보시죠, 왜.”

“뭔 답이 나올지 모르겠어서 무서운데.”

“네?”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고, 그때까지 안 주면 가서 물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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