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화 효도 (1)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삑삑.
제네시스를 보여 주었습니다.
“와...... 우리 수혁이 진짜 성공했구나. 어제는 너 얼굴 보느라 못 봤는데, 차가 이게. 응? 이거 사장님들 타는 그런 차 아니니?”
"어...... 그렇죠. 근데 사장님은 보통 뒤에 타죠. 저는 직접 운전해야 해요."
제네시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원장님 세대는 그야말로 그랜저가 강남 아파트값이랑 비슷했던 시대이지 않았나.
근데 이 제네시스는 그랜저보다도 더 윗급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새로운 브랜드 급이다 보니 원장님은 드물게 눈을 빛내며 차를 두리번거렸다.
“그…… 그렇게 좋으세요?"
"어? 아니, 그."
평생 봉고 몰지 않으셨나?
옷도 맨날 똑같은 거 입고.
심지어 자기가 사서 입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받은 옷으로 입었다.
그래서 외적인 것에는 아예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뭐야'
[이런 거 아닐까요. 좋아하지만 포기했던 거.]
'아.'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거 같았다.
저 눈알의 반짝임은 진짜였다.
“이게 그……HUD(앞 유리에 정보를 띄워 주는 장치)구나. 유리창에 뜨는 거야? 계기판이?"
“어...... 이름은 몰랐는데. 네, 제 거는 그렇더라고요.”
“이 앞에 이게 서라운드 뷰고?”
“어…… 네, 주차할 때 편해요."
“이거 선루프. G70은 좀 작던데……. 80은 다르구니, 확실히.”
“어…… 그래요?"
게다가 이어지는 말도 좀 충격적이었다.
이 양반이 애들 보육은 안 하고 차만 보러 다녔나 싶었다.
아니면 부업으로 중고차 업자를 하나 싶기도 했고,
그만큼 차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았다.
"하여간………… 이제 타시죠. 이틀만 여기 분들께 맡기시고요."
수혁은 신나서 눈을 빛내고 있는 원장과 그와는 달리 뒤에서 쭈뼛거리고 서 있던 사모님을 향해 말했다.
뒤로는 안대훈이 알선해 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사정을 듣자마자 아예 일당도 없이 봉사하러 와주신,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아...... 이거 참. 이렇게 해도 되나 이게."
"평생 봉사하시는 분도 계신걸요. 저희한테도 기회 좀 주십쇼."
"그...... 네. 아, 애들 사정은 저기 지민이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고등학생인데, 똑똑해요."
“네, 너무 염려 마세요. 최선을 다해서 보고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원장과 사모는 거의 평생 처음으로 휴가 아닌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그 목적지가 여행지가 아니라 서울의 병원이라는 게 좀 그렇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이곳을 남들에게 맡기고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둘을 설레게 했다.
어제 그렇게 싸워 가면서 안 간다고 하던 사모까지도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원장?
원장은 그냥 차 때문에 설렌 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 그럼...... 갑니다?"
"어어. 천천히 가자. 주말이라 어차피 막힐 거야."
"이 시간이면 서울 올라가는 길은 안 막힐걸요?"
“아무튼 간에 여유 있게 가자. 어차피 주말이라 제대로 진료는 안 되지 않아?"
“제가 교수라……. 저 있으면 진료는 다 되죠.”
“아이구, 맞네. 우리 수혁이가 교수지. 이거야 원.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기억나냐? 저 여기 읍내 나가서 싸움 붙어 가지고.”
“갑니다.”
수혁은 말이 점점 많아지는 원장을 돌아보다가 액셀을 밟았다.
차 때문에 신난 건가 했는데, 그냥 시간이 좀 지나면서 수혁에 대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모양이었다.
점점 더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사모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인 듯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병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왜요?]
'너는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지금 보니까 수혁도 그냥 머리로만 말하고 있는데요?]
'어, 사실 나도 이해는 안 가. 근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수혁과 바루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병원이란 무언가를 선고받는 곳이지 않겠나.
모르고 있던 병도 병원에 가면 알게 되는 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검진을 안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부우웅.
차는 곧 논인지 밭인지 모를, 시골 풍경 가득한 곳을 지니 고속도로 위로 들어섰다.
“이야………. 이게 소퍼 드리븐이구나. 확실히…… 응? 좋네……”
시골길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승차감이 확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앞에 있던 수혁에게도 그랬으니 뒤에 앉은 원장에게는 더 크게 체감될 터였다.
애초에 왕자가 G90을 사 주려다가 이걸 사 준 것 아닌가.
풀옵션이었고, 원래는 기사도 딸려 있었다.
수혁이 '차 탈 일도 없는데 기사가 있어 봤자 뭐 하나'라고 해서 없어진 것일 뿐이었다.
하여간, 덕분에 원장은 사장님 자리에 앉은 보람을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이야..…. 이게 소파도 엄청 보드랍네. 여보, 만져 봐."
"응?"
“만져 봐. 진짜 부드러워."
"어...... 어, 그렇네."
걱정이 가득 차 있는 사모를 보채서 의자를 만지게 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서울 가면 차나 뽑아 드려야겠다.'
[차를 뽑아요? 이걸?]
'못 뽑아 드릴 이유가 있어?'
[이 돈이면 오마카세가, 맡김 차림이 몇인데?]
'차 사도 먹을 수 있어. 어차피 인마...... 맨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으으으음.]
해서, 수혁은 차나 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일부러 액셀을 적당히 밟았다.
원장의 바람대로 천천히 달려서 서울에 닿을 생각이었다.
물론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차는 차다 보니 곧 서울이었다.
"저기가 태화 의료원이에요."
"응? 호텔 아니고? 무슨 병원이 저렇게 크고 좋아?”
원장과 사모는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급격히 말이 적어졌다.
아니, 사모는 원래부터도 그랬으니 두고 보더라도, 원장의 변화는 꽤 극적이었다.
'아...... 진짜 거기서만 사셨구나.'
하긴 그랬을 거 같기는 했다. 이 양반들은 애들한테 진심이니까.
자기가 공부해서 열심히 알려 주고자 하는 이들이었으니까. 정말 대단하달까.
평생을 남 위해서만 살아온 이들다운 모습이었다.
“아, 네. 요새 대학 병원은 엄청 커요."
“그렇네. 나도 듣기는 했는데.”
"하여간 이제 들어가면…….”
수혁은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까 또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건물 높은 거 봐라.”
"확실히 대기업에서 하는 데는 다르네.”
말수가 확 줄더니, 이제는 늘었다.
사모님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감탄을 늘어놓고 있었다.
“저기에 제가 있는 센터가 있어요."
"오...... "
“유리네.”
그냥 그런갑다 하고 다니다가 이런 소리를 들으니, 수혁도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다.
잘 짓기는 했지? 이런 생각도 들고.
하여간 수혁은 차를 세우고 두 부모 아니, 보육원 원장과 사모를 데리고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불이 쫙 켜져 있었고, 안에 사람들이 비글기렸다.
"뭐지?"
수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만 믿고 따라오던 둘도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큰 병원 다니던 사람도 막상 안에 들어오면 좀 멈칫거리게 되는 법인데, 이 둘은 애초에 별생각도 없이 온 사람들이다 보니 반응이 더 했다.
끼이익.
하여간 수혁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랬더니 신현태, 이현종이 몸을 일으켰다.
"어, 원장님이랑 왔니?"
먼저 입을 연 것은 신현태였다.
“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 "
그러다 얼버무렸다.
진짜 어떻게 살았을까.
‘조태진이 너 따라갔다가 말해 줬다고 하면 너무 좀 이상한 일이잖아?'
홈마?
익명의 여러 홈마 중 하나라던데.
도통 알아먹을 수도 없는 단어인데, 하여간 뭔가 꺼림칙한 일이라는 건 분명했다.
“안대훈이 말해 줬지.”
"아, 대훈이요?”
"어, 저기 있잖아."
“저기? 아, 있네. 그래, 너 덕에 오늘 거기 잘 맡기고 왔어.”
해서 이현종이 나섰다.
이현종은 확실히 이런 공작에 대해 신현태보다 경험이 많아서 대처가 유연했다.
“아무튼, 두 분 오시라고 해. 사모님 말고 원장님도 이참에 싹 검진이나 해 보자고."
“어...... 검진이요?"
"응. 돈은 걱정하지 말고 병원에서 알아서 부담하기로 했어."
"그게 돼요?"
“우리가 한다면 되지. 너도 그렇고.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현종의 말에 수혁은 곰곰이 자신의 현실을 떠올려보았다.
'그냥 태화 의료원 교수 아닌가?'
[전임 원장 아들, 현 원장 조카,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실세 중의 실세라는 평을 받고 있죠.
실제로도 실세고. 지금 센터에서 약속받은 투자가 거의 백지 수표 아닙니까?]
'넌 어떻게 그런 걸 알아?'
[수혁으로 살면서 그런 걸 모르는 게 더 대단한 일입니다만.]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뭐...... 병원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괜찮은 것 같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게 되나 싶긴 했지만.
어른들이 된다는데 뭐 어쩌겠나.
"안녕하십니까. 제가 수혁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형, 그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 않아?"
“새로운 애비 된 사람이라고 해야 하니?"
“어……… 그것도 좀 이상하긴 한데……”
수혁이 어깨를 으쓱하고 뒤로 물러나 있는 사이, 이현종은 원장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아니, 전에 인사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
나름 이런저런 고민을 했던 모양인데 이현종답게 별로 사려 깊게 느껴지진 않았다.
“네, 압니다. 그냥 제가 지금 애비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어서."
"네?"
“수혁의 아버지는 나다, 이 말씀이에요."
"형. 이러려고 왔어?"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무례맨이 따로 없었다.
보다 못한 신현태가 나서서 말렸다.
원장은 그저 웃었다.
“아유, 괜찮습니다. 하하."
좋은 사람이라 그랬다.
덕분에 여유를 되찾은 신현태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검사부터 해 보시죠. 최근에 검진받아 보신 적 있으세요?"
“그…… 한 10년 전?”
"10년? 어떤 검진이요?"
“보건소에서 하는 거요. 그 후로 오라고는 했는데 제가 좀 바쁘다 보니."
"아유. 그러시면 안 됩니다. 건강을 자신하면 안 됩니다. 그러다 훅 가요. 자, 이리로.
사모님은 또 다른 절차로 검사를 받게 되실 겁니다.”
이제 보니 신현태의 뒤로 VVIP 대응 직원도 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오늘, 내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검사 전 금식이 안 되어 있으실 테니 오늘은 간단한 검사들 위주로 하시게 될 겁니다.
우선 짐은 병실에 두고 가시죠.”
"병실이요?"
“네. 이쪽으로.”
원장은 좀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냥 가자니까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엉겁결에 들고 있던 짐도 빼앗긴 채 걷다 보니, 어느새 본관 꼭대기 층이었다.
“여기가…… 이게…… 이게 병실……?”
“네. 짐은 편하게 두시죠."
"허......"
저 멀리 보이는 건 한강이겠지.
어지간한 집보다 넓은 병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