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35화 (835/1,303)

835화 무슨 병이지? (1)

“내 얼굴에 뭐 묻었니?"

병원이라는 곳은 수혁에게 있어 아니, 많은 의료진에게 있어 일종의 마법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의사 가운을 걸쳤다는 것만으로도 행동하는 데 제약이 상당 부분 날아가지 않던가.

의사가 자기 얼굴 보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환자가 있나?

물론 세상엔 여러 사람이 있는 만큼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 아니었고, 원장이나 사모에게 수혁은 여전히 원생이었다.

아무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의사라 해도, 요람에서는 그를 그저 아이 중 하나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아프다고 하셔서요.”

"어? 하하하. 여기 쉬려고 온 거 아니야? 듣자 하니…… 하루도 안 쉬고 일만 한다던데.”

“그…… 누가 그래요?"

"누가 그러긴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지. 얼마 전부터 태화 의과 대학 학생들도 봉사 오기 시작했는데,

오면 거의 절반은 네 얘기야. 네가 뭘 했는지, 얼마나 대단한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 네가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서."

그러고 보니, 사모는 정말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수혁을 마주하고 있었다.

수혁으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바루다로서는 숫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잉. 누가 이런 눈으로 보기도 하는군요? 어디 아픈 곳도 없는데요.]

바루다는 당연히 힘들다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힘들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기계라서 그랬다.

기계가 힘든 걸 알고 번아웃이 오면, 그거야말로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허나 바루다는 나중에 수혁이 느끼는 것들을 공유하면서, 그와 보다 긴밀한 결합을 이루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힘들어 보이시나 보지. 원래 엄마 같은 분......이라기엔 내색을 안 하는 편이시긴 하지만. 뭐,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혁이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있지 새꺄. 네가 맨날 나 이상한 알람으로 깨우고, 어?'

[그건 아주 잠시뿐인데요? 그리고 전 늘 수혁의 자율신경 톤이링 기타 분비물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수혁만큼 늘 행복한 사람도 거의 없을 텐데요? 통계에 맞춰 보면 수혁은 이레귤러한 결과값을 보이는 피험자입니다.]

통계, 이레귤러, 결과값, 피험자.

어느 것 하나 비인간적이지 않은 말이 없었다.

허나 수혁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그래. 난 행복하지.'

[지독한 오해를 하고 있군요.]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데, 누군가 날 걱정한다는 게......'

걱정.

수혁에게는 여러 의미에서 거리가 먼 단어였다.

그가 보는 환자 대신 대상을 수혁 자신으로 한정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수혁도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남들도 수혁을 걱정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안대훈이 수혁을 사랑하긴 하지만, 그들은 다 좀 이상한 사람 아닌가.

덕분에 수혁의 이상함을 오히려 더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랬다.

"너무 애쓰지 마. 부모가 없다는 게 페널티로 작용하는 건 딱 성인이 되기 전까지라고 얘기했잖아.

그 후로는 다 같은 상황이야. 어딘가엔 없는 것보다 못한 부모도 있고.”

해서 수혁은 이 상황이 참 낯설었다.

허나 굳이 괜찮다는 말로 사모의 입을 막지도 않았다.

인터넷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문구로 이루어진 문장이었지만.

심지어 본인은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뭔가 울림이 있었다.

[수혁. 이럴 때가 아니라, 좀 들여다보고 물어봐야 될 거 같은데요?]

'오늘은 일단 이대로 있자.'

[수혁…………?]

해서 가만히 있었다.

"우리가 부모 역할을 더 해 주겠다는 건 아니야. 사실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이지, 뭘 해 줄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

책임질 수 없는 말은 안 한다는 게 우리 윈의 모토 아니겠니? 그래서 원래 너도 오지 말라고 하려 했는데…….

사실 네 덕에 태화랑 완전히 엮여 버리기도 했고, 욕심도 나더라.

우리 원에서 우리 손으로 키워 낸 사람이 이렇게 대단하게 됐다는 걸 두 눈으로 한번 직접 보고 싶었어."

사모는 주절주절 떠들었다.

보아하니, 하고 싶었던 말이 굉장히 많았던 거 같았다.

애써 참고 있던 것이 수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터져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이렇게 보니까……. 마냥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아닌 거 같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근데 넌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일 뛰어나단 평을 듣고 있으니...... 얼마나 애를 쓸까 싶어서.

살 빠진 거 봐라. 너 여기 있을 땐 그래도 통통했었는데. 기억나니? 내가 한 부대찌개 엄청 좋아했던 거."

그러다 대화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좋아해요?

좋아해?

아니...... 사모님, 제가 사모님을 좋아하는 건 맞습니다. 맞는데......

사모님이 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건 좀 선 넘었지.

[옉.]

'회상했구나'

[이런 걸 좋아할 사람이 있나.]

'그러니까?'

부대찌개를 싫어했다니까요?

물론 안에 든 소시지나 햄은 맛있어서 그건 쏙쏙 빼먹기는 했습니다만.

전체적인 맛은 괴상했습니다.

“내가 너 온다고 해서 부대찌개 끓일 준비도 했다. 기대해."

그때, 나는 봤다.

사모님이 저렇게 말할 때, 어두워지는 원장님의 얼굴을.

'이제 보니……… 이 양반은 입맛이 정상이었군그래.'

[왜 몰랐습니까?]

‘그때는 나 하나 살기 바빴다니까. 공부만 했어. 그리고 원장님이 예전엔 더 연기를 잘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기능이 좀 떨어지는데, 주로 순발력에 관련한 것들이 그랬다.

그러다 보니 원장님도 순간적인 순발력이 필요한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이걸 보고 나니 비로소 수혁도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여간 맛이 내 주관에 의해서만 이상한 건 아니라는 게 증명됐네.'

[확실히 이상하다니까요? 가서 물어보세요.]

'요리하는 데 가서 맛없으니까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물으라고?'

[수혁……. 수혁은 인간인데 그렇게밖에 머리가 안 돌아갑니까…….]

'아니, 난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 거잖아?

[일단 앉아서 기다리면서 보호자와 대화 나누십시오.]

'응? 보호자?'

[원장님이요.]

'아.'

바루다는 확실히 이럴 때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수혁에게 원장은 그저 원장님으로만 인식되고 있었더랬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부모에게 버림받고 중간에 열악한 곳에서 보호받다가 이곳에 온 이래 쭉 그를 거두어 주었던 사람이지 않나.

‘좋아’

이제 수혁은 원장을 확실히 보호자로 인식할 수 있었다.

해서, 그가 내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원장님."

"응?"

"사모님은 정확히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가신 거예요?”

“아니, 너 아까 사모가 했던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너 쉬라니까?"

“전 이게 쉬는 거예요."

"뭔.......”

"거짓말 같으세요?"

수혁의 말에, 원장은 수혁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수혁에게 원장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치긴 했지만, 원장에게 수혁이 미친 영향력도 어마어마했다.

아주 많지 않은 원생 중 하나이기도 했고.

다른 원생들, 심지어 친자식들과도 구별되는 면이 있었다.

여러모로 난놈이라고 해야 할까.

'공부..... 공부할 때보다도 더 즐거워 보이네'

사람 눈이라는 건 죽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반짝이는 게 정상이겠지만, 수혁의 눈은 특히 더 반짝이는 느낌이 있었다.

총명해서 그럴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원장은 수혁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아닌가………? 잘된 건가?'

일이 취미라고? 취미도 일이 되면 괴롭다던데.

저렇게 진심으로 즐긴다는 게......정상일까?

혹 우리의 양육이 잘못된 걸까?

원장이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동안, 수혁은 말을 이었다.

“자, 대답해 주세요. 사모님 증상이 정확히 뭔지."

"어? 어어. 그래. 음. 그래.….”

너무 차분한 말투였다. 거기에 더해, 단호한 얼굴 표정까지.

원장은 잠시 '여기가 병원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 답하기 시작했다.

“일단......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고.”

"머리요? 얼마나 됐죠?"

“사실 오래됐어. 거의 뭐 20년?"

"20년.....?"

수혁은 그 답을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바루다와 토의했다.

'20년이면...... 그 정도 증상은 중요한게 아닌데.'

[두통의 양상이 변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 그래야 의미가 있겠지.'

오래된 증상이 의미를 갖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20년?

이건 너무 길었다.

만약 뭔가 있었다면 벌써 잘못되어야 했을 기간이었다.

다만 드문 가능성이 있기는 한 데다가, 수혁은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의 맛이 혹 질환의 영향일 수

있다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 목록에는 낑겨 넣어 놨다.

“그동안 병원은 안 가보셨어요?"

"응? 병원? 하하. 애가 20명이 넘는데 어떻게 병원을 가겠어. 약국에서 약 먹고 하면 좋아졌어. 게다가 약 먹을 일도 많지 않았고."

"그렇군요. 근데 이제는 병원에 가시네요?”

"어. 요새는 머리가 좀 욱신거리고 아프대.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증상이 더 심해졌다?"

"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 응. 그렇지.”

더 심해지는 두통이라.

수혁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면, 그게 무슨 증상이건 간에 심각한 일 아니겠나.

근데 그냥 두통이라 생각한다?

그럼 안 될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검사 받은 게 있어요?"

"검사? 검사는...... 아, 옳지. 내시경 받았어."

“두통이 있는데 내시경을 했어요?"

수혁은 혹 자신이 의학의 발전을 놓치고 있나 싶었다.

이제 CT나 MRI처럼 영상으로, 그러니까 그림자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보는 방법이 생겼나 했다.

“응. 코 보시던데."

"코?"

"이비인후과 갔어. 거기 원장님이 우리 잘해 주셔서."

"아……. 뭐...... 그렇죠. 두통의 원인 중에는 코 쪽 원인도 있으니까요. 적어도 그건......어느 정도 감별이 된 거군요."

“응? 말이 좀 어려워.”

“네, 뭐 혼잣말 같은 거예요.”

코를 봤다.

코가 원인이 되는 두통이라 할 만한 거로 축농증이나 비중격 만곡 등이 있으니, 그런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별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닌데.'

[그렇죠.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뭐, 감별은 되죠.]

하여간 수혁은 두통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보호자는 말 그대로 보호자였기에 아는 지식이 적어서 그랬다.

“자, 그럼.…. 사모님 혹시 냄새는 잘 맡으세요?"

"응? 냄새?"

“네.”

미각은 잘 망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후각은 얘기가 달랐다.

어찌 보면 모든 감각 중에서 제일 잘 망가지는 게 후각이지 않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후각이 미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각이 단순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형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음식이 괴랄해질 수 있었다.

'두통과 연관이 있다면 후각일 거야?'

[그럴 겁니다.]

'그냥 있던 게 아니라 심해졌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아.’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수혁은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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