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32화 (832/1,303)

832화 수혁의 주말 (1)

우레.

그야말로 천둥과도 같은 기세의 박수가 쏟아졌다.

‘아니…… 그 정도로 어려운 케이스는 아니라니까?'

우창윤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개중엔 박선주와 같이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우고 있던 이가 끼어 있어서 더더욱 심란했다.

'선주야. 너는 나랑 이 비슷한 케이스……두 번은 봤겠다......'

억울했다.

별것도 아닌 케이스라고 하기엔 난이도가 있긴 해도,

이렇게까지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케이스가 아니란 것은 분명하지 않나.

아마 저 앞에 서서 뻔뻔하게 손을 들고 박수에 화답하고 있는 이수혁도 모르진 않을 터였다.

'그냥 말을 존나 잘하는 거야...... 얘들아......'

말빨이 죽이긴 했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내가 들을 땐 재밌는 얘기였는데, 잘 보이고픈 여자 앞에서 떠들 땐 '나란 새끼는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건가'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우창윤은 슬프게도 거의 대부분 노잼이었던 편이라 오늘 더더욱 기분이 좋지 못했다.

"와…………. 이제 진짜 저 질환은 절대 안 놓칠 자신 있어."

“나도. 고혈압에 대해 뭔가………. 엄청 잘 알게 된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강의 하나 들었는데 어떻게 이러지."

그래. 이비인후과 뺀질이 이낙준이 미팅에서 얘기하면 저런 반응이었지. 내가 얘기하면 '?' 이었고.

이런 게 추억 폭행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또각-또각-

그런 우창윤을 향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천천히 디디며. 그 뒤로 구름과 같은 전공의 떼를 이끌고,

“어…………. 저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세션 안 끝났습니다! 당뇨 들어야죠!"

좌장이 고래고래 외치고 있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다른 학회랑은 달리 좌장이라고 해 봐야 어린 교수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아무리 요새 레지던트들이 이전보다 되바라져 가고만 있다고 해도, 교수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와...... 저 사진 같이 찍어도 될까요?"

"사인.…. 사인 하나만.….”

그냥 수혁에 대한 팬심이 모든 것을 이겨 버리고 있었다.

'보통 교수한테 이러진 않지 않나......?'

[이상 반응이긴 합니다. 이건...…]

'이건?'

[보통 아이돌을 향한 팬들이 보일 법한 반응입니다.]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간혹 수혁이 화이트 핑크를 볼 때 저런 얼굴을 합니다.]

'와……'

[네, 입 살짝 벌리고 동공 풀리고. 종합해서 ‘병신 같다’라고 할 수 있죠.]

수혁이 놀란 부분은 아이들이 자신을 화이트 핑크에 빗대어 생각하고 있다는 대목이었는데. 바루다는 표정을 말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별 상관은 없었다.

"어어. 네. 사진…… 어떻게……?”

“제가 셀카 찍을게요."

"아.”

사진 찍어 주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옆을 슬쩍 돌아보니, 따라붙었던 인원은 어느새 줄지어 서 있었다.

강의실 바깥까지 돌아서 이어져 있어서, 저 인원들과 다 찍고 어쩌고 하려면 1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아………. 우 교수님'

반대편을 보니 잠깐 사이에 머리가 한 움큼은 빠져 버린 듯한 우창윤 교수가 서 있었다.

맞은 편에는 좌장을 맡은 말이 좌장이지 진행자에 지나지 않는 주니어 스텝이 서 있었다.

"어, 어쩌죠?"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자 뛰어 내려온 모양이었다. 그동안에도 시간은 하릴없이 흐르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다음 강의가 진행되었을 시간이었다. 허나 지금은 이수혁 팬 사인회가 한창이었다.

'시발'

욕설을 주워 넘기며 다음 연자를 찾아보니, 저 멀리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야………. 너 내 제자 아니니?”

제자가 아니더라도 연배 차이만 15년은 날 텐데. 노려봐? 어?

입으로도 뭐라고 하는데, 지금 해석해 보니까 시발이 들어간 거 같아?

'아니지…………. 내가 화낼 타이밍이 아니지..……'

이거 강의비가 얼마로 책정되어 있더라.

학회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시간당 10만 원이었던 거 같았다.

문제는 강의가 30분이다 보니 꼴랑 5만 원에 황금 같은 주말 피크 타임을 뚝 잘라 먹었다, 이 말이었다.

그래 놓고 제대로 진행도 안 해?

입으로만 욕하면 다행이었다.

솔직히 우창윤이었으면 머리로 들이받았다.

'머리카락도 없어서 충격 완화 장치도 없고...... 존나 아프...... 아니지. 아니야! 난 머리가 없지 않아!'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상상이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네? 교수님. 무슨 생각 하세요. 설마 도망갑니까?"

“아니, 아냐. 인마...... 아니야."

“휴. 가끔 이럴 때가 있으셔 가지고."

“내가?"

"그래서 외과 안 하셨다면서요. 급해지면 딴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어, 그건 맞아."

다행히 앞에 든든한 후배가 있어서 우창윤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딱히 소용이 있지는 않았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아마 그 말을 한 새끼는 호랑이한테 물려가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수혁이 아무리 이리저리 튀는 놈이라 해도 호랑이는 아니지 않나.

“일단...... 공지 때려. 점심시간이라고."

"네? 지금 11시 반인데요? 그리고 강사분 기다리는데.…. 김 교수님…… 전 무서운데.”

“내가 컨트롤할게. 같이 밥 한 끼 하면서 한 시간 기다리게 하면 되지.”

“음...... 근데 원래 이렇게 학회 일정이 왔다 갔다 하나요?"

“보통은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안 이러지. 근데 전공의 연수강좌잖아. 게다가 이수혁도 왔고. 뭐.....어쩌겠어. 너는 쟤네 해산시킬 수 있겠어?"

우창윤의 말에 좌장 교수가 이수혁 뒤로 쭉 늘어선 줄을 바라보았다.

강의장 문 너머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 둘이 해산시킬까 봐 불안했는지,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특히 몇몇은 죽일 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안대훈…… 너는 맨날 보는 사람인데 왜 거기 가서 서 있어?'

우창윤이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좌장이 고개를 털었다.

"아뇨. 저는 이런 거 처음 보기는 하는데...... 그랬다간 뒤질 거 같습니다."

“그렇지? 그렇다니까. 뒤져, 진짜로."

"그럼......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어. 그래. 이거 뭐 다음에 또 부르려면 굿즈라도 만들어서 팔아야 할 판이네."

"네?"

"아니, 아니야."

좌장은 우창윤을 뒤로하고 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어.…. 일정 변경 공지드립니다.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점심시간입니다. 12시 반에 다시 강의 시작합니다.

명찰에 붙은 쿠폰으로 지하 1층에 있는 식당가와 파미에 스테이션에서 식사 가능합니다.

다만 파미에는 8천 원 차감이고 나머지 가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지하자마자 누군가가 시발이라고 했다.

김 교수였다.

당뇨 강의를 맡은.

"에헤이……. 왜 욕까지 하고 그래.”

"아니…… 교수님. 제가 이거 주말에……… 아시잖습니까, 주니어 스텝한테 주말이 이게…… 아후.”

“일단 밥이나 한 끼 해. 저기 어디야, 요 앞에 국수 맛있게 마는 데 있어.”

"역전우동 말하는 거 아니에요?"

"어? 어떻게 알았지?"

"교수님...... 제가 인턴도 아니고 무슨 그런 걸로 달래지겠어요."

“그, 그래. 그렇지? 그럼 저기 어디 갈까…...”

“모트 32라고 거기 가죠."

"어, 어딘데 거기가 여기 강남이라 너무 비싸면......"

"기조실장이신데 무슨 걱정이세요. 정 그러시면 법카로 쏘세요."

그를 달래려 나선 우창윤은 일단 알았다 하고 따라나서면서 모트 32 를 검색하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런치 세트 15만 원?'

법카로 이런 게 되겠냐! 감사 끌려가서 뒤지지!

“네네. 아, 이름이? 아…… 2년 차요? 이제 곧 치프네요."

수혁은 우창윤이나 다른 이가 어찌 되건 말건 팬 서비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전공의와 학생 사이라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없다 보니 거의 또래에 둘러싸여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 진짜 연애 못 하는 거 맞나?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저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인기가 상당하군요? 이상한데, 강의만으로 형성될 무리가 아닌데.]

‘모르겠네…… 뭐지. 너무 이러니까 나 좀 무서워.'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죠. 아니다. 이럴 수는 없다.]

바루다는 너무 자기가 뭐라고 해서 애가 주눅이 들었나 싶어 힘을 북돋아 주려다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지나친 것 같아서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수혁이 그들에게 풀려난 것은 한 시간을 거의 꽉 채우고 나서였다.

점심시간이 끝났단 얘기인데, 수혁은 어차피 다음 강의를 들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었다.

부우웅-

그렇다고 여유롭냐?

그것도 아니었다.

'왜 출판사에서 나를 보자고 하지?'

[다리가 불편함에도 그것을 딛고 일어난 천재 내과 의사. 이거 책 내자는 거잖아요.]

'너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 거짓말이 될 텐데?

[거짓말 잘하잖아요? 구라 천재잖아.]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해야 되냐?'

수혁은 투덜거리면서도 약속 장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 차 뒤로 차량 하나가 따라붙었다.

구 채널명 '의술의 신', 현 채널명 '혀기후니'의 홈마였다.

최근 새로 생성된 재생 목록 혀기의 일상, 즉 브이로그의 위력을 오늘 확인하지 않았나.

세상 어느 교수가 이런 팬덤을 보유할 수 있겠나.

당장은 그냥 신기하네 싶고 말겠지만.  나중엔 이게 어떤 힘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후니 대신 지니가 간다. 혀기야.'

홈마는 나름 기사도 있었다. 일일 기사지만.

하여간, 조수석에서 수혁의 차를 영상에 담고 있었다.

수혁은 그런 일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서래마을 인근 카페에 들어섰다.

"아, 교수님. 어서 오십쇼."

"네. 안녕하세요."

“네, JC 대표 최조은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수혁입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출판사 대표가 인사를 건네 왔다.

그러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꿈이 되게 큰 사람 같았다.

“저는 교수님 얘기가 소설로도 각색되고, 웹툰도 되고, 드라마도 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요?"

제 구라를요?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되물었고, 대표는 그런 수혁을 참 겸손한 사람이라 여겼다.

"하하하. 자격이야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이제 곧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실 분인데요."

"아니...… 그게."

바루다 얘기를 쏙 빼면 제가 좀 양심에 걸립니다 사장님.

수혁은 애써 이 말을 참은 채 하하 웃었다.

"하여간…………… 써 주시는 거죠?"

“네, 뭐...… 틈틈이.  제가 뭐 쓰는 건 잘해서요."

"다행입니다. 혹시 어려우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 출판사에 의사 출신 작가님이 계시는데, 대필해 달라고 하면 오실 겁니다. 요새 일이 없어서."

"아...... 네. 웬만하면 제가 쓰겠습니다.”

“네네."

그러곤 다음 일정을 떠올렸다.

'보육원……. 이게 몇 년 만이냐…….'

은인을 만나러 가야 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하여간 이제라도 가야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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