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00화 (800/1,303)

800화 2차 (1)

‘어려웠다…….’

김성진은 한숨과 함께 신경외과 병동을 빠져나왔다.

연신 눈치를 봐 가면서였다.

‘어려웠던 거 맞지? 나 몰라도 되는 거…… 맞지?’

아니, 세상에 베체트가 뇌종양처럼 보이는 케이스가 있다는 걸 누가 안단 말인가.

이따위 생각을 이어 나가기에는 너무 바로 옆에 수혁이 서 있긴 했지만, 아무튼.

분위기를 보아하니 수혁 말고는 다 모르는 것 같았다.

“거참. 베체트는 기본 질환인데 말이야. 그런 건 숙지를 하고 있었어야지…….”

뒤늦게 이현종이 아는 척을 하고 있긴 했지만.

김성진은 아까 봤다.

이현종이 ‘어후’ 하고 고개를 가로젓던 모습을.

병원 생활 짬밥이 있는데 그거 하나 파악하지 못하겠나.

이 인간도 몰랐다.

안대훈?

“역시 영명하신 교수님이십니다. 오늘도 구원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머리끝까지 벌게져 가지고 아까부터 뭘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부라고 하기에도 너무 과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저건…….

‘그래, 찬양이네.’

저 꼴을 보아하니 저놈 역시 모르고 있던 게 분명했다.

안대훈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면, 기껏해야 레지던트 하나 모르고 있던 것이었으니 위안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김성진에게 안대훈은 단순한 레지던트가 아니었다.

광을 내고 다니는 대머리, 혀기후니의 운영자 등등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놈은 혼모노……. 아니, 아니지. 시벌. 자꾸 저러고 있으니까 나도 이러네.’

진짜.

안대훈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진짜였다.

김성진이 전에 본 것만으로도 그랬지만, 전해 오는 소문도 같은 것을 말했다.

비록 안대훈의 외양과 말투 때문에 꽤 저평가 당하고 있는 거 같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케이스 해결 능력은 발군이었다.

“자, 그럼 프락……. 아니. 김성진 선생님 시험은 이걸로 끝일까요?”

사람이 발군이라고 생각해 주는데, 안대훈이 초를 치기 시작했다.

김성진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안대훈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수혁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덩달아 가깝게 지내게 된 이들이 다름 아닌 이현종, 신현태 그리고 조태진 아닌가.

덤으로 박국진도 간혹 얼굴을 보게 되는데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비난하는 곳이 바로 칠성이었다.

“어? 아니, 아니. 아쉽잖아. 이대로 끝내기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이제 막 흥이 오르려는 참인데.”

수혁과 이현종은 보기 드문 또라이들이었다.

환자 보기를 회식처럼 하는 이들.

다시 말해 2차, 3차를 넘어 5차에 뇌절까지 쳐 버리는 이상한 사람들.

그런 게 바로 이 둘이었다.

“아, 그럼 돌릴깝쇼?”

그리고 그 둘을 목숨보다 더 존경하는 것이 안대훈이었다.

비록 그가 김성진을 탐탁지 않아 하고 있지만, 만약 수혁이 둘이 친하게 지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안대훈은 그날로 둘이 사우나도 가고, 밥도 먹고 마,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 돌리자.”

“넵.”

해서 안대훈은 망설임 없이 그 무거운 돌림판을 병동 앞 엘리베이터에 내려놓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오가는 사람들은 아랑곳했다.

“뭐야?”

“몰라……. 뭐지? 태화는 병동 이벤트도 하나?”

“어……. 그런가 본데. 아무리 봐도 의사들인데.”

“와……. 여기 진짜 좋은 병원이긴 하다.”

“그러니까. 괜히 보복부 선정 1위가 아니야…….”

안대훈 혼자 저러고 있었다면 경찰이라도 불렀을 텐데.

이 자리에는 이현종, 수혁 그리고 김성진까지 있지 않나.

겉으로만 보면 셋은 다 멀쩡한 의사들이다 보니 다들 좋게좋게 생각해 주었다.

도르르.

바늘이 돌았다.

안대훈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물건이니 만큼 처음엔 진짜 그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이나 빠르게 돌았다.

‘모터를 달아 볼까?’

그 와중에도 개선의 의지를 담았지만.

하여간 정신없이 돌던 바늘은 곧 어느 한 지점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산부인과? 아니면…… 비뇨기과……. 아니, 뭐야 이게. 왜 하필.’

김성진이 제일 자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감염내과.

바늘이 거기 닿을 수 있을까?

산부인과, 비뇨기과를 넘어 소아과와 심장내과를 뚫고?

아니, 그러다가 어설프게 소아과에 멈추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와……. 뭐 이런 악랄한 포메이션이 있냐.’

내과 의사한테 저 세 개 과는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아니, 아니지. 이미 신경외과에 있었잖아. 이런 시부럴…….’

하긴 그러고 보니, 통합진료센터가 선 넘는 과이긴 했다.

내과가 다른 과를 다 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센터였으니.

실로 건방진, 아니면 광오한 생각이지 않나?

그런 곳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김성진도 좀 상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래……. 마음 편히 먹자. 보니까…… 이 면접, 거의 추론 능력을 보는 거 같아.’

지식?

지식은 형편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저 둘에 비하면, 그리고 범위를 감염내과가 아닌 내과 전체, 아니 그것마저 넘어 의학 전체로 옮겨 간다면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간 김성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왔고, 커리어를 쌓았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감염내과 전문의로서의 삶만 살아왔으니.

“비뇨기과로군요.”

그러나 비뇨기과에 딱 멈추어 섰을 땐, 숨도 따라 멈추는 듯했다.

비뇨기과라.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솔직히 말해서 비아그라뿐이었다.

그것도 무슨 의학적인 기전 따위가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조언을 많이 구하는 과가 비뇨기과이니 한번 생각은 해 보라고 했던 말이랑 함께 떠올랐을 뿐이었다.

‘망할…….’

남의 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는 게 참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김성진이 내과에 지원할 때 비뇨기과의 위상은 UFO 그 자체였다.

U, Urology(비뇨기과).

F, Family medicine(가정의학과).

O, OBGY(산부인과).

거기 가면 미래에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해서 UFO라 불렀더랬다.

‘지금이야 사실 내과도 뭐……. 딱히…….’

그때는 남의 집에 불난 줄 알고 안심했는데 알고 보니 내 집도 타고 있었다더라, 뭐 이런 분위기였다.

‘아, 아니지.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감히 면접을 보다가 과거를 회상해?

김성진은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오…….’

그 모습이 안대훈에게는 기꺼웠다.

뭐가 되었건 간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 아닌가.

칠성의 개 중에서도 나름대로 기개 있는 놈이 있기는 하구나.

괜히 이수혁 교주님과 전지하신 아버지 이현종 교수님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로구나.

확실히 보는 눈이 있으시구나.

그런 두 분이 나를 선택했다면 나도…….

“가자.”

“네.”

쓸데없는 생각은 수혁의 말과 함께 슥 휩쓸려 나갔다.

안대훈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앞장서서 일당을 끌었다.

나머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 참 수혁아.”

“네?”

“너 이렇게 걷는 건 좀 괜찮냐?”

“아……. 네. 뭐, 수술하고 나서는 훨씬 낫기는 해요.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아도, 어찌 되었건 근력은 유지가 되어서요.”

“그래, 다행이네. 김선웅이 그 새끼 연구는 더 안 했을라나? 왜 1년이 다 되도록 개선된 게 안 나와?”

“그러게요.”

두 부자는 그새를 못 참고 정신 나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김선웅 교수님……. 그거 수술 말하는 거구나.’

김성진은 둘의 대화를 통해 나무위키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냥 딱 봐도 쉬운 수술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주 새로운 수술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김선웅이 국내 최초로 시도한 사람 아닌가.

근데 어찌 벌써 개선법이 나올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둘이라면…… 둘이 정형외과였다면 가능했을는지도…….’

하지만 비난할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이 둘은 진짜 천재니까.

“이따가 들를까?”

“아, 좀 물어볼까요?”

“어. 뭐 하고 있냐고. 설마 이 새끼 맨날 노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우리 병원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닌데.”

“그렇긴 한데. 봐라. 아직도 후속 논문이나 연구가 없어? 이건 게으른 거야.”

“하긴, 그건 그래요?”

이제는 좀 비난할 생각도 들었다.

‘저기……. 게으른 건 아닙니다만?’

여기 들어오면 저 둘의 보챔에 시달리게 되는 건가?

그제야 김성진은 앞장서서 걷고 있는 안대훈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한 가닥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렇게 깨끗이 밀리는 경우가 자연 상태에서 가능한 일인가?

‘어……. 설마…….’

야 너두?

야 나두 되는 건 아니겠지.

“야야, 수술방 가야 되는 거 아냐?”

“네? 수술방이요?”

“이러다가 괴사하면 어째!”

그렇게 걷고 있으려니 어느새 비뇨기과 병동이었다.

넷이나 안에 들어서는데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을 만큼이나, 병동은 분주한 상황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침만 봐도 심상치가 않다고 해야 할까?

“무슨 일이지?”

“가 보죠.”

물론 당황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긴장하는 사람도 없었다.

‘최선을 다하자…….’

김성진만이 심기일전한 얼굴이었다.

그 외에는 그저 뭔 환자인지 좀 보기나 하자, 뭐 이런 얼굴들이었다.

“어린애네?”

가까이 가서 보니 이현종 말대로 어린애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끙끙댄다고 해야 할까.

‘불알이 꼬였나?’

수혁은 맨 처음 고환 괴사를 떠올렸다.

이게 드물 거 같은데 생각보다는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라 그랬다.

누구나 알듯 고환은 한 쌍을 이루고 있지 않나.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각기 줄에 매달린 채 유영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다 진짜 재수 없으면 그 줄끼리 꼬이는 경우가 있는데, 풀어 주지 않으면 고환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서 고환이 죽기도 했다.

“아니, 애가 왜……. 왜 저렇게.”

그러나 옆에 선 안대훈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녀석의 손가락 끝에는 비뇨기과답게 아이의 사타구니가 걸려 있었다.

펑퍼짐한 환자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발기한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터질 것처럼.

그럴 수 있는 상황인가?

‘아니, 절대 아닌데.’

수혁은 객관적으로 주변 환경을 살폈다.

우락부락한 비뇨기과 레지던트가 셋이나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방금 합류한 넷도 남자.

외모는?

[개판.]

‘새꺄.’

게다가 아이는 명백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말은 저게 무슨 성적인 흥분 탓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 자체로도 드문 증상, 그러나 원인은 다채로운 증상.

“Priapism(지속발기증)…….”

수혁의 말에 모두가 그를 돌아보았다.

“어…….”

“엇.”

“이수혁 교수님?”

반응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놀랐고, 누군가는 반가워했고, 누군가는 적대했다.

물론 별 상관은 없었다.

셋 다 지금 얘가 왜 이러는지 몰랐으니까.

“제가 좀 볼까요?”

“아, 네. 부탁드립니다.”

이수혁은 알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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