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7화 김성진 (2)
외과 계열 병동은 아무래도 내과와는 분위기가 다른 법이었다.
물론 신경외과는 머리를 다룬다는 특성 때문에 만성 질환자가 많다는 점에서는 일견 비슷할 수 있겠지만, 수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3번 방 최낙필 교수님 환자 내리라고 연락 왔습니다!”
“어…….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마침 일행이 딱 도착했을 때가 하필 환자가 수술방에 내려가는 타이밍이었다.
“비켜요, 비켜!”
“어어.”
명색이 신경외과이지 않나.
솔직히 응급실에서 바로 수술 올라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마어마한 응급일 리는 없겠으나.
내과 촌뜨기들이 그러한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어우.”
“야……. 살벌하구만.”
“미리 머리를 싹 밀어 놨네.”
“하긴. 수술방 가서 언제 그거 밀고 앉았어.”
전임 원장이고 나발이고, 침대가 접혀서 복도 끝으로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아야…….”
심지어 안대훈은 등에 뭘 메고 있어서 완전히 붙지 못해 침대 바퀴에 발이 밟히는 참사까지 겪었다.
‘이런 게 순교인가…….’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수혁교의 화신이 되어 가는 기분이 들어 기쁘기까지 했다.
수혁이 그를, 정확히 말하면 그가 짊어지고 있던 돌림판을 살펴서 더 그랬다.
“와……. 이거 튼튼하게. 구겨지지도 않네.”
“그럼요. 강철로 만들었습니다.”
“어? 강철? 이거 뭐 그냥……. 빤딱빤딱하게 만든 게 아니고……. 어, 그렇네. 이게 엄청…… 엄청 묵직하네?”
“네, 무게가 꽤 나갑니다. 한 20kg?”
“20kg? 너 그걸 계속 메고 다녔어? 어깨 안 아파?”
아팠는데요, 안 아픕니다.
불초소생 안대훈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대훈아, 왜 갑자기 천장을 봐. 뭐 있냐?”
“아니, 아닙니다.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뭐……. 괜찮다니까 다행인데. 하여간 환자들 차트부터 좀 볼까?”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안대훈은 돌림판을 멘 채로 성큼성큼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원래 별 관계 없는 사람이, 그것도 레지던트급이 오면 병동 간호사들도 반기지 않는 법이었다.
신경외과는 더더욱 그랬다.
가뜩이나 바빠 뒤지겠는데 뭔 지랄이란 말인가.
‘와……. 저게 안대훈이구나.’
‘눈…… 눈 피해라. 전도 당한다.’
‘저는 수혁교 어쩌구 해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와…….’
하나 안대훈은 예외였다.
감히 그에게 말 거는 사람조차 없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간호사들이 우르르 사라졌다.
“여기 앉으시죠.”
“어, 그래. 고마워.”
“소생…….”
“지랄하지는 말고.”
“네.”
보무도 당당하게, 마치 개선장군처럼 안대훈을 앞세운 통합진료센터 일당은 신경외과 병동 스테이션을 접수했다.
주도적으로 나선 이는 역시나 수혁과 이현종이었다.
물론 더 적극적인 건 수혁이었다.
‘난 신경외과는 영……. 재미가 없어서 말이지.’
이현종도 사람인데, 학문에 호불호가 왜 없겠나.
다 같은 의학인데 그 안에서도 뭐가 갈려요? 라고 묻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 와서 굴러 보면, 과마다 얼마나 다른지 아마 금세 알게 될 터였다.
‘머리는 피나도 수술하고, 막혀도 수술하는 거 아니야? 뇌종양이야 뭐……. 좀 특이한 게 있겠지만서도…….’
이현종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손이 느렸고, 눈은 그저 수혁의 화면만을 쫓고 있었다.
‘어디…….’
[일단 종양 쪽을 파 보죠. 설마하니 출혈이나 경색을 놓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렇겠지? 아마도?’
[당연하죠. 태화 의료원 수준이 어디 가겠습니까? 최낙필, 그 인간도 수술은 잘합니다.]
‘하긴…….’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머리를 매만졌다.
그 모습을 보던 김성진은 X됐단 생각이 들었다.
‘아, 맞네. 이수혁 교수님 머리 다쳤었지…….’
나무위키에서 다 보고 오지 않았나.
어떤 놈들이 작성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어마어마하게 자세한 내용들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그래서 신경외과를 싫어하시는 것 같다는 주석이 있었는데…….’
하필 나는 돌려도 이런 데로 돌린단 말인가.
제대로 된 환자도 없으면 그야말로 끝이 나 버릴 거 같았다.
‘제발……. 하나님…….’
해서 김성진은 실로 오랜만에 신을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오는 것만이 자기 삶에 구원이 될 것 같아서 그랬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료센터에 오기를 바라고 있겠나.
한번 와서 보면 다들 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현대 의학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내 미래도 여기 있을 가능성이 크다.
“흐음.”
그러던 중, 수혁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돌릴깝쇼?”
안대훈이 돌림판 때문에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던 안대훈이 간신배 같은 얼굴로 들러붙었다.
김인수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배니까.
같은 태화니까.
하지만 저놈은 칠성 놈 아닌가.
그것도 프락치로 의심되었던 놈.
아니, 안대훈은 여전히 녀석에 대한 의심의 끈을 풀지 않고 있었다.
‘저런 놈은…… 충심으로 잘라야 해.’
수혁이라면.
영명하신 수혁이라면 이 마음을 읽어 주시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로 수혁을 불렀으나, 수혁은 그저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 텄구나.’
안대훈이지 않나.
척하면 척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된 지 오래였다.
수혁의 눈을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기 뭔가 있다는 걸.
그리고 수혁이 발견했다는 걸.
‘이러면 안 되는데…… 신경외과에서 의외의 케이스가 나오는 건…… 좋지 않은데…….’
안대훈의 생각과는 별개로 수혁은 바루다와 치열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44세 남자. 편마비를 주소로 내원…….’
[아급성 편마비입니다. 갑작스럽다기보다는 진행하는 타입입니다.]
‘이런 건 종양에 합당한 소견이긴 한데…….’
[정신착란 등의 증상 또한 종양 환자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증상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이 MRI…….’
[네. MRI 상에서도 사실상 아주 강력하게 종양이 의심됩니다. 종양만 놓고 본다면 말이죠.]
수혁은 중간뇌(Midbrain), 그중에서도 뇌각(Peduncle)에 해당하는 부위에 있는 종양을 가리켰다.
MRI T2 이미지에서 증강되어 보이는, 전형적인 악성 뇌종양이었다.
위치도 좋지 못한 데다가, 모양도 안 좋아 보여서 수술 계획도 잡지 않고 있었다.
최낙필 교수는 어찌 되었건 먼저 조직 검사부터 해 보고 결정할 생각인 듯했다.
신중한 접근이었다.
합리적이기도 했고.
괜한 고통을 줄 필요는 없지 않겠나.
드르륵.
보통 의사라면 거기서 손을 멈추고 고민에 빠져 있었을 터였다.
그게 당연했다.
거기 병변이, 그것도 주요 병변이 있으니.
하지만 수혁은 스크롤을 망설임 없이 굴렸다.
그의 오랜 습관이기도 했고, 또 바루다가 내세우고 있는 원칙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찍었으면 영상에 걸린 모든 부위는 빠짐없이 다 봐야지.’
[네, 그래야 마땅하죠.]
아까도 그렇게 후루룩 긁었고.
무언가 보았다.
주요 병변이 아닌 무언가를.
아니, 아예 머리도 아니었다.
“여기…… 이거 혀에 뭐가 있는데.”
“음……. 그냥 단순 궤양 같아 보이는데? 뭐가 있다고 생각해야 보일 정도잖니?”
“네, 그렇긴 하죠. 하지만…….”
“이 나이에 단순 궤양이 혀에 생기는 건 드물긴 하지. 이거 파 보자.”
혀.
혀에 허여멀건한 병변이 있었다.
크진 않았다.
작았다.
그러나 수혁이 그냥 넘어가지 않은 것처럼, 이현종도 빡 집중했다.
나이가 좀 더 어리거나, 또는 더 많았거나 혹은 여자였다면 그냥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각각의 이유로 드물지 않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충분히 있을 테니까.
하지만 40대 남자에게 발생한 혀의 궤양?
“일단 가 볼까요?”
“그래.”
이건 잘 봐야 했다.
일단 암일 수도 있었다.
MRI에서는 그냥 양성 병변으로 보였지만.
가서 보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환자는 죽을 수 있었다.
우르르.
하여간 일당은 폭풍처럼 해당 병실로 몰려갔다.
“휴우…….”
“압박감 장난 아니네…….”
“이수혁 교수님이 저기 왕이야?”
“아니, 이현종 교수님이지.”
“아, 그렇지. 근데 진짜 엄청…… 충성하네. 뭐 돈이라도 따로 쥐여다 주시나?”
“아니, 아닐걸? 근데 좀 그래 보이긴 한다. 옛날 신경외과 보는 거 같네.”
그제야 간호사들은 자유를 되찾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많은, 시니어 간호사는 어휴 어휴 하면서 입을 털었다.
“옛날에 여기 병동이 얼마나 빡셌는데. 그때 신경외과는…… 뭐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겠지만, 위에서 안 가르쳐 주면 진짜 그냥 바보가 돼서 나가는 곳이었잖아. 위에서 까라면 까고 그랬지.”
“네, 들었어요. 근데 지금도 무섭지 않아요?”
“어유, 지금은 그냥 애들 장난이지.”
떠드는 소리를 뒤로하고, 안대훈은 돌림판을 멘 채 병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네…….”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아,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2인실인데 침대 하나가 빠져 썰렁한 느낌을 주는 병동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보니 아까 수술방으로 내려간 환자가 바로 이 병실 환자인 모양이었다.
잘된 셈이었다.
뭐가 되었건 진료를 더 마음 편히 할 수 있을 테니.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아……. 아!”
힘없이 늘어져 있던 여자, 아마도 부인인 것으로 보이던 사람이 반색했다.
수혁을 알아보아서 그랬다.
“명의!”
“아, 그…… 맞습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엄청난 단어가 튀어나온 느낌이었으나 수혁은 담담했다.
‘명의 맞지 뭐. 내가 명의 아니면 누가 명의야.’
[그…….]
‘왜, 아냐? 틀려?’
[아니, 아닙니다……. 맞죠.]
아니, 당당했다.
방금 말한 대로 자신이 명의가 아니면 대체 누가 명의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마냥 잘난 척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명의란 소리까지 들었겠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환자분을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여보! 여보!”
보호자는 다급하게 환자를 깨웠다.
환자는 멍한 얼굴이었다.
뇌종양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일 수도 있고.
그 뇌종양에 의한 증상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환자분.”
수혁은 그의 얼굴을, 전신을 살폈다.
‘말랐군…….’
[병적인 마름은 아닙니다만, 체격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병적으로 말라 있지는 않다.
이 말에서 혹 뇌종양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뇌종양은, 그중에서도 악성은 진행이 무척 빠른 것들이 많았다.
어 좀 이상하네 하고 보면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랄까.
“혀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혀요.”
“아, 여보! 아, 해! 아!”
아무튼, 지금은 죄다 봐야 했다.
다행인 것은 보호자가 협조적이다 못해 적극적이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