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화 김성진 (1)
‘빙글빙글…….’
김인수는 진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돌림판 돌아갈 때부터 그러더니.
다 끝나고 벌어진 술판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모임을 보면 딱 알 수 있지 않나.
물론 이현종이나 안대훈 그리고 조태진 모두 앉은 자리에서 소주 댓 병은 뚝딱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안대훈은 파계승 비슷한 느낌이라 개고기 뒷다리도 씹을 거 같았지만.
의외로.
정말이지 의외로 다들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기껏해야 와인이나 위스키?
-어? 너는 인마 이미 합격이지. 너랑 대훈이는 확정이야. 수혁이가 얘기 안 했어?
-네? 당연히 확정이죠. 이게 아무리 대의를 위한 일이라 해도……. 태화 사람들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하죠. 아빠가 말 안 했어요?
개새끼들.
얘기를 해 줬으면 내가 그렇게 긴장을 했겠냐?
하긴 생각해 보면 이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대의니 뭐니 해도 자기 사람 안 챙기는 집단이 오래가던가?
충성심이 있어야 나라건 회사건 병원이건 오래 버티는 법이었다.
그리고 충성심은 적당히 챙겨 줘야 생기는 법이었고.
“저기, 아저씨. 괜찮아요?”
그때 긴장이 확 풀린 모양이었다.
술도 훅훅 들어가기 시작했고, 들어가는 술이란 술은 족족 올라와 얼굴을 적셨다.
“네? 아, 네.”
“그……. 토할 거 같은데. 그럼 안 되는데.”
“아니,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이 안 먹었어요.”
“뭔 소리야. 진짜 취하셨나. 지금 얼굴 봤어요? 뻘겋다 못해 꺼먼데.”
“아니, 진짜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 군인이라 부대 복귀해야 합니다.”
“아, 군인이에요? 에이. 그럼 타요. 대신 토하면 내리게 할 거예요?”
“네네.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제대로 취해 버렸다.
기사 아저씨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두가 걱정할 정도로.
[어떻게 되셨어요?]
[어떻게 되시긴……. 태화 출신이신데, 붙으셨겠지.]
[거긴 근데 좀 얄짤없어 보이긴 하던데…….]
그 와중에 톡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왜 말씀이 없으셔.]
[떨어진 거 아님?]
[신 선생님. 김인수 선생님이 군의관 3년 차……. 3년 위인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데요?]
[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였다.
면접을 하루 종일 본 주제에 보통은 정 없이 그냥 보내서 그랬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회식은커녕 밥도 같이 안 먹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한데 김인수는 술까지 진탕 처먹고 10시 다 되어서야 버스에 올랐으니 사람들의 반응이 이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 김인수입니다. 죄송합니다. 밥 먹고 뭐 좀 하느라.]
[와……. 밥 먹을 정신이 있으셨어요? 전 속이 덜렁해서 그날 아무것도 못 먹겠던데.]
아선 병원의 장종우가 바로 답했다.
‘강심장이네……. 아니면 진짜 특혜가 있나? 아닌데. 안대훈급은 아니잖아?’
속으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약 김인수가 픽스로 한 자리 들고 가 버리면, 남은 자리는 딱 하나 아니면 두 개 아닌가.
안대훈은 군 펠로우라 인원에 들지 않으니 그나마 이렇게 남는 것이지, 아니었으면 더 적을 뻔했다.
‘안 돼……. 안 된다고.’
장종우는 지금 혀기후니 채널을 보고 있었다.
이 이름 요상한 채널은 최근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고 있었다.
보다 보면 왜 이수혁의 팬이 그리 많은지 알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똑똑하고, 이렇게 허술하면서 동시에 똑 부러지는 사람을 대체 어디 가서 모신단 말인가.
이제 장종우는 여기 말고 다른 곳은 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얼굴 오랜만에 보신다고 밥 사 주셔 가지고요.]
반면 김인수는 표정 관리하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후후. 이 몸은 말이야. 붙었다 이 말이야.’
첫 케이스는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죽었다 깨어나도 맞힐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케이스는 그래도 선방했다.
그것도 쉽진 않았던 거 같은데.
아니, 그 전에 김인수는 픽스였다.
[와……. 밥도 사 주셨어요? 아니, 당연한가? 그래도 부럽네요.]
이번에 글을 남긴 건 이태원이었다.
그 또한 어떻게 해서든 통합진료센터에 남고 싶은 일인이라 그랬다.
사실 면접 보고 난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센터의 설비도 설비고, 미래도 미래지만.
그냥 거기 구성원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아마 한국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뿐일 것 같았다.
[하하. 뭐……. 정 있으신 분들이라. 이수혁 교수님은 제 후배이기도 했고요.]
[아……? 아, 그렇게 되네요. 3년 차 때 1년 차였나요?]
[네, 그때부터 뭐…….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때 이미 아득히 저 앞에 있었죠.]
[와……. 진짜 천재구나.]
취기도 올랐겠다, 아무 소리나 막 떠들었다.
그러자 글들이 주르륵 올라왔다.
어찌나 활성화가 잘 되어 있는지, 단톡방의 모두가 글을 확인하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말없이 그냥 있는 이들도 있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칠성의 김성진이었다.
아니, 아예 가명으로 들어와 있었다.
‘내일…….’
이거 칠성에서 알면 어떻게 될까.
감염내과 안국태 휘하, 임상 조교수 김성진이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에 지원한다.
이거 퍼지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너랑 너가 지원해.
안국태는 어떻게 봐도 좀 처지는 애들에게 통합진료센터에 지원하라고 명을 내린 상황이었다.
얄궂게도 김성진은 그 꼴을 보면서 더더욱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개새끼……. 진짜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잘하건 못하건 다 제자 아닌가.
저 둘이 통합진료센터에 붙을 리도 없겠지만.
붙어도 큰일이었다.
교수는 못 될 테니.
그 말은 곧 2년 정도를 허송세월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안국태라고 해서 그걸 모를까?
‘다 알면서……. 하긴 괜히 안국태가…… 욕먹는 게 아니지.’
사실 교수들이 펠로우를 소모품 취급하는 건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긴 했다.
옆에서 보면 진짜 욕이 나올 정도로 부려 먹고는 다 끝나면 나 몰라라 하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하지만 이젠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펠로우 하는 사람들의 노력량과 논문이나 임상 능력의 질이 교수들이 펠로우 시절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보니, 아무래도 그냥 무시하기가 그래서였다.
2차 병원이나 지방 거점 병원에라도 꽂아 주는 세상이 왔다, 이 말이었다.
‘안국태……. 그 새끼는 근데.’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안국태는 여전히 악랄하게만 굴었다.
환장하는 건, 그놈이 점점 위로 올라가기만 한다는 점이었다.
교수 사회에서 아랫사람에게 악독한 것은 딱히 문제가 아니라서 그랬다.
[내일은 누구시죠?]
[신동수 선생님이요.]
[신동수……. 아. 그, 몇 년 꿇으셨다는.]
[네.]
그렇게 안국태에 대해 점점 더 안 좋은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신동수라는 이름이 나왔다.
답이 없었다.
[톡은 다 보고 계신 거 같은데.]
[부끄럼이 많으신가.]
생각해 보니까 김성진이 쓰는 가명이 신동수였다.
지어낸 이름이다 보니, 묘수로 전문의 시험 여러 번 떨어졌다는 핑계를 만들었다.
[뭐……. 잘 보셔야 할 텐데요.]
[지금은 로컬에 계신다고 했나요?]
[네. 로컬에.]
[진짜 대단하시네요. 강호 나갔다가 다시 대학 들어오려면 진짜 힘드실 텐데.]
핑계를 대다 보니 구라가 구라를 불러와서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형님, 파이팅입니다.]
[그……그래. 고마워.]
뭐라고 해야 할까.
짠내 나는 형이 되어 있었다.
물론 김성진은 그렇게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이 중에서는 제일 짠내 나는 사람이 맞기는 할 것 같아서 그랬다.
로컬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긴 해도.
안국태 밑에서 구르는 것도 녹록한 일은 아니거든.
[너무 떨지 마시고요. 다 좋은 분들이라.]
[네, 특히 나이 들어 도전하는 거……. 진짜 좋게 보실 거예요.]
이럴 땐 좀 미안했다.
‘아니, 나는……. 거기서 보라고 해서 보는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현종이 그를 티 나게 꼬시지 않았나.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종이.
그게 김성진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불세출의 기인 이현종 교수님이 날 이뻐하신단다.’
태화는 1등이다 보니 아선이나 칠성 얘기를 거의 안 하는 편이었다.
특히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아예 안 했다.
개새끼라든지, 소 새끼라든지 하는 욕 할 때나 나올 뿐이었다.
이현종, 수혁 모두 자기애가 워낙 강한 사람이라 그랬다.
하지만 칠성에서는 틈만 나면 태화 얘기를 했다.
그중에서도 월드 스타 이현종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 이현종이…… 나를.’
위에서야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인턴, 레지던트 심지어 펠로우나 임상 조교수 모두 계약직 아닌가.
위에서 기대하는 것만큼의 충성도는 없었다.
오히려 이놈의 병원 언제 때려치울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이나 들지.
그렇다 보니 이현종에 대한 욕설도 결국, 경외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김성진 선생.”
“네, 안녕하세요.”
해서 김성진은 다음 날 예쁘게 정장 쫙 빼입고서 통합진료센터에 왔다.
전에 보냈던 환자가 이제 완전히 불안감을 씻어 내고 부대에서 열심히 훈련받고 있다는 소식을 바로 얼마 전에 들은 터라 함박웃음을 지은 채였다.
“잠시만.”
“어…….”
“아직 저는 당신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 미소가 무너지는 데까진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안대훈이 와서 공항에서나 보던 막대기를 휘둘러 대서 그랬다.
“뭐 없습니다.”
“당연하지, 새꺄!”
그런 안대훈이 수혁에게 구박받는 걸 보고 나서야 마음이 좀 풀렸다.
“정말 없어?”
“네, 확실합니다.”
물론 이현종과 안대훈이 귓속말하는 걸 보고 나서는 다시 가슴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일었지만.
철커덕.
뭐가 되었건 안대훈은 일단 돌림판을 내려놓았다.
그걸 지켜보던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김성진을 향해서였다.
“내가 보라고 하긴 했는데…… 못하면 못 붙는 건 알고 있지?”
“아,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래. 그날 뭐……. 봐서 알겠지만. 정확히 같은 방식이야.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질문을 던질 거라는 거 정도?”
“네네.”
‘전에도 질문 미친 듯이 하셨습니다’와 같은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떨리는데 여기서 분위기 더 떨리게 만들어서 뭐 좋은 일이 있겠나.
해서 김성진은 마른침만 삼킨 채, 돌아가는 바늘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꽤 화려한 모양새였지만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톡방에서 이미 다 봐서 그랬다.
“음.”
하지만 멈춰선 바늘이 가리킨 과와.
“으으음…….”
기묘해 보이는 반응들을 보고 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신경외과…….”
“여기 뭐가 있으려나?”
“출혈 아니면 경색 아닌가?”
내과가 다른 과, 특히 외과 계열을 무시해서 그렇기도 했다.
김성진도 사실 예외는 아니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환이 저거 둘뿐이었다.
당장은 그랬다.
‘아……. 일단 오전 이렇게 날아가나요.’
인생도 날아갈 거 같았지만, 애써 정신을 부여잡고 안대훈을 따랐다.
“후후. 프락치…….”
비열하게 웃는 모습에 뒤통수라도 후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