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화 다음 타자? (4)
‘불초소생……. 어쩐지 이것이 이상한 거 같습니다.’
이 케이스가 어찌 이태원에게만 어렵겠나.
안대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순리대로라면 안대훈에게 훨씬 더 어려워야만 했다.
이태원은 뭐가 되었건 전문의를 땄고, 그 후로도 군의관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니까.
물론 군의관 시절은 퇴보하는 시절, 바보가 되는 시절일 수도 있겠지만.
이태원은 나름 노력을 해 오지 않았나.
‘그래, 여기……. 이건 단순한 아티팩트가 아니야. 끝을 잘 따라가면…….’
그러나 나름 노력한 사람과 머리 빠지도록 노력한 사람이 같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머리카락을 희생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어야 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에 안대훈은 레지던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가고 있었다.
‘끝에…… 폐동맥이 있어. 관상동맥과 폐동맥이 이어져 있다……. 가설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안대훈은 머리를 굴렸다.
삽시간에 정수리가 붉어져 왔다.
그제야 뒤에 있던 수혁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이 녀석…….’
[알아차린 걸까요?]
‘그냥 머리만 굴리는 건 아니야. 내가 이걸 왜 정수리만 보고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이건 환희다.’
[대단하군요, 수혁. 안대훈에 대한 애정이 도를 지나쳤어요.]
‘아니, 그렇게 말하지 마…….’
살짝 기분은 나쁘지만.
수혁은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뭔가 알아차렸다는 걸.
그냥 맹렬히 대가리만 굴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수리 색이 지금과는 미묘하게 달라야 했다.
왜 그런 건지, 왜 이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그랬다.
‘둘 사이에 소통이 있다면…… 환자가 말했던 증상이 모조리 들어맞아. 운동할 때 더 심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까지도……. 다 맞아. 왜 증상이 모호했는지도 알겠어. 보통은 증상이 없을 거 같은데……?’
실제로 안대훈은 놀랍도록 정확한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마 이현종이 이 말을 들었다면 소름이 돋아서 대갈통을 때렸을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하여간에 이태원은 안대훈의 눈동자 흔들림과 영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대훈. 그 사람……. 레지던트라고 얕보면 안 돼. 핵심 멤버야.
그저 우연은 아니었다.
이런 말을 들어서 그랬다.
다름 아닌 장종우에게 들었다.
‘그 새끼가…… 구라는 칠지언정 허튼 소리할 놈은 아니란 말이지?’
큰 병원 출신이라 뺀질거리는 편이긴 하지만.
하여간 같이 공부하는 동안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았더랬다.
수련을 같이 안 받은 사이이니만큼 정도 이상 친해지기야 어려웠지만.
지금까지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어디를…… 어디를 보고 있나. 아티팩트……? 아니야, 그 너머……. 폐동맥? 저길 왜……?’
물론 처음부터 딱 알아차리진 못했다.
엉뚱한 곳이란 생각부터 들어서 그랬다.
게다가 안대훈의 행색이라는 것이 신뢰감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외모는 오히려 괜찮았다.
머리가 없으면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저 등 뒤에 달린 돌림판은 분명 문제였다.
게다가 안대훈의 신분 또한 문제가 되었다.
-걔는 픽스래. 근데 태화 사람들 말이…… 절대 태화라서가 아니래.
하지만 장종우의 말이 이태원을 일깨웠다.
하긴 그렇지 않나.
이 면접 방식만 봐도 통합진료센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유추 가능했다.
이 둘은 정말 진심이었다.
면접자에게도 귀찮은 일이지만, 면접관만 하겠나.
이런 식으로 사람 뽑겠다는 사람들이 단지 태화라서 안대훈을 픽스시켰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등 뒤에 바짝 붙어서, 기분 나쁜 숨소리를 내고 있는, 머리끝까지 벌겋게 달아오는 이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우수할 거란 얘기가 되었다.
‘진짜 싫은데……. 그래도 어쩌겠냐…….’
천재는 좀 이상하단 말도 있지 않나.
당장 이현종과 이수혁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해서 이태원은 좀 더 진중하게 안대훈의 눈동자 끝을 따랐고, 그 결과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아……. 소통…….’
머리통에 벼락이 치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혈관이 이어지는 동시에 모든 증상이 설명되어서 그랬다.
그걸 보고 있던 이현종의 눈에도 이채가 서렸다.
‘안대훈은 아는 것 같았고. 이 녀석도? 허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갑자기 알겠다는 얼굴을 한 것은 좀 이상했다.
하지만 이현종은 수혁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사람 아닌가.
수혁은 이보다 더한 짓도 했다.
아니, 하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편견이 없는 사람인 이현종은 좀 더 기다렸다.
이태원이 이 이상한 짓을 멈추고 제대로 된 얘기를 꺼낼 때까지.
"여기. 이 혈관……. 폐동맥과 교통이 있는 거 같습니다."
"허. 그래?"
이현종의 반응에 이태원은 아닌가? 싶었지만.
어차피 이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는 떠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호지세!’
해서 이태원은 그냥 무작정 밀고 나갔다.
"네. 그 결과…… 심장으로 가야 하는 피가 폐동맥으로 일부 흐르게 됩니다. 물론 영상에서 모호하게 보이는 만큼 교통량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저절로 막힐 정도로 적은 것도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안정 시에도 오히려 이쪽 혈관이 확장된다면 증상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또 흥분 시에도 이쪽 혈관이 수축한다면 증상이 없을 것이고요. 그 외에는 다른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게 자네 생각인가?"
"네, 그렇습니다."
이현종은 허허 웃다가, 의사를 돌아보았다.
의사 또한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폐동맥과 교통이 있어?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하나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게도 보였다.
또 그렇다고 가정을 해 보니, 환자의 증상도 다 설명이 되었다.
"자네는?"
"어……. 그."
하지만 처음 들어 보는 일이라는 게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심장 내과 분과 전문의인데 아예 처음 들어 보는 질환이 있는 게 말이 되나?
‘내가……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물론 대학에 남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 병원에 있던 기간이 나와 지낸 기간보다는 길었다.
게다가 나오고 나서도, 일부 개원의들이 그러하듯 아카데믹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논문이 나오면 찾아 읽고, 공부했다.
어쩔 수 없이 시간 자체는 줄었지만.
그래도 게을리 보내진 않았다.
"그럴싸한 이론입니다."
"이론이라."
그래서 답을 이런 식으로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현종은 그런 의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불쌍한 새끼’라고 중얼거리면서였다.
"네?"
"아니, 아닐세."
딱히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니만큼 완전한 혼잣말은 아니었다.
"여튼, 들어 보게. 다 들어 봐. 야야, 인턴인가? 너도 들어."
상대가 상처를 받거나 말거나, 이현종은 영상 앞에 떡하니 서서 입을 열었다.
진짜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죄다 붙잡아 세워 두었다.
"중요한 얘기야. 드문 질환이라 너네 평생 이거 한 케이스밖에 못 볼 수도 있어."
말을 꺼낸 주인공이 이현종인 데다가, 말도 솔깃하게 해서 정말 바쁜 사람들 말고는 거의 다 멈춰 서서 듣기 시작했다.
"환자분, 괜찮죠?"
"네? 아니, 네."
질문이 늦은 거 아닙니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환자는 모진 사람은 못 되는 편이기도 했고, 또 궁금하기도 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이현종은 무리 없이 얘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환자는 아까 말했듯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흉통을 주소로 내원했어. 운동을 통해 유발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면을 통해 유발되는 것도 아니야. 흉통 자체는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의 양상과 같지만, 유발 요인은 전혀 다르지. 여기서 하나 유의할 점 생겼고."
이현종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다.
"다음 조영술……을 시행했으면 아마 더 확실하긴 했을 거야.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조영술은 침습적인 검사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통증에 잘 견디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도 중년층 이상에서의 얘기지. 요즘 사람들한테 단지 검사를 위해 통증을 견디라고 하는 건 불합리하게 여겨진다고. 따라서 이 검사 소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이현종은 모니터에 띄워 둔 영상을 보여 주었다.
조영술에 비하면 해상도가 개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한 영상이었다.
하필 CT도 그리 좋은 건 아니어서 더더욱 그랬다.
사실 대학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볼 수 없는 검사 소견이었다.
어찌 보면 대학 병원은 온실 속의 화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
하지만, 모여든 사람들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나가야 할 수도 있어…….’
온실이 좁아서 그랬다.
대학 병원에 남고 싶다고 다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돈 좀 못 벌어도 좋으니 배운 대로, 또는 제대로 환자만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대부분은 나가야 했다.
강호로.
"보면 여기……. 좌전 동맥에서 삐쭉 나가는 부분이 있지? 얼핏 보면 아티팩트처럼 보여. 대학 병원에서 찍은 영상이라면, 어?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다시 볼 수도 있어. 그래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로컬 병원의 검사 기기는 아무래도 신뢰도가 떨어지지. 이 부분에서 옆으로 분지가 나갈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어려워서 그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로 응급실 사람들이 그러고 있었다.
관상동맥은 응급 질환 중에서도 초응급이지 않나.
나름 볼 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소견은 처음이라 그랬다.
"당연히 정식 진단명은 있어. Coronary Pulmonary Fistula. 우리 말로 하면 관상동맥-폐동맥 누공이야. 처음 보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자책은 하지 말고."
이현종은 의사 쪽을 돌아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자책하고 있는 중이었다.
와 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역시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남았어야 했나?
뭐 이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발생 빈도 자체도 0.2%밖에 안 돼. 근데 아까 뭐라고 했더라. 이태원 맞어?"
"아, 네. 이태원입니다."
"그래. 우리 이태원 선생이 말한 것처럼……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도 있어. 이 경우가 태반이야. 왜냐면 그냥 졸졸 흐르는 정도로는 허혈을 일으키지 않거든. 때문에 정작 진단까지 되는 경우는 그것보다도 더 드물어. 아마 우리나라 케이스가 하나? 두 개 정도 있을 거야. 그 정도로 드물다고."
물론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 된 만큼 검색해 보면 자료야 차고 넘치게 찾을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검색을 해 볼 수 있나?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요구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 생각했다.
‘나야 천재니까……. 좀 다르지만 말이야.’
이현종은 그런 생각에 턱을 치켜들었다.
확실히 수혁이 말고는 여전히 그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없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