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86화 (786/1,303)

786화 내분비는 다른가? (2)

두통을 일으킬 수 있는 면역 질환이라.

뇌수막염이나 뇌염 또는 종괴성 질환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근데…… 딱 이거다 하는 게 생각나진 않네……. 어쩌지…….’

장종우는 하아 한숨을 쉬면서 이현종, 수혁을 돌아보았다.

안대훈은 이제 얼굴만 봐선 뭔 생각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저 묵묵한 대머리는, 그저 수혁만 보고 있었으니.

하지만 나머지 둘.

이 희대의 천재들은 분명 진단명 하나를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시발…….’

욕이 나왔다.

그래, 천재지.

나랑은 다른 천재.

그런데 이렇게까지 다르다고?

‘말이 되냐, 이 새끼들아.’

분명 비슷한 교육을 받았을 텐데.

심지어 이현종은 옛날 사람이라 후지게 배웠을 텐데.

“무슨 검사할 거예요?”

한탄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수혁이 물어 왔다.

얼굴만 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혀.

혀는 똑딱이고 있었다.

그제야 장종우는 자신이 지금 시험 중이라는 걸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아. Brain CT와 MRI 찍고 싶습니다. 기본적인 혈액검사도요.”

“네, 그래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 질환 확인도 가능하고, 감별도 되겠죠.”

다행한 일은, 무슨 질환일지는 몰라도 뭘 해야 할지는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대 의학은 실로 만만치 않아서 실수할 만한 여지를 최대한 줄여 나가고 있지 않겠나.

그중에서도 내과는 전문의들이 신중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수련 방향을 정해 온 바 있었다.

아선 병원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만한 병원이니만큼, 장종우도 실력이 썩 괜찮았다.

기본기가 있다, 이 말이었다.

“근데…… 그걸 어떻게 확인하죠?”

다만 아선 병원도 검사하자고 했을 때, 바로 뭐가 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MRI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검사이지 않나.

찍어 보죠 하고 바로 찍는 세계관은, 미드 닥터 하우스 말고는 아마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터였다.

물론 미국에 위치한 일부 최고가의 병원에서는 가능하긴 하겠지만.

거기선 MRI 좀 찍고 의사 얼굴 좀 보고 나오면 수천만 원을 내야 하니, 이세계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바로 찍어야죠.”

“네?”

장종우는 그 이세계가 바로 눈앞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센터에서는 거의 바로 됩니다.”

“어……?”

응급실도 아닌데.

그냥 센터에서 진료 중에 바로 찍을 수 있다고?

검사 좋아하는 내과 의사라면 군침이 싹 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미친……. 여기, 천국인가?’

장종우는 수혁이 몇 마디 하기도 전에 환자가 휠체어 타고, MRI실로 가는 광경을 보며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잠깐 하늘 위를 걷다 온 것 같았다.

‘불신자 주제에 가나안에 왔구나.’

안대훈은 그런 장종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을지 뻔히 보여서 그랬다.

내과 의사라면 다 똑같지 않겠나.

환상 속에만 존재하던 의사가 둘이나 있고.

그 의사들의 처방을 바로 수행할 수 있는 검사 기기가 있는 곳.

이곳이 천국이었다.

-환자분, 좀 시끄럽습니다.

하여간 환자는 곧 MRI실 안에 들어갔다.

의식이 없거나 불완전하면 인턴이 들어가서 붙잡든지 해야 할 텐데, 다행히 이 환자는 의식이 온전해서 그저 방송으로만 통제했다.

‘갑자기 이렇게 검사를 한다고? 이거 안 비싼가?’

환자는 그저 얼떨떨했다.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황당한 경험이었다.

엄마랑 병원 왔다가, 환자가 너무 많아서 대기실 옆에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웬 지체 높아 보이는 의사 하나가 오라고 해서 왔더니 통 속에 갇히지 않았나.

땅땅땅땅.

잡념마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경고했던 것처럼, MRI 기기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랬다.

나름 헤드폰도 끼워 주고 음악도 틀어 줬지만 그리 소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머리도 아픈 와중에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살짝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저 새끼는 찍어 봤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건 다 환자만의 생각일 따름이었다.

밖에 있던 의료진들은 실시간으로 넘어오는 영상 자료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군요.]

‘아빠도…… 같은 질환을 생각하고 있었네.’

[네, 표정을 보면 확인하는 느낌입니다.]

‘이런 거 보면…… 진짜 대단해. 어떻게 이 많은 지식을 다 욱여넣었지? 너도 없는데.’

[어찌 보면 제가 없어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수혁이 더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죠.]

‘아.’

마지막에 잠깐 대화가 이상하게 새기는 했지만.

하여간 영상은 수혁과 이현종이 예상했던, 정확히 그 질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확인해야 할 것은, 장종우 그리고 안대훈이 이를 알아보느냐였다.

“어떤 거 같아요?”

해서 질문을 던졌다.

몰아붙이는 것 같지만 실은 힌트였다.

이제 알아봐야 한다는 뜻이지 않나.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나온 영상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단 뜻이었다.

‘아, 이거……. 지금 뭔가 나왔구나.’

장종우도 전문의를 야바위해서 딴 건 아니었기에 바로 알아들었다.

해서 수혁이 딱 말 꺼내기 전까지 나왔던 영상을 다시 면밀히 살폈다.

다행히 뭔가 애매한 소견은 아니었다.

‘터어키안와(Sella Turcica)가 확장되어 있어. 뇌하수체 선종인가?’

뇌하수체.

말 그대로 뇌 아래에 달린 주머니 같은 장기인데, 그게 커져 있었다.

호르몬을 잔뜩 분비하는 곳이었다.

종괴가 꽤나 잘 생기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 선종인데. 음.’

근데 이게 왜 생겼지?

임신이랑 뇌하수체 선종이랑 연관이 있나?

아니, 이게 뇌하수체 선종은 맞나?

장종우는 진땀을 흘려 가며 다시 영상을 살폈다.

달리 떠오르는 건 없었다.

무식해서 그런가, 아니면 진짜 맞아서 그런가.

‘선종이라고 하지 말고, 종괴라고 하자. 그게 안전할 것 같아,’

장종우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살짝 의견을 틀었다.

“뇌하수체 종괴가 보입니다.”

물론 눈치를 살피긴 해야 했다.

말해 놓고 수혁의 얼굴을 진득하게 바라보았다.

‘동공이 너무 방황하는데.’

[불쌍할 정도로 동분서주하네요.]

수혁은 그런 장종우를 보며 허허 웃었다.

“그래, 맞아요. 뇌하수체 종괴가 보입니다.”

하여간에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놈은 아니지 않나.

그러나 통합진료센터에 들어오려면, 그러니까 직속 제자가 되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했다.

“이게 왜 생겼을까요?”

“수술…… 어? 네?”

진단을 했으니 다음은 치료 아닌가?

해서 수술을 논하고 있던 장종우는 당황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설마 이유를 물을지는 몰라서 그랬다.

돌발 행동은 아닌 듯했다.

적어도 뒤에 서 있던 이현종은 이 질문이 당연하다 여기는지, 한마디 더 보태기까지 했다.

“어떤 질환은 이유가 더 중요해. 특히 이렇게 임신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땐 더 그렇지. 앞으로 임신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판가름할 수도 있으니까.”

“아.”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뭔가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환은, 그 원인을 아는 게 너무 중요하지 않겠나.

특히 그 원인이 임신과 같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일생의 원이 되기도 하는 일이었다.

의사가 임신을 피해라 했을 때 너무 큰 좌절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의사는 반드시 그 이유를 면밀히 파악해야만 했다.

가운을 걸칠 땐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도 지게 되는 법이니.

‘그래. 그렇지. 음. 맞아.’

다행히 장종우는 책임을 아는 의사였다.

이현종의 말을 듣자마자 진중해졌다.

그리고 그게 이현종에게는 좀 좋게 보였다.

‘이 새끼 헷갈리게 하네. 세모로 할까?’

원래는 엑스였다.

좀 무식해 보여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자꾸 수혁과 하다못해 안대훈과 비교를 하게 되어 그랬다.

그러나 마음가짐은 마음에 들었다.

그때, 칠성의 김성진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보니까, 그 새끼 왜 안 와?’

면접 보라고 했는데.

왜 안 오지?

안국태가 뭐라고 하나?

답변이 늦어지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사실 이미 이현종은 환자에 대한 진단은 물론이거니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다 정리가 된 참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험이 아니었다면, 벌써 나가서 보호자부터 만나지 않았을까.

‘종괴…… 선종이 아니라 종괴.’

그사이 장종우는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둘 중에 종괴를 골랐는데, 별말이 없지 않았나.

수혁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 수혁이라면, 선종이 맞으면 선종이라고 정정해 주었을 터였다.

정확한 답을 아주 중요시 여기는 듯했으니까.

그 말은 선종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 종괴처럼 보이게 되는 질환이 뭐가 있지?’

선종이 아닌데 종괴, 즉 종양처럼 보이는 건 뭐가 있을까?

암?

아니, 그건 아니었다.

‘T1에서…… 균일한 저신호 강도를 보여. 악성은 아닐 거야. 그럼…….’

암도 아니고, 선종도 아니고.

뭐야, 시발.

욕이 튀어나오려다가 말았다.

불현듯 우창윤의 말이 떠올라서 그랬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 뇌하수체나 갑상선, 부신 등은 항체 공격을 받으면 퉁퉁 붓게 돼. 진단함에 있어 이를 유념해야 해. 염증 소견이 다른 곳하고는 좀 다르다고. 게다가 그 결과도 치명적이지. 호르몬을 분비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수혁, 이현종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처지는 인물이었다.

근데 그건 공정한 비교가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장종우는 바보가 될 테니.

하여간 우창윤도 나름 대단한 사람이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호르몬 쪽으로는 진짜 그랬다.

그래서 지금 도움이 되었다.

그것도 결정적으로.

“염증. 임신에 의한 반응성 염증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이렇게 전체적으로 뇌하수체가 커져 보이는 건…… 아마 그 결과겠죠. 다른 검사를 좀 더 해 봐야겠지만, 만약 다른 곳에 염증이 없었다면 차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임신을 시도하는 것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호오.”

진짜로 결정적이었다.

수혁은 감탄한 얼굴로 장종우를 바라보았다.

‘뭐지? 갑자기 딴 놈처럼 답하네?’

[그러니까요. 지금은 교수급의 대답이었습니다.]

‘뭐……. 괜히 에이스는 아니겠지.’

[네. 확실히 이번엔 좀 대단했습니다.]

수혁만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아니었다.

“장종우라고?”

“네.”

“그래. 음. 잘했어.”

이현종도 그랬다.

엑스에서 세모로, 이제는 동그라미로.

‘이것보다 잘 답하려면…… 차기 면접자들 어렵겠는데.’

질환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MRI까지 찍어 놨으니.

하지만 이 정도로 답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우창윤이…… 잘 가르친 건가? 아닐 거 같은데.’

이현종은 머릿속으로 우창윤을, 그의 생각에는 좀 어벙한 놈인 그를 떠올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하여간, 이제 다 끝났네. 환자한테 가자고. 치료가 될 거다, 앞으로 예후도 좋을 거다. 이런 얘기 해 줘야지.”

표정은 밝았다.

좋은 소식 전할 때는 늘 그러하듯.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