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3화 돌림판 면접 (2)
“장종우 선생님도 이리로 와 주세요.”
수혁은 멀찌감치 서 있던 장종우도 불렀다.
그는 아직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고나 할까?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갑자기 중환자실 와서 말없이 뒤적거리더니 이리 오라고 한 참이었다.
“어, 네.”
그래도 부르니까 갔다.
그랬더니 수혁이 누워 있던 환자 하나를 가리켰다.
70세 할아버지 환자였다.
의식은 없었다.
삽관이 되어 있었고, 바이털도 별로 좋지 못했다.
이런저런 수액과 약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혈압이 낮았으니.
게다가 고약한 냄새도 났다.
‘설사…….’
감염성 장염인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70세 남환. 기저질환으로 당뇨가 있어요.”
수혁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론이란 면접을 의미했고, 통합진료센터의 면접은 단순히 신상 명세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진료 역량을 확인하는 데 그 의의를 두었다.
“당뇨가 조절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화혈색소가 8.4예요.”
“음, 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란 얘기가 있지 않나.
장종우는 서둘러 케이스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의사였으니까.
그중에서도 내과 의사.
중환자실에 들어서는 순간 어느 정도 마인드 세팅이 된다는 얘기였다.
“처음부터 응급실 통해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주소는 호흡곤란. 원인은…….”
수혁은 당시 찍은 X-RAY를 보여 주었다.
양쪽 폐가 새하얬다.
심각한 수준의 폐렴이었다.
고령에서는 이렇게 되면 죽을 확률이 꽤 높았다.
특히 기저에 당뇨가 있다면 더더욱.
“폐렴이군요.”
“네.”
수혁은 거기서 브리핑을 멈추었다.
기록도 가렸다.
이현종과 안대훈은 그제야 수혁이 단순 토의를 위해 부른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대체 어떤 추론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혁은 이미 이 환자의 새로운 진단명을 알아냈을 터였다.
‘내 아들이지만……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이현종은 혀를 내둘렀다.
탁.
안대훈은 이마를 탁 쳤다.
그에 반해 장종우는 마른침만 삼켰다.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보통 천재들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긴장이 되었다.
“뭘 해야 할까요?”
갑작스러우면서도 질문이 너무 광범위했다.
뭘 해야 하냐니.
‘아니, 아냐. 진짜 환자가 왔다고 생각하면 돼.’
그럼에도 당황이 길지는 않았다.
태화만큼이나 혹독한 병원이 아선이지 않나.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수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당당한 전문의라면 응당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세츄레이션(산소 포화도)을 봅니다.”
장종우는 답을 하면서도 방금 수혁이 가린 화면을 힐끔거렸다.
거기 힌트가 있을 것이 분명해서 그랬다.
수혁도 사람인데 모든 수치를 기억하진 못할 거란 계산도 있었다.
하나 그는 틀렸다.
수혁은 사람이지만, 안에 바루다가 있었기에.
[81%.]
‘콜.’
수혁은 바루다의 데이터화 능력을 토대로 답했다.
“81%입니다.”
“아.”
망설임 없는 답에 장종우는 잠시 놀랐다.
‘설마 다 외웠어?’
미친 사람인가 싶어서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곧 수혁이 시계를 봐서 그랬다.
답에 얼마나 걸리는지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장종우는 비명처럼 답을 외쳤다.
“삽관! 삽관을 합니다.”
“네, 그리고?”
수혁은 별로 감명받지 않았다.
당연한 답이어서 그랬다.
“항생제를 씁니다!”
“어떤?”
“그…… 피페라실린과 타조박탐. 그리고…… 그리고 노인이니…… 흡입성 폐렴 등의 가능성을 고려해서 클린다마이신을 씁니다.”
꽤 정확한 답이었다.
그러나 감명은 이번에도 없었다.
이 또한 교과서적인 답변, 즉 모르면 안 되는 답변이었다.
“그 외에는?”
“어……. 아, 혈압. 이 환자 혈압이?”
“70에 50입니다.”
“그럼…….”
장종우는 환자를 다시금 살폈다.
당뇨를 오래 앓아 온, 심지어 관리도 안 된 환자였다.
몰골이 엉망이었다.
엄청나게 말랐다.
‘혈관…… 말초 혈관을 잡을 수 있을까?’
지금도 딱히 뭐가 들어가는 곳이 없었다.
중심정맥관 말고는.
“쇄골하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고…… 승압제를 씁니다.”
“좋아요. 일단 환자는 살아서 중환자실에 올 수 있었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자 수혁이 답했다.
마치 기계 같은 답이었다.
‘미친……. 즉석에서 문제를 이렇게 또 낸다고?’
장종우는 가을 학회에서 느꼈던 것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전율?
그래, 전율이 일었다.
‘이거지. 이거 때문에 내가 여기 지원한 거지.’
천재.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천재.
이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혈압은 올랐으나, 혈액 검사상 백혈구가 증가하는 소견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 항생제 변경을 고려합니다.”
“어떤?”
“그…….”
그러려면 여기서 붙어야 했다.
장종우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잠시 어지럼증이 일 정도로 굴렸다.
‘카페인 때려 붓고 오기를 잘했지.’
보람이 있었다.
긴장한 와중에도 정확한 이름들이 딱딱 떠올랐다.
“메로페넴, 테이코플라닌으로. 일단 경험적으로 변경합니다!”
“네. 아직 배양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멀었으니까요. 현명한 처사입니다.”
사실 항생제 사용은 정밀 타격하듯 해야 하는 게 원칙이었다.
적어도 교과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임상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배양 검사를 기다리다가 환자가 죽으니까.
의사는 기다릴 수 있어도, 환자는 기다려 주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그저 기본…….’
안대훈은 수혁이 말은 현명하다 했으나 별로 감명받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바루다가 없음에도, 수혁의 얼굴은 자동으로 분석될 정도로 관찰을 해 와서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여기까지는 안대훈도 유추가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안대훈이라면 고민도 안 했을 터였다.
때문에 안대훈은 여유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입원 5일째. 환자 증상에서 설사가 추가되었습니다. 무엇을 의심해야 합니까?”
그에 반해 장종우는 초긴장 상태였다.
수혁이 질문을 쭉쭉 이어 나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질문의 수준은 아직까지 그리 높지 않았다.
내과 의사라면 응당 알아야 할 정도에 그쳤다.
“항생제 과용으로 인한…… 장염. 즉 C.difficile(Clostridium difficile,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 또는…… 그저 항생제에 의한 설사일 겁니다.”
C.difficile 감염.
항생제가 나쁜 균만 죽이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장내 유산균까지 싹 죽여 버리기 때문에, 원래 같으면 유산균에 밀려 자라지 못했을 균인 C.difficile이 퍼지는 상태를 말했다.
드물 거 같지만 의외로 흔했고, 내과 의사들에게는 매뉴얼이 다 있었다.
“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우선은 감염의 원인인 된 항생제를 중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얘기일 뿐이었다.
지금 항생제를 끊는다면 어찌 될까?
안 그래도 잡아먹히고 있던 환자의 폐가 죄다 망가질 것이다.
“항생제는 유지하되…… 유산균을 추가합니다.”
“어떤?”
“음.”
여기서 장종우는 좀 당황했다.
유산균의 종류를 말하라고?
‘흐흐……. 이런 건 기본인데.’
그걸 보면서 안대훈운 남몰래 쪼갰다.
그가 알고 있는 걸 장종우는 몰라서 그랬다.
‘혀기후니에 다 있는 거라고. 기본도 안 된 놈.’
심지어 유튜브에 다 올라가 있는 내용 아닌가.
‘넌 탈락이다.’
해서 안대훈은 제멋대로 탈락시켰다.
“그…… 아!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
“네. 가장 흔히 쓰이는 유산균주이죠.”
안대훈에게는 불행하게도 장종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균주 이름을 떠올렸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제약 회사 설명회에서 들었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그래, 이제 됐다. 됐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여기까지 온 자신이 뿌듯했다.
끝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야 했다.
이걸 답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테니.
하지만 그건 장종우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수혁은 여전히 감명받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에게 여기까지는 기본이었다.
“네,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를 투여하고 수양성 설사가 호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설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혈압도 떨어졌고요.”
수혁은 환자를 가리켰다.
그제야 여기에 있던 모두는 이게 지금 환자가 처한 현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환자의 혈압은 정상이 아니었다.
중심정맥관에 약까지 들어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았다.
그리고 악취.
“아.”
장종우는 다시 아까 처음에 맡았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건 설사였다.
그래, 유산균을 써서 호전되었다면 왜 지금 이런 냄새가 나겠나.
“뭘 의심할 수 있죠?”
“어…….”
뭘 의심하냐고?
유산균이 부족했나?
그래서 호전이 되다 말았나?
아니면 전해질 불균형이 발생했나?
항생제 사용에 환자의 전신 상태 악화를 고려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아니, 아니야. 자연스럽지가 않아.’
그러나 그중에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자가 검열에 싹 걸려 버렸다.
“모르는 건가…….”
수혁은 그런 장종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 이곳은 조용했고, 다른 이들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옳거니!’
안대훈은 쾌재를 불렀다.
‘뭐지?’
이현종은 궁금해했고.
‘하……. 이거…… 이건 너무…….’
장종우는 아까 했던 당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니, 이 실망 어린 말에 더더욱 당황하고 있었다.
이걸 알아야 한다고?
너무 어렵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가 뭐죠?”
그때, 수혁이 질문을 던졌다.
이건 모르면 안 돼 뭐 이런 얼굴이었다.
“유산…… 유산균입니다.”
“네, 유산균이죠. 중환자실(ICU)에서 사용되는 프로바이오틱스 구성 중 가장 일반적인 구성이기도 합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게 뭘까요?”
“그…….”
그럼에도 모르겠다.
그런데 알아야 한다는 얼굴이었다.
‘돌아 버리겠네.’
장종우는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잠깐. 잠깐만…….’
그러다 유산균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유익한 산성 균이란 뜻.
그 말은 곧 균.
균이었다.
“균……?”
떠오른 대로 지껄여 봤다.
어차피 떨어지면 아선 내분비내과 가면 되니까 뭐 이런 생각이었다.
“네, 그렇죠. 균이죠. 환자는 당뇨로 인해 면역이 억제되어 있습니다. 장을 따로 떼어 보면 항생제로 인해 유산균이 없어지고, 다른 균이 차지한 상황이죠. 감염에 아주 취약한 상황입니다. 그때 다른 균이, 그것이 유산균이라 해도 과량 들어오게 되면 어찌 될까요.”
“아……. 유산균에 의한 감염!”
“네. 맞아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 감사는 이른데.”
“네?”
“치료는 어떻게 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