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9화 (779/1,303)

779화 제품 개발 (2)

이현종 그리고 신현태를 비롯한, 태화에서 수혁계로 분류되는 이들이 한데 모여 수혁의 얘기를 들었다.

다들 사업 쪽으로는 젬병이기는 했다.

수혁도 그랬다.

나름 거들다라는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하나를 개발하는 데 일조하긴 했지만.

진짜 일조만 했지, 사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단 하나도 관여한 게 없었다.

“그럴싸한데?”

“이거 하면 바로 되겠어.”

“그러니까. 어? 뜻도 좋고. 아주 좋아.”

오히려 그래서 다들 낙관만 하고 있었다.

신현태도 이현종도 조태진도 고개 끄덕이면서 막 좋다고 하고 있었다.

“음.”

이상한 것은 안대훈이었다.

원래의 그라면 지금쯤 난리가 났어야 하지 않겠나.

역시 우리 교주님!

영명하시도다!

어찌 이렇게 헌앙하실 수가!

세계를 구원하실 아이디어입니다! 등등.

온갖 지랄을 펼치고 있어야 할 텐데,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아니, 침묵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대훈아. 의견 있어?”

제일 먼저 그것을 포착한 것은 당연하게도 수혁이었다.

평소 같으면 야단법석 피울 것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진짜 이상하네? 제품은 영험하지 않다고 믿는 걸까요?]

‘그러게. 나 한다고 하면 제일 발 벗고 나설 줄 알았는데, 약간 섭섭한데.’

밀당인가 싶기도 했다.

이놈이 이제 하다 하다 밀당까지 시도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대훈은 꽤나 진중한 얼굴이었다.

“그…… 네.”

“말해 줄래?”

하여간 안 그러던 놈이 이러고 있으니 모두의 관심이 팍 집중됐다.

그제야 이현종 등도 안대훈의 표정을 눈치채서 더 그랬다.

‘뭐야, 이 새끼?’

다들 이런 생각 중이었다.

“제 삼촌이 사실 공장을 하세요.”

“오……. 어떤?”

약간 뜬금없는 말이 나왔다.

의사 나부랭이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공장이란, 그저 기계가 윙윙거리고 움직이면서 자동차가 뚝딱 하면 나오는 그런 곳이었으니까.

특히 교수들만 있어서 더 그랬다.

전공 바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었다.

“뭐 그렇게 대단한 공장은 아니고…… 하청받아서 하는 거기는 한데요. 건강식 하거든요?”

“아……. 건강식도 공장에서 만드나?”

“네?”

“아니, 아냐.”

수혁은 자신이 멍청한 소리를 했다는 걸 안대훈의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해서 정정했고, 다행히 안대훈은 수혁을 뼛속 깊이 정도가 아니라 죽도록 존경하고 있었기에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다.

우리 교주님이 그럴 리가 없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가 좀 아는 게 있어요. 아무래도 내과다 보니까 삼촌도 저한테 많이 여쭤보시고요.”

“오…….”

“이게 아마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법적으로도 엮이는 게 있고. 또 제품 자체를 만드는 데도 오래 걸릴 겁니다. 취지도 좋고, 아이디어도 너무 좋다는 건 저도 공감합니다. 이수혁 교수님 의견인데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나머지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다 보니, 아무래도 좀.”

안대훈의 말에 조태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지. 사람이 하는 일이지, 이러면서였다.

이현종과 신현태는 그럼 수혁이 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란 얘기인가 싶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조태진의 눈이 점점 안대훈을 닮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랬다.

무조건 종교적인 대답이 나올 것이 뻔했다.

“아, 그렇구나. 음. 하긴…… 이게 점도 설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거 같긴 했어.”

“네. 어쩌면 점도 설정을 좀 세분화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분화……?”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안대훈이 원래 좀 똑똑한 편 아닌가.

게다가 이건 그가 이 자리에서 제일 잘 아는 분야다 보니 말하는 게 아주 그럴싸하게 들렸다.

수혁을 포함한 모두가 이제 그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교주님……. 어찌 이런 일이 제게. 이런 광영이.’

속으론 어떤 미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더 그랬다.

하여간 안대훈은 놀라운 자제심과 이 상황이 더 이어지길 바라는 일념 하나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저희 삼촌이 하시는 쪽이 우연찮게 재활식이거든요? 그…… 새로운 케어라고.”

“아……. 그거 우리도 처방 많이 하는데. 아니, 그쪽이야? 대기업이네!”

“아니, 그거. 음. 회사는 따로 있고요. 위탁 생산하는 겁니다. 원래는 다른 회사 쪽 하시다가 몇 년 전에 트셨어요. 하여간…… 그 회사 제품 혹시 제대로 보신 적 있으세요?”

“음. 먹어 보긴 했는데, 한 번. 맛은 없더라.”

의사는 환자에게 처방을 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중에 약이야 어차피 물이랑 꿀떡 삼키는 거니까 그렇다고 치겠지만.

식이 처방을 할 때는 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치료 식이라는 게 맛이 없을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예전보다는 먹을 만해졌다지만 그것도 다 의사들이나 연구원들이 하는 말이지, 환자 입장이 되어 보면 다르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에서 레지던트 땐 의무적으로 그러한 식이를 적어도 한 번은 먹어 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대부분 끝이었다.

그 이상 관심을 갖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맛도 중요한 문제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삼킴 장애가 있을 수 있고 없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삼킴 장애의 정도가 다른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이 제품이 단지 노년층을 위한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근 손실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면 사실 젊을 때부터 뭔가 해야 할 테니까요.”

“어, 그렇지. 지금 생각은 50대? 늦어도 60대부터는…….”

“근데 60대분들이 물을 먹다가 사레가 들진 않지 않습니까? 오히려 너무 점도가 있으면 먹기 불편하단 생각이 들겠죠.”

“아…….”

“그런데 나이가 있는 분들은, 아니면 젊더라도 삼킴 장애가 있는 분들은 점도가 없으면 사레가 걸릴 겁니다. 약도 아니고 건강하자고 먹은 제품 때문에 흡입성 폐렴에 걸리게 된다면, 이는 너무나 큰 부작용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 점도를 세분화한다는 게 그런 뜻이구나.”

“네. 물론 이건 예방을 위한 것이지, 치료 식이는 아니니까 뭐 아주 세분화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오.”

안대훈이 수혁을 감탄하게 했던 건 사실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오늘만 한 적이 있었나.

없었던 거 같았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안대훈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옷을 찢고 기도할 뻔했다.

‘분에 넘치는 광영…… 삼촌 감사합니다.’

단지 가족 중에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인데.

이런 눈으로 나를 바라볼 줄이야.

“그럼 이거 어쩌지?”

게다가 도움을 구해?

‘신성 모독이다…….’

잠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안대훈은 분연한 얼굴로 정신을 차렸다.

“두구두구두구.”

단지 마음만 먹는 것으로는 좀 부족해서 머리도 좀 두드렸다.

그래야 뭔가 획기적인 것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신의 응답일까.

얼마 전에 봤던 기사가 떠올랐다.

「태화 바이오, 세계적 건강 기능 제품 제조사 포켓 헬스 케어사에 전략적 투자 결정!」

와 이게 다 생각이 나네 싶었다.

진짜 스쳐 지나가듯 본 기사였으니 그럴 만했다.

“제가 알기로 태화 바이오에서도 건강 기능 제품에 관심이 있을 겁니다.”

“어? 그래? 바이오는…… 아예 바이오 쪽으로 나가는 거 아닌가? 아니면 디지털 헬스 케어나. 근데 이쪽도 사실 돈 낼 사람이 없어서 뭐가 잘 안 된다고 해서…… 그냥 바이오…… 제약만 하는 줄 알았는데?”

수혁도 태화 바이오에 관해서는 관심이 꽤 있었다.

일단 모기업이지 않나.

게다가 김다현은 은인이기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병원에, 센터에 지원을 해 주고 있으니 잘되기를 응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네. 그건 맞는데…… 아시다시피 제약이 이게 사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어디서 대박이 터질지 모르고 그냥 기다리는 사업이죠.”

“그건 그렇지.”

“음, 이런 얘기를 제가 드리는 건 좀 주제넘은 일인데…… 김다현 회장님이 오너 일가면 무작정 기다리실 수 있을 겁니다. 비전만 보여 줘도 다 따르니까요. 하지만 아니죠. 그래서 실적이 필요할 겁니다.”

안대훈은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을 이리저리 반사시키면서, 그러니까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말을 이었다.

스티브 잡스 또는 발표 시의 수혁을 오마주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모두의 눈에 비치는 안대훈의 이미지는 그저 한 사람의 광인이었다.

그럼에도 하는 말은 또 영양가가 지나칠 정도로 있어서, 약간 종교적인 느낌까지 일었다.

“그렇다면 바이오에서 연관이 있으면서도 당장 수익이 날 만할 상품이 뭐가 있을까요? 바로 건강 기능 제품입니다. 수요가 있고, 또 나름 의미도 있죠. 예전과는 달리 저희 학계에서도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태도가 많이 바뀌긴 했지.”

“네, 그만큼 식이나 영양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실제로 제품이나 관련 연구가 더 개선되기도 했고요.”

“음. 그럼 이걸 태화랑 연계해서 바로 할 수 있을까? 어디에다가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은 제품 컨셉과 개발 이유와 배경 같은 것을 써 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후속 연구나 논문은 저희가 하면 되는 일이고요.”

“오. 그렇지. 너 되게 똑똑하구나. 사업에 재능이 있어.”

사실 안대훈이 하는 말이 무슨 사업적으로 대단히 인사이트가 느껴지는 말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전공 바보들이 듣기에는 이보다 더 그럴싸하기도 어려울 거 같았다.

특히 수혁이 듣기에 그랬다.

이 자리에서 제일 어리고, 그래서 아는 사람도 적어서 그랬다.

‘으읏.’

안대훈은 수혁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른 채, 말을 이었다.

“감, 감사합니다.”

“하여간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할까요? 어차피 병원 주도로 연구하게 될 거니까 수익은 1%도 못 나눌 텐데…… 센터에 기부하도록 하면서 퍼센티지를 더 가져오면 좋을 거 같은데.”

“아니, 잠깐만 수혁아. 그래도 네 품이 들기는 하는 일인데?”

“저 어차피 돈 쓸 일이…… 그리고 센터 법카 한도 늘면 제 돈도 느는 거죠.”

“아니, 그래도. 일단 그건 내가 원장 자리를 걸고 한번 승부를 봐 볼게.”

“굳이…….”

“어른 말 들어. 나이 들면 돈이 점점 중요해진단다.”

안대훈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신현태가 짐짓 진중한 얼굴로 나섰다.

이렇게 나오면 수혁도 달리 할 말이 더 없지 않겠나.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자, 그럼 끝났네. 수혁아, 가자. 이력서 들어왔어.”

“이력서? 아, 펠로우요? 오.”

“어. 나도 그냥 들어온 것만 들었고 아직 안 봤어. 안대훈 선생, 자네도 가지. 같이 일할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는 봐야지. 너한테도 선택권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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