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71화 (771/1,303)

771화 발표 (1)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

[방금 그런 대사 느낌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신중섭 선생? 크.]

‘소주 먹는 거 같은 추임새 쓰지 말고.’

[한 사발 잡순 거 같습니다만.]

아닌 게 아니라 바루다는 정말로 상기되어 있었다.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수혁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와…….”

“미쳤다…….”

“이거 녹화했나?”

“미친놈아. 누가 이걸……. 네가 했네? 나도 공유해 줘.”

“사과하시죠.”

“미, 미안합니다.”

“오키. 의국 클라우드에 올린다.”

주변 반응 때문이었다.

레지던트들은 그야말로 열광 중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쟤들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의사들에게 지금 수혁이 보여 준 강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케이스 독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시간은 그야말로 완벽한 축제였다.

모두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러나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서 막연하게만 상상하던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지 않았나.

의사가 환자를 볼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렇게 해서 얻어 낸 단서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그 후에 치료에 대한 고민은 어찌해야 하는지.

“거참……. 어린놈이…….”

“잘난 척이 좀 심한데.”

노교수들이라고 해서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기분이 상했을 뿐이었다.

본인들은 그 발치에도 닿지 못했으니까.

시대 탓을 해도 좋을 터였다.

이들이 수련받을 당시의 한국 의료는 그야말로 개판이었으니까.

하지만 교수까지 된 사람이 지금도 이러고 있다?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이현종이 그 모든 변명을 저세상으로 치워 버렸다.

“역시 데려왔어야 했다…….”

“네?”

“아니, 아냐.”

당연히 제대로 정신 박힌 교수들은 추잡스럽게 질투 따위 하지 않았다.

그저 수혁의 대단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당했던 우창윤도 마찬가지였다.

욱할 때가 있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이수혁은 종자가 다른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서 그랬다.

‘이따 발표 끝나면 연수 강좌나 부탁해야지……. 어, 근데 이 사람들 다 어디 가냐.’

우창윤은 옆에 서 있던 펠로우의 등을 두드려 준 후, 연수 강좌를 떠올렸다.

그때였다.

방 안에 하나 가득 차 있던 인영이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문가에 서 있던 우창윤도 놀랐지만, 좌장을 맡고 있던 장강명은 진짜 놀랐다.

“어어, 다들 어디 가십니까?”

아직 세션 안 끝났는데 니들 왜 나가.

니들 왜 이수혁 나가니까 다 나가!

이런 심경이었다.

“저, 교수님. 벌써 다 나갔습니다.”

“아니. 이게.”

“어쩌죠? 발표자는 안 오고…….”

“아니, 이게 참.”

대답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학회 대행업체 사람만 진땀을 흘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한테 화를 내 봐야 별 소용도 없지 않겠나.

그야말로 손써 볼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후후. 피리 부는 소년의 기분이 이랬던 것일까.’

[이거이거, 이래서야 우리 통합진료센터 미어터지는 거 아니냐고요.]

‘말투가 묘하게 좀 그런데?’

[왜요.]

‘아니. 아니야.’

한편 수혁은 발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남기는 했지만, 또 발표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내과학회 발표이지 않나.

긴장하는 척이라도 해 주기는 해야 했다.

‘와, 근데 진짜 다 따라오네.’

[그러니까요.]

해서 미리 발표장에 가서 자료나 점검해 볼 생각이었는데, 원래 강의실에 있던 이들이 졸졸 뒤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야. 저기 세션 끝났나?”

“다 어디 가는 거야? 부스에 뭐 좋은 거라도 있나?”

지나는 이들의 이목이 죄 쏠릴 정도로 거대한 인파가 형성되었다.

“야, 우리도 따라가 보자. 경품 있는 거 아니야?”

“내과학회에서 경품 주면 뭐 얼마나 좋은 거 준다고.”

“혹시 모르지. 미친 회사가 어? 피부과는 아이패드도 준대.”

“거기는 피부과고…… 우리는 볼펜이 다야, 인마.”

“그럼 나만 간다.”

“아니, 그래도 가 보긴 하자.”

아니, 지나는 이들까지 끼어들 정도로 거대한 인파였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붙은 이들까지 하면 물경 100명을 헤아릴 지경이었다.

그 맨 뒤쯤에 있던 우창윤은 다시 한번 탄식했다.

‘역시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데려왔어야 했어. 아니지? 지금은 방법이…… 방법이 없지, 시불.’

의학계에 이런 인물이 있었나?

저 나이에 이만한 성취를 이끌어 낸 사람이 있었나?

그러면서도 말발도 세서 가진 능력을 온전히 남들에게 내보일 수 있던 사람이 있었나?

‘진짜 전무후무하다…….’

거기에 더해 태화의 전폭적인 후원과 팔불출 아버지의 지랄발광까지.

그게 다 더해지면 대체 수혁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아마 개인이 올라가는 걸 넘어서, 한국 의학계의 위상까지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제삼 세계 사람들만이 아니라, 선진국 사람들까지 의료 관광을 오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었다.

‘하늘이여……. 어찌하여 이 우창윤을 낳고, 이수혁을 낳았나이까.’

주유가 된 심정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수혁이 제갈량인 것은 맞을 수 있어도, 우창윤이 주유인 것은 여러모로 고민해 봐야 할 일이긴 했지만.

하여간 우창윤은 그렇게 느꼈다.

‘뭐야.’

한편 수혁이 발표를 맡은 강의실, 그러니까 메인 강의실의 좌장을 맡고 있던 내과학회 이사 동종헌은 갑작스레 밀어닥치는 인파에 눈을 치켜떴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어서 다 어디 갔나 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와?

뭔 일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선두에 이수혁이 있었다.

뒤따르는 이들은 수혁의 그림자라도 밟을세라 조심하고 있었고.

‘설마……. 에이. 아니겠지.’

이수혁이 나름 떠오르는 스타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각 병원의 레지던트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부는 아이돌처럼 우상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종헌 교수가 파악하기에 그 무리는 한 줌이었다.

‘아니, 근데 맞는 거 같기도 하고……?’

해서 아닌갑다 했으나, 암만 봐도 맞는 거 같았다.

우르르 따라 들어온 무리는 수혁이 맨 앞으로 가 앉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차츰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이렇게 되면……. 진짜 이현종 교수님 말대로…… 우리가 이득인 건가?’

저 대스타가 논문을 써 준다.

그것도 SCI급 논문을.

일 년에 몇 편씩이나…….

그 대가로 학회에서 해 주는 것은 사실 자존심 조금 굽히는 게 다였다.

표지에 사진 좀 실어 주고, 학회지 안에 인터뷰 실어 주고.

물론 그것만 해도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긴 할 터였다.

-미친놈들이. 그럼 학회 신경이나 좀 써 주든가! 다들 분과 학회 일이나 하기 바빠서 뽈뽈거렸던 주제에!

그 말을 했더니 정용기 교수가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그래, 학회 챙겨 주는 사람한테 특혜를 주는 게 맞았다.

“자…….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세션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세션은…… 의료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주제죠. 노인 의학에 대한 강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좌장은 현 학회장이신 정용기 교수님이 맡아 주실 예정입니다. 그럼 잠시 쉬는 시간 갖고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마지막 발표자가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레지던트였는데 막판에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흠……. 마지막으로 점검해 볼까.’

[좋죠.]

학회 쉬는 시간은 다른 말로 하면 사교의 장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추계 학회 때는 그러한 경향이 더 컸다.

아무래도 펠로우나 교원을 뽑는 자리가 되어서 그랬다.

어떻게든 펠노예 아니, 펠로우를 하나라도 더 끌고 오려는 무리와 그렇게 얻어 낸 펠로우가 시간이 지나 애물단지가 된, 그래서 어떻게든 딴 데 적당한 자리에 꽂아 넣으려는 무리가 한데 어우러져 바삐 움직였다.

“수혁아, 잘돼 가냐.”

“너는 인마. 수혁이한테 그런 질문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냐?”

태화 의료원의 원장이나 센터장 정도 되면 당연히 거기에 섞여 있어야 했다.

하나 신현태도 이현종도 수혁의 옆에 와 있었다.

수혁도 제정신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뭐 하냐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잘돼 가죠.”

“그래, 역시.”

“다른 강의장 하나 뒤집었다며?”

그저 신나서 떠들 뿐이었다.

특히 이현종은 아쉬워 죽겠단 얼굴이었다.

“아, 내가 가야 했는데. 오성흠이랑 있어 가지고.”

“아……. 그쪽 얘기는 어떻게 됐어요?”

“잘됐지 뭐. 오성흠이 그놈 입만 살아서. 협박하니까 바로 꼬리 내리던데.”

“저기…… 원장님. 저 여기 있습니다.”

“회장이라고 해.”

“아, 네. 회장님.”

옆에 보니 오성흠도 있었다.

셋과는 달리 우거지 죽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치 않는 일에 휘말려 들었으니까.

게다가 밖에 나가서, 그러니까 사교의 장에서 잘난 척도 못 하고 여기 끌려온 마당이었다.

“잘 보라고. 우리 수혁이 어떻게 하는지.”

“많이 봤습니다……. 그보다 저도 청탁할 일이 있고 또 받을 일이 있는데요.”

“청탁? 부정부패의 선두주자야? 정치인이야?”

“아니……. 자기 제자 꽂는 게 무슨 부정부패예요.”

“그럼 그냥 부탁이라고 해. 어감이 이상하잖아.”

“네네. 그럼 부탁 들어주고, 또 부탁 좀 하러 가면 안 될까요?”

“어, 안 돼. 이따 해. 저녁에 시간 많잖아.”

“네…….”

혹시 하는 생각으로 찔러 봤지만 역시 별 소용은 없었다.

그저 기분만 상할 뿐이었다.

이현종이 원래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그에게 있어 오성흠은 사실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는 진료가 아니라 정치질에만 매몰되어 있는 인간이라니?

‘정신 좀 차리라고. 우리 수혁이 강의 보면 정신 차리겠지.’

그 와중에 이현종은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부류였다.

해서 오성흠을 억지로 끌고 다녔다.

그래서 오성흠은 정말 괴로웠다.

‘아니……. 이미 논문 초안도 나는 다 봤다구…….’

그래, 좋은 발표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설마 그 이수혁인데 잘하겠지, 그럼 못하겠나.

근데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나.

잘 숙지해서 애들 꼬실 때 쓰라고 하도 닦달을 해 대는 통에, 지난 2시간을 온전히 이 논문 이해하는 데 할애한 마당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또?

밖에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리 많은데?

땡땡.

오성흠이 그런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시간은 흘렀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세션에 힘을 준 내과학회가 아닌가.

좌장을 맡은, 심지어 회장이기도 한 정용기 교수가 직접 종을 쳤다.

“자, 이제 다음 세션 시작합니다. 다 들어오세요!”

마이크를 들고 외치기까지 했다.

눈은 오로지 이수혁을 향해 있었다.

‘내과학회 떡상 한번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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