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화 불명열 (1)
불명열.
말 그대로 원인 불명의 열이라는 뜻.
이렇게만 보면 되게 어려워 보이겠지만, 사실 드물지 않은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원래 모든 열은 처음엔 다 불명열로 시작하니까.
의사가 환자를 보고 아, 목이 부었네, 호흡음이 안 좋네 등의 판단을 하고, 단순 감기부터 편도염, 부비동염, 중이염, 폐렴 등등을 감별해 내는 것이 우리가 늘 병원에서 보는 과정이지 않나.
“칠성 병원급에서 놓쳤다면 일단 단순 질환은 아닐 거야.”
물론 그건 일반적인 선에서의 얘기일 뿐이었다.
어려워지려면 한없이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 또 이 불명열이기도 했다.
열의 원인이 너무도 다양해서 그랬다.
방금 언급했던 감염 질환이 당연히 제일 많았지만, 열은 무기폐(폐가 팽창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와 같은 특정 상황과도 연관되어 있을뿐더러 자가 면역 질환에서도 날 수 있고, 또 암과 같은 심각한 질환에서도 날 수 있었다.
신현태는 아마 칠성 병원에서 단순 감염 질환을 놓치진 않았을 거라 단정 짓고 있었다.
“네. 림포마 워크업은 당연히 했겠죠?”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칠성이 싫기는 해도 무시하지는 않아서 그랬다.
아니, 원래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바루다가 말렸다.
인간이 아니라 그런가, 감정에 판단이 흔들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했을 거야. 여기까지 보낼 생각을 했다는 건…… 어지간한 건 다 했다는 거겠지. 그리고 사실…… 아까 들어 보니 환자 병력하고 림포마가 맞지는 않잖아?”
“네. 어린 시절부터 열이 있었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자가면역질환인데…….”
“워크업 시에 하나도 안 나왔을까요?”
“모르지. 아직 자가면역질환은 미지의 영역이니.”
“하긴.”
자가면역질환.
자신의 면역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자기 몸을 공격하는 질환군을 일컫는 말인데, 생각보다 흔하지만 진단은 어려웠다.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들이야 종류가 딱딱 정해져 있지만.
여기에도 안 들어가고 저기에도 안 들어가는 질환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약도 잘 안 들어서 환자도 의사도 고생하기 마련인데, 대개는 상태가 아주 안 좋았다.
“하지만 환자는 특수 부대 상사라고 했어요. 미분류 자가면역질환을 아닐 가능성이 커요.”
“그것도 그래. 어린 시절부터 열이 반복되었다고 하면 사실 감염 질환도 아닐 거고…….”
“그럼 너랑은 상관없는 거 아니냐? 원장 업무 보러 가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신현태와 수혁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불명열에 대해서는 심장 내과 의사로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다가 신현태도 같은 상황 아닌가 싶어서였다.
“뭘 씨. 나 오늘은 일 다 끝냈어. 여기 있을 거야.”
물론 신현태는 이현종의 말을 듣지 않았다.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온 길이어서 그랬다.
“아, 늦었습니다. 하하.”
이현종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조태진도 합류했다.
잔뜩 들뜬 얼굴을 하고서였다.
“넌 또 왜 왔어. 가서 환자 봐. 너네 환자들 보라고.”
“다 보고 왔어요.”
“다 살렸어? 다 살릴 수 있냐고.”
“와…….”
이현종은 그런 얼굴도 순식간에 구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혈액종양내과 의사에게 환자를 다 살리라고 요구하다니.
이런 악한이 있나.
현대 의학의 한계를 온몸으로 매일 체감하고 있는 조태진으로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오전에도 환자 하나를 떠나보내고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 암 환자를 어떻게 다 살려요. 그건 저도 안 되는 건데.”
“그래? 우리 수혁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래도 저놈까지 들어오면 비좁은데.”
“우리 센터 100평도 넘는데…….”
“마음이 좁아져.”
“아, 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수혁이 조태진을 좋아하는 점이었다.
안 좋아할 이유가 없지 않나.
아내에게 혹시 우리 남편이 게이였나 하는 의심까지 사게 만들 만큼, 수혁을 향한 조태진의 애정은 진심이었으니까.
틈만 나면 선물 공세에 안부 인사에 하여간…….
“그럼 앉겠습니다.”
물론 수혁의 지원 공세가 없었어도 조태진이 이대로 나갈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넉살 좋게 웃으며 통합진료센터 내에 위치한 회의실 의자에 낑겨 앉았다.
“근데 여기서 뭐해요?”
그러곤 물었다.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현종은 다시 한번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그니까 왜 왔어!”
“수혁이 보러요. 근데 보니까 환자 보러 갈 거 같네. 더 잘됐네.”
“뭐가 잘 돼. 가서 쉬라고.”
“센터장님에게는 언제가 휴식이었습니까. 저에게는 지금입니다.”
“하아.”
별로 소용은 없었다.
조태진도 또라이니까.
부우웅.
그렇게 소란스러운 가운데 수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급실 번호가 떠 있었다.
환자가 온 모양이었다.
“오, 내려갈까요?”
“그래. 가자.”
원래 전원 문의가 오고 난 후에라도 환자가 오는 데까지는 한세월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칠성 병원과 태화 의료원 사이의 거리는 무척 짧지 않나.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딱히 서로 환자가 왔다 갔다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이현종의 오성흠에 대한 협박이 아주 성공적으로 먹혀들어 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간, 수혁 일행은 칠성 병원에서 전원 문의를 받은 지 불과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김시환 환자분 어디 계시죠?”
“아, 저기요.”
수혁의 말에 간호사가 아직 트리아지실에 있는 환자를 가리켰다.
명색이 전원인지라 침대에 실려 오기는 했는데, 멀쩡히 앉아 있었다.
심지어 아주 강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와……. 나 저렇게 세 보이는 사람은 또 오랜만에 보네.’
[그러니까요. 같은 인간인데 엄청 차이가 나네요.]
‘나 훑어보면서 그런 말 하지 말고.’
[아니, 진짜로요. 이쪽은 허여멀건 하니 마르기까지 했는데 저쪽 봐요.]
‘음.’
바루다의 말대로 저쪽은 까무잡잡한 데다가 몸도 두꺼웠다.
단순히 피트니스 모델처럼 근육이 이쁘게 잡혀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두꺼웠다.
타고난 장사 체형이랄까?
거기에 햇볕에 그은 얼굴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진짜 군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확실히…… 특이한 형태의 질환일 거 같긴 한데…….’
[그러니까요. 열은 나되 전신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인가 봅니다.]
사실 겉모습만으로 건강을 자신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환자에게도 그렇지만 의사에게도 그랬다.
그럼에도 전신 모습에 대한 평가는 중요했다.
특히 만성 질환인가 아닌가, 이 질환이 심각한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힌트가 되기 마련이었다.
‘만성 질환은 맞을 거 아니야. 그게 모두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렇습니다만 반드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합니다. 칠성에서 그렇게 판단했을 뿐, 우연이 겹쳤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지.’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트리아지실로 다가갔다.
슬쩍 보니 김시환 환자가 받은 딱지는 녹색이었다.
사실 전원이라 딱지를 딱히 받을 필요도 없긴 했지만, 하여간 응급실 간호사의 판단은 이 환자가 그리 급하지 않다는 쪽이었다.
바이털 사인도 안정적이었다.
심지어 열도 없었다.
이제는 내린 모양이었다.
“환자분.”
수혁은 속으론 ‘뭐지 대체’는 생각을 하면서도 침착한 얼굴로 환자를 불렀다.
김시환 환자는 그런 수혁을 돌아보았다.
어려 보였다.
‘이쪽으로 최고라고 했지.’
칠성 병원도 최고의 병원 아닌가.
자기가 마주했던 군의관 중에서는 하여간 제일 잘했던 사람이 칠성 병원 출신이기도 했다.
한데 거기서조차 태화로 가라고 했다.
그 주인공이 이렇게 어렸을 줄이야.
“네, 선생님.”
대체 얼마나 우수하면 그럴까 싶었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센터로 가시는 동안 몇 가지 여쭐게요. 괜찮으세요?”
“아, 네. 물론입니다. 진단만 내려 주십쇼.”
수혁의 만들어진 말투와 미소는 거의 모든 환자에게 먹히는 법이었다.
김시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초에 마음이 열려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수혁은 그런 김시환에게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열이 난 게 언제죠?”
지팡이를 짚고 침대 옆을 지나면서였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김시환은 그제야 수혁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단하네.’
몸이 불편한데도 이만큼이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니.
존경심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답했다.
“그러니까…… 한 5일 전?”
“그전에는요?”
“열을 재 보지는 않았지만 열흘 전 정도 됩니다.”
“열흘이요?”
“네.”
“그전에는요?”
“20일 정도 되었을 겁니다.”
“음.”
간격이 생각보다 굉장히 짧았다.
한 달 내에 세 번이나 에피소드가 있지 않았나.
물론 실제로 열이 난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단순 열감일 수도 있기는 했다.
‘엄살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일단 특수 부대라는 게 좀.]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어쩐지 진짜 열이 났을 것만 같았다.
수혁이야 군대를 안 가서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악으로 깡으로 하는 데가 군대라는 집단이라지 않던가.
“꽤 자주 열이 나시네요?”
“네. 그런 편입니다.”
“그때마다 병원을 가세요? 군에 있는 의료 시설이라도요.”
“예전에는 그랬는데…… 안 그런지 한 10년 됐습니다.”
“왜요?”
“어차피 가 봐야 똑같은 약만 받기도 하고…… 또 이게 너무 반복되다 보니까 주변에서 엄살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요. 훈련이랑 겹치면 어차피 못 가기도 하고요.”
“그럼 혼자 대처는 어떤 식으로 하죠?”
수혁의 말에 김시환 환자는 칠성 병원에서 들고 온 개인 짐을 뒤적거렸다.
개인 짐이라고 해 봐야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가방 하나가 다였다.
그 안도 깔끔했다.
누가 군인 아니랄까 봐 각이 딱딱 잡혀 있었다.
“이걸 먹습니다. 안 들으면 이것도요.”
“아세트아미노펜과 진통소염제군요. 이건 사실 해열 효과가 있을 뿐이지, 치료가 되는 건 아니긴 한데…….”
“근데 어차피 약 먹고 한 이틀 지나면 열이 내립니다.”
“이틀이라. 그 이상 간 적은 없나요?”
“있기는 있습니다. 근데 그때는 따로 진단받은 질환이 있습니다.”
“어떤 질환인가요?”
“진드기요. 제가 워낙 야외에서 취침을 많이 하다 보니…… 저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많이 겪는 일입니다.”
진드기라.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치명적인 열성 질환이 적은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진드기 질환은 꽤 있으니까.
심지어 쯔쯔가무시(쓰쓰가무시병)에 대한 현시점 최고 대가는 대한민국에 있지 않던가.
하여간 감염 질환 또한 빈번하게 겪었다면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당시 치료받을 때 치료 기간이 더 길지는 않았나요? 아니면 더 중증이었다거나.”
“아뇨,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평균적이었던 거 같습니다. 오히려 열을 하도 많이 겪어 봐서 그런가…… 저는 행정 업무만 해서 할 만했습니다.”
“음.”
물어봤는데 딱히 도움은 되지 않았다.
어렵다는 생각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