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8화 나도 끼워 줘 (6)
‘왜 그래……. 정말 왜 그러는 거야.’
오성흠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의사 하다 보면 수련되기 마련인 포커페이스 따위는 아니었다.
‘이거…… 진짜야? 진짜로 알겠다고?’
저건 그저 자신감의 표출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신현태는 이 케이스의 정답을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게 아니라면 알고 있다고 굳게 확신하고 있거나.
저 정도 수준의 의사라면 둘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단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현태가 헤쳐 왔을 아수라장 때문이었다.
대학 병원에서의 경험은 어마 무시하지 않나.
근거도 없이 저만한 자신을 갖게 해 주는 곳은 결코 아니었다.
“아는 방법이 있죠. 고양이는 몇 가지 인수 공통 감염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나요?”
“어……. 인수 공통 감염병이라고 하면…….”
환자는 여전히 뭐에 홀린 얼굴이었다.
눈앞에 있는 전형적인 의사 얼굴을 한 교수가 뭔가 정곡을 찌른 느낌이라서 그랬다.
하여간 인수 공통 감염병이라는 말은 의사들 사이에서나 익숙하게 통용되는 말일 뿐, 일반적으로는 그저 낯선 단어일 뿐이었다.
신현태를 비롯한 여러 감염 내과 의사들이 사회가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가까워지면 곧 팬데믹 사태가 초래될 것이고, 그 팬데믹 사태의 원인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 즉 인수 공통 감염병에 의한 것이라 말하면서, 그때가 인수 공통 감염병이란 말이 상식이 될 거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요원한 일일 뿐이었다.
“동물의 병인데 사람에게 감염이 될 수 있는 질환을 말합니다. 조류 독감 한번 돌면 난리지 않습니까? 그게 조류 폐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밀접 접촉자 안에서 변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자치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 고양이도 그런 게 있어요?”
“대개는 그리 심각한 질환은 아닙니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감염되어 증상을 일으키기도 하죠. 가령 암 환자와 같은 경우요. 익히 들어 알고 계시겠지만 항암제는 면역 저하의 원인이 됩니다.”
“아…….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몇 번 검사도 받고…… 수혈도 받았고요.”
연구 분야에서의 항암제는 이미 진보에 진보를 거듭하여 차세대 항암제를 선보이고 있기는 했다.
표적 치료 항암제니 뭐니 하다가, 이제는 트렌드가 벌써 면역 항암제로 넘어가지 않았나.
하지만 임상 분야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항암제는 여전히 전통적인 항암제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치료는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결국, 약은 사람을 고쳐야 하기에 그랬다.
그렇다 보니 항암제를 쓴 환자들은 여전히 빨리 자라는 세포에 영향을 받았다.
머리가 빠진다거나 면역력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부작용들이었다.
“네. 그런 환자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드물지 않게……. 톡소플라즘(Toxoplasma, 톡소플라스마)에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아, 톡소플라즘. 아, 죄송합니다.”
톡소플라즘이라는 말에 뒤에 서 있던 수혁이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그러다 환자가 간절한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아, 그래. 톡소플라즘. 그거…… 그거 골 때리지.”
이현종은 감히 환자와 진료 중에 끼어든 수혁을 나무라기는커녕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안타까워했다.
필시 자신은 왜 이걸 떠올리지 못했나 하고 자책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다시 말하면 또라이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는 얘긴데, 오성흠은 이제 그 둘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었다.
‘톡소플라즘……?’
오성흠도 내과 의사이지 않나.
의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아무리 권력에 돌아 버렸다 해도 눈앞에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케이스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무 감흥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거 진짜……?’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지식이 짧기도 하고, 애초에 이 케이스에 관심도 없어서 영상 소견도 사실 기억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 진단명.
익숙했다.
“톡소플라즘에 감염되면 전신에 임파종 종대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징적으로 폐에 지금 환자분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결절을 보일 수 있죠. 대개 암 환자에게서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재발 및 전이로 오인되곤 합니다만…… 막상 검사를 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죠.”
“아……. 하지만 저 여기서.”
환자는 희망을 되찾아 가는 눈으로, 그러나 여전히 불안해하는 눈으로 목가에 생긴 흉터를 만지작거렸다.
이비인후과에서 결제 생검을 한 자리였다.
동시에 암이 진단된 곳이기도 했다.
“네. 그쪽은 암의 재발일 겁니다. 하지만 전신 재발일 가능성은 작아요. 이렇게 짧은 시간에 유방암이 다발적으로 재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실제로 톡소플라스마 때문에 혼동되는 경우는 많고요.”
신현태는 환자 대신 장모님을 떠올리고 있었다.
장모의 경우에는 이보단 상황이 더 나았더랬다.
다행히 아예 재발이 없이, 그저 톡소플라스마에 의한 반응성 임파선 종대였으니까.
별 치료 없이 관찰하는 것만으로 퇴원할 수 있었고 아직까지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이 환자는 그건 아니긴 하지만…… 더 어려.’
이미 재발한 암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치료해야 했다.
그리고 환자는 그 치료를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전신성 재발이라는 말은 환자의 의지를 꺾어 버리기에 충분한 단어였으니.
하지만 나머지 소견이 암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유방암은 재발이 흔한 만큼 재치료에도 나름 반응이 좋은 편이니까.
“즉 환자분은 전신성 재발은 아닐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제일 높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임파선 종대를 싹 조직 검사를 할 수는 없을 테니…… 임상적으로 제일 중요할 수 있는 폐 결절에 대해 조직 검사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 정말요? 저…… 저 그럼 살 수 있는 거예요?”
“네. 제 말이 맞다면요. 그렇죠? 오성흠 원장님?”
신현태의 말이 맞을 뿐만 아니라, 담당 의사가 신현태의 말에 따라야 그렇게 되기는 할 터였다.
다행히 이 자리에는 오성흠이 있었다.
부르기는 원장이라고 불러 주고 있지만, 실상은 꼬붕이었다.
“아, 네네.”
“전달하실 거죠?”
“아, 네네.”
오성흠은 진짜 꼬붕이라도 된 것처럼 굽실거렸다.
그 모습이 환자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그렇지 않나.
원장하고 자신은 일면식도 없는 사인데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희망을 주다니?
“아니, 근데 왜 저에게……?”
감사를 넘어선 무언가.
그러니까 감동이 느껴졌다.
정치질의 화신 오성흠은 그 사실을 확실히 눈치챘다.
‘여기 간호사도 있고…… 문도 열려 있지.’
병실 밖을 힐끔 보니 몇몇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뜸 나이 지긋한 의사가 여럿이 들이닥친 참 아닌가.
큰일이 났거나 상대가 대단하다거나 하여간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흠흠.”
오성흠은 이 상황을 좋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하……. 원래 칠성 병원은 원장 이하 모든 원장단이 모든 환자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중에 환자분…… 진단명이 좀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직접 와 봤고요. 반응 보면서 차차 더 확대해 나갈 생각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만족하셨다면 의견 개진함에 넣어 주시죠.”
“아, 물론이에요. 칠성이 역시 친절하시네요.”
“그럼요. 저희는 환자분 한 분 한 분을 고객님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현종은 토할 것 같았다.
실제로 칠성이 업계 최초로 환자분이라는 말 대신 고객님이라는 말을 쓴 것은 맞기는 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친절해 보이는 말이지만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다.
일반적인 고객과 환자는 좀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일례로, 고객은 돈 낸 만큼 더 잘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환자는 아픈 만큼 대우를 더 잘 받아야 하지 않나.
서비스직이되 좀 특별한 부분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의료업이었다.
“이 기회에 병동에서 불만 사항 있으셨던 분 계시면 알려 주십쇼. 아, 물론 칭찬도 아끼지 말아 주시고요. 원래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게 되는 게 사람 아닙니까. 하하.”
이현종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오성흠은 끊임없이 입을 놀렸다.
급기야는 환자 중에 진짜로 와서 말 꺼내는 사람들이 있어 시간이 적잖이 지체되었다.
아까 같았으면 뒤통수라도 후렸을 터였다.
갈 길이 먼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신현태, 이현종은 회의하러 돌아가야 할 몸이었다.
수혁도 오후 회진을 돌러 가야 하고.
말하자면 취미 생활은 이쯤으로 끝이라는 얘기였다.
“이놈은 잘 나가다가 막판에 또 그러네. 그렇게 막 입이 근질근질해?”
물론 돌아가는 길에 갈구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아아, 이현종 센터장님. 아니, 학회장님.”
오성흠은 이현종의 서슬 퍼런 말에도 기죽지 않았다.
아까 입 털 때부터 다 생각해 놓은 바가 있어서였다.
“뭐, 인마.”
“저희 칠성이 진짜로 고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는 건 알고 계시죠?”
“알지. 그게 뭐, 난 그 말 마음에 안 들어.”
“본사에서는 고객이 왕이란 말도 처음 썼고요.”
“원래 모자라는 실력 굽신거리면서 카바 치는 게 칠성이니까.”
“그.”
오성흠은 잠시 욱하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참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신현태나 수혁도 이건 이해할 수 있어서 오성흠을 지지하기 위해 같이 멈추었다.
“뭐야, 인마.”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오로지 이현종이라 오성흠이 구원받는 일은 없었다.
그저 구박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세 치 혀는 살아 있으니까.
“그만큼 고객의 목소리를 중요시하는 곳이란 얘기란 말입니다. 안 그래도…… VVIP들…… 그러니까 고액 후원금 내신 분들 측에서 통합진료센터 진료 불가에 엄청 불만이 많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사실 질환의 경중이 아니라 그냥 그분들 위주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어……. 그랬지. 그래서 우리가 왔지. 개판이라.”
“근데 이렇게 일반 환자들이 투서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병원은 절대 이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병원이 아닙니다. 게다가 원장인 제가 예민하게 반응하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의료원장이 따로 있기는 한데, 그 양반은 돈만 중요하지 진료나 인사는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서요. 돈이 줄거나 드는 것만 아니면 뭐…….”
“아……. 이걸 그렇게?”
이현종은 그제야 오성흠을 좀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에겐 다 자기 나름의 재능이 있다고 하지.’
오성흠은 사실 진료 업적이 뛰어나거나 학회 업적이 대단하거나 논문을 잘 쓰거나 한 의사가 아니었다.
근데도 원장이었다.
칠성이 개판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새끼가…… 이쪽으로는 난놈이네……?’
전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입은 산 놈이었다.
그럼 이걸 이용할 수는 없을까?
‘나중에 어떻게든…… 어?’
오성흠이 들으면 까무러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