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화 나도 끼워 줘 (2)
“일단 기다려?”
“네.”
“그래. 아, 근데 꽤 오래 걸리네…….”
“그러게요. 안과 진료실에 오는 게 처음은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진료를 본 적은 없어서 이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네요.”
흔히 의사라고 하면 어쩐지 모든 과에 대해 다 잘 알고 있을 것 같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마이너 과에 대해서는 개뿔 아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애초에 의대 재학 시절에는 소위 메이저 과로 불리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그리고 정신과에 관해서만 주로 배우기에 그랬다.
단순히 지식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장 핑계로 안과도 좀 돌아볼걸.”
“나도.”
“저도요. 원장 아들이라고 했으면 다들 견학은 시켜 줄 텐데.”
“거참…….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나 회의도 미루고 온 건데 사실.”
“그럼 가, 인마.”
“그 회의 형도 들어가거든?”
“진료 하루 종일 보나!”
이현종,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하릴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진지한 셋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던 오성흠 원장은 그냥 황당했다.
‘아니……. 남의 병원 와서…… 그것도 내과도 아닌 안과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진지하냐고…….’
물론 통합진료센터가 표방하는 가치가 분과에 연연하지 말고, 실제로는 한 사람의 환자를 종합적인 시선으로 보자는 데 있다는 건 그도 알았다.
좋아서 알게 된 것은 아니고, 이현종 때문에 강압적으로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
하여간에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안과는 너무 지엽적인 과가 아니던가.
게다가 아까 슥 하고 보니까 지금 들어가 있는 애는 다래끼였다.
‘다래끼라고…… 다래끼. 동네 병원 가면 그냥 대충 짜 주거나 약 줘서 돌려보내는…….’
지극히 안과적인 질환인 동시에 너무나 기본적인 질환이라서 딱히 관심을 두게 되지 않는 질환이었다.
게다가 내과에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도 했다.
종종 비염 환자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눈을 비비는 바람에 다래끼가 생겨서 오기는 하지만.
대개 어른이라 함은 나이가 찼을 뿐만 아니라 대충이라도 말이 통하는 존재를 뜻하지 않는가.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와……. 진짜 다래끼라니. 애들 어릴 때 말고는 들어 본 적도 없네.’
오성흠에게 다래끼는 그저 추억의 단어 정도였다.
하지만 태화에서 온 걸출한 의사 셋에게는 그렇지가 않은지, 이제는 숫제 일어나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냥 환자가 그러고 있으면 아마 다들 그런갑다 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쪽은 의사 가운을 걸친 중년의 사내들.
누가 봐도 교수였다.
‘무슨 일 났나……?’
‘의료사고?’
‘에이……. 설마. 그랬으면 뒤집어졌지.’
‘왜…… 요새 칠성 병원 좀 부진하다던데.’
‘그것도 빅 3 중에 그렇다는 얘기 아니야? 나야 뭐 잘은 모르지만……. 이만하면 좋은 병원이지, 뭘.’
‘그런가.’
환자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칠성 병원 원장으로서 이런 일을 두고 볼 수 있겠나.
가뜩이나 진료 외적인 부분으로 원장이 된 사람인 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인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껄껄 웃으면서, 여기 환자 나오면 연락 달라고 하고 우리는 저기 어디 카페나 가 있자고 할 생각이었다.
“너, 진짜 이럴래!”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너무 큰 소리가 들려와서 오성흠은 좀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히끅.”
덕분에 딸꾹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고자 하는 말 대신 히끅거리는, 중년을 넘어 노년을 향해 달려가는 사내가 내기에는 좀 부끄러운 소리만 나왔다.
‘이런 시발.’
속으로 욕을 주워 삼키며 이비인후과 교수에게 들었던 온갖 꿀팁을 시행하기 시작했지만.
의학적인 꿀팁이라는 게 알아 두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도이지, 뭐 이렇게만 하면 다 된다는 게 없지 않나.
본인이 의사지만 아직 현대 의학은 갈 길이 멀었다.
“히끅.”
고작해야 딸꾹질 하나 못 멈추고!
“왜! 나 이거 하기 싫다고! 전에 했잖아! 그것도 두 번이나!”
“몇 번 한 게 중요해? 나아야지! 나을 때까지 해야지!”
“아, 싫다고. 너무 아프다고!”
“너 때문에 지금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그사이 아이 엄마와 아이는 대판 싸우기 시작했다.
대화 맥락상 안에서 다래끼 째네 안 째네 하면서 옥신각신한 모양이었다.
오성흠이 딸꾹질을 애써 참아 가며 안을 돌아보니, 곤란한 얼굴의 안과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하자고 하다가 애가 너무 말을 안 들으니까 일단 밖으로 내보낸 모양이었다.
‘병신아……. 그냥 재우고 하지.’
저러니까 안과가 돈을 못 벌지.
이런 거 하나하나 인정 봐주고 하니까 말이야.
오성흠은 다음 회의 때는 진짜 안 봐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절대 잊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도 했다.
“저, 어머님.”
하지만 그 다짐은 바로 다음 순간부터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현태가 그 인성을 엿볼 수 있게 만드는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아이 엄마에게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저거 지하철역 앞에서 했으면 바로 도를 아십니까 취급과 함께 칼차단을 당했을 텐데.
여기가 병원이고 신현태가 가운을 입고 있다는 것이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몰고 갔다.
“아……. 네, 교수님.”
게다가 신현태는 딱히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교수처럼 보이는 용모의 소유자 아닌가.
풍채 좋고 용모 단정한 중년 신사.
그게 바로 신현태였다.
“아이 눈을 저희도 좀 봐 드릴 수 있는데요.”
아무리 이상한 소리를 해도 그럴싸하게 들리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
특히 병원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 네? 방금.”
“네네. 근데 아이가 시술하기 워낙 싫어하고요. 그…….”
물론 그래 봐야 할 말이 옹색하기는 했다.
애초에 다래끼 외에 뭘 의심해야 하는지, 신현태는 알지 못했으니까.
해서 아주 능숙한 기세로 수혁의 뒤로 슥 물러났다.
“이 선생님이 또 안과 쪽으로 명의라서요.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수혁을 치켜세워 주면서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건 아니었던지라, 수혁은 자연스레 신현태의 소개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아까 듣다 보니…… 벌써 두 번이나 시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술이 혹시 다래끼 절개 및 배농이었을까요?”
이름을 말하진 않았다.
여기는 태화가 아니니까.
대신 질문을 던졌다.
의학적인 질문을.
동시에 이 질문이 무척 중요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히끅.”
오성흠은 여기서 이러지 말고 딴 데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는 대신 히끅거렸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오성흠만큼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딱히 오성흠에게 관심을 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 네.”
“네, 저 두 번 받았어요. 그것도 3주 전이랑 저번 주예요. 근데도 이렇다니까요?”
“아니, 얘가. 그건 작은 병원이라서.”
“거기 원장님 태화 출신이라고 엄마가 명의라고 했잖아!”
“근데 안 낫잖아. 돌팔이인가 봐.”
오히려 태화가 돌팔이라는 데에 반응했다.
‘거 뭐……. 안과가 내과에 비하면 많이 처지지.’
물론 이현종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우리 과가 최고야 수준을 넘어, 우리 과 말고는 다 과가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 아닌가.
원래 내과가 고생하는 것 대비 또 공부하는 것 대비 절대적인 대우가 좋지는 않다 보니 그런 프라이드가 좀 강한 과이기는 한데, 이현종은 그 정도가 심했다.
“하하……. 태화면 좋은 병원 출신이네요. 단지 안과가 전공이라 공부 깊이가 좀 짧았을 뿐입니다.”
해서 커버 쳐 준다고 나섰는데 디스를 한 것 같은 좀 묘한 모양새가 나왔다.
특히 안과에서 떠들기에는 좀 그런 말이지 않나.
“히끅! 히끅!”
이러지 말고 나가자고, 오성흠은 다시금 열과 성을 다해 외쳤다.
당연히 별 소용은 없었다.
원래 이현종은 또라이이지 않나.
또 수혁은 이미 시술을 2번 했고, 그 간격이 짧았단 사실에 꽂혀 버렸다.
말릴 사람은 신현태 하나뿐인데, 그건 오성흠의 생각일 뿐 이 양반도 만만찮게 또라이였다.
“아이가 되게 똑똑하네요. 아무튼, 3주 안에 두 번이나 시술을 받았다는 거죠?”
“네? 아, 네.”
“그사이에 약은 받으셨고요?”
“두 번째는 아예 먹는 약도 받아먹었어요. 그전에도…… 눈에 넣는 약은 넣었고요.”
시술도 했고, 항생제도 썼다.
물론 시술 자체가 엉망으로 되었을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태화 안과에서 수련받은 사람이 그럴까?’
[아닐 겁니다. 허투루 돌아가는 병원이 아니니까요.]
과한 자신감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었다.
전문의 자격증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두는 거 아니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전문의 자격증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터였다.
아무렇게나 살던 사람이 전문의가 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환경이 아니기에 그랬다.
‘제대로 시술되었다는 가정하에…… 항생제까지 썼는데 재발했다. 다래끼가 맞을까?’
[다래끼가 아닐 가능성을 제일 먼저 떠올렸어야 합니다.]
‘그렇지. 그래야 맞지.’
때문에 수혁은 본격적인 추론을 시작했다.
“제가 눈 좀 볼 수 있을까요?”
추론의 기본은 문진과 검진.
눈꺼풀의 종괴에 대한 문진은 이미 충분히 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해서 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눈을 마주친 것은 아이 엄마가 아니라 아이였다.
나이와 무관하게 이미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이지 않나.
그렇다면 본인에게 묻는 게 제일 좋을 터였다.
“아……. 네. 아프게는 안 하실 거죠?”
“물론이죠. 보기만 할 거예요.”
“그럼 좋아요.”
아이도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수혁은 아이의 아래 눈꺼풀을 살짝 뒤집어 까 볼 수 있었다.
‘분석 좀.’
물론 눈을 이렇게 직접 봐 본 경험은 별로 없어서 바루다의 도움을 받기는 해야만 했다.
[네. 그사이 필요한 검진을 하시죠.]
‘오케이.’
해서 수혁은 바루다가 분석에 돌입한 사이 간단한 검진을 시행했다.
‘열감은 없어…….’
우선 종괴 부근이 따뜻하거나 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아파요? 지금 살짝 누르고 있는데.”
“네? 아뇨. 그냥 누르고 있는 느낌만 있어요.”
“그렇군요.”
압통도 없었다.
열감과 압통이 없다.
‘역시 염증성 질환은 아니라는 건데……?’
염증성 질환과는 거리가 있었다.
모양은 어떻게 봐도 다래끼 그 자체지만.
검진은 이를 부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병력도 그렇지 않나.
다래끼라면 이미 나았어도 두어 번은 나았어야 할 처치를 했음에도 아이의 눈은 여전히 부어 있었다.
[분석 결과 도출합니다.]
그때, 바루다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수혁도 아이의 눈에서 손을 떼고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