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1화 구원 (4)
신고해야겠다거나 하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저 유명한 의사가, 그냥 뭐 똑똑하다더라는 말로 수식되는 의사가 아니라 진짜 임상 분야의 천재로 분류되는 의사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해서 레지던트는 슬쩍 자리를 옮겼다.
‘어?’
그리고 놀랐다.
‘이거 우리 환잔데?’
내과가 아니라 신경과 레지던트여서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어려워서 어쩌나 하고 있던 환자이지 않나.
교수님은 하시모토 뇌병증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게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시모토.
일본 관련한 뇌염은 뇌염모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식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일반적인 레지던트라면 이게 당연했다.
“그래……. Brain MRI의 T2 강조 영상에서 중간뇌 뒤판(Tegmentum) 부위에 고신호 강도. 그리고 증상이 이미 1년 전부터 있었다는 점. 거기에…….”
“어, 옳지 또.”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수혁이 눈을 떴다.
당연히 감았다 뜨는 게 다는 아니었다.
돌연 속사포처럼 얘기를 쏟아 냈다.
‘미친. 영상이랑 똑같네.’
진짜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이랑 똑같았다.
아직도 이게 연기인지 뭔지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 보니 원래 이런 인간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태화 애들이 과와 관계없이 이수혁 교수님이라고 하면 껌뻑 죽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심지어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이수혁을 숭배하는 애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뭔 미친 소린가 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걔들이 왜 그러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상서롭다. 상서로워.’
기억 속 어딘가에 파묻혀 있던 생소한 단어를 끄집어 당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지금 수혁의 눈빛과 말투, 그리고 표정 등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또 그와 마주하고 있는 노교수의 얼굴 또한 그랬다.
“아, 뭐냐고. 뭐가 이상한 거야.”
“아까…… 간 수치가 조금 증가해 있다고 했죠.”
“그랬지. 지방간으로도 오를 수 있는 수준이야.”
“근데 지방간에서 출혈 시간도 지연되는 경우가 흔할까요?”
“어……? 아니, 잠깐. 아니. 그렇지는 않지. 근데 지연이라고 보기엔…… 거의 정상 아니야?”
“거의. 그러니까 정상은 아니란 얘기죠.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환자의 간 수치는 증가해 있고, 출혈 시간도 지연되어 있습니다.”
“어……. 그런가.”
이현종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하지만 미심쩍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수혁의 말대로 환자의 수치는 정상 수치를 살짝 넘어가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증가니 지연이니 하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너무 살짝이었다.
이 정도도 문제 삼는다면 이현종도 입원해서 워크 업을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발언하고 있는 것이 어디 잡놈이 아니라 수혁이라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눈 감고 있다가 뜬 상태의 이수혁…….’
숫제 괴물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이 상태의 수혁은 늘 정답을 말했더랬다.
이현종이야 현대 의학의 세례를 받은 진또배기 과학자다 보니 수혁을 둘러싼 무성한 불가사의한 소문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하여간 공교로운 면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지방간에서도 오르긴 하죠. 하지만 애초에 간 수치가 올랐다는 건…… 세포가 망가지면서 흘러나오는 물질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어, 그렇지.”
“그래서 간염이 있을 경우 간 수치가 마구 올라가고요.”
“어, 그렇지. 맞아.”
급성 간염에서 간 수치는 천 단위를 웃돌기 십상이었다.
간세포들이 마구 파괴되면서 안에 있던 것들이 흘러나와서 그랬다.
이현종은 비록 소화기내과가 아니라서 그걸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보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어디 하나가 망가지면 다른 곳도 망가지지 않겠는가.
특히 간처럼 큰 장기는 심장이나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었다.
‘못해도 천은 넘어. 근데 이 환자는 기껏해야 50 정도. 이게 무슨…….’
그래서 더 수혁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현종, 감 많이 떨어졌네요.]
‘소화기가 아니니 그렇지.’
바루다는 그런 이현종을 보며 쯔쯔 혀를 찼고,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말렸다.
그러곤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현종을 애태우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서 그랬다.
설마하니 자신한테 성질을 부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예의가 아니었다.
“간 경화. 이미 세포가 다 망가진 상태에서는…… 망가질 세포가 적다 보니 수치가 이렇게밖에 오르질 않죠.”
“어…… 간 경화. 어어, 그래. 확실히 간 경화에서는 수치가 이렇게 나올 수도 있지.”
간 경화는 말 그대로 간이 경화되는 질환을 말했다.
아니, 질환이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이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술을 마셔서 그렇든 아니면 간염에 걸려서 그렇든 간에 간 질환의 최종 형태가 바로 간 경화였으니까.
“근데 이 환자는 간염도 없고, 음주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이현종은 확실히 머리가 맑은 사람이었다.
젊디젊은 주치의, 그러니까 신경과 레지던트는 그저 수혁의 말을 따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따라오는 것도 벅차서 이해하려 애쓰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이 와중에 자신이 습득했던 정보와 비교하고 또 분석까지 할 수 있었다.
‘역시 이래야 아빠지.’
[그러니까요. 썰 푸는 재미가 있군요.]
‘아깐 감 떨어졌다더니?’
[착각입니다. 이현종은 역시 천재예요.]
이러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의 성장을 보는 것도 재밌고, 신현태의 사려 깊은 진료를 보는 것도 재밌고, 조태진의 혈종도 재밌지만.
철과 철이 부딪치는 듯한 날카로움을 느끼려면 역시 이현종과 함께해야만 했다.
“네. 분명 그렇게 진술했죠. 제가 생각한 근거는 그 둘이 아니에요.”
“그럼…… 아니, 잠깐만.”
그 누구도 지금 이 시점에서 수혁의 추론을 유추할 수 없을 터였다.
“이거…… 머리에…… 중간뇌 뒤판(Tegmentum) 부위에 고신호 강도가 있다고 했지.”
“네.”
이현종을 제외한다면 필시 그럴 터였다.
“윌슨……?”
그 말은 이현종만은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단지 여기까지만 듣고 윌슨을 떠올리다니.
이제 수혁도 흥분에 가득 찬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렇죠! 윌슨! 윌슨이라면 1년 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증상이 있었다고 하는 게 자연스럽죠.”
목소리도 잔뜩 커져 버렸다.
병동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애초에 이렇게까지 소리 지르는 의료진은 없기 때문에 모두의 시선이 수혁에게 집중되었다.
‘뭐야…….’
‘갑자기 뭔 윌슨?’
대부분은 이상하게만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환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치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윌슨……? 내과 배울 때 들어 본 적 있는데. 우리 과에서도…… 뇌병증 때문에 다루기도 하고.’
아는 얘기가 나와서 그랬다.
게다가 수혁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럴싸하지 않나.
물론 아직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해서 입 닥치고 듣기로 했다.
다행히 수혁은 혼자서도 아주 잘 떠드는 사람이라,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심지어 이현종도 하고 싶은 말을 참는 편이 전혀 아니었다.
“근데 윌슨은…… 선천성 질환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대사 질환이잖아.”
이번에도 역시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확실히 윌슨 병은 대사 질환이었고, 선천성 질환이었다.
“예외가 있어요.”
“예외……?”
하지만 의학은 결국 통계에 기반한 학문이지 않나.
그 말은 결국, 모든 케이스에 예외가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후기 발병 윌슨병이라고 하죠.”
“후기 발병…… 이건 아예 처음 들어 보는데.”
“그러실 거예요. 사실 이론으로 나뉜 게 아니라 그냥 통계적인 구분이라서요. 극히 드물기도 하고…… 하지만 환자군으로 묶일 만큼의 수는 돼요.”
“아……. 그럼 적지는 않다는 거로구나.”
“네. 원래 윌슨이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대개의 경우 신경학적인 증상을 제일 처음 호소하게 되죠.”
윌슨병은 세포 내 구리 이동과 관련된 단백질 이상으로 간, 뇌, 각막, 신장 등에 비정상적으로 구리가 침착되는 질환이다.
주로 5살에서 10대 청소년기 사이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늦어지면 30대에 처음으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현종의 지식의 한계였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공부를 한 시점의 문제 때문이었다.
현대 의학은 정말이지 미친 듯이 발전하고 있고, 그 때문에 재수 없으면 단 하루 만에 공부했던 것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하물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어떻겠나.
“그렇구나. 30대가 넘어서도 발병할 수 있구나. 나는 아예 배제하고 있었어.”
“비교적 최근에 나온 개념이라……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아무튼, 이 환자 눈을 좀 봐야 합니다.”
“눈. 안과에 협진을 내야겠네. 근데 이거 어쩐다.”
이현종은 그로서는 드물게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가 태화가 아니라 칠성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다시 깨달아서 그랬다.
태화면 그냥 아무나 병동에나 가서 있는 사람 불러다가 안과에 전화하라고 하면 될 텐데.
“그러게요……. 음.”
수혁 또한 이제야 이곳이 칠성이라는 걸 상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진료에 아니, 추론에 집중하느라 모든 것을 잊고 있었더랬다.
“저기…….”
낙담한 두 천재 의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여태 닥치고 있던 레지던트였다.
원래 더 빨리 말하려고 했는데, 수혁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윌슨병의 MRI 소견은 죽어도 생각이 안 나서 구글링도 했더랬다.
“응?”
“뭐. 왜. 우리 태화 사람 아닌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던가.
그중에서도 아직 연륜이 부족한 수혁은 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제가 이 환자 주치의입니다.”
다행히 레지던트는 이 천재가 여기 왜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리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골치를 썩이게 하고 있는, 더 나아가 담당 교수의 머리도 터져 나가게 하고 있는 환자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아, 주치의셨구나.”
“네. 안과…… 보려면 볼 수 있습니다. 협진 시스템이 최근 강화되어서요.”
협진 강화는 대세가 된 지 한참이었다.
안 그래도 앞서가고 있던 태화에서 통합진료센터니 지랄이니 하고 있으니 칠성에서도 별수 없지 않겠나.
그냥 조용히 저들끼리 하면 모르겠는데 학회니 뭐니 하면서 난리법석이었다.
심지어 김다현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사격 때문에 태화의 간판 중 하나가 바로 빠르고 정확한 협진 시스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 좋네. 그럼 불러 봐요.”
“네. 알겠습니다. 음. 잠시만요.”
“어어. 눈앞에서. 경찰 부르는 거 아냐?”
“네? 아니…… 제가 왜요. 오늘 당직 누군지 보려고…….”
“아, 그래. 음. 그래요. 우리 수상한 사람 아니니까 마음대로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