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화 깽판? (2)
이수혁, 이현종은 대훈이 준비해 준 칠성 병원 가운을 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제 둘도 나름 알려진 얼굴이라 누가 알아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원래 뻔뻔한 얼굴은 어지간한 상황을 이겨 내는 법이었다.
게다가 의사들은 보통 아는 얼굴을 보면 일단 인사부터 하지, 누군지부터 고민하지 않았다.
특히 대학 병원에 있는 인턴, 레지던트, 그리고 학생들은 더더욱 그랬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실습 도니?”
“네, 교수님.”
“그래, 잘해라.”
이현종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받아 주고는 허허 웃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 학생들이 무슨 수로 이현종을 태화 의료원의 전임 원장이자 현직 통합진료센터 센터장으로 생각하겠나.
게다가 수혁도 옆에 아주 자연스레 서 있었다.
“이 양반은 또 떴네.”
“아……. 스타병 걸려서 그래. 사진 찍는 거 엄청 좋아하잖아.”
각 병원 엘리베이터마다 으레 걸려 있는 교수 홍보물을 보면서였다.
투덜거리는 폼이 진짜 불만이 있는 거 같아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띵.
그렇게 둘은 병원 꼭대기 층에서 하나 아래층에 내려섰다.
맨 위로 가 봐야 어차피 VIP실일 거란 생각에서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늘 꼭대기 층은 그랬다.
태화도 아선도.
“들어가 볼까요?”
“근데 아이디 카드는 없나?”
“아무리 대훈이라도 그건 좀…….”
“하긴 국정원도 아니고.”
이현종은 허전한 가슴께를 매만지다가 이내 병동 앞으로 다가갔다.
빈 시간에 온 게 아니라 한창 병원 바쁠 시간에 오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르륵.
대충 옆에서 얘기하는 척하다가 문 열릴 때 같이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였다.
그 누구도 당신 누구냐고 묻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교수 얼굴에 가운까지 걸쳤으니까.
워낙 큰 병원이다 보니 죄다 아는 얼굴이 아닌 것도 영향을 미쳤다.
“좋아.”
“그럼…… 기록부터 좀 볼까요?”
“그러자고.”
둘은 자리에 앉아 안대훈이 넘겨준 아이디와 비번을 치고 로그인했다.
레지던트 아이디이긴 했지만, 어차피 병원에서 의사가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는 정신과 입원 기록뿐이었다.
애초에 정신과 환자는 볼 생각이 없었으니 그냥 죄 들어갈 수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음……. 1호실은 별거 없고.”
“2호실도요.”
“3호실…… 음. 음?”
“왜요? 뭐 있어요?”
이현종이 환자를 보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양반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원래 대학 병원 교수들은 어지간한 일에 놀라지 않는 법이지 않나.
하물며 이현종이었다.
심장내과에서 수십 년을 구르며 이 꼴 저 꼴 다 본 사람이었다.
심지어 요새는 말년에 얻은 자식 따라다니느라 숫제 모든 험한 환자를 다 보고 있었다.
“아니, 그냥. 18살짜리 결핵 환자가 있어서. 옛날 생각나네.”
“옛날……?”
해서 기대감을 품고 돌아봤더니만 웬 사춘기 소년의 얼굴을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이현종은 말 그대로 진짜 어디 청춘 영화에나 나올 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꽝인데.]
바루다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인간 특유의 반응, 그러니까 그리움이었기에 그랬다.
이현종에게도 일반적인 감정 체계가 있다는 증거이기는 했지만.
하여간 지금 바루다나 수혁이 찾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인간이고 또 현종의 아들이다 보니 일단 관심을 보였다.
설령 진짜 관심이 안 생긴다고 해도 시늉은 해야 했다.
“무슨…… 무슨 일 있으셨어요?”
“어? 어어. 아빠 시골 출신인 거 알지?”
“어, 알죠.”
시골이라는 말도 점잖을 터였다.
신현태만 해도 금수저고 조태진도 그렇고, 다른 교수들도 태반이 여유 있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이현종만은 깡촌 출신이었다.
정말이지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고 들었다.
“서울에서 전학을 왔거든. 또래들하고는 다르게…… 얼굴이 새하얗더라고.”
“아, 네.”
서울에서 전학, 흰 얼굴.
‘아빠, 이거 혹시 소나기……?’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 아닌가 싶었다.
이제 슬슬 수혁도 바루다처럼 고개를 젓고 싶어진 시점이란 얘기.
하지만 수혁은 역시나 사람인지라 도리를 다하고 있었다.
“한번 개울가에 놀러 갔는데, 애가 감기에 걸린 거야. 그날 내가 끌려가서 얼마나 혼났던지. 알고 보니까 애가 결핵이었더라고. 요양차 왔던 게지.”
“어, 어떻게 됐는데요?”
“뭐……. 요즘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때 결핵은 무서웠지. 게다가 걔는 이따금 객혈을 했거든. 이미 폐가 파괴되어서 공동이 있었단 얘기야.”
“아……. 말기였구나.”
사실 결핵에 말기니 뭐니 하는 단어를 쓰진 않았다.
하지만 폐가 다 망가진 상태를 말기라고 하지 않으면 뭐에 말기라 하겠는가.
다행인 사실은 그나마 약이 좋아지면서 어린 나이에 이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있긴 했다.
당장 통계만 봐도 매년 수만에 달하는 사람이 결핵으로 죽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곳, 대한민국이었다.
[아, 그러니까 10대 결핵이라는 게 그리 특별한 건 아니라니까요.]
‘그렇지. 근데 아빠가 예전 친구 얘기하는데 어떻게 하냐.’
[말려 봐야지.]
‘새꺄……. 네가 그러니까 깡통 소리 듣는 거야.’
[저보단 수혁이…… 어, 어디 가.]
‘어?’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이 1등 하는 게 몇 개 안 되다 보니, 그리고 또 대한민국에서 OECD의 위상이 워낙에 높다 보니 늘 관심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하여간 그중에서 대한민국이 1등 하는 게 하나는 자살률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결핵 유병률이었다.
바루다의 말처럼 10대에서 결핵이 진단되는 경우가 드물긴 해도 특별하진 않다는 얘기였다.
해서 그냥 넘기려 했는데 이현종이 벌써 몸을 일으킨 참이었다.
아니, 일으킨 정도가 아니라 수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아…….’
[뭐…… 시간 많으니까요. 결핵이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알았어. 아, 근데 결핵 환자 보려면 성가신데.’
[어쩔 수 없죠. 벌써 들어가네요.]
결핵 박멸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공기 감염이었다.
어지간한 호흡기 감염병이 대개 비말 감염만을 일으키는 데 반해 이놈의 결핵은 공기 중을 둥둥 떠다녔다.
해서 N95 마스크를 끼는 게 필수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환자분, 좀 어때요?”
“네? 아……. 네. 뭐 그렇게 불편한 건 없어요.”
“불편한 게 없다……. 기록을 보니까, 학교에서 찍은 검사에서 뭐가 나와서 온 거죠?”
“아, 네. 결핵 같다고 해서요. 근데 전 기침도 없고…….”
“증상이 아무것도 없나요? 뭐라도 좋으니 그냥 되는 대로 말해 보세요. 괜찮으니까. 절대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진단에 도움이 될 거예요.”
안으로 따라 들어가 보니 이현종은 벌써 진료 중이었다.
예의 그 푸근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였다.
생각해 보면 진짜 놀랄 일이었다.
‘평소 아빠를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데, 저런 얼굴.’
[명의잖습니까. 환자 앞에서 연기하는 거죠. 근데 그게 잘 먹히니까요.]
사실 10대 환자는 진료하기에 있어 꽤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놈의 사춘기가 뭔지.
묻는 말에 삐딱하게 답이나 해 주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대개는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 이현종 정도 나이가 되면 나이 자체도 무기로 쓸 수 있는 법이었다.
아무리 사춘기가 세게 왔다고 해도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노인이 저리 정중하게 묻는데 씹을 수 있는 놈은 진짜 호로새끼뿐이었다.
“음…….”
게다가 눈앞의 학생은 꽤 착해 보였다.
학생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꽤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현종은 그런 환자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얼굴이 그리 하얗진 않네. 사진을 보니까……. 병변이 꽤 크고…… 이리저리 퍼져 있던데. 공동은 없었지만…… 미세 출혈은 있었을 정도. 그런데 혈색이 좋아.’
추억을 떠올리되 진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진짜 나중에, 그러니까 이현종이 이미 어엿한 의학도가 된 다음에나 떠올린 생각이었다.
어린 시절의 한 자락을 달뜬 마음과 죄책감으로 물들였던, 전학 온 학생의 유난히 하얬던 얼굴이 실은 빈혈로 인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실제로 빈혈이 심한 환자들은 얼굴이 하얗게 뜨지 않던가.
물론 원래 좀 하얬던 사람 얘기고 까만 사람은 그냥 까맣게 보일 뿐이지만, 하여간.
‘혈액 검사 소견은 어떻지.’
이현종은 환자가 고민하는 사이, 옆에 놓인 컴퓨터를 조작해 결과를 들여다보았다.
원래 칠성에 이런 시스템이 있지는 않았는데 태화와 아선이 하도 앞서 나가다 보니 뒤따라서 병동 이동식 컴퓨터를 도입한 모양이었다.
감히 따라잡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소롭기는 했지만.
잘된 일이기도 했다.
태화에서 모든 환자를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따위 소리를 김다현 앞에서 하면 뺨이라도 때릴 텐데, 한 사람의 의사로서의 이현종은 그저 다른 병원들도 다 수준이 높아져서 흘러내리는 환자들이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혈색소 13.2g/dl, 백혈구 4,100/㎣, 혈소판 234,000/㎣…… 너무 지극히 정상인데? 완전 건강체야. 그러고 보니.’
이현종은 그제야 환자의 얼굴이 아닌 다른 곳으로도 시선을 보낼 수 있었다.
펑퍼짐한 환자복을 입고 있기는 했으나 팔은 걷어 놓아서 그쪽은 충분히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골격근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을 10대 청소년임을 감안하고 보면 꽤 체력이 좋아 보였다.
따로 운동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핵이라더니…… 근데 되게 건강해 보이네.’
정확히 같은 생각을 수혁도 하고 있었다.
[음……. 그러네요? 이건 이상한데.]
바루다도 마찬가지였다.
결핵이라는 병이 원래 건강체도 걸릴 수 있는 병이긴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결핵 환자와 밀접한 접촉이 있었어야만 했다.
게다가 사진이 이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예 사진도 안 보고 있었으니 별생각이 없었지만 방금 이현종이 띄운 결과 창을 보니 확연해졌다.
‘저만큼 폐에 병변이 있으려면 증상이 있었을 거야. 근데 환자는 잘 모르겠단 얼굴이고…….’
[빈혈도 없습니다. 아직 명확한 공동화 현상이 관찰되지는 않습니다만, 저만한 병변이라면 미세 출혈이 있어야만 해요. 예민한 사람이라면 침에서 피 맛을 느낄 수도 있고요.]
공동화 현상이란 폐결핵에 의해 폐가 파괴되면서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을 말했다.
그냥 텅 빈 공간이 이쁘게 생기는 건 당연히 아니라, 그 안으로 피가 흘러내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제갈량도 이상도 모두 이 때문에 피를 토했다.
‘이상하네…….’
이현종과 수혁, 그리고 바루다 모두 한 가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