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3화 이 새끼들이? (1)
“오랜만에 피곤해 보인다?”
아침이 되자 이현종이 나타났다.
집담회 데이트가 꽤 만족스러웠는지 얼굴에 미소를 띤 채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장내과 집담회였지.’
[한바탕 푸닥거리했겠군요.]
이현종이야말로 학회를 즐길 줄 아는 사람 아닌가.
이제 나이도 있겠다, 그에 걸맞은 아니, 그걸 뛰어넘는 업적도 있겠다 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니들 왜 나만큼 못하냐고 혼내는 것뿐이었다.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환장할 노릇인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이현종이 첫 포문을 열어 재낀 덕에 국제 학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쭉 올라가지 않았나.
확실히 더 쉬워졌다 이건데 왜 못하고 있나를 생각하다 보면 자괴감에 빠지는 후배 의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네. 어제 대훈이랑 환자 좀 많이 봤어요.”
깊은 경부감염의 극히 드문 합병증 중 하나인 레미에르 증후군부터 기도 폐색의 드문 원인인 식도 이물까지.
그 후로도 몇 가지 케이스가 있어 수혁을 즐겁게 해 주었더랬다.
“좋아 보이네.”
“네. 좋죠. 어려운 케이스도 있었거든요…….”
“어떤 거?”
수혁은 그중에서 앞서 있던 두 개의 케이스를 대강 정리해서 이현종에게 말해 주었다.
진단의 주체가 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안대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였다.
“오. 오오.”
이현종은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흥분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이렇게 케이스에 흥분할 수 있다니.
확실히 타고난 변태요, 명의였다.
절대 고쳐지지 않을 명의병 환자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는 그렇게 귀를 기울이다가 돌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너도 모르겠어? 이제 아빠는 볼 만큼 봤잖아?’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입니다. 아시잖아요? 지금 이게 온당한 반응입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듣다가 다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얘기 잘 듣고 있다가 돌연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였다.
아들 된 입장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어떻게 봐도 또라이 같았다.
‘또 저러시네…….’
‘아휴……. 야, 보지 마. 그러다 엮일라.’
아니, 그냥 또라이였다.
간호사들은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저러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현종이 누구인가.
그는 명실상부한 천재 그 자체였다.
다 이유가 있다 이 말이었다.
“생각해 봐라. 네가 응급실 닦달하니까 케이스가 나오잖아?”
“아……. 네, 그랬죠.”
“대훈이가 현수막 달았다며? 그래서 그런 거라며?”
“어…… 네.”
수혁은 그 말을 듣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창밖을 향해서였다.
길가에 여전히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저런 거 보면 안대훈도 진짜 한두 바퀴 돈 놈이 아니었다.
어떻게 저런 걸 만들 생각을 하고, 그걸 저기다가 붙여 둘 생각을 했을까.
“성의가 없네, 성의가.”
“네?”
그 정도면 성의 정도가 아니라 광기인데요?
안대훈이 들으면 기절초풍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우리 학회 때 온 새끼들 말이야. 케이스 안 보내잖아. 전화 돌리고 하는데도 말이야.”
“아……. 학회요.”
“그래. 그때 왕자님이 쏜 뷔페에 와인만 축내고. 그 새끼들 처먹은 돈이 억 단위래.”
“네? 억이요? 그렇게 먹었어요? 아니, 사람이 몇이나 있었다고…….”
“왕자님 클라스 모르냐. 와인만 해도 그게 대체 얼마야. 억 정도가 아니라 억 단위라고 말하는 거 보면…… 호텔 측에서도 그날을 못 잊는 거 같더라고. 진짜 깜짝 놀랐대. 우리나라 재벌들도 그 정도 규모의 파티는 못 한대. 물론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눈치를 봐서 그렇겠지만, 하여간.”
억 단위로 썼다고.
하긴 엄청 쓴 것 같기는 했다.
호텔 지배인인지 뭔지 하여간 엄청 높아 보이는 사람까지 어느새 내려와 붙어 있었으니까.
대체 얼마를 쓰면 찾아가서 보는 게 아니라, 찾아와서 보게 되는 걸까.
뭐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근데 이놈들이 처먹기만 하고…… 입을 싹 씻네. 내 이 새끼들을 그냥.”
“어어, 어쩌시려고요. 가서 패려고요?”
“패? 아니지. 그런 걸로 먹힐 놈들이었으면 벌써 팼어.”
“아, 네.”
남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면 웃어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이현종이었다.
이 사람은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아마 힘이 부치지만 않는다면, 또 패서 말을 들을 거란 확신만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갈 사람이었다.
“협박해야지.”
“네? 협박이요?”
“어. 일단 칠성에 전화 좀 할게.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들 이거 뭐 하는 거야? 영상 풀어야겠네.”
상대는 아마 패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아침 댓바람부터 영상 운운하는 이현종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니.
물론 분장하고 남의 학회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진짜 이상한 일이기도 하고, 수혁의 칠성에 대한 생각이 그리 좋지도 않긴 하지만.
하여간 수혁이 애도를 표하는 사이, 이현종은 전화를 걸었다.
“어……. 원장님.”
상대는 곧 전화를 받았다.
이걸 공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벌벌 떤다고 해야 할지 살짝 헷갈리는 목소리를 하고서였다.
“원장? 나 원장 아닌데. 네가 원장이지.”
“아……. 센터장님.”
“아니지. 그건 원내 호칭이지. 자네가 나한테 해야 할 호칭은 그게 아냐.”
그리고 그 목소리는 점점 더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작정하고 괴상하게 구는 이현종은 절대 만만하지 않으니까.
신현태도 골프장이나 하여간 돈 썼는데 이상하게 구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이 또라이 모드의 이현종을 들이민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 거의 백 퍼센트 꼬리를 말았다.
“어……. 그럼 제가 어떻게…….”
칠성 병원 원장 오성흠은 진정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원장님이라는 호칭도 최선을 다한 것인데, 센터장도 아니라고 하면 대체 뭐란 말인가.
칠성 병원 원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사실 좀 안쓰러워할 만도 할 텐데, 이현종은 오히려 여기서 더 화가 나는 사람이었다.
수혁과 함께하고 있는 일이라 더더욱 그랬다.
“인마! 나 학회장이잖아! 너 회원이고!”
“아……. 네네. 아이고. 회장님.”
“그래. 그래. 회장님이 전화한 걸 보면…… 너 뭘 잘못했는지 알겠지?”
“네?”
잘못?
오성흠은 재빨리 자신의 종적을 되짚어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현종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매달 열 개씩 케이스 보내.
제일 인상적인 요구였다면 역시나 이거였다.
세상에 라이벌 병원 원장한테 이런 걸 요구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또 화가 나고 분해서 팔짝 뛰고 싶어졌다.
“저…… 케이스 보내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영상이 퍼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남의 손에 붙들려 분장이 지워지는 영상이라니.
이건 살인이었다.
사회적 살인.
“성의가 없어. 열 개 보내면 9개는 돌려보낸다고. 전화만 딱 들어도 이게 대강 고른 거라는 걸 내가 딱 알 수 있어.”
“그…….”
그것만은 막자는 생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물론 협박에 의해 하는 일인 데다가, 밑에 사람들에게는 그런 자세한 사정을 꺼내지도 못했다 보니 성의 있게 하고 있지는 못했다.
당연했다.
세상에 어떻게 칠성 병원 원장이 위에서 딱 잘라 라이벌이라고 말한 병원에 케이스를 보낸단 말인가.
이건 세 살 먹은 애도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이치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영상 띄워?”
“아니, 아닙니다. 그것만은.”
“그럼 환자 보내.”
“아니, 근데 제가…… 아시잖습니까. 원장은 진료에서 좀 배제되어 있어서요. 제가 보는 환자들 수가 적습니다. 거기서 보내 봐야…….”
“원장인데 밑에 시키지도 못해? 막 시켜 인마!”
“그게.”
원장이라고 해 봐야 2년 임기인데, 막 시키긴 뭘 막 시킨단 말인가.
그럴 수 있는 건 이현종과 같은 월드 스타 정도뿐이었다.
아니면 김승규처럼 진짜 깡패이든가.
“안 되겠네, 이놈?”
“어……. 네?”
이놈이라니.
이놈이라니!
제 나이가 몇인데 이놈이라니!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사실 원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이현종이 무섭기도 했거니와 지금껏 해 놓은 짓이 있어서 그랬다.
솔직히 위에서, 그러니까 경영진 출신인 의료원장이 까라니까 까기는 했는데…….
박국진을 그렇게 보낸 건 좀 아니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놈이 가서 뭘 불었을까……?’
모든 조직이 그렇겠지만 커다란 조직은 이런저런 비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박국진은 내과 과장으로서 그러한 비위에 어느 정도 접근 권한이 있었다.
본인이 워낙 선비다 보니 애써 피하기는 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를까?
‘애초에…… 그놈 자르려고 한 짓 자체가 공작이잖아.’
이래서 엄마가 뒤가 켕기는 삶은 살지 말라고 했었나.
이래서 아빠가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했었나.
때아닌 고해성사가 막 튀어나오려던 찰나에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내가 가서 찾아보지.”
“네……?”
한국말이긴 한데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
어디를 가.
“무슨 말씀이신지.”
“칠성으로 간다고.”
“네……? 아니, 그건 좀. 아니, 그건 안 되죠.”
“안 되긴 뭘 안 돼. 원래 메이저 병원끼리 교류도 하고 그러잖아. 우리끼리 싸우는 거 국민들이 알면 좋겠어? 나 언론사 가? 영상 풀어?”
“와……. 그건 아니고. 아니, 근데. 아…… 뭐…… 아.”
알아듣는 순간부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칠성을 오겠다니.
사실 칠성과 태화는 모그룹도 적이지 않나.
서로 소송전을 펼치는 바람에 왜 국내 기업끼리 제 살 깎아 먹냐는 비난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핑계를 만들어. 우리가 거기 가서 뭐 배운다고 하면 좀 이상하고. 뭐라고 할까……. 그래, 원장단끼리 경영 교류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서 대강 웃으면서 그랜드 회진을 돌라고. 의사 많이 돌면 환자들도 좋아할걸?”
“그…….”
환자는 좋아하긴 할 터였다.
딱히 전문 과가 아니더라도 원장이 와서 얼굴 보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겠나.
뭔가 대접받는 기분도 들 테고.
문제는 그 자리에 이현종, 이수혁이 끼어 있다는 건데.
“그게 근데 그쪽 원장단하고는 얘기가 된 건가요?”
“아니?”
“네?”
“그냥 지금 되는 대로 지껄이는 거야. 근데 그렇게 내뱉은 걸 현실화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지.”
“아.”
그렇군.
이게 이현종이로군.
‘내가 왜…… 거기를…… 내가 왜 이런 미친 사람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생각을 한 걸까.’
재앙은 피해야지, 극복할 대상이 아니지 않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럼 기다리고 있어. 우리 현태가 전화할 거야.”
“현태……? 아, 신 원장님…….”
“그래, 오늘은 칠성이다! 환자 보러 간다!”
“아…….”
“수혁아 짐 챙겨! 아주 그냥 다 살려 버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