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27화 (727/1,303)

727화 열정, 열정, 열정 (3)

새로운 환자.

그것도 교수가 의뢰하는 환자.

모르긴 해도 어느 정도 어려운 환자가 아닐까?

뭐 이런 기대감이 수혁을 감싸 안았다.

‘교주님……. 드디어…….’

당연하게도 안대훈은 그런 수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혁의 기쁨이 곧 그의 기쁨이라서 그랬다.

받는 건 없어도 좋았다.

그저 저 사람이 웃으면 그것으로 족할 뿐.

그야말로 아가페적 사랑이 현세에 강림하는 순간이었는데, 딱히 성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저 둘은 진짜 이상해…….’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다른 레지던트들에게 저 둘은 좀 끔찍스럽기까지 했다.

아마 안대훈이 당직을 대신 서 주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뒷얘기라도 나돌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대학 병원 의사들에게 있어 당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면 아마 다들 이해할 터였다.

여기는 좀 이상한 곳이라 오프가 진짜 오프가 아니라 그저 퇴근할 수 있는 날을 의미하지 않던가.

당연히 당직 전후로 쉴 수 있는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힘든 게 당직인데, 그걸 대신해 주는 상황이지 않나.

‘그래도…… 피해는 안 주니까.’

레지던트들은 환자 왔다는 전화를 받으며 껄껄 웃는 수혁과 그걸 지켜보는 대훈, 마치 전쟁 같은 사랑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불 켜진 거실의 바퀴벌레들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어떻게 얻어 낸 오프인데 병원에 계속 있을 수 있겠나.

심지어 수혁이 처방 지시까지 깨끗하게 다 내려 준 마당이라 루틴 일도 빨리 끝났다.

“와, 완전 비었네?”

덕분에 전화를 끝내고 고개를 돌린 수혁은 텅 빈 병동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네요?”

보통 이렇게 아무도 없는 병동을 보면 좀 짜증이 나기 마련이었다.

교수는 몰라도 레지던트는 그랬다.

뭔가…… 혼자 일하는 느낌이 드니까.

원래 도움 안 되는 동기들이라고 해도 단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기 마련이지 않나.

‘개꿀.’

하지만 안대훈은 그런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 이 시각 수혁과 단둘이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전율을 느꼈다.

‘오직 나만이…… 교주님과 환자를 볼 수 있다.’

우매한 것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고.

비단 종교적인 체험 때문만도 아니었다.

수혁과 함께하는 진료는 그 시간 대비 효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대훈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수준에 따라 그 시간에 책이나 보는 게 더 의학 수준을 높이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녀석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대훈처럼 지난 3년간 쉬지 않고 노력해 온 이에게는 책 한 권보다 수혁과의 진료가 더 도움이 될 때가 있었다.

“너 왜 그렇게…… 턱을 들고 걷냐.”

“아, 제가 그랬습니까? 하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만.”

“어……. 그래. 뭐, 저 자유긴 한데.”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응급실이었다.

불과 2시간 전에도 현수막 다느라 여기 있다가 나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외래가 다 끝나고 본격적인 환자 러시가 시작된 까닭이었다.

그나마 태화는 외상센터가 아예 따로 마련되어 있어 섹션이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잘한 부상 환자들까지 겹쳐 있어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와……. 오늘 뭔 날인가.”

“그러게요. 평소보다도 더 많은데요?”

심지어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해 보였다.

환자 보기를 어느 때고 마다하지 않는 두 사람이 느끼는 것이니 정확하다고 봐야 했다.

“여기! 환자 열납니다! ANC 200 미만! 빨리 혈종 콜해 주세요!”

“코피가 너무 많이 나는데……. 이비인후과 콜한 거 맞죠?”

“결과 나왔습니다! 맹장 맞아요. 바로 올라갑니다!”

여기저기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어디엔가 손정협 교수가 서 있었다.

어둑한 얼굴로.

“아, 교수님. 저 내려왔습니다.”

“아아. 이수혁 교수님. 안녕하세요.”

손 교수는 수혁을 보고 나서는 애써 표정 관리에 나섰다.

사실 딱히 수혁이 아니더라도 하기는 해야 할 터였다.

병원에서 교수가 인상 굳히고 있어 봤자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레지던트들에게도 그렇겠지만 환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담당 교수가 어둑한 얼굴로 서 있으면 불안해서 어디 살겠나.

‘냄새…….’

[감염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심한.]

수혁은 손정협 교수와 인사를 나누면서도 동시에 환자를 살폈다.

일단 인상적인 것은 냄새였다.

어찌나 강렬한지, 이 바쁜 와중에도 이쪽을 돌아보는 의료진이 한둘씩 있을 지경이었다.

‘이건…… 혐기성 세균에 의한 농양인데.’

[네. 깊은 경부감염이 의심됩니다. 모를 것 같진 않은데요?]

‘그러니까.’

암 병동에서는 주로 죽음의 냄새로 통하는 냄새였다.

이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는 건, 환자가 그만큼 죽음으로의 길에 성큼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해서 그랬다.

그만큼 중요한 질환이었고, 당연히 전문 과인 이비인후과에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손정협은 이비인후과 중에서도 두경부외과였다.

모르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깊은 경부감염입니다. 일단 외래에서 봤는데요. 사실 당뇨도 없으시고 해서 일단 절개 배농만 하고 경과 관찰하기로 했었습니다.”

“경과 관찰이요? 입원 치료는 하지 않고요?”

“환자분이 바쁘시다고 해서요. 입원은 거부하셨습니다.”

“아. 그럴 수 있죠.”

수혁이 보기에 환자는 이제 기껏해야 40이나 되었을까 말까 한 나이였다.

밖에서야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였지만 병원에서는 젊은이였다.

특히 태화처럼 중증 환자가 워낙에 많은 곳에서는 어리단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당뇨도 없고, 절개 배농으로 농을 충분히 제거했다면 환자 사정에 어느 정도 맞춰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맞춰 줄 수 있는 일인데…….’

[환자 상태가 너무 좋지 않군요.]

일단 환자가 처치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단지 외래에서 보고 말 환자 상태가 아니란 얘기였다.

실제로 환자 바이털이 좋지 못했다.

혈압은 낮았고, 심장 박동 수는 높았으며, 심지어 호흡수도 증가해 있었다.

명백한 패혈증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대훈이가 볼 수 있을까?’

[모르겠군요.]

어지간하면 어려운 케이스를 안대훈이 딱 해결하는 모양새를 보여 주고 싶었더랬다.

그래야 대훈이 교수 만들어 줄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손정협이 상대이지 않나.

열정이 넘치는 데다가 말도 많은 사람으로 유명한 편이었다.

심지어 그 열정 때문인지 뭔지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협업을 요청하고 있어서 소문 퍼지게 하는 데는 아주 제격이었다.

‘대훈아. 어쩔래.’

그러니까 할 수만 있다면 이 케이스를 안대훈이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였다.

문제는 만약 그걸 종용하다가 시간을 너무 끌게 되면 환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수혁이 케이스에 미친 인간이라지만 인간은 인간이다 보니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교주님……. 제가 나설 차례로군요.’

대훈은 수혁의 지긋한 눈빛을 받고는 그 안에 담긴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직…… 아직 이 환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래도 수혁처럼 뭐가 바로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일단 안에 든 지식의 총량의 차이가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경험도 일천했다.

심지어 종합해서 사고하는 능력도 부족했고.

하지만 이 모든 비교의 대상이 수혁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외람되지만, 우선…… 환자 호흡부터 잡아야 할 거 같습니다.”

비교 대상을 달리했을 때 안대훈은 충분히 훌륭한 의사였다.

레지던트임에도 이미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아, 그렇지. 일단 산소는 들어가고 있는데…….”

“산소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지금 포화도가 잡히고는 있는데…… 산소 풀로 틀고 이렇지 않습니까? 여기 보시면 빗장근까지 쓰이고 있어요. 환자분 숨이 엄청 차실 겁니다.”

“아……. 그럼 기관 절개를?”

“네? 아니, 아뇨. 아직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고요. 삽관만 해도 될 거 같습니다. 이게 무슨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요.”

아직 이 환자를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중간중간 알맞은 추론도 할 수 있었다.

‘오……. 이것 봐라?’

[괜찮은데요? 확실히 지금은 진단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닙니다.]

‘그렇지. 간당간당하잖아.’

[일단은 지켜볼까요?]

‘그래. 그게…… 그래도 되겠어.’

덕분에 수혁은 팔짱을 끼고 슬쩍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나 잘하고 있구나.’

그 반응에 용기를 얻은 대훈은 우선 삽관부터 진행했다.

이미 환자는 고열과 낮은 혈압 그리고 호흡 곤란으로 인해 의식이 혼탁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딱히 동의는 필요 없었다.

벌써 응급이었다.

“로큐 주시고요.”

“네.”

“관 주시고…… 네, 들어갑니다. 네, 됐어요.”

내과 3년 차.

아무래도 3년제가 되면서 수련 과정이 개판이 되었네 어쩌네 하는 소리들이 있긴 하지만.

대학 병원 내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3년을 버티다 보면 딱히 그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은 사람도 어엿한 전문의가 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대훈은 그 안에서 최고라 평가받는 이였다.

“이야……. 안대훈 선생이라고? 귀신이네. 어떻게 벌써?”

기도에 있어서는 또 다른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는 손정협이 보기에도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의 술기였다.

“이수혁 교수님의 제자잖습니까.”

“아……. 그래서 그런가. 진짜 잘 넣네.”

“한시름 놓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 환자, 언제 절개 배농하신 겁니까?”

“아.”

대훈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잘 넣은 참이어서 잠시 으스댔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일단 환자에 대한 파악이었으니까.

두경부외과 교수면 이 꼴 저 꼴 다 보긴 했겠지만.

아무래도 마이너 과는 마이너 과였다.

지금 당장 흔들리는 생명 앞에서는 내과 레지던트가 오히려 나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손정협도 잘 알았다.

-야, 진짜 의사 불러와!

당장 자기 위에 있는, 그야말로 두경부외과의 전설이라 불리는 교수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터지면 이렇게 외치지 않던가.

괜히 내과가 대학 병원의 기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한 4일? 그때는 이렇지 않았어.”

“그렇군요. 음……. 4일이라. 그 안에 이렇게 패혈증이……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어 보도록 하죠. 혹시…… 종격동에 뭐가 들어찼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럼 안 되는데. 아, 진짜 안 되는데…….”

깊은 경부감염은 종종 종격동염으로 번지는 수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치사율이 무려 40%를 넘나들었다.

항생제를 쓴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40밖에 안 된 환자가 죽는다?

‘안 돼…….’

손정협의 얼굴이 다시 어둑해졌다.

“자, 그럼 엑스레이실로 갑니다!”

그와는 반대로, 안대훈은 상황을 진두지휘해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오직 나만이…… 교주님처럼 진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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