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화 열정, 열정, 열정 (2)
바루다는 잠시 이 인간이 제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게 착취인가 싶었다.
아니, 농담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수혁은 진지했다.
‘그렇잖아. 얘 할 것도 없어. 어차피 집에도 잘 안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얘가 연애를 하겠어, 뭘 하겠어.’
[연애는 하지 않겠습니까?]
‘진담이야?’
[농담입니다.]
연애 얘기를 듣고 나니 바루다도 혹했다.
물론 바루다가 인간의 미적 감각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미적인 기준에 대한 데이터는 들고 있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안대훈은 수혁보다도 더 참담했다.
성격은 좀 더 유리할 수 있겠지만…….
단지 외모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성향이 문제였다.
차라리 교주가 된다면 모를까,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니까 환자 보면서 공부도 하고 평판도 쌓는 거지. 어차피 대응하기 어려운 환자는 나랑 아빠랑 번갈아 가면서 콜당 서고 있잖아. 게다가 말이 콜당이지……. 나는 병원에 살고 있고.’
[음.]
바루다는 잠시 수혁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결국, 수혁도 진료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소리 아닌가.
처절한 자기 고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바루다는 굳이 이 점을 지적해 주지 않았다.
병원에서 살아야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지 않겠나.
이러한 면에서 수혁은 최고의 주인이자 숙주라 할 수 있었다.
‘음은 무슨 뜻이지.’
[아뇨,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좋아.’
수혁은 고민을 끝내고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안대훈은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레지던트들 하나하나와 마주하고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잘하고 있지? 잘하자? 등등의 말이다 보니, 이게 인사인지 격려인지 아니면 재촉인지 좀 헷갈리기는 했지만.
하여간 다들 웃고 있어서 분위기는 좋았다.
“대훈아.”
“네, 교수님.”
수혁은 그런 대훈을 불렀고 대훈은 나는 듯 달려왔다.
예전에는 이렇게 움직이면 머리가 좀 휘날렸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그저 빛만 흩날렸다.
“너 오늘 뭐 하니.”
“네? 아……. 아무것도.”
“왜 그렇게 목소리가 떨려?”
“아닙니다!”
“여기서 당직 같이 설래?”
“네? 아니……. 네?”
하여간 당직 서자고 하니까 안대훈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화가 난 건지 뭔지 좀 헷갈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돋아난 힘줄 때문에 살짝 무서웠다.
‘내가 선 넘었나.’
[그럴 수도 있죠. 당직을 서자니.]
아무리 안대훈이라고 해도 당직은 좀 그런가 싶었다.
하긴 얘도 사람인데 당직을 막 서라고 하면 화가 나지 않겠나.
해서 미안하다고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안대훈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앗!”
“왜, 왜 그래.”
소리 지르는 대머리를 코앞에서 본 적 있는가.
없으면 절대 모를 감정이었다.
“광영…… 광영입니다.”
“영광이라고 해……. 괜히 말 뒤집으니까 종교적으로 들리잖아.”
“하지만 영광이라는 평범한 단어로는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녀석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좋은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이것대로 아주 좋지만은 않았다.
“호들갑 떨지 말고…… 이렇게 하면 같이 설 수가 없어.”
“헙.”
“숨은 쉬어. 숨도 안 쉬면 사람 죽어.”
“후하후하.”
“숨만 쉬지도 말고. 과호흡 오면 손 떨린다?”
“으어어.”
“아오.”
진짜 생지랄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뭐 어떻게 말을 해도 반응이 이상하다 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해서 그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보니 차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후욱후욱.”
“숨 몰아쉬지 말라니까? 야, 어디 가?”
“밤 당직 준비 좀 하려고요.”
“당직 그거 맨날 서는 건데 뭔 준비가 필요해.”
“필요합니다. 이렇게 미리 고지를 해 주셨는데 그냥 오면 불충한 사람이죠.”
“뭔…….”
물론 안심은 일렀다.
안정을 되찾나 싶던 안대훈은 부리나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대체 뭘 준비하려고 저러는 걸까.
‘짐작조차 안 가네.’
[그러니까요.]
‘분석이 안 돼?’
[볼 때마다 더 이상해져서 그게 잘 안 됩니다.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사나이가 바로 안대훈입니다. 이번에도 보십시오. 저게 일반적인 반응입니까?]
‘하긴……. 그렇긴 해.’
바루다조차 예상을 할 수 없었다.
현대 의학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A.I.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안대훈이었다.
실로 대단한 업적을 이룩한 셈이었다.
하여간 시간은 흘렀다.
조태진한테는 할 일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지 않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아닌 것일 뿐, 하려고만 하면 할 일은 주구장창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환자가 없네.”
“아닙니다.”
“뭔 소리야?”
이현종과 회진도 돌아야 했다.
오늘따라 어려운 환자는 없어서, 이현종은 레지던트들을 불러다 놓고 갈구고 있었다.
병원마다 전화를 걸든 뭐든 해서 환자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왜 실적이 부진하냐, 뭐 이런 논조였다.
보통은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넘어갈 텐데.
웬일로 하나가 눈을 부릅뜨고 나섰다.
억울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수혁아, 얘 뭐래는 거야.”
“저도 모르겠는데요.”
“최선을 다해서 불렀는데……. 두 분이 눈 깜짝할 새에 해결을 해 버리니……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요.”
“음.”
“으음.”
듣고 보니 억울할 만하기도 했다.
어려운 환자가 없었을 뿐, 환자가 적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 지시를 내린 수혁과 이현종은 여유로웠지만 그걸 실제로 실행해야 했던 레지던트들과 병동은 바쁘기 그지없던 하루였다.
“그래도 인마. 최선을 다해서 불러 보라고. 외국에도 전화하고.”
“네?”
그렇다고 이현종이 의견을 철회하는 일은 없었다.
“하여간…… 오늘 콜당 수혁이니까. 어? 최선을 다해. 환자 불러모아.”
“네, 교수님…….”
한 번 더 재촉을 하고 나서야 사라졌다.
“그럼, 아들. 나 오늘은 먼저 갈게.”
“오, 오늘 데이트예요?”
“어. 집담회 같이 가기로 했어.”
“아, 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이기자 교수와 학회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남기고서였다.
세상에 데이트를 집담회에서 한다니.
누가 들으면 미쳤단 소리 듣기 딱 좋을 소리였다.
하지만 적어도 수혁과 이현종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에서는 당연한 소리여서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교수님!”
그리고 대망의 6시.
그러니까 당직 시작 시간이 되자 안대훈이 나타났다.
무언가를 손에 가득 들고서였다.
“뭐냐, 그거.”
“현수막입니다.”
“현수……막?”
“통합진료센터에서 진료 중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려야죠! 그래야 당직 때 환자가 잠시 누울 틈도 없이 밀어닥칠 거 아닙니까!”
“어……. 나 그렇게까지는 볼 생각 없는데.”
“저는 있습니다.”
“어…….”
현수막이 있는 것도 황당한데, 심지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제가 벌써 병원 밖에도 걸어 두었습니다.”
“응? 와…… 씨.”
밖을 돌아보니 진짜로 거리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저거 구청 허가받아야 하지 않아?”
“받았죠. 알고 보니 구청장님이 교수님한테 한번 구원받으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
“치료라고 하자. 치료.”
“그래서 바로 걸었습니다. 철거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환자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아.”
“그럼 응급실하고 로비에 걸러 가실까요?”
“이거 꼭 같이 가야…… 그래, 같이 가자.”
안 가려고 했더니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 되었다.
딱히 보기 좋은 몰골은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이 사람을 때리나.’
[아, 이 감정이 분노군요.]
‘오, 우리 깡통이 감정을 배울 정도네. 대훈이가 유용하다니까.’
아니, 화가 났다.
귀엽게 생긴 사람이 지어도 좀 그럴 것 같은 표정을 안대훈이 짓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 화가 나는 사실은 가슴속 어딘가에서 안대훈에 대한 측은지심 내지는 애정이 샘솟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도 오래 봐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이놈의 마음을 알게 돼서 그런가.
더 이상 안대훈의 수혁에 대한 애정도 일방통행은 아니었다.
물류량 차이가 좀 있기는 한데, 어찌 되었건 수혁 쪽에서도 가고는 있었다.
“오늘 뭔 날이에요?”
“네, 날입니다.”
“무슨 날이요?”
“제가 교수님과 당직을 섭니다. 같은 파트도 아닌데요.”
“노동청에 신고해 드려요?”
“아니,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신성 모독입니다!”
“?”
응급실에 현수막을 걸고 있으려니, 응급실 사람들이 다가와 물었다.
이제 6시 넘어서 슬슬 바빠질 타이밍임에도 그랬다.
그만큼 보기 드문 광경이라 그랬다.
“이제 안심입니다. 평소보다 더 오겠죠.”
“저거는 철거해야 하는 거 알지?”
“알죠. 원장님이 펄쩍 뛰셨습니다. 교수님 잠 못 자면 책임질 거냐고요.”
“아……. 삼촌도 알아? 그래서 넌 뭐랬는데.”
“단 하루도 안 되냐고 했더니 한숨을 푹 쉬시면서 하루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뭔 표정을 지으면서 단 하루만 하게 해 달라고 했을까.
보지는 않았지만 알 것 같았고.
딱히 보고 싶지는 않았다.
‘불쌍한 삼촌…….’
수혁은 잠시 신현태에게 애도를 표한 후,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센터로 향했다.
현수막 때문인가 중간중간 전화가 왔지만 모두 구두로 해결 가능한 노티였다.
심지어 안대훈 선에서 커트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거론 약한데.’
[그러니까요. 레지던트들 평판은…… 교수 되는 데는 그리 중요치 않죠.]
어떻게 보면 레지던트들 평가가 더 정확할 수도 있을 텐데.
병원은 보수적인 집단인 데다가, 태화도 나름 대기업이다 보니 무조건 교수들 사이의 평판을 보았다.
그 말은 어려운, 정말로 어려운 케이스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상대가 말 많고 높은 교수면 더 좋은데 둘 다 충족하는 건 어려우니, 둘 중 하나만 충족돼도 만족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십니까?”
“응? 아, 어려운 환자가 없어서.”
“제가 기도라도 올릴까요.”
“누구…… 누구한테.”
“누구한테라도요.”
“그래서 온다면 나야 좋지.”
눈치 빠른 안대훈은 수혁의 심정을 눈치채고는 진짜 누가 대상인지 모를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농담이었는데, 너무 진지해서 방해도 할 수 없었다.
부우웅.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당직용 폰이 아니라, 수혁의 개인 폰이었다.
번호를 보니 병원이었다.
아는 번호가 아닌 것을 보니, 진료 요청 같았다.
‘설마 진짜 응답……?’
[이상한 소리 마시죠. 우연입니다.]
‘어어. 그래.’
하도 안대훈과 함께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종교적 생각에 심취하게 된 수혁의 헛소리는 바루다가 막아 주었다.
덕분에 별문제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아, 네. 저 손정협입니다. 외래에서 본 환자가 갑자기 더 안 좋아져서…… 지금 응급실에 있는데, 조금 헷갈려서요. 듣자니 오늘 무조건 이쪽으로 전화 달라고 하셨다는데, 맞나요?”
“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