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화 조태진 돕기(은혜 갚기) (6)
“와…….”
펠로우 입에서 감탄인지 뭔지 모를 소리가 나왔다.
막 두 손을 경박하게 휘저으면서였다.
중간중간 몰래 욕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검사하면서, 그것도 두 교수 앞에서 검사하면서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건 실로 부적절한 일이었다.
‘음.’
‘으음.’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그럴 만한 상황이어서 그랬다.
일단 40분이 소요되었다.
보통 10분 내외로 끝나는 검사라는 걸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게다가 대체 내시경 기기가 몇 번이나 막혔는지 기억조차 안 났다.
그거 뚫느라 계속 뺐다 넣었다 했더니 그때마다 뭐가 튀어서 사방이 난리도 아니었다.
“휴우.”
옆에 있던 간호사의 얼굴이 썩은 것도 우연은 아니란 얘기.
게다가 그 끝에 마주한 것은 그저 허공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대장이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교주님…….’
펠로우는 말없이 수혁과 조태진을 돌아보았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해명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대체 왜 관장도 하지 않은 대장을,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대장을 지금 내가 내시경을 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잔뜩 품고 있었다.
‘수혁아.’
조태진도 수혁을 바라보았다.
의문이나 해명을 원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결핵……인 거지?’
확인을 원하고 있었다.
“흐음.”
마침내 입을 연 수혁은, 당연하게도 당황하지 않았다.
뭐라도 나오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을 원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암이 나왔다면 그걸로도 족할 일이었다.
대장암으로 진단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언가 애매한 수치들, 그리고 애매한 영상들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역시 빈 대장이 최선이었다.
그게 이론적으로 맞다는 얘기였다.
“대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네? 아, 네. 근데 이게…….”
“덕분에 확실해졌습니다. 이 환자는 결핵이에요.”
“네?”
소화기내과 펠로우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결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결핵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이나 결핵이 흔한 나라 아니던가.
실제로 많은 교수들이 미국 연수 가서 결핵을 진단해 명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결핵이 진짜 드문 질환인 데 반해 여기서는 맨날 보다 보니 익숙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미국 의사들은 대한민국 의사들의 결핵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결핵의 기역 자도 없던데…….’
우리는 흔히 결핵이라고 하면 폐결핵만 떠올리기에 십상이었다.
사실 호흡기 질환인 것은 맞았다.
기침을 통해 공기를 떠돌게 된 결핵균이 감염을 일으키긴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체내에 들어온 결핵균은 말 그대로 어디서든 감염을 일으킬 수 있었다.
대장이나 소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크론이나 궤양성 대장염을 진단하는 데 있어 결핵을 감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소화기내과 펠로우 2년 차쯤 되면 그런 거 구분하는 데는 아주 도가 튼다는 뜻이었다.
‘다시 봐도…… 없는데…….’
펠로우는 본인이 개고생해서 그나마 깨끗하게 만든 대장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저 대장이었다.
정상이라는 얘기였다.
수혁이 보기에도 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우선 영상으로 돌아가죠.”
사방에 똥이 튄 더러운 현장에서, 아주 진지한 얼굴로 컴퓨터에 영상을 띄운 채였다.
그는 그렇게 영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보시면 좌측 천골에 골 괴사를 동반하는 종괴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죠. 이것만 보면 확실히 골 전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PET CT를 보면…… FDG(F-18 Fluoro Deoxy Glucose, 포도당 유사체) 섭취율이 12.0 표준 섭취 값(SUV, Standard Uptake Value)으로 애매하게 증가해 있죠. 종양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
“네, 글루코스 섭취량은 종양에서만 증가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염증이 있는 곳에서도 당연히 증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환자는 가족이 결핵을 앓은 병력이 있고, 그때 이렇다 할 검사도 치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잠복 결핵일 가능성이 아주 크죠.”
잠복 결핵.
이건 결핵균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말 그대로 결핵균이 몸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숨는 것이었다.
증상이야 당연히 없었다.
뭘 안 하니까.
게다가 단순 검사로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기가 꽤 옛날이라 제도적으로도 미흡했을 겁니다. 당시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했으니까요.”
결핵이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옛날부터였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얼마나 많은 명사들이 결핵으로 죽었나.
이상 문학상의 이상도 결핵으로 죽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되지 못했다.
“지금이야 보건소 가면 진단부터 치료까지 다 공짜로 해 주지만, 옛날엔 그렇지 않았겠죠. 그렇게 모르고 지내고 있다가…… 이 환자분처럼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면 비로소 결핵균이 자라게 되죠. 이 경우 폐보다는 다른 곳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처음부터 활동성 결핵으로 진단되는 경우보다는요.”
“그렇지. 그래……. 잠복 결핵이 있었을 거라고 가정하면 확실히…… 원인 미상의 골 전이 암보다는 결핵이 훨씬 가능성이 크구나.”
“네. 이게 더 타당한 추론이죠. 이만큼 검사를 했는데 원인 미상의 골 전이로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니까요.”
예전에야 원인 미상의 전이암도 상당수 있었다고 했다.
검사 방법이 마땅찮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PET CT가 나온 이후로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 옛날 일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럼…….”
“조직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육아조직이 자라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죠. 대장 내시경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침습적인 검사를 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겠지만, 이제는 하는 게 좋겠습니다.”
“좋아. 아이구, 우리 펠로우 선생. 수고가 정말 많았어요. 제가 언제 한번 크게 보답할게요.”
조태진은 수혁의 말에 허허 웃으며 펠로우의 어깨를 두드리려다가 말았다.
뭐가 묻어 있는데 그게 아무리 봐도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물질인 거 같아서 그랬다.
“아, 네.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되어서 영광입니다.”
굉장히 노골적이어서 당연히 왜 저러는지 알아차렸지만.
까라면 까는 문화에 익숙한 펠로우가 어찌 티를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눈앞에 수혁도 있었다.
진짜 도움이 되었다는 얼굴을 한 채로.
‘내가 이 천재에게 도움이 되다니.’
여한이 없다 뭐 이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여간에 최근 들어서는 제일 뿌듯한 일이었다.
해서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고, 일행은 그런 펠로우와 엉망이 된 현장을 두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선생님…….”
“네?”
“이거 어째요?”
“아, 제가 닦을게요.”
“아……씨. 같이 해야지 뭘 혼자 해요.”
나오자마자 잠시 소란이 일긴 했지만.
환자가 실려 있는 침대를 끌고 있는 입장에서 그쪽으로 신경이 쓰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조태진의 주치의였다.
‘진짜 폭풍이었다, 폭풍.’
아까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진 도는 데 갑자기 수혁이 합류하고부터 대체 이게 다 뭔 일이란 말인가.
‘근데 이 사람도 진짜 결핵이면…… 환자 둘이 주네? 그것도 어려운 환자들로?’
하지만 돌이켜 보면 다 잘된 일이었다.
이거 조태진 교수랑 둘이 머리 싸매고 고민했으면 최소 며칠 거리는 되지 않겠나.
이런저런 검사 하느라 시간 보내고.
예약 잡느라 전화통 붙잡아야 되고.
결과 물어봐야 되고.
그 결과 종합해서 또 고민하고.
‘와……. 그사이에 나 샤우팅 벌써 몇 번은 들었겠네.’
조태진이 원래 안 그런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요새 일에 좀 치이는지 진짜 화가 많아진 느낌이었다.
물론 자신이 일을 좀 못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병동이 떠나가라 화를 낼 정도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저렇게 웃네.’
같은 사람 맞나.
“수혁아, 덕분에 또 하나 해결하네. 환자분도 살리고 나도 좀 살고. 너무 좋다…….”
“제가 시간 나면 가끔 올게요.”
“정말? 그럼 너무 좋지. 사실 이게 아휴. 쉽지가 않아.”
“쉽지 않아서 더 좋죠.”
“응?”
“아뇨, 아닙니다.”
“하하하. 우리 수혁이는 농담도 진짜 고급지게 잘한다니까!”
저렇게 대놓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웃어?
자기가 ‘이야 이번 달에 어려운 환자 많아서 좋네요’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병동 천장에 목이 매달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단두대에 끌려가거나.
“아, 왔다.”
“좋아.”
그사이 일행은 병동으로 돌아왔다.
병실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처치실로 향했다.
“환자분, 조직 검사를 좀 할 겁니다.”
“네?”
“금방 끝나요. 제가 안 아프게 해 드릴게요.”
“어이구…….”
사실 관장 안 한 상태에서 검사하는 게 의사만 힘들 리가 있겠는가.
안 그래도 비쩍 마른 환자도 진이 다 빠져 있던 참이었다.
검사를 명목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진단은 중요했다.
제대로 된 진단도 없이 대체 뭔 치료를 한단 말인가.
특히 지금처럼 암인가 아닌가가 헷갈리는 상황에서의 진단은 더더욱 중요했다.
항암제와 결핵약은 기전이 아예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자, 그럼…….”
해서 수혁과 조태진, 그리고 나머지 의료진 모두 미안함을 뒤로하기로 했다.
“근데 직접 하게? 이거 힘든데.”
“괜찮아요. 저 잘해요.”
“뭐…… 그래. 잘하면 해야지.”
검사는 수혁이 나섰다.
뼈를 뚫어야 되는 검사라 고생일 텐데도 그랬다.
‘분석 들어가 줘.’
[네.]
바루다가 있어 그런 것일 뿐이었지만.
‘역시…… 교주님.’
‘역시 우리 수혁이.’
‘이래서 종교가 생기나.’
남들에게는 살신성인의 자세로만 보였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전도를 하면서 검사를 마친 수혁은 곧장 병리과로 달렸다.
현미경을 통해 조직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니, 여기 함부로…… 아, 이수혁 교수님.”
임상 의사가 병리과에 들어와 현미경을 보는 일.
당연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에 한해서는 익숙해진 지 오래라, 마치 홍해 갈라지듯 레지던트들이 비켜섰다.
수혁은 그 사이로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가 검체를 건네 슬라이드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결핵이 의심되니까 배양 검사도 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아, 네. 여기 일단…….”
“음, 볼까.”
그렇게 현미경에 비친 조직의 소견은 다음과 같았다.
“건락성 거대 세포 군집의 만성 육아종 소견이네요.”
“그럼……?”
결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