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6화 학회 (3)
학회 당일.
칠성 병원 원장은 자못 비장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그냥 이대로 가기는 좀 그래서 일단 미용실에 들렀다.
“이렇게…… 해 달라고요?”
아무리 이현종이 타인에 관한 관심이 떨어지는 인간이라 알려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애초에 이번 학회가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 칠성 병원의 고립이지 않나.
이토록 지독하게 나올 줄은 솔직히 몰랐더랬다.
설마하니 다른 병원과 연합을 해서 두들겨 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네.”
그래서 이쪽도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상대가 지독해진다면, 우리도 지독해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네, 알겠습니다.”
그 결과 미용실에서는 일반적인 헤어 메이크업이 아닌, 분장에 나서야 했다.
다행히 특수 분장까지 원하는 건 아니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심지어 콧수염도 여러 개 사 와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다.
그렇게 원장의 분신이 하나 탄생했다.
어떻게 봐도 잘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하여간 다른 사람 같아 보이는 데 있어서만큼은 성공했다.
“그……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고생했어요. 그럼.”
콧수염을 달고 머리를 볶아서 말아 올리고, 피부는 검게 바꾼 칠성 병원 원장은 그제야 학회장인 신라 호텔로 향했다.
“음.”
로비에서 아는 얼굴을 참 많이도 마주쳤다.
내과가 아니긴 하지만 칠성 병원 원장이란 지위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게다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메이저 병원 원장쯤 되면 이리저리 많은 행사에 불려 다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중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저 사람은 뭐야? 외국인인가?’
‘학회 명찰 달고 있는데……?’
‘이거 국제 학회라며.’
‘아…… 와……. 공갈이 아니었네.’
누군지 못 알아봐서이기도 했고.
몰골이 좀 기괴하다 보니 엮이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하여간 그 누구도 초대장에 쓰인 이름이 이 사람이라는 것을 대놓고 의심하지는 못했다.
‘와, 대박. 우리나라 사람이었어.’
접수대에 있던 직원은 좀 놀라긴 했지만.
워낙 행사를 많이 겪으면서 이런저런 사람을 많이 경험한 덕에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덕분에 원장은 아무런 제지 없이 학회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런 미친놈들.’
다이너스티홀.
대개 있는 사람들의 결혼식장으로 쓰이던 이곳은, 어엿한 학회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물론 국제 행사 중엔 이곳을 대관해 진행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로 돈 많은 행사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의학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돈 지랄도 이런 돈 지랄이 없다는 얘기였다.
또 어떻게든 태화 그룹과 직접적인 연계가 있을 거란 추론도 가능했다.
‘진짜 칼 갈았나.’
그저 두바이 왕자의 관대함이 그 이유였지만.
배배 꼬인 사람에게는 진실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해서 오히려 더 머리가 아픈 가운데,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이 연단에 올랐다.
이현종이었다.
‘얼굴 좋아진 거 봐라?’
머리도 넘기고 나비넥타이까지 하고 있으려니 아예 딴 사람 같았다.
“우리 통합진료의학회의 제1회 추계 학술 대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기자의 코디로 인해 다른 사람이 된 이현종은 껄껄 웃으며 뒤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현수막도 비단으로 만들어서 때깔이 달랐다.
확실히 오일 머니가 좋긴 좋다는 생각과 함께, 이현종은 아까 수혁이 해 준 말을 떠올렸다.
‘얼굴 꺼먼 저 사람…… 저거 분장이에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학회에 오면서 분장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의심을 품고 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저런 족보 없는 얼굴은 세상천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게다가 검색해 보니 명찰에 나온 이름하고 지금 얼굴이 달랐다.
‘뭘까.’
대체 뭘까.
저 이상한 새끼는 뭘까.
궁금했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상하기로 따지면 더 이상한 놈을 감시역으로 붙여 둔 덕이었다.
“자, 그럼 첫 번째 세션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자는 저 이현종입니다. 주제는 통합진료센터 의뢰 유무, 그리고 그 빈도에 따른 모탈리티 차이입니다.”
이현종이 분장한 불명인 옆에 붙여 둔 안대훈을 바라보며 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설마…… 진짜 이대로 가는 건가.’
‘와……. 노빠꾸 상남자네.’
‘이거 비난을 어떻게 피하시려고?’
팸플릿이 이메일로 왔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그나마 반신이라도 했던 것은 발신인이 이현종이라 그랬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주제라 해도 이현종이라면 혹시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반신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역시…… 우리 칠성이 타깃이로구만.’
칠성 원장은 거뭇거뭇하게 칠한 얼굴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눈앞에 드러난 통계 때문이었다.
프락치가 한둘이 아닌지 월별 중환자실 통계가 다 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통합진료센터 의뢰 기준에 합당한 인원들 숫자도 떠 있었다.
‘이런 미친. 아예 병원을 매수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한 내용이었다.
원장으로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현종 개새끼야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병원 자료가 왜…….”
“아니, 저건 나도 몰랐는데.”
“미친 거 아니야?”
그뿐만 아니라 많은 병원이 그랬다.
아마 이대로 돌아가면 대대적인 프락치 수색 작전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현종은 자신 있었다.
프락치 노하우가 있어서 그랬다.
‘애써 봐라 민간인들아. 이게 누구한테 배운 건지 아냐.’
다름 아닌 백강혁한테 배운 프락치이지 않나.
이번에 가서 슬쩍 물어보니, 과연 백강혁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하니 CIA의 고문이었을 줄이야.
“사실 현재 대부분의 서울 병원은 긴밀한 협조 중에 있어서, 보십시오. 3월부터 8월까지 모탈리티가 쭉 줄고 있죠?”
놀라움과는 별개로 강의는 꽤 들을 만했다.
프락치를 떼어 놓고 보면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저게 다 통합진료센터 때문이겠나 싶기는 했지만.
하여간 확실히 올해 3월부터 8월까지 모탈리티가 줄었다는 것은 통계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드라마틱한 것은 아선 병원이었다.
“아선을 보시죠. 5월까지는 의뢰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뭐, 높지는 않아요. 기본 나가리는 하는 병원이라.”
“흠흠.”
뒤에 있던 우창윤이 헛기침을 해 댔다.
기본 나가리라니.
사실 국내에서는 메이저 병원 두 개를 제외하면 경쟁자가 없는 병원이지 않나.
심지어 해외로 봐도 상대가 드물었다.
연구 역량이야 좀 달리겠지만, 임상 역량은 세계 정상급이라는 말을 쓰는 데 있어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그러나 의뢰가 시작된 6월부터 보면 갑자기 확 줄죠?”
‘뭐…… 거짓말은 아니야. 저 둘은 명백히 규격 외야.’
하지만 이현종, 이수혁은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아득히 위에 있는 존재라 봐야 했다.
에고가 강하다 못해 나르시시즘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우창윤조차 이제는 인정하고 있었다.
“이게 다 우리 통합진료센터의 위력입니다. 근데 이걸 애써 무시하는 병원도 있어요. 어디라고 제가 명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료에는 칠성이라고 딱 나와 있었다.
글자 크기가 작긴 해도 알아보려고 노력하면 다 보였다.
특히 칠성 원장에게는 너무도 뚜렷하게 보였다.
“여기만…… 3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정체되고 있어요. 원인이 뭐겠습니까? 괜히 라이벌 의식 불태우면서…… 우리 통합진료센터의 도움을 안 받고 있는 게 이유죠. 애꿎은 환자들 그만 괴롭히고 한시바삐 회개하시길 바라겠지만…… 공교롭게 오늘 이 자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것도 어렵겠네요.”
“하하하.”
이현종의 말에 대다수 사람이 웃었다.
그와 동시에 칠성 원장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칠성 뒷담화를 이렇게 대놓고 하는데 다들 웃어?
아무리 칠성이 역사가 짧다고 해도, 그건 다 상대적인 얘기 아니던가.
이제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원장 본인부터가 칠성 출신이었다.
신생 의대에 속하는 만큼 한해 졸업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다른 대학교에 비해 스탭으로 남는 비율이 월등히 높은 학교고 또 병원이었다.
어딜 가도 칠성 출신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이거…… 설마 진짜로……?’
농담이라고 해도, 자기 출신을 비웃는데 웃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점차 초조해졌다.
세션이 거듭될수록 그러한 초조함은 더더욱 심해져만 갔다.
다음 세션은 박국진 교수의 칠성 저격 쇼여서 더더욱 그랬다.
“제가 칠성에서 과장까지 했고, 협진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왜냐면 협진은 기본적으로 해당 과의 주요 업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협진을 낸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죠? 그 협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서 하나가 진단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절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협진이고…… 다른 진료 업무에 비해 결코 뒷전이 되어서는 안 되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찬밥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칠성은 교수들끼리 암투가 있어서 더더욱 그렇죠.”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원장으로서 참고 있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부들부들 몸이 떨려왔다.
박국진은 쉬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현대 의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고도로 발달하면서, 또 분과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장점도 있었지만, 우리 세대의 의사들은 전 세대 의사들에 비해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통합진료센터는 바로 이 약점을 극복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엄선해서 선발하고 또 여기 뒤에 계신 이현종, 이수혁 교수님의 사사를 받게 된다면, 여러분 병원에도 통합진료센터가 설립될 수 있을 겁니다. 칠성은 멀었겠지만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법한 타이밍에서 칠성을 욕 먹이고 있었다.
‘저놈 저거…….’
잠시 원장이 잠입했다는 것을 잊고, 분노에 떨게 되었을 정도로 노골적인 타게팅이었다.
‘옳거니, 저 사람 저거 칠성이다.’
그리고 단 한시도, 정말이지 단 한시도 눈을 떼고 있지 않던 안대훈은 마침내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고야 말았다.
“형님, 이 사람입니다.”
칠성 의료진을 싹 다 검색해서 대조 분석하라는 명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대훈의 친위대 중 하나가 사진을 들이밀었다.
칠성 병원 인사말이 쓰여 있는 페이지였다.
그 안에서 웃고 있는 사내는 어떻게 봐도 저 사내였다.
“잘했어. 은혜 있으리.”
“감사합니다.”
“나는 바로 보고드리러 간다.”
“네!”
안대훈은 껄껄 웃으며 이제 발표를 마치고 쉬고 있는 이현종에게 달려갔다.
“뭐……? 원장이라고?”
“네.”
“미친놈이야?”
“그런 거 같습니다!”
“수고했어. 이 새끼 이거.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