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화 외래 보다가 (2)
환자는 이게 진짠가 하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분명 자기 진료는 끝난 상황이었다.
진료가 어땠냐고 하냐면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젊은 의사가 참 친절하고 또 신속 정확하기까지 했다.
의사가 다 이 사람 같았으면 더 열심히 다녔을 거 같았다.
그래 봐야 돈이 부담되어서 그냥 참았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비틀…… 비틀거리는 걸 따라 해 보라고?’
그 와중에 어머니에 관해 물었더니, 그것도 성심성의껏 들어 주고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고마운 일인데 이게 좀 애매해졌다.
“해 보세요. 일어나서.”
수혁은 뭔가 공연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환자를 채근하고 있었다.
공연 쪽은 환자의 오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대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수혁은 흥미가 잔뜩 동한 참이었다.
[별거 아닐 거 같은데…….]
바루다의 만류도 별 소용이 없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하지만 기대하고 있는 동안엔 즐거운 법이었다.
이건 수혁이 오래전, 그러니까 보육원에 있었던 시절 익힌 한 가지 생존법이었다.
삶에 고통만이 가득했던 시절, 그나마 웃을 수 있게 해 주던 것은 말도 안 되는 기대였다.
매번 배반당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기대감을 품고 있을 때만큼은 견디기가 한결 나았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럼에도 수혁은 이 방법을 꽤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어…… 네.”
그 은근한 눈빛에 환자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의사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오래전 EBS에서 시행한 실험에서도 증명된 바 있었다.
그 실험에서 안과 진료 보러 온 사람들에게 토끼 걸음을, 그러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을 시켰는데도 다들 시키는 대로 했다.
“이렇게…… 이렇게 걸었어요.”
“흐음.”
“아니, 이렇게?”
“으으음.”
“아, 이렇게.”
지금 진료실 안에 들어와 있던 환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엔 조금 저어하는가 싶더니만 지금은 숫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면서 최대한 자기가 봤던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고 있었다.
진료실이 그리 넓지 않다 보니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그 모습이 어딘지 좀 우스워서, 사원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어깨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카락도 출렁였다.
그러나 수혁은 더없이 진지했다.
이제는 바루다도 그랬다.
‘다쳤나.’
[네, 저건 다쳤을 때의…… 그것도 발을 다쳤을 때의 걸음걸이입니다.]
바루다가 지금까지 켜켜이 쌓아 올린 데이터 풀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통합진료센터를 운영하면서부터 수혁이 겪어 온 케이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기도 했거니와 학회까지 창설하면서부터는 각 회원들이 경험한 케이스까지 죄 훑어보고 있어서 그랬다.
가능하면 영상도 담아서 토의하자는 안건을 올렸는데 그 안건의 발제자가 수혁이다 보니, 회원들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딱히 수혁의 권위를 존중해서는 아니었다.
회원이라고 해 봐야 태반이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등과 같은, 일종의 팬클럽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분.”
“네.”
“혹시 어머님…… 최근에 발을 다치셨나요?”
“네? 아, 아뇨. 아닌가? 아마 아닐걸요? 그런 일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걸음걸이의 특성을 특정한 수혁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환자가 딱히 기르려고 기른 게 아닌, 그저 오래도록 미용실에 들르지 않아 길어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없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환자는 어머니의 부상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환자 당화혈색소가 8이었지.’
[네, 꽤 높았습니다. 아예 관리를 안 하고 있어요.]
‘병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으니 당연하지. 어머니는 어떨까?’
[음.]
환자의 체형은 그리 뚱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뇨가 찾아왔다.
그것도 꽤 오래전에.
유전적인 소인이 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그 유전자는 어디서 왔을까.
“환자분. 지금 어머님께 전화해 보실래요?”
“네? 아니, 지금 일하고 계실 텐데.”
“일하는 시간에는 전화가 안 됩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제 전화는 무조건 받죠.”
“그럼 해 보세요.”
만약 어머니도 당뇨라면.
환자처럼 관리가 아예 안 된 상황이라면.
발이 다친 게 아니라 당뇨발이라면.
그 상황에서 힘들다는 말을 입에 계속 담았다면.
따르르릉.
환자가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환자의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안 받으시나요?”
수혁은 슬며시 옆에 놓아두었던 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지팡이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어.”
환자는 그제야 수혁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팡이가 작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숨겨 둔 것도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그만큼 진료실 안에서의 수혁은 존재감이 대단한 편이었다.
“왜…….”
“어머님, 어디서 일하시죠?”
“그…… 시장이요. 집 근처.”
“혹시 거기에 어머님 친구는 없나요?”
수혁은 외래 사원에게 말해, 안대훈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 녀석이 못 오면 하윤이라도 불러 달라고.
아니면 다른 레지던트라도 좋으니 아무나.
“어…… 네.”
수혁은 그렇게 답하는 사원에게서 고개를 돌려 환자를 마주했다.
환자는 당황한 얼굴로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전화는 걸어 둔 상황이었는데, 여전히 환자의 어머니는 답이 없었다.
“여, 여기.”
“이제 그 사람에게 걸어 보시죠.”
사실 수혁의 요구는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
누가 환자 진료하다가 마구 전화해 보라고 시킨단 말인가.
하지만 환자는 별말 없이 수혁의 지시를 따랐다.
뭔가 쌔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환자를 바라보는 수혁의 얼굴이 워낙에 심각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생글생글 웃어 가면서 농담도 하고, 격려도 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무언의 압박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키가 큰 사람도 아니었으나, 서 있어서 그런가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이 있었다.
“아, 저…… 저 기훈이에요.”
“어, 웬일이야? 안 그래도 아까 좀…….”
“그, 저희 엄마 옆에 있어요? 전화 안 받아서.”
“아……. 출근하고 얼마 안 돼서 집에 갔어. 오늘 몸 안 좋다고. 생전 그런 적 없던 사람인데…… 이상하지.”
“그, 그래요?”
“응, 얼굴빛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 너도 오늘은 어디 쓸데없이 나돌아다니지 말고 집으로 가.”
“아, 네네. 알겠어요. 네.”
수혁은 옆에서 통화를 엿들었다.
아니, 엿들었다는 표현은 어불성설이었다.
그야말로 대놓고 들었으니까.
[쌔한데. 이상한데요?]
‘응. 패혈증 또는…….’
[그럼 죽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사람 부른 거야.’
[아.]
어느 정도 변고를 예상하고 있던 수혁과는 달리 환자는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무리는 아니었다.
단둘이 사는 엄마가 몸이 이렇게 안 좋다는데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 않나.
하지만 수혁은 환자가 단순히 감정에 충실하도록 두지 않았다.
“환자분.”
“네.”
“집에 전화해 보세요.”
“아, 네.”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도 거절할 수 없는 압박이 있었다.
환자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하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출근하자마자 집으로 갔다고 했는데.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환자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수혁의 심각한 얼굴, 기이한 압박과 함께 어머니의 부재가 한데 어우러진 탓이었다.
불안했다.
너무.
“부르셨습니까, 교주…… 교수님!”
그때 외래 문이 벌컥 열리고, 대머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수혁 혼자 있을 거라 예상했었는지 교주라 부르려다가, 환자를 확인하자마자 즉각 호칭을 바꾸었다.
하여간 이상한 새끼긴 한데, 그래도 평판을 생각하는 이상한 새끼였다.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충성심을 보라.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불렀는데도 즉각 오다니.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안대훈의 충성심을 또 한차례 대변하고 있었다.
“그래, 대훈아.”
“네!”
“여기 환자분이랑…… 집으로 가서 환자분 모셔 와. 응급실 가서 앰뷸 타고. 내가 전화해 놓을 테니까.”
이쯤 되면 아무리 충심 깊은 사람이라 해도 왜 그러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한 상황이었다.
환자도 안대훈도 사원도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안대훈이 품은 충심의 기원은 신앙이었다.
질문이 필요 없는 믿음이었다.
“네!”
“아니, 네?”
의문은 오히려 환자에게서 터져 나왔다.
수혁은 그런 환자를 보며 말했다.
좀 치사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의사가 누군가를 설득할 때, 이 핑계를 대면 일이 쉬웠다.
“어머니가 위험해요.”
“네? 아니,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무엄하네요! 점쟁이라니! 우리 교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네?”
“잔말 말고 갑시다! 교수님 기준에서 위험할 정도면 죽을 수도 있어요!”
“어. 어어.”
게다가 안대훈이 있으면 더 쉬웠다.
안대훈은 광기에 휩싸인 채로 환자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
환자는 마른 데다가, 당뇨까지 있다 보니 도저히 그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어, 이 사람 이거!”
게다가 도움도 바랄 수가 없었다.
이곳은 병원이고 안대훈은 의사여서 그랬다.
머리가 없어서 레지던트가 아니라 어엿한 교수로 보이는 편이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얼굴로 환자를 끌고 가는데, 누가 감히 방해를 한단 말인가.
“어, 형님.”
“어, 너 좀 도와라. 이분 모시고 응급실 가야 해.”
“아, 네.”
심지어 안대훈은 이곳저곳에 심복들이 아주 많았다.
그냥 선후배 사이보다 훨씬 끈끈한 심복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순간 들러붙는가 싶더니만 곧 무리를 이루어 환자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시발.”
급기야 환자가 욕설을 내뱉었으나 아무 소용 없었다.
아무리 운동하고 담쌓은 의사들이라지만.
열댓 명이 달려드는 통에야 이길 수가 없었다.
“개판이네.”
[그러게요.]
수혁은 문을 열고 나와 서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하여간 환자는 저대로 의사와 함께 집으로 가게 될 터였다.
가서 별일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그럴 거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패혈증이면 좋겠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방치된 당뇨는 그야말로 위험한데, 지금 일련의 상황이 한 가지 질환을 가리키고 있어서 그랬다.
‘뭐, 환자가 온 다음에 보지.’
[네. 일단은 외래를 끝내야죠.]
수혁은 그렇게 다시 안으로 들어가 사원의 어깨를 톡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사원은 방금 있었던 소란을 금세 잊고 환자를 불렀다.
이현종 아들이자, 스스로도 괴짜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다음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