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화 외래 보다가 (1)
떨떠름하다.
우창윤의 말투는 정말이지 떨떠름하다는 말의 형상화 같았다.
그만큼 노골적이었고 또 선명했다.
물론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같이 가기로 한 몸 아닌가.
게다가 수혁은 벌써 몇 번이나 우창윤에게 도움의 손을 건넨 적이 있었다.
비록 처음엔 반강제적이었지만 하여간 그 덕에 우창윤이 자신의 환자를 잃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네, 우 교수님.”
해서 수혁은 당당하기 그지없는 말투를 고수했다.
‘와……. 이현종인 줄.’
우창윤은 그런 수혁이 부담스러웠으나, 배은망덕한 타입은 또 못 되어서 일단은 장단을 맞춰 주었다.
“어, 그래……. 무, 무슨 일인지 아직 얘기를.”
“저희 회원이시잖아요.”
“회원?”
그래도 한 번은 모르쇠를 쳐 보았다.
학회 창설 멤버라니.
그것도 다분히 태화가 주축이 되는 학회에 아선 기조실장인 자신이 끼어들었다니.
처음엔 솔직히 말해서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파티를 열 때도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이러다 말겠지 했다.
이수혁은 몰라도 이현종은 우창윤이 아주 잘 아는 인간이어서 그랬다.
‘절대 행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그랬더랬다.
의사로서 걸출한 실력과는 별개로 행정은 그닥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이현종이 원장이던 시절에 칠성과 아선에 조금이나마 기회가 주어졌더랬다.
하지만 임기 후반, 그러니까 수혁을 아들이라고 공표한 시점부터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변하는가 싶더니만 이번에 만든 학회도 나름 잘 꾸려 나가고 있었다.
“학회요. 통합진료학회.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실까.”
그리고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빼다 박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 그래. 맞네. 어……. 맞아요.”
“그거 준비해야죠, 슬슬.”
“어…… 나도?”
“그럼요. 당연한 일이죠. 그냥 회원이 아니라 이사이신데.”
“아…….”
“그리고 요새 환자 보내시는 게 좀 뜸하지 않나요?”
“어…….”
우창윤은 실제로 좀 뜨끔해서 눈앞에 놓인 모니터를 주시했다.
모니터에는 당연하게도 EMR, 그러니까 전자 차트가 떠 있었다.
모르겠는 환자라.
이 인간이 귀신인가.
우창윤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이 환자는 혼자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아니, 뭐 나도 실력이 나쁘진 않아서.”
“그건 그렇죠. 그래도…… 정 모르겠는 환자가 있으면 보내 주세요. 우리 사이가 뭐 남도 아니지 않나요?”
“어……. 뭐, 그렇지. 알겠어. 그래, 음. 어.”
우창윤은 당황을 숨기기 위해 어버버 거리다가 일단 전화를 끊었다.
바루다가 없다고 해도 꽤 노골적인 힌트였다.
내심, 그러니까 무의식 속에서는 수혁의 도움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랬다.
어쨌거나 수혁이 도왔던 두 건의 케이스는 굉장히 인상적이지 않았나.
그 후로 내분비내과 이외에 다른 케이스를 아선에서 태화로 보내는 것을 용인하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다만 내분비내과는 본인이 틀어쥐고 있었다.
‘아……. 근데 이 환자는 진짜 뭐냐고.’
모르겠다.
진짜로.
대체 왜 이 환자가 이러는지.
다행인 것은 아직 중환자실로 갈 정도는 아니란 건데.
워낙 기저 상태가 안 좋은 환자다 보니, 뭔가 조치를 취하긴 해야만 했다.
‘내일…… 내일까지 모르겠으면 연락하자.’
우창윤은 후우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두었던 몬스터를 들이켰다.
그냥 먹으면 좀 맛이 이상해서 얼음까지 탄 채였다.
차게 해서 쭉 들이켜고 나면 머리가 좀 더 돌지 않을까 하는 미신 같은 믿음 때문이었다.
두근두근.
수혁과의 통화도 그렇고 아드레날린이 팍 하고 올라갔다.
혹독한 의대 생활과 인턴 그리고 레지던트에 이어 대학 병원 교수로 재직해 온 그에게는 익숙한 고양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양감을 유의미한 결과로 잇는 것도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해서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그 즉시 케이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했지?’
우창윤이 그렇게 환자를 보기 시작했을 무렵, 수혁은 바루다와 대화 중이었다.
힐끔 시계를 보니 아직 8시 55분이었다.
외래까지 5분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허비해도 좋을 시간이겠지만.
수혁에게는 아니었다.
[네. 이상했습니다. 되게 허둥대던데요.]
‘내과 학회에서 내 위치가 우창윤 교수님을 허둥대게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
[알면서 묻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명성과는 별개로, 서열은 한참 아래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뭔가 정곡을 찔렀다는 얘긴데.’
[뭐…… 하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 지금 어려운 케이스로 낑낑대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여간 그간 하윤이가 아선 데이터 준 거 보면…… 그 교수님도 여간내기는 아냐. 하긴, 그 나이에 기조실장이라니. 정치질만으로는 불가능하지.’
대학 교수들끼리도 암투는 나름 있는 법이었다.
어느 대학이 됐건 총장 선거 같은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복마전.
그야말로 복마전이었다.
특히 업적이나 명성이 엇비슷한 후보들이 나왔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의대도 대학의 축소판이니만큼 당연히 그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긴 했으나, 아주 명확한 차이점이 있었다.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운 인문 계열과는 달리 의학은 아주 명확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나.
가령 논문이라든지, 임상 성과라든지.
이건 정치질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수님. 진료 시작할까요?”
우창윤의 내분비내과적 지식을 속으로나마 칭찬하고 있으려니 외래 사원이 물어 왔다.
즉각 답을 하는 대신 시계와 환자 대기표를 돌아보았다.
아직 1분 전.
그리고 꽉 찬 환자.
아니, 꽉 찬 것을 넘어 눌러 담은 느낌이었다.
‘하.’
[좋죠.]
‘그래, 좋지.’
태화 생명 그리고 태화 바이오 측에서는 꾸준히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로는 태화 의료원 띄우기가 목적이었지만, 그 중심에 수혁이 있다 보니 당연히 수혁 개인의 명성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 되게 젊으시네요?”
그 명성만 듣고 어렵게 예약에 성공한 환자들이 의아해할 지경이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보통 대학 병원 교수라고 하면 머리가 좀 희끗희끗한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수혁의 앞에 늘 붙는 별명 ‘명의’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 제가 관리를 좀 잘해서요.”
실제로 젊어서 젊어 보이는 것이지만.
수혁은 굳이 그러한 사실을 짚지 않고, 예의 그 찬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본래도 갖고 있는 미소였으나 바루다의 도움을 통해 더더욱 빛을 발하는 미소였다.
“아……. 네.”
환자는 수혁을 보자마자 살짝 들었던 의구심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수혁의 미소와 자세 그리고 말투는 신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아, 저, 교수님.”
그렇게 환자를 대강 50명 정도 보았을 무렵이었다.
입원이 필요한 환자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환자도 있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환자도 있었고, 괜찮은 환자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 입장에서 어려운 환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벌써 50명이나 봤으니 외래는 다 끝나 가고 있었다.
남들 같았으면 안도의 한숨이라도 쉬었을 타이밍이었으나 수혁은 오히려 아쉬워하고 있었다.
“네, 환자분.”
그때 나가려던 환자가 문고리를 잡은 채 질문을 해 왔다.
이런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었다.
의사에게 병원은 그저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환자에게는 낯설고 또 무섭고 두려운 공간이지 않나.
아무리 자주 오는 환자라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마주하면,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을 까맣게 잊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 딱 나가려고 문고리를 쥐었을 때 돌연 궁금했던 점이 생각나는 것을 문고리 효과라 했다.
“그, 저. 저는 아니고요.”
“네.”
수혁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또한 이현종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간혹 문고리를 쥔 환자가 결정적인 힌트를 주기도 한다고.
딱히 그 조언이 아니라 해도 수혁은 벌써 몇 번이나 경험이 있었다.
해서 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표정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제 어머님이 계시는데요.”
“네.”
“요새 자꾸 힘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왜 그런 걸까요?”
“음.”
“아유, 죄송합니다. 내가 별걸 다.”
“아뇨, 아닙니다.”
힘이 없다.
이게 젊은 사람이 한 말이라면 그냥 무시해도 좋을 말일 터였다.
특히 멀쩡히 일상생활 다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 환자의 나이는 40.
어머니라면 최소 60은 넘었을 터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의학적인 기준에서 볼 때 노인이라는 뜻이었다.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남은 참이었다.
환자도 3명인가 남았지만, 수혁이 워낙에 진료 속도가 빨라서 그런가 예약 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그 와중에 뭔가 촉이 온 느낌이었다.
[잉……. 힘이 없다는 것만 듣고요?]
‘일단 봐 봐. 느낌이 그래.’
그냥 나가려던 환자는 반갑다는 얼굴로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 그게 저희 어머님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거든요.”
“네.”
수혁은 환자의 말을 들으면서 방금까지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하고 있었다.
원래 수혁은 초진 환자를 볼 때 질문을 자세히 하는 편이었고, 또 통합진료센터 외래를 보기 전에는 반드시 설문지를 작성해야 하기도 했기에 정보가 꽤 많이 들어가 있었다.
‘환자는 어머니랑 단둘이 산다. 의료 접근성은 극히 제한되어 있어. 국가 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된 선종으로 왔다고 하지만…… 의뢰서를 보면 이 환자…… 고혈압에 당뇨도 있어. 근데 먹는 약도 없고 딱히 병원 다닌 적도 없다고 하지.’
지금 치료 안 하면 죽을 거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왜 그 병원에서 안 보고 여기까지 왔냐고 했더니, 생전 처음 병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대학 병원까지 왔다고 했다.
‘수치를 보면 적어도 10년은 넘었어. 이미 안과 합병증은 진행 중.’
[그거랑 어머님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젊은 아들도 병원을 이렇게 안 가는데, 어머님이 가셨겠어?’
[얘기가 그렇게 됩니까? 어머님이 따로 갔을 수도 있죠.]
‘내가 고아라 잘 모르긴 하지만…… 주변에 보니까 보통 부모님들은 자기 건강부터 안 챙기는 거 같더라.’
[진짜 잘 모르는 거 아닌가……?]
어떨 때 보면 점차 감정을 깨달아 가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럴 때는 영락없는 깡통 그 자체였다.
수혁은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고 나무라고는 환자의 말을 경청했다.
“되게 건강하세요.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시고…… 고스톱도 치셔서 머리도 맑고.”
“네.”
“근데…… 아까, 아까 같이 시장 들렀다 왔거든요. 되게 오랜만인데.”
“네.”
“다리를 절더라고요.”
“종종걸음인가요?”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기억하시면 제 앞에서 그렇게 걸어 볼래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