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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73화 (673/1,303)

673화 추계 학회 준비 : 장강명 (1)

속으로 시발시발 하면서 걷고 있으려니 어느새 병실이었다.

수혁이 봐준 환자인 만큼 환자는 통합진료센터와 바로 연하여 있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사실 약을 쓰면서부터는 중환자실에 반드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기는 했다.

김인수가 데려온 환자와는 달리 급성 신부전증까지는 오지 않았던 덕이었다.

다행히 이 환자의 신장은 원래 괜찮아서 그랬다.

워낙 젊은 환자였기도 했고.

그러나 수혁은 이현종의 가르침대로 의학에 있어서는 과한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이라 그냥 그렇게 해 두었다.

“좀 어때요?”

졸지에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된 환자가 수혁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수혁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바이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환자는 이제 고비를 넘겼다.

“아, 네. 어제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래도 좀 피곤하기는 한데…….”

“네, 급한 불만 끈 거라서요. 중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원인도 좀 들여다봐야 하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그 외에도 환자 상태를 좀 더 점검했다.

아침에 나간 피 검사 결과를 보면서, 칼륨 수치가 호전되었음부터 확인했다.

지금은 정상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환자는 다리를 잘 움직였다.

어제처럼 부들거리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몇 가지 사안을 더 확인하고 난 수혁은 고개를 돌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 하나를 보았다.

“그, 안녕하세요.”

김진용이었다.

딸꾹질이라도 할 거 같은 얼굴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제 말했던 것보다 더 많은 교수가 오지 않았나.

그중에서 김진용을 이뻐하는 교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교수가 있지도 않긴 하지만.

하여간 껄끄러운 사람들만 있었다.

“발표 준비는 잘했어요?”

수혁은 다시 존대로 대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반말을 했다간 소문이 어찌 날지 모른다는 바루다의 조언 때문이었다.

‘여기는 다 내 빠돌이들인데?’

[그래도요. 하극상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그래 뭐. 닳는 것도 아니고.’

별로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수혁은 애초에 싫은 인간에게는 무감해지는 타입의 인간이라 그랬다.

물론 김진용에게는 수혁의 존대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갔다.

‘이…… 이 무서운 새끼 봐라?’

어제는 그렇게 따박따박 반말로 조지더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꼬박꼬박 존대를 해?

성질 같아서는 확 들이받고 싶었지만.

김진용은 오랜 병원 생활을 통해 숙여야 할 때를 아주 잘 알게 된 지 오래였다.

의학 지식보다 눈치가 더 늘었다는 느낌도 방금 받았는데, 그래서 살짝 현타가 왔다.

“여기서 발표하는 건 좀 그렇고…… 회의실로 가죠.”

“아, 네.”

수혁은 방황하는 마음만큼이나 눈동자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김진용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떻게 봐도 모자란 제자를 걱정하는 교수처럼만 보였다.

특히 애초에 수혁이 하는 일이라면 진한 편견을 두고 보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만 보였다.

‘역시 우리 수혁이가 속이 깊네.’

‘저 새끼랑 사이 안 좋았던 거 같은데…… 확실히 수혁이가 그릇이 크다니까.’

‘형은 너한테 참 배우는 게 많다…….’

신현태, 이현종, 조태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장강명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추계 학회 준비에 일조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그 생각만 나서 그랬다.

말이 세션 준비지, 막상 하려고 하면 죽도록 힘든 일이지 않나.

제아무리 학회에서 닳고 닳은 교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 세션은 케이스부터가 문제였다.

‘시발, 그걸 언제 찾아서 언제 다 의뢰하냐고.’

어려운 케이스라는 게 원하지 않을 때는 눈앞에 떡떡 나타나는 법이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이렇게 찾을 땐 안 나오는 법이었다.

머리가 아파 왔다.

왜 평안했던 내 삶이 이렇게 됐을까.

누가 내 마음에 돌을 던지나.

‘아니, 날 왜 이렇게 째려보시는 거지.’

장강명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강한 사람이라고 할까?

이게 뭐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본능이 그랬다.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수혁에게는 아무 감정이 안 생기고, 이 자리에서 제일 약자라 할 수 있는 김진용에게만 분노가 샘솟았다.

‘왜……. 내가 무슨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김진용은 당황한 마음을 안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 해 봐요.”

그리고 수혁의 재촉에 의해 유에스비를 컴퓨터에 꽂고 떠밀리듯 발표를 하게 되었다.

주제는 어제 수혁이 말해 주었던 대로 갑상선 중독증과 그로 인한 횡문근 융해였다.

‘3년 차까지 했는데 설마 개판 치겠나.’

태화 의국은 정도 이상 멍청해지는 건 용납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사람은 중간에 나가야 했다.

몰아붙이는 성향이 있어서 그랬다.

김진용이 그 안에서는 꽤 처지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마인드가 별로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할 것이라는 것이 수혁의 판단이었다.

“그…… 갑상선 중독증이란 쉽게 말해 우리 몸에 갑상선 호르몬이 너무 많아진 상태를 말합니다. 원인은 주로 갑상선 기능 항진증입니다. 간혹 갑상선 기능 저항증 환자가 갑상선 호르몬을 과용하면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건 사고로 분류될 정도로 극히 드뭅니다.”

하여간에 발표가 시작되었다.

첫 부분은 평이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냥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이걸 놓쳐?’

[멍청해서라기보다는 성의가 없는 거죠.]

‘아예 머리 끄고 사나.’

[그렇다고밖에는 판단이 안 섭니다.]

간혹 있다고 듣기는 했다.

전역할 때까지 자리만 지키다가 나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논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전문의 대우가 형편없다는 것 그리고 군 병원 시스템이 개판이라는 것.

‘그런 게 새꺄! 환자 대충 보는 데 들 수 있는 핑계라고 보냐!’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이현종한테 뒤지게 혼났던 것은 기억이 났다.

심지어 이현종이 태화의 전신인 한국대학교 병원 의국 내 폭력을 없앴던 장본인이니만큼 끔찍이도 싫어하는 폭력을 행사했더랬다.

그래 봐야 들고 있던 튀기인가 뭔가를 상대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던진 것이긴 했지만.

당연히 누구에게나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 꽤 유명한 일이 되기도 했다.

‘흐, 떨린다.’

김진용도 알고 있는 일화였다.

때문에 무척 떨렸다.

저지른 짓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방금 멘트는 외운 대로 딱딱 잘한 거 같은데도 모두가 냉담한 얼굴이었다.

“그…… 이렇게 갑상선 중독증이 발병하게 되면 증상은 체 대사율이 증가하면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증상을 포함…… 하게 됩니다. 쉽게 피로를 느끼고 식욕이 증가하나 체중은 감소합니다.”

“이 환자는 어땠죠?”

그때 질문이 훅 치고 들어왔다.

수혁이 아니라 장강명이었다.

벼른 만큼 패드에 해당 내용이 떠 있었다.

소화기내과라 엄밀히 말하면 지금 김진용이 발표하는 건 딱히 상관없는 내용인데도 어떻게든 조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말하자면 교수 짬밥에 더해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장강명 대 그리 뛰어나지 않은 군의관 김진용의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얘기였다.

“어……. 그. 후향적으로 보니 체중이 감소한 바 있습니다. 피로하다는 언급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후향적? 환자를 이번에 처음 봤나?”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럼 결국, 놓친 거네.”

“그…… 네, 일단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은? 놓쳤으면 놓친 거지. 왜 핑계를 대?”

“네, 죄송합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그래. 넋 놓고 있지 말고, 발표 계속해.”

“네.”

김진용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쉰 후, 말을 이었다.

“이렇게 갑상선 중독증이 있는 상황에서 운동을 하게 되면 횡문근 융해증이 올 수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구보 후 발생한 횡문근 융해증으로 진료실에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환자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대한 치료와 함께 횡문근 융해증에 대한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곧 호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수혁도 옅은 한숨을 쉬었다.

고작해야 이렇게밖에 추론을 하지 못하다니.

이게 정말 전문의의 발표란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들고 있던 폰으로 대가리를 찍고 싶었다.

아마 안대훈 아니, 하윤이라고 해도 이것보다는 더 나을 거 같았다.

‘일부러 내가 진짜 진단명은 숨겼는데…… 그래도 치료하는 거 보면 모르나?’

[모르나 본대요? 문제는 장강명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이래서야 직접 조져야 하는데…….]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장강명 교수님이 조질 수 있게 해 주면 돼.’

[어떻게요? 아. 와, 악마네?]

수혁은 쯔쯔 하면서 파일 하나를 장강명 카톡으로 보냈다.

까톡.

장강명은 회의 시간에 난데없이 울린 카톡에 흠칫 놀랐으나, 이내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아온 파일명을 확인하고부터는 음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역시 이현종 아들이라 그런가 남다른 편이었다.

동시에 적으로 돌리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잠깐.”

김진용은 이제 치료에 관해서만 말하고 앉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자기가 놓치긴 했지만 그리 어렵진 않은 케이스라 의아했던 참이었다.

수혁이 자신을 너무 무시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김진용을 장강명이 멈춰 세웠다.

흐흐 웃으면서였다.

“지금 이 환자 진단명이 그럼 뭐지?”

“네?”

“진단명이 뭐냐고.”

이상한 걸 물어 왔다.

김진용은 잉 하는 얼굴로 답했다.

어제 수혁이 말했던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었다.

“갑상선 증독증에 병발된…… 횡문근 융해증입니다.”

“맞아?”

“네?”

아니, 증상이 그런데 그럼 뭐란 말인가.

김진용은 어제 이 진단명을 말했던 수혁을 돌아보았다.

‘뭐야.’

수혁은 웃고 있었다.

장강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소였다.

미끼를 물어 분 것이여 라고 중얼거리고 있기까지 했다.

‘시발?’

이게 아니구나 하는 순간 장강명이 말했다.

“환자 증상이 정확히…… 어땠지?”

“네?”

“환자가 구보를 못 하겠다고 한 게 힘들어서야? 아니면 못 뛰겠다고 했어. 아까 기록 보니까 정확히 써 있던데.”

기록, 기록이라.

그건 수혁이 적었더랬다.

김진용도 발표 준비하느라 당연히 봤다.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이제 보니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못 뛰겠다고…….”

“그 밑에 뭐라고 써 있었지?”

“다리를 못 움직이겠다고…….”

“하지 마비네? 어제 검진한 것도 그렇고. 하지 마비야.”

“어…….”

힘들어서가 아니란 말인가.

김진용은 갑자기 눈앞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강명은 말을 이었다.

“검사 결과에서 칼륨이 떨어져 있고…… 이게 호전되니까 환자 증상도 좋아졌어. 갑상선 중독증에서 칼륨 수치가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하지 마비.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방금 전까지는 자기도 몰랐던 사람치고는 꽤나 당당했다.

과연 학회 짬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원래 되게 잘 알았던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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