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71화 (671/1,303)

671화 군의관 김진용 (4)

수혁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사람을 상대로 날을 세운 채, 프로브를 환자의 목에 들이댔다.

물론 환자를 돌아볼 때는 얼굴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환자분, 조금 차갑습니다아.”

“네.”

“빨리 봐 드리고, 설명드릴게요.”

“네, 교수님.”

무슨 사이코 드라마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이게 바루다의 도움이 없이 온전히 수혁의 능력만으로 이루어 낸 업적임을 알았다면 아마 다들 소름이 왈칵 돋아 올랐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걸 아는 존재는 오직 하나, 바루다뿐이었다.

[소름.]

‘몸도 없으면서.’

[하여간 소름.]

수혁은 그런 바루다의 찬사를 들어 가면서 환자의 목, 정확히 말하면 갑상선이 있는 부위에 프로브를 가져다 댔다.

예고했던 것처럼 조금 차가웠는지 환자가 살짝 인상을 썼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는 환자의 갑상선이 떴다.

원래 알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물론 원래 알고 있던 것이 있어야 차이점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의 모양이기는 했다.

그냥 봐서는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 도저히 감별해 낼 수 없었다.

“어…….”

수혁은 제일 먼저 눈이 동그래진 하윤부터 확인했다.

‘보아하니, 얘는 아는 거 같고.’

[알아야죠. 수혁 따라다닌 게 벌써 몇 년인데.]

‘하긴 그것도 그렇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럼에도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수혁이 티칭 마인드가 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적으로 이뻐하는 후배는 손에 꼽지 않나.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그냥 정 주고 사는 후배는 안대훈과 우하윤 둘이 다였다.

그런 애가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건 꽤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음.”

그에 반해 김진용은 별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게 뭐 어쨌다고 라는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전문의라는 놈이.’

[전문의라고 해도 초음파를 직접 보는 경우는 거의 없기는 하죠.]

‘우리 병원 수련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냐?’

[제가 태화 욕을 한다고요?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닙니까?]

‘근데 왜 말을 애매하게 해.’

[음. 정정합니다. 저 새끼가 공부를 어지간히 안 했군요.]

‘그래, 그래야 맞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꽤 많았다.

보통 사람들도 그렇지 않나.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은 더더욱 그랬다.

특히 김진용처럼 한때나마 수혁이 눈치를 봤어야만 했던 인물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진짜 모르네. 이 새끼?’

수혁은 설마 하면서, 그러니까 김진용에 대한 기대보다는 내 병원 태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프로브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이런다고 해서 어디 뭐 종양 같은 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병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이쯤 굴렸으면 한 가지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소견이 있었다.

정상적인 갑상선보다 지금 이 환자의 갑상선이 훨씬 커져 있다는 것.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혈류의 양도 훨씬 증가해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이 환자는 지금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진용 선생.”

“어, 네?”

수혁은 그게 제일 적나라하게 보이도록 초음파 윈도우를 잡아 놓은 채, 김진용을 불렀다.

그럼에도 김진용은 그저 멍한 얼굴이었다.

속으로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졸려 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뭐? 미친놈이? 환자 놓쳤다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고?’

[모든 의사가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보는 건 아니니까요. 전에 조태진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군의관은 특히 그러한 경향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현장에서 좌절을 겪어서 그런 거지.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는 건 아니지.’

바루다의 분석을 들으니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냥 기가 찼다.

저런 놈을 그래도 좀 가르쳐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자신이 좀 그렇다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에 저 새끼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윤도 있었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기 환자 진료 끝낸 레지던트들도 몇 모여 있었다.

“모르는구나.”

“네?”

“이 환자 갑상선…… 미만성 종대가 있지. 게다가 혈류도 크게 증가해 있고. 이렇게 되면 뭘 의심해야 해?”

“아.”

이렇게까지 말을 해 줬는데도 모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김진용이라 해도 마찬가지여서, 이제야 얼굴이 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갑상선 항진증이 방치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물론 이제 수혁은 김진용을 더 이상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레지던트들, 그러니까 제자들과 환자를 돌아보고 있었다.

말투도 어느새 자상해져 있었다.

수혁은 모르고 있었지만, 레지던트들이 딱 교주에게 바라는 그런 모습이었다.

“일단 힘들어. 뭐만 해도 힘이 들어. 그리고 체온이 올라가. 아마 군대에서도 열 쟀을 때 딱 발열이라고 정의할 정도는 아니어도…… 기초 체온이 올라가 있었을 거야.”

이번에는 김진용 뒤에 서 있던 의무병을 돌아보았다.

기록을 열심히 해 온 바 있는 의무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자인 김진용이 묵살하는 바람에 다 의미 없는 소견이 되어 버렸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환자가 주로 구보 후에 피로감을 호소했다는 거야. 심지어 며칠은 구보를 하지 못한 적도 있지.”

수혁은 의무병의 끄덕임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건 꽤 중요한 단서였기에 일부러 고개를 좀 빨리 돌려서, 모두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하윤은 뭔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연기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알았을 터였다.

이제 수혁과 하윤도 하루 이틀 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왜 그럴까? 갑상선 항진증이 있을 때, 하지의 무력감이 발생하기에 그래. 이게 한 번이라면 모를까…… 반복되고 있다면, 내과 의사라면 반드시 뭔가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야 해. 그냥 이등병이 뺑끼 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내깔겨 두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거지.”

수혁은 마지막으로 김진용을 응시했다.

뭔가 배우리라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후배들 앞에서 까임으로써, 쪽팔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태화 출신으로 살아갈 텐데 지금처럼 이래서는 안 되지 않겠나.

언젠가 이현종이나 신현태가 의국 망신시키는 놈들 불러다가 교육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을 때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팍 갔다.

아무리 잘해도 저렇게 욕 먹이는 놈들이 있어서는 의국이 전체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울 터였다.

“게다가 이 환자는 오늘 콜라 색 소변을 봤어. 이거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아니다, 인턴 샘. 한번 말해 봐요.”

“횡문근 융해증의 소견입니다.”

“그래……. 인턴 샘도 알지. 아니야, 아마 학생들도 알걸?”

콜라 색 소변은 본과생만 되도 아는 소견이었다.

족보 중의 족보라 그랬다.

족보가 왜 족보일까?

그만큼 흔한 질환이거나, 또는 그만큼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질환이라서 그랬다.

“이걸 보고도 뺑끼라고 생각하는 건…… 의사가 아냐. 그런 사람은 진료를 하면 안 돼.”

수혁은 김진용을 노려보았다.

김진용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귀 끝이 빨개져 있었다.

그래도 부끄러운 건 아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이 들진 않았다.

저런 놈은 한번 된통 당해 봐야 했으니까.

“그리고 환자를 보자. 초음파를 대기 전이라 해도…… 환자 얼굴과 목을 보면 어떻지?”

“눈이 좀…….”

“그래. 눈이 앞으로 나와 있지? 그리고 또?”

“목도 살짝 부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목이 이런 식으로 붓는 게 말이 돼?”

“아뇨. 그건 좀.”

“그럼?”

“갑상선이 커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그래, 좋아. 지금까지 소견을 천천히 종합해 보기만 해도…… 답은 나오지. 이 환자는 우선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있어. 근데 완전히 무시당해서 방치당했지. 지금 바이털이 어때? 들쑥날쑥 날뛰고 있지? 이걸 뭐라고 한다?”

수혁의 말에 하윤이 침착한 어조로 답했다.

“갑상선 중독증입니다.”

“그래. 응급이지. 근데 이 환자는 심지어 갑상선 중독증으로 인해 횡문근 융해증이 온 상황이야. 이때 그냥 횡문근 융해증이라고 판단하고 치료하면 어떻게 될까?”

수혁의 말에 김진용이 고개를 더 숙였다.

말 그대로 환자를 죽일 뻔했다는 걸 이제야 실감하고 있어서 그랬다.

이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 아니면 크게 잘못되었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수혁은 이 새끼는 개새끼니까 아마 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동기가 어찌 되었건 간에 환자를 보는 데 있어 실수하지 않으면 그걸로도 다행이니까.

“죽어. 환자는 죽는다고. 운이 좋다고 해도 신장은 나갈 거야. 그럼 삶이 완전히 망가지겠지. 그렇다면 이 환자를 이송할 때,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 할까?”

“프로프라놀롤을 줍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 일단 갑상선 중독증으로 인한 심장 증상이라도 막을 수 있지. 그런 거 없이 여기까지 살아서 온 것은 누구 덕일까?”

“그건…….”

잘 대답하던 하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덕이라니?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때 수혁이 환자를 바라보았다.

“그냥 환자 덕이야. 환자분이 아직 젊고 다른 병이 없어서 살아서 온 거야. 달리 말하면 운이 좋았어. 너네 환자 볼 때 운에 기대야 할까? 아니면 가지고 있는 단서를 조합해서 철저히 추론을 거쳐서 진료해야 할까?”

“철저히 추론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 모인 레지던트들은 수혁의 신도 내지 추종자들이었다.

심하면 신도 아니더라도 추종자라는 얘기.

그 와중에 귀신같이 또 한 건 올렸으니 사기가 어떻겠나.

실수를 저지른 장본인이 무섭다고 소문난 선배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큰 소리로 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추론해야지. 지금 이 환자에게서 설령 갑상선 호르몬 검사가 없었다고 해도, 단서가 모자랐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닙니다! 충분했습니다!”

“그래. 충분했어. 그런데도 저 군의관은 그걸 무시하고 결국에는 환자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렸어. 군 의료에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이렇게 해서 잘못되면 그건 누구 책임이지?”

“군의관 책임입니다.”

“그래, 너희들도 대부분 아마 군의관으로 가야 될 거야. 아니면 공중보건의겠지. 여기랑은 많이 환경이 다르긴 할 거야. 하지만 어떤 군의관은 아까 들어갔던 김인수 선생님처럼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살리고, 또 어떤 군의관은 이래. 니들은 김인수 선생님을 본받아라.”

“네!”

“그래, 해산.”

수혁은 말하면서 동시에 치료 지침을 기록에 다 남긴 참이었다.

덕분에 레지던트들은 한밤중에 이루어진 은혜로운 시간을 되새기면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김진용도 드디어 튈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을 돌렸으나, 수혁이 말을 이었다.

“김진용 선생.”

“네?”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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