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화 군의관 김진용 (3)
새끼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김진용은 저도 모르게 존대를 했다.
여전히 수혁이 자기 후배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다.
분위기가 그랬다.
“김진용 선생.”
“네.”
“선생 자 계속 붙여야 돼?”
“어…….”
눈깔 돌아간 수혁은 제법 무서운 편이었다.
원래도 낌새가 있기는 하지 않았나.
게다가 수혁이 맨날 같이 있는 사람 중엔 이현종이 있었다.
지금이야 나이도 들었고, 이수혁이라는 아들도 생기고, 또 이기자 교수와 교제도 하게 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지만.
사실 예전 이현종은 그야말로 말로 조지는 데 있어서만큼은 세계 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박력…….’
당하는 사람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무서웠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른 걸 느끼고 있었다.
하윤은 교주의 처음 보는 모습에서 박력을 느꼈다.
‘쌤통…….’
방금 전까지 김진용 달래느라 쩔쩔매고 있던 이제 막 신규 벗어난 간호사는 쌤통을 느꼈다.
물론 수혁은 주변의 반응은 물론이거니와 김진용의 반응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자식을 자극하면 환자를 깨우기 전에 뭐라도 나올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환자가 맨날 힘들다고 했다고 했지?”
“네. 네.”
“그런 지 얼마나 됐어?”
“네? 어…….”
“환자 주소가 그때는 무기력감이었다는 소리 아냐?”
“네, 그렇습니다.”
“근데 그 주소가 언제 발생했는지도 안 물어봤어?”
“그…….”
별 소용은 없을 모양인 거 같았다.
어찌 된 게 뭘 물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세상에 어쩌면 이따위로 진료를 하고도 아까처럼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었을까?
설마하니 자기가 의사라는 자각이 아예 없는 걸까?
“신체 검진은 했어?”
“네?”
“아니, 오면서 바이털은 쟀어?”
신체 검진이라니.
바랄 걸 바라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혁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질문을 바꿨다.
바이털은 기본이지 않나.
특히 생명을 다루는 내과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나 김진용은 즉시 답을 하는 대신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있나 하고 봤더니 같이 온 병사가 서 있었다.
“아……. 그건 쟀습니다.”
“어땠는데.”
“그건.”
김진용은 다시 병사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병사가 손을 들면서 따라왔다.
그 말은 곧 바이털은 기본이니 의무병이 재기는 했는데, 정작 의사는 그걸 확인조차 안 했다는 뜻이 되었다.
“어휴.”
수혁은 고개를 다시 한번 절레절레 흔들고는 의무병을 돌아보았다.
“어땠죠?”
말투를 바꿔서였다.
의무병은 갑자기 살벌해진 분위기 속에서 벌벌 떨면서 답했다.
“혈압이…… 처음 의무대에서 쟀을 때 140에 90이었습니다.”
“높네요?”
“네. 맥박수도 110회가 넘었고…… 호흡수는 22회였습니다. 체온은 정상이었습니다.”
답은 나름 똑 부러졌다.
적어 놓은 것을 읽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긴 한데, 김진용은 이렇게 적어 놓은 것도 안 봤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다만 수혁은 이제 더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무시하고 지날 뿐이었다.
환자를 진료하는 데 있어 이토록 도움이 안 되는 초진 의사가 있을 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여간 지금 중요한 것은 환자 진료였다.
“깨워야겠네.”
“아, 네.”
수혁의 말에 하윤도 환자를 향해 달렸다.
스테이션에는 군복 차림의 김진용과 의무병만 덜렁 남았다.
의무병은 눈치를 보다가, 기세가 등등했던 아까와는 달리 잔뜩 주눅이 들어 버린 김진용을 불렀다.
“저, 김 대위님.”
“어? 어, 왜.”
“저희는 어쩌죠?”
“그…….”
원래는 인계만 하고 튈 생각이었다.
레지던트가 덜렁 올 거라 예상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교수가 나온 마당인데, 게다가 펠로우도 와야 하는데 여기서 튄다?
좋은 인상이라도 남겼으면 모르겠는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라고 봐야 옳았다.
게다가 수혁은 그냥 교수가 아니라 요즘 들어 제일 끗발 날리는 교수였다.
원장에 센터장에 심지어 과장도 수혁 눈치를 본다지 않나.
여기서 튀었다가는 그대로 펠로우도 날아갈 거 같았다.
“어쩌긴 일단 있어야지.”
“아……. 네.”
그렇다고 해도 의무병까지 여기 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으나, 김진용은 천성이 심술쟁이다 보니 굳이 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김진용이 쓸데없이 심술을 부리는 동안 하윤이 조심스레 환자를 깨웠다.
“환자분?”
“이병 안준호!”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지 그렇게 세게 부르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려 했다.
다행히 처치실에 있던 간호사가 군필이라 그런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붙잡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수액 라인 빠질 뻔했다.
꽤 인상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우하윤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그보다 훨씬 인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따로 있었다.
‘눈이 튀어나왔네. 그냥 그렇게 생긴 건가? 아니면…….’
[아뇨, 약간 평균 범주에서 벗어납니다. 뭔가 변형이 있었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럼 저기 목에 살짝 튀어나와 보이는 건?’
[그것도…… 평균 범주를 벗어납니다.]
‘아, 김진용 이 새끼는.’
[아직은 수혁 정도만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이긴 합니다. 그래도 욕했던 것을 철회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요. 저 인간 머리에 안 들어간 게 다행입니다.]
정리하자면 안구돌출과 목에 미만성 팽대가 관찰되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수혁은 이미 환자의 횡문근 융해증과 엮어서 분석 중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를 기껏 깨워 놓고 혼자 생각에 잠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 깨운 것이지 않나.
수혁은 머리의 일부만 굴려 가면서 입을 열었다.
“환자분.”
“아, 네.”
“여기 병원이에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등병이다 보니 많이 힘든 모양이었다.
병원이라는 데도 잔뜩 긴장해 있었다.
이러면 다른 것보다도 혈압에 오류가 생길 수가 있었다.
방금도 아까보다 더 위로 떠 버렸다.
해서 수혁은 환자를 애써 안심시켜 가며 말을 이었다.
“우선 몇 가지 물어볼게요.”
“네.”
“많이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진료 요청을 했었다는데, 맞나요?”
“아, 네. 그게, 정말…… 저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힘들어한다고 여기저기서 갈궜는지 어째 말하는 투가 굉장히 방어적이었다.
수혁은 또 위로를 해 볼까 하다가, 이번엔 혈압이나 심장박동 수가 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기로 했다.
“네. 그런 지가 얼마나 됐어요?”
“네? 아, 저는…… 음…….”
그랬더니 환자가 좀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러나 싶었으나 다그치지는 않았다.
때로 기다리는 게 제일 빠르기도 하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입대하고 내내…….”
“입대한 지는 얼마나 됐죠?”
“네? 아……. 이제 3달가량 되어 갑니다.”
“3달. 그럼 몸이 막 힘들고 그런 게 한 3달 되었다는 말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정리하면 환자는 입대하면서부터 몸이 힘들었는데 그게 여태 이어진 모양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뺑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의사는 그러면 안 되었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김진용을 째려봤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몸무게는 재 봤어요?”
“아……. 입대할 때 처음 재고 지금은…….”
“그때 몇 키로였죠?”
“65kg였습니다.”
“65. 지금 몇이지?”
수혁의 시선이 이번엔 간호사에게 머물렀다.
간호사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어서 답했다.
고개도 잠깐 갸웃거렸다.
“55입니다.”
“군대 가면 보통 이만큼 살이 빠지나요?”
“네? 아, 아뇨. 마른 체형은 살이 붙고…… 찐 체형이면 살이 빠지는 게 보통입니다. 이 환자분은…… 지금 너무 말랐는데요.”
“그렇군. 혈액 검사는 나갔나요?”
“아, 아까 수액 달면서 기본 랩은 일단 나갔습니다. 인턴 샘 오더 받았습니다.”
“아, 인턴.”
수혁은 인턴만도 못한 새끼라고 중얼거리며 김진용을 째려보았다.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인턴에 대한 신뢰도가 막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슬쩍 검사 항목을 본 수혁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는 몇 가지 처방을 더 했다.
‘아, 교주님……?’
그제야 하윤은 알아차렸다.
수혁은 이미 어느 정도 이 환자가 왜 이러는지 알았다는 걸.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디테일한 검사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긁는 느낌이 아니라, 딱딱 정해서 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환자분, 제가 좀 검진을 해 보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아, 네.”
하윤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수혁은 환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얼굴부터 이리저리 만져 댔다.
‘안구돌출은 확실히 있고.’
[네.]
‘목에…… 갑상선 종대가 있어 보이는데, 이건 초음파로 봐야 할 거 같고.’
[네. 확인했습니다.]
‘양손. 저거 언제부터 저랬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몇 가지 신체 검진을 통해 수혁은 아까 눈으로 보았던 것을 다시금 확인했고, 그에 더해 환자의 양손에 진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끊임없이 떨림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얘기였다.
그 외에도 양측 다리의 심부건 반사가 저하되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환자 전해질 어떻지?”
그 즉시 수혁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 나갔다.
이미 수혁이 감 잡았다는 걸 눈치채고 모니터에 붙어 있던 하윤이 답했다.
마침 하윤도 이게 이상하다 싶어서 눈여겨보고 있던 참이라 거의 동시에 답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트륨은 142, 칼륨 2.1, 염소는 106입니다.”
“칼륨 보충하자.”
칼륨이 떨어지면 건 반사가 떨어질 수 있었다.
심하면 마비 증상이 생길 수도 있고.
물론 이런 식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은 진짜 많으니, 딱 보자마자 전해질 이상을 떠올린 수혁이 진짜 괴물이었다.
이미 환자 진단명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쑤셔 박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혁 아니라 수혁 할아버지라 해도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터였다.
“네. 교수님.”
“그리고 약…… 프로프라놀롤 투여 시작하고.”
“어……. 네.”
“초음파 보면서 설명해 줄게. 지금 낸 거는 결과 나오려면 오래 걸릴 테니까.”
“네, 교수님.”
“아, 그리고…… 저 인간도 와서 들으라고 해. 일단 책임자니까.”
“네.”
아직 수혁 말고는 아무도 영문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약 주라는 말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는 않았다.
수혁이라면 허튼소리 할 리가 없을 거란 생각을 다들 하고 있어서 그랬다.
해서 선조치 후보고 식의 진료가 진행되었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냥 그렇게 되었다.
수혁의 위치가 그만하다는 얘기였다.
드르륵.
하여간 약이 들어가는 와중에 초음파가 끌려왔다.
수혁은 프로브를 집어 들고는, 환자의 목에 가져다 댔다.
시선은 뒤를 향하고 있었다.
“잘 봐. 특히 김진용. 잘 봐. 뭘 놓쳤는지.”
어쩐지 서늘한 눈을 하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