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화 군의관 김진용 (2)
김진용이 분노를 애써 후배를 합법적으로 갈굴 생각 하나로 달래고 있는 사이, 수혁이 하윤과 함께 응급실에 들어섰다.
이제 새벽 2시가 가까워져 오는 시간임에도 응급실은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주기적으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어서, 3대 메이저 병원 중에서 거의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응급실임에도 그랬다.
수혁을 필두로 내과가 최근 강세를 띠게 되면서 안 좋은 환자들이 계속 늘고 있어서 그랬다.
“환자분, 여기 어딘 줄 알겠어요?”
“여기! C-line!”
“어……. 야, 이게 무슨 bppv야! 동공 사이즈 양측이 다르잖아!”
실제로 지금 응급실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 중 절반 정도가 내과 레지던트들이었다.
통합진료센터가 점점 더 뛰어난 기량을 뽐내면서 타 병원에서 자꾸만 전원을 와서 이랬다.
사실 다른 과 진료도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태화 의료원 내에서도 반발이 있는 마당에 타 병원 상황이야 뻔하지 않겠나.
아직은 내과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새벽에 잠 못 자고 이러고 있는 건 거의 수혁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오……. 교수님이다.”
“교주님?”
“미친놈아. 공공장소에서는 금기야.”
“아, 그렇지. 참.”
그러나 원흉을 보면서도 순진한 레지던트들은 그저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아주 이상하다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시각에 교수가 초진부터 직접 보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심지어 응급의학과 교수도 아니고 내과 교순데 이런 경우가 어디 있겠나.
신앙이 없는 레지던트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안대훈에게 포교 당한 이들은 숫제 기도까지 올리고 있었다.
“어? 의식 돌아오셨다.”
“어……? 왜 혈압이……?”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겠지만.
기도를 올린 레지던트들의 환자들 중 일부가 극적으로 호전되면서부터는 거의 부흥회 분위기였다.
물론 공공장소에서는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지엄한 명령이 있었기에 수멘을 직접적으로 외치는 이는 없었지만.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붉히는 신도들은 오늘도 다시 한번 절대 충성을 되새기고 있었다.
“쟤들은 왜 저러냐?”
그냥 수혁만 있었다면 아마 다른 이들의 변화를 이토록 즉각적으로 눈치채지는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가 있었고, 바루다가 이상 조짐을 보고해 왔다.
그 결과, 수혁은 몇몇 레지던트들이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일부는 심지어 눈물도 글썽이고 있었다.
같은 과 녀석들이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놈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가 막 돈독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비인후과 같은 마이너 과야 과가 작다 보니 좋으나 싫으나 맨날 얼굴 부대끼고 살겠지만, 태화 내과는 레지던트 수만 거의 90명이지 않나.
정이 돈독하면 그게 더 이상하단 얘기였다.
그건 비단 교수가 아니라 같은 레지던트라 해도 사실 마찬가지여야 했다.
‘아……. 우리 신도들.’
하지만 우하윤에게는 다 아는 얼굴들뿐이었다.
동호회로 위장한 종교 모임에서 맨날 보는 놈들이지 않나.
아마 수혁을 이 시간에 보고 감동한 모양이었다.
안대훈이었다면 자신도 적잖이 감동했을 테니, 눈치 없이 그렇게 말을 했겠지만.
하윤은 그래도 안대훈보다는 훨씬 나은 면이 있었다.
“교수님 TV에서 나와서…… 그래서 저러는 거 아닐까요?”
“TV? 나 요새 안 나갔는데.”
“재방이요. 몽골 가신 동안 나왔어요.”
“아하. 그렇군. 음. 그래, 뭐. 하하.”
덕분에 수혁은 더 이상 수상쩍게 여기지 않았고, 심지어 거기다 대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그 바람에 한 명이 은혜를 받은 나머지 뒤로 넘어갔는데 거기까지는 다행히 보지 못했다.
누군가 소란을 피우기 시작해서 그랬다.
“아, 언제 와! 이 새끼들 완전 빠져 가지고. 지금 치프 어떤 새끼냐?”
“어유, 선생님. 지금 환자 많아서 그렇겠죠.”
“연락을 하고 왔는데 미친놈이 아직도 안 와?”
“아유…….”
김진용이었다.
하윤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딱 보자마자 느낌을 받았다.
아 저 새끼 보기 드문 말리그구나.
괜히 수혁이 인상을 구긴 게 아니었구나.
해서 걸음을 서둘렀다.
‘아, 저 새끼.’
[걱정 마시죠. 전형적인 강약약강 아닙니까. 교수한테는 암 말도 못 할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말년에 찐바 돼서 있다가 나갔잖아.’
[그럴 수밖에 없었죠. 당시 과장이 신현태였는데 완전 찍혔으니까요.]
반면에 수혁은 그저 느긋하게 걸었다.
김승규도 백강혁도 무서워하지 않게 된 마당인데 김진용이 두렵겠나.
하잘것없는 놈일 뿐이었다.
“저, 선생님 죄송합니다. 환자 안 좋아서 중환자실에 입실하고 오느라…….”
하윤은 서둘러 달려 일단 사과부터 했다.
사실 되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전원 받는 병원에서 사과라니.
전원이라는 게 원래 도저히 못 보겠는 환자를 보내는 행위 아닌가.
서로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김진용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놈이라, 막무가내였다.
“중환자실? 핑계 좋네. 와……. 내가 군의관이라고 지금. 야, 내년에 나 여기 펠로우로 올 거야. 어? 너 몇 년 차냐?”
“2년 차입니다.”
“그럼 1년 보겠네. 너 그때 두고 보자.”
누가 보더라도 좀 짜증 나는 상황이었는데, 특히 수혁이 보기에 그랬다.
그래서 끼어들었다.
“두고 보기는 뭘 두고 봅니까.”
“뭐? 너 누구…… 이수혁……?”
누구에게나 껄끄러운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김진용에게는 수혁이 그랬다.
괜히 시비 털었다가 본전도 못 건진 경험이 있지 않나.
아니, 본전은커녕 탈탈 털려서 말년에 주치의까지 했더랬다.
그럼에도 수혁에게는 정작 말 한마디도 못 했던 기억이 있었다.
원장과 과장이 합심해서 이수혁 건드리면 뒈진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 데리고 왔으면 환자에 관해서 얘기하셔야죠. 남의 병원 와서 왜 남의 제자를 혼내고 그래요?”
“아니……. 그, 핑계를…….”
“핑계 아닌데요? 저랑 같이 있다가 온 거예요. 아까 온 환자 다 정리하고 온 거예요.”
“그, 그래도 내 환자…….”
“환자 뭐요. 이미 다 처치하고 있는데. 사실 가도 되는데 안 가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인계만 하고 어디 짱 박혀 있으려고.”
“아니, 그건 말이 좀.”
수혁이 나타나자마자 김진용은 이 자리가 몹시 불편해졌다.
말마따나 그냥 환자만 넘기고 튀는 게 나았겠다 싶었다.
부대로 복귀했으면 내일 피곤하긴 했겠지만, 하여간 이 꼴은 안 봐도 되지 않았겠나.
하지만 병원 의료진에게 인계한다는 핑계를 대고 또 옆에서 지켜봐야겠다고 하면, 사고 나는 걸 극도로 꺼리는 군 특성상 내일 하루 정도는 통으로 까먹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더랬다.
“뭐, 잘됐어요. 환자 상태 알려 왔던 거…… 알 수 있는 게 전혀 없던데요? 그냥 콜라 색 소변 본다고 온 건 아닐 거 아닙니까.”
“그게, 그거 맞는데.”
“네? 콜라 색 소변 본다고 그냥 왔다고요?”
“어……. 횡문근 융해증…….”
“부대에서도 수액 줄 수 있잖아요? 신부전 징후는 전혀 없어 보이는데.”
“화, 환자가 원해서.”
“아, 원해서. 그럼 할 말 없지.”
원래 팩트로 조곤조곤 조지는 게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특히 상대가 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김진용과 수혁의 격차는 어떠할까?
원래도 그리 열심히 하던 편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지금의 김진용은 군대 가서 머리가 많이 굳은 상황이었다.
안대훈과 비교해도 많이 처질 텐데, 수혁과의 비교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런 이유로 여기까지 왔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의사는 지금 현재 모은 단서를 토대로 추론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게 설령 김진용이라는 형편없는 의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 다라고 해도 그랬다.
“일단 몇 가지 묻죠.”
수혁은 힐끔 뒤에 누운 환자를 돌아보았다.
처음엔 정신을 잃은 건가 싶었는데, 바이털을 보니 그저 잠든 모양이었다.
횡문근 융해증이 있을 정도로 혹사당했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환자는 원래 병원에 왔으면 쉬는 게 일이기도 했다.
해서 환자를 깨우는 대신 김진용에게 묻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뭔가 물어보고 오기는 했겠지 하면서였다.
[기대가 과한 거 같습니다. 원래도 개판인데 그 사건 이후로는 더 개판이었습니다.]
‘그래도 전문의인데. 태화 출신.’
[뭐……. 일단은 방법이 없으니 묻죠.]
‘좋아.’
애써 미심쩍은 생각을 뒤로하고 수혁이 입을 열었다.
“환자 얼마나 훈련을 받았죠?”
“음.”
첫 질문부터 제대로 된 답이 즉각적으로 나오질 않았다.
수혁 같았으면 기다리는 동안 자료를 정리하든가 했을 텐데, 그냥 누구 조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게 뻔했다.
하긴 그게 김진용다운 일이긴 했다.
“아, 그래. 쟤, 저 새끼.”
“새끼라고 하지 좀 마세요. 환자예요.”
“그…… 그래. 그. 음. 저 병사 오늘 제대로 훈련받은 게 없어. 구보 뛴 게 다야. 근데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사단 의무대까지 기어 왔다니까.”
“사단 의무대?”
“그래. 대대에서 안 되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절차가 있을 거 같은데요?”
“쟤는 쩍하면 힘들다고 해서 블랙이야. 괜히 안 된다고 했다가 찌르면 안 되니까 대대에서도 바로 쏘더라고. 새끼…… 지 일 만들기 귀찮다 이거지.”
답에 사족이 좀 많았다.
다시 말하면 김진용의 의견이 아주 많이 반영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노티냐면, 당연히 아니었다.
의사끼리 대화할 때는 일단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말을 해야 했기에 그랬다.
‘뭐……. 내 제자도 아닌데…….’
[펠로우 들어오면 일단은 밑인데요.]
‘가르치기 싫은데.’
[그건 그렇습니다.]
만약 다른 레지던트가 이러고 있다면 훈계를 하건 교정을 해 주건 했을 터였다.
하지만 김진용은 이미 오래전에 수혁의 마음속에서 아웃이 되어 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저럴수록 지 인생 지가 꼬는 건데 어쩌겠나.
다 자기 업이었다.
“구보만 뛴 건 맞습니까?”
“맞아. 대대에서 같이 온 애가 확인해 줬어.”
“여기도 왔나요?”
“아니, 안 왔지. 복귀했지.”
“콜라 색 소변은 확인했나요?”
“그건 확인했어. 그래서 온 거야. 뺑기 새끼…….”
수혁은 계속해서 험한 말을 내뱉고 있는 김진용을 잠시 노려보았다.
단순히 환자에게 험한 말을 해서는 아니었다.
이 새끼가 혹시 병신인가 싶어서였다.
[혹시가 아니라 그냥 병신 맞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
의사라는 새끼가, 그것도 내과 전문의라는 새끼가 인사이트가 저러면 되나?
이현종이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수혁은 기대에 너무 못 미치는 의사를 보면 화가 치밀었다.
지금은 김진용이 수혁을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어, 왜…….”
예전이라면 수혁이 노려보면 그냥 우스웠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수혁은 교수였다.
게다가 그사이 관록이 붙었는지 교수를 떼고 봐도 만만해 보이질 않았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노려보고 있으니 속이 찜찜해질 수밖에 없었다.
“구보만 뛴 사람이 횡문근 융해증이 왔으면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을 해야지. 여전히 뺑끼 운운해? 너 뭐 하는 새끼야?”
“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