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55화 (655/1,303)

655화 전원 온 환자 (2)

중심 정맥관에 더해 다른 수액 라인까지 정리가 되고, 적절한 약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혈압이 더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는 필시 뭔가 변고가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소변은 잘 나와요?”

“나오긴 하는데…….”

“나오면 됐어요. 일단은.”

몸에 혈압이 너무 떨어지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혈압이란 곧 혈관에 전해지는 압력을 뜻한다는 걸 생각하면 쉬웠다.

몸속을 돌아다니는 피의 양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나마 중요한 장기로 향하는 피의 양은 얼마간 유지가 되기는 했다.

가령 머리와 심장으로 가는 피는 최대한 오래 유지 되는 편이었다.

그냥 사람 몸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신장은 아직 괜찮아. 하지만…….’

[감염의 원인보다는…… 그 결과에 집중해야 할만한 상황이군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신장을 비롯한 다른 장기까지 죄 그렇게 유지가 되진 못했다.

다행히 아직은 소변이 나오고 있지만.

저게 뚝 하고 끊기는 날에는 큰일이었다.

그 순간부터는 암이고 나발이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다발성 장기부전에 대항해야 했다.

“초음파 좀 볼까요?”

“아, 네.”

하여간 수혁은 거기까지 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아마 여기 모인 전원이 그럴 터였다.

해서 모두가 행동이 빠릿빠릿했다.

드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한 명이 초음파 기기를 끌고 왔다.

울란바토르 병원 시설이 어지간한 2차 병원 정도는 찜 쪄 먹는다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와, 좋은 거네.”

“저희 교수님이 이런 쪽으로는 타협을 안 해서요.”

“잘됐죠.”

수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초음파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환자의 배를 들여다보았다.

우선은 신장부터였다.

‘물이 조금…… 하지만 이 정도는 이뇨제로 대응 가능한 수준이야.’

[네,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물론 검사 결과가 나오면 더욱 정확한 판단이 가능해질 터였다.

하지만 혈액 검사란 보통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환자가 잘못되어 버리는 경험을, 대학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 안에 뭐라도 해야 했다.

‘간…… 색이 별로네.’

[그래도 괴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하지는 않군요.]

‘좋아. 그럼 장으로 가 볼까.’

[네. 저도 최대한 보조하겠습니다.]

복부 초음파는 제대로 보려면 정말 어려운 술기였다.

일단 안에 뭐가 너무 많지 않나.

그나마 간이나 신장, 비장과 같은 장기는 사정이 좀 나았다.

이건 그 자리에 원래 있을뿐더러, 단단하기까지 하니까.

그럼에도 숙달된 복부 영상의학과 의사에 비하면 놓치는 지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부위였다.

‘복부 초음파를 알려 달라고? 이 교수 잘하지 않아? 우리 레지던트들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그 정도 수준으로는 좀 부족할 거 같아서요.’

‘아……. 하긴 이수혁 교수…… 알겠어. 대신 이거 이하언 교수님 포함해서 우리 과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해 줘.’

‘당연하죠.’

‘그래. 내가 이수혁 교수 천재라고 믿으니까 해 주는 거야. 알겠지?’

‘네.’

하지만 장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건 움직이는 장기인 데다, 안이 비어있을 때도 있고 비어 있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랬다.

다른 술기들은 어지간하면 바루다의 보조를 받아 독학이 가능한 수혁조차 혼자서는 제대로 보는 건 불가능했을 지경이었다.

해서 틈날 때마다 영상의학과 김진실 교수를 귀찮게 만들었더랬다.

그 결과, 수혁은 이제 어지간한 복부 영상의학과 의사만큼이나 잘 볼 수 있게 된 지 오래였다.

“여기 상행 결장을 보시면…… 장벽이 좀 두꺼워져 있어요.”

“장벽이 두꺼워져 있다는 게……?”

“그리고 벽이 저음향 에코를 보여요. 부종이 있다는 뜻이죠.”

“부종……?”

“또 연동운동이 현저히 감소했어요.”

“아……. 그건.”

“그리고 혈관을 볼까요.”

초음파에서 혈관이라.

이런 게 언급되는 건 정말이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초음파 프로브로 잡아 둔 부위를 보니 확실히 혈관 같아 보였다.

어느새 응급실에 있던 모든 간호 인력들은 수혁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 하루 이제 마무리하고 자려고 했던 태화 봉사단 일행 중 일부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괜히 가까이 갔다가 일 받게 될까 봐 다가오는 사람은 적긴 했지만.

하여간 수혁의 설명은 그만큼의 힘이 있었다.

“여긴 까맣게 보이죠. 인핸스가 잘 안 돼요. 도플러로 보면…… 그나마 피가 통하긴 하는데 잘 안 갑니다. 그 결과…… 대장 벽이 두꺼워진 거예요. 게다가 여기도 인핸스가 안 되죠?”

“어…….”

“평행 결장을 보면 더 뚜렷할 겁니다. 여긴 피가 통하거든요.”

“어, 그러네. 완전 다른데…… 요?”

“괴사성 대장염입니다.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이대로 두면 환자 죽습니다. 지체하면 안 돼요. CT 찍어서 정확한 범위를 파악하고…….”

늘 그러하듯 근거도 충분했다.

비록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복부 초음파를 제대로 읽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눈앞에서 수혁이 손가락으로 딱딱 짚어 가면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보니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급해 보였다.

“CT 찍을 필요도 없겠는데요.”

그때 누군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백강혁이었다.

좀 쉬고 와서 그런지 얼굴이 다시 좋아져 있었다.

“네? 그래도…….”

“아니, 들어가지. 환자 기저에 대장암까지 있다면서요. 그때 하행결장 절제술 한 건가?”

“네, 그렇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 수술로 인한 폐색도 아닌데…… 하여간 들어가죠. 시간 없어.”

“아, 네. 뭐 그러면 좋긴 합니다.”

수혁이 CT 얘기를 한 것은 정말 확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매한 범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수혁과 바루다는 이미 초음파를 통해서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은 참이어서 그랬다.

‘신 때문이라고 해도, 불편한 건 나랑 같구만.’

마침 강혁도 그랬던 경험이 꽤 있지 않나.

자신과 같은 눈이 없는 이들에게도 상황을 인지시켜 주기 위해 CT나 MRI와 같은 검사를 해야만 했던 나날들.

지금은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뭐라 할 수 없을 만큼의 힘과 명성을 갖추고 있으니 괜찮았지만.

하여간 그것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답답해졌다.

‘아……. 그냥 찍고 다른 사람한테 하라고 할 걸 그랬나.’

하지만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면서도 심각하게 이리저리 방황하는 눈깔을 보이고 있는 수혁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심란해졌다.

괜히 나섰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쪽 신이 자신에게 이미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자와 자기 얼굴을 마치 안진이 있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번갈아 볼 이유가 없을 거 같았다.

‘그래도…… 설마 한국으로 가서까지 뭐가 되진 않겠지.’

다행인 것은 이게 한시적인 만남이라는 점이었다.

원래 계획은 봉사단 보내고 얼마 안 있어 한국에 한번 가려고 했는데, 그 계획만은 바꿔야 할 거 같긴 했지만.

하여간 계속 같이 안 있어도 되는 게 어딘가.

강혁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채 환자를 수술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원인은 뭘까?’

[글쎄요. 일단 수술방 들어온 김에 직장 내시경은 좀 해 달라고 하죠.]

‘좋지. Clostridium difficile 여부 확인하려고 하는 거지?’

[그렇죠. 만약 그렇게 된거면…….]

‘어렵지.’

[네, 어렵습니다.]

물론 수혁은 전혀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환자 원인이 뭔지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저 인간은 왜 CT를 찍지 않았을까요?]

‘급해서?’

[저희 의견이 그렇게까지 근거가 확실했나요?]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외상 외과니까 어쩌면 의사 결정이 남들보다 빠르게 훈련받아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흠.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일까요?]

다만 바루다는 강혁의 존재가 못내 신경 쓰이는 듯했다.

눈 쪽으로 의심이 된다기보다는 뭔가 다른 인공지능이 있나 싶어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왓슨조차 별거 아니라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 바루다였지만, 그럼에도 안심은 안 됐다.

‘그게 중요하냐?’

[아니, 아닙니다.]

하지만 숙주인 수혁이 전혀 관심이 없으니,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수혁의 말이 맞기도 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환자 수술이 어찌 될지, 그리고 수술 부위가 과연 어떻게 되어 있을지가 더 중요한 상황이었다.

바루다가 아무리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무려 개인적인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 마당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바루다는 본연의 목적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자, 그럼 복부 관찰술 및 필요시 상행 결장 절제술…… 시작합니다.”

그사이 강혁은 번개처럼 수술 준비를 마치고, 칼을 집어 들고 있었다.

수술명을 확인받기 위해 주변 의료진에게 말을 걸면서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즉시 칼을 환자 배에 가져갔다.

지이익.

언제나처럼 완벽하기 그지없는 절개였다.

‘대단한데.’

[그러니까요. 뭔가 다르죠?]

‘어, 일단…… 뭔가 빨라.’

[피도 덜 나고요.]

사실 외과 쪽으로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좋을 수혁이나 바루다가 보기에도 그랬다.

장인의 경지가 아니라 그 너머의 경지로 보인다고나 할까?

덕분에 수혁은 곧 수술 부위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색이 맛이 갔네. 완전 난리 날 뻔했어, 이거.”

대장은 말 그대로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아, 아이고. 이걸 왜.”

마침 타 병원에서 온 의사도 같이 들어와 있던 참이었다.

그는 수술 부위를 보자마자 탄식을 터뜨렸다.

한숨에는 후회와 안도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왜 이걸 진즉 발견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후회와 그나마 여기 데려와서 다행이라는 안도가 뒤섞여 있었다.

“원래도 장이 짧네. 음.”

강혁은 바로 딱 잘라 내는 대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도 보이려나?’

그리곤 수혁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이내 다시 수술 부위를 향해 고개를 처박았다.

그때부터 술기가 살짝 바뀌었다.

상행결장을 통으로 드러내는 방향에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였다.

그렇다 보니 먼저 대장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향하는 혈관을 건드리고 있었다.

“다행히 괴사 된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어……. 혈관을?”

“그래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지.”

“음.”

수혁은 그게 되려나 싶었다.

바루다도 그랬다.

오히려 둘이 제일 불신이 심했다.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서였다.

애초에 내과 의사들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인공지능의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수술은 가히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이나 대단했다.

‘와……. 이게 되네?’

[미친. 장은…… 거의 안 나갔어요.]

강혁은 조금 뿌듯한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내과에서 최선을 다해 줄 차례입니다. 자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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