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화 게르에서 (5)
강혁은 수혁에게 들은 약 이름을 되뇌며, 짐칸에는 환자들의 분변이 담긴 통을 싣고 초원을 가로질렀다.
‘그래, 인수 공통 감염. 감염내과를 잡아 올 걸 그랬나. 신현태 그 자식이 이제 원장이라고? 아쉽네.’
누가 들으면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생각을 하면서였다.
부다다다.
그렇게 오토바이가 거친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사이, 수혁은 안대훈과 함께 환자를 돌봤다.
진단도 되고 치료 지침도 나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낫는 건 아니었다.
결국, 치료는 지리한 과정이었다.
환자가 해당 질환을 이겨 내야만 했다.
특히 이런 종류의 질환에서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겨 낼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이었다.
[재미없네.]
당연하겠지만 바루다는 딱히 이런 과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족한 단서를 조합하고 추론하는 과정에 특화된 녀석이니만큼 나무랄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나도 이게 재미가 있진 않아. 해야 될 일이니까 하는 거지.’
수혁도 재미를 느끼진 못해서였다.
생각해 보면 의사가 환자 보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아픈 사람 보는 것이 보람된 일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재미가 있기는 어렵지 않겠나.
‘너무 좋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몰라.’
물론 이 순간 행복해 죽을 거 같은 사람이 있기는 했다.
안대훈이었다.
세상에 수혁과 어깨를 맞대고 환자를 보고 있다니.
진료야 태화에서도 맨날 하는 짓이지만 거기는 시스템이 빡빡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딱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처방을 내리면 수행하는 이들이 따로 있어서였다.
게다가 수혁은 딱 진단과 치료 지침을 세우는 데까지만 관여하는 편이기도 했다.
[음?]
하여간 수혁은 실로 오랜만에 환자를 직접 치료하고 있었다.
수액을 달고, 증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약을 달아 주면서.
‘왜.’
그때 바루다가 이상한 사인을 보냈다.
개소리일 가능성은 적었다.
바루다는 환자 탐색에 열을 올리는 편이니까.
게다가 강혁이 사라진 지금, 원래 있어야 할 왕진의 대상들이 수혁 앞으로 늘어서고 있었다.
같이 온 이들이 설사병이 돌기는 했지만, 감염력은 없다고 이미 말을 맞춘 덕이기도 했다.
[환자가 많아서요. 이제 슬슬 여기는 안대훈에게 맡기죠.]
‘특별한 케이스를 확인해서 한 말이 아냐?’
[네. 그냥 이거 지루하니까 맡기자고 한 건데요?]
‘음.’
하지만 알고 보니 개소리였다.
‘아니, 아닌가.’
마침 수혁도 단순 치료에는 슬슬 싫증이 나려던 참이었으니 잘한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수혁은 흠흠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수혁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넌 일단 애들 봐야지.”
“네?”
“왕진해야지. 애초에 우리 이거 하러 온 거였으니까. 빨리 정리하면 합류해도 돼.”
“아, 네!”
하지만 수혁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하면서 안대훈을 게르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안대훈으로서는 그야말로 상사병에 걸릴 듯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대훈은 주변에서 대체 너 같은 애가 왜 머리가 빠지는 건지 모르겠단 말을 들을 정도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보통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머리가 빠지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 마련인데 안대훈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래, 빨리하고 합류하자.’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으쌰으쌰 하는 소리가 게르에서부터 들려왔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좋은 놈이라니까.’
[그러니까 이현종이 키울 생각을 하죠. 아무튼, 환자 봅시다.]
‘좋아.’
수혁은 그런 안대훈을 잠시 떠올리다가, 이내 앞을 돌아보았다.
진료소는 게르 밖에 임시로 세워진 작은 천막이었는데 줄이 꽤 길었다.
부족 전체 인원이라고 해 봐야 100명이 채 안 될 텐데 무려 20명이 서 있었다.
게르 안에도 환자들이 있는 상황인 것을 감안해 보면 확실히 유목민족의 건강이 그리 좋지는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었으니 과장된 생각은 아닐 터였다.
“어디가 아프세요?”
통역은 강혁과 함께 따라온 대학생이 맡아 주었다.
울란바토르 시내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라던데 꿈이 뭐냐고 했더니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라 했다.
‘태화에서 봉사단 지원해 준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고 했지.’
몽골어만 해서는 별로 메리트가 없을 터였다.
인구도 적고 아직까지는 나라에 인프라가 거의 깔려 있지 않았으니까.
해서 이 학생은 러시아어에 중국어까지 할 줄 알았다.
하여간 지금은 몽골어를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아, 배가. 언제부터요?”
“10년…….”
“10년?”
수혁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10년이라니.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이런 환자 보기는 어려워진 지 오래였다.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나름 보건소들이 쫙 들어가 있다 보니, 응급 진료에서는 모를까 만성 질환에서는 이렇게까지 소외될 일이 적어서였다.
게다가 수혁은 다름 아닌 태화 의료원에 있는 교수였다.
정제되고 정제된 환자들만 보게 된다는 뜻이었다.
[뭐지?]
‘10년이면…… 어.’
바루다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심지어 태화 전자에서는 바루다를 개발할 때 대학 병원 진료에 포커스를 맞췄더랬다.
아무래도 1차 진료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해서 당황한 얼굴로 있으려니, 학생이 수혁을 불렀다.
실력을 의심하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그에게 한국은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었고 태화는 그런 선진국을 이끌어 가는 선도 기업이었다.
거기서 온 사람이 실력이 달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수혁은 방금 처음 들어 보는 질환도 진단해 낸 참이었다.
‘이, 일단 증상에 관해 묻자고.’
[네, 그래야겠습니다.]
물론 수혁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적잖이 당황한 참이었다.
대뜸 10년이라니.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천천히 자라는 형태의 종양이었다.
생각보다 배는 넓고, 장기가 다양해서 이러한 종류의 종양도 얼마든지 있었다.
“배가 어떻게 아프세요?”
“따끔따끔…….”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비교하면 어때요?”
“그냥 같은데.”
“으음……. 혹시 호전이 될 때가 있나요?”
“밥 먹으면 좋아져요.”
“아.”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위염 같은데요?]
‘응. 진행하는 종류의 병이 아냐. 그냥 10년 전부터 위염이 있었던 거지. 진단이 안 된 상태로…….’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의사를 못 만났으면 그럴 수 있지.’
[혹시 뭔가 더 있는 거 아닐까요?]
‘나도 그게 확신이 안 서서. 일단 환자 이름에 표기는 해 놓자고.’
위염 같았다.
치료받지 않은 위염은 아니, 방치된 위염은 10년 아니라 20년도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환자는 무척 말랐고, 속이 쓰린 지 오래되지 않았나.
‘암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어려워.’
게다가 유목민들 특성상 음식도 주로 육식이었다.
성장기의 아동에게 있어 고기는 정말 중요한 음식이고 또 성인에게도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그것만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불로 구워 먹는 방식의 육류 섭취는 암에 취약했다.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여기 어깨가…….”
“어깨? 아, 음. 팔 올려 봐요. 이렇게 하면 아파요?”
“으으.”
“회전근개 파손인데…… 이거 얼마나 되셨어요?”
“10년.”
“10년.”
그 후로도 진료는 계속되었다.
사실 로컬 의원이었다면 그리 특별할 거 없는 환자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퍽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른 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찾아오는 환자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었다.
덕분에 별거 아닌 진단명을 나열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실력이 조금씩 늘어 가는 기분까지 들었다.
[착각은 아닙니다. 확실히…… 단기간에 아주 다양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좋네. 봉사 와서도 실력이 늘고.’
[하지만 이제 슬슬 진짜 어려운 환자를 봤으면 좋겠는데요.]
‘나도 그래. 그런 의미에서 통합진료센터가 진짜 개꿀이지.’
태화 의료원 자체도 엄청나게 정제된 환자들이 오는 곳인데, 그곳의 뛰어난 의사들조차 진단하지 못한 환자들을 보는 센터에 있는 몸이지 않나.
몽골에서 갑자기 그에 준하는 환자를 볼 수 있을까?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평이한 환자 진료가 계속되었다.
“얘, 너도 가서 봐.”
“난 아픈 건 아닌데…….”
“그래도 이상하잖아?”
“그건 그런데.”
그렇게 환자를 보고 있으려니 저쪽 구석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누군가 어린 친구를 계속 밀어내고 있었다.
말이 어린 것이지, 얼굴이 해에 그대로 그을려서인지 성인인가 싶기도 한 아이였다.
나이는 아마 10대 후반 정도 되었을 거라 추정되었다.
[그냥 봐서는 이상한 건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별거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부족 또 왕진하려면 오래 걸릴 거라고 했지? 그냥 오라고 해서 보자.’
[네. 일단 봉사 온 거니까요.]
바루다는 아직 봉사에 관해 개념 정리가 안 된 상황이긴 했다.
왜 대가 없는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할까?
하지만 수혁도 세태와 야합한 거로 따지면 바루다에 뒤지지 않는 사람 아닌가.
해서 이런 봉사가 쌓여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 이미지가 결국, 환자들을 불러 모으는 데 쓰일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혁의 생각은 그대로 바루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한번 보세요.”
해서 수혁은 마치 학교 축제에서 타로 보라고 꼬시는 사람처럼 아이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갈까 말까 하던 아이였던지라 곧 앞으로 조르르 와서 앉았다.
가까이에서 봐도 큰 이상 소견은 없어 보였다.
이번에도 꽝인가 싶었다.
“어디가 아파요?”
하지만 수혁은 애써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야말로 의사가 없는 곳이지 않나.
여기서 자신을 놓치면 한동안 진료 기회는 없을 터였다.
아무리 사소한 증상이라고 해도 괜찮다는 얘기를 듣는 것과 아닌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여기요. 다리가.”
“다리……? 음. 지금도 아파요?”
“오늘은 좀 나아요. 근데 저는 말만 타면 다리가 너무 아파요.”
“음.”
말이라.
수혁은 단 한 번도 말을 타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야 대개 그럴 터였다.
하지만 승마에 대한 묘사는 읽어 본 적이 있었다.
‘비육지탄…….’
[말을 안 타서 살이 쪘다는 거죠?]
‘뭘 타면 오히려 살이 쪄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런 고사성어가 있다는 건 말 타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는 걸 의미하겠지.’
실제로 이곳 사람들의 다리를 보니 하체가 다들 좋았다.
얇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육식을 해서 그런가 할 수도 있겠지만, 운동이 된다고 봐도 될 터였다.
“승마하면 원래 다리가 아프지 않나요?”
해서 수혁은 실망을 감추고 이렇게 물었다.
당연한 걸 증상이라고 들고 왔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환자는 심각했다.
“그렇죠. 근데 저는 너무 심해요. 너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