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화 게르에서 (4)
인수 공통 감염.
쉽게 말해 동물에게서 옮길 수 있는 감염병에 대해서는 제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지경이었다.
특히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만약 바이러스가 변형을 일으켜 사람끼리의 감염이 가능해질 경우, 인류 입장에서는 신종 바이러스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에 그랬다.
홍콩을 강타했던 사스가 그랬고, 중동에서 발원한 메르스가 그랬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잘 봐. 여기만큼 접촉이 잦은 곳이 있을 거 같냐? 언제 어떻게 신종 바이러스가 퍼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것도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교육은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래. 뭐…… 지금까지는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이젠 아니지.’
유목민족의 특성상, 부족 사회는 필수였다.
다른 부족과 접촉할 확률이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아니, 알아서 그 확률을 줄여 왔다.
목초라는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 특성상, 다른 부족이 내 목초지에 접근하는 건 곧 침범이었기에 그랬다.
때문에 신종 바이러스가 생겼더라도 그 부족만 영향을 받고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전 세계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 앞에서 몽골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였다.
이 부족만 해도 입고 있는 옷이 전통 복색과는 많이 다르지 않나.
[그래도 이건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응, 치료는 그리 어렵지 않아.’
하여간 이번엔 운이 좋았다.
생각을 정리한 수혁은 이내 고개를 들었다.
바루다와 적잖이 대화를 나눈 참이었지만 소요된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2, 3분은 되었을까?
당연히 그 누구도 수혁의 입에서 의미 있는 말이 튀어나올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오오, 시작하신다.”
딱 하나 안대훈을 제외하고서였다.
‘시작? 설마?’
아니, 강혁도 영향을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오컬트적인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였다.
보통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지 않나.
CIA와 엮이고, 미군과도 엮이고, 한국 정부나 대기업들과도 엮인 삶이었다.
그렇다 보니 특이한 인간도 정말 많이 봤는데 그중에는 강혁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더 있겠단 생각이 들게 만드는 놈들이 있었다.
‘이 새끼가 그중에서 제일 이상해.’
해서 오컬트적 현상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수혁은 그야말로 발칙한 상상에 불을 지피는 인간이었다.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질 않나 허공을 바라보고 있질 않나.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뜨고는 좌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열기가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신기가 서려서 그런가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이번 감염의 경우…… 모든 인원이 같은 동물에 접촉했고, 모두 같은 시점에 증상이 발현됐습니다. 나이나 면역에 따라 증상 정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하여간 비슷하죠?”
“아……. 네. 그렇죠. 그렇죠.”
게다가 수혁은 강혁을 똑바로 바라본 채로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기분이 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깔이 진짜 묘하네, 저놈.’
아마 일반인은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냥 봐서는 눈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테니까.
하지만 아주 자세히 보면, 그러니까 강혁 정도 되는 예민한 시각을 이용해서 보면 뭐라고 해야 될지 애매한 지점이 있었다.
게다가 안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어딘가를 따로 응시했다가 정면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보이니까 개무섭네.’
돌이켜보면 거침없는 생이었다.
대한민국의 인프라를 만들어 두기 위해 기존에 예산 타 가던 기득권들과도 싸웠고, 세상에서 제일 위험하다는 곳에도 갔고, 이후에는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작전에도 동원됐다.
그 과정에서조차 흥분한 적은 있어도 공포심에 빠져든 적은 없었는데.
나이 일흔에 이제 와 무서운 게 생길 줄이야.
“그 말은 곧 공통된 원인에 노출되었을 거란 얘기가 됩니다. 주된 증상이 설사로 표현될 수 있는 질환은 크게 구분해서 두 개죠. 하나는 독소입니다. 아무래도 자연환경에서 그대로 식수나 음식을 조달할 가능성이 클 거 같아서 이걸 먼저 의심했습니다.”
“으음.”
수혁의 눈알은 지금도 미세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강혁을 볼 때도 눈만 보는 게 아니라 표정을 살피는 건지 뭔지 왔다 갔다 했다.
안 보이면 그냥 그런갑다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만.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까 신경이 너무 쓰였다.
‘시발, 무서워.’
해서 강혁은 아래를 보고 답했다.
수혁은 저 인간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지만, 일단 자랑하던 와중이지 않나.
워낙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라서인지 중간에 다른 사람이 뭔 짓을 해도 잘 끊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면 따라가면서 자랑을 늘어놓은 적도 있었다.
고개 숙이는 것 정도는 방해 요소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문진을 해 보니 충분히 독소에 대해서는 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적어도 지금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만 섭취했거나 노출된 것은 없어요. 그래서 독소는 배제했습니다. 그럼 남은 건…… 감염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감염병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일어났을 겁니다. 특히 여기 계시는 이분들에게는 무조건 일어났어야 맞죠.”
“그렇지. 그런데 없어.”
강혁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감이 오기는 했다.
‘인수 공통 감염이겠군. 생각해 보니까 여기가 엄청 많겠네.’
대한민국 농가라고 해도 동물과의 접촉은 빈번할 터였다.
하지만 취미 삼아 닭 몇 마리 키우는 거라면 모를까,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국가 시스템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고 있단 얘기였다.
심지어 수의사의 감독도 받았다.
시스템이 다르단 얘기였다.
‘내가 왜 이걸 생각을 못 했지.’
강혁이 통렬한 반성에 빠진 동안 수혁은 말을 이었다.
기묘한 미소를 지은 채였는데, 안대훈은 이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먹었다.
‘기분 진짜 좋으시구나!’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몽골에 오면서 하나 했지, 또 오자마자 한 건 했지.
모시는 입장에서 이따위 말을 하는 건 너무 죄송하지만, 관종에 잘난 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눈깔 돌아갈 만한 상황일 터였다.
물론 안대훈은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틈을 타서 수혁의 옥체에 손을 댈 요량이었다.
“역시 교주님!”
어깨를 주물렀다 이 말이었다.
“후후.”
아니나 다를까, 평소라면 어허 이놈이 했을 양반이 지금은 그저 웃고 있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했다.
“인수 공통 감염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큰일 아닌가? 대응을 어떻게 하지?”
강혁이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렸다.
아무리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똥에 뒤섞여 나온 병원체를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모든 것이 관찰이 아니라 추론의 영역에 있었다.
최고의 의사긴 하지만 강혁이 능한 분야는 결국 수술이었다.
칼로 째고, 봉합하는 일련의 행위에 있어서는 여전히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과적 추론은 얘기가 완전히 달랐다.
‘좋다. 좋아.’
[천재라더니 별거 없네요?]
‘그렇다고 하기엔 수술 귀신이더라.’
[손으로 하는 거 잘하는 거랑 머리로 하는 거 잘하는 거랑은 다르죠.]
‘하긴, 하긴 그래.’
수혁은 그런 강혁을 보면서 동시에 강혁이 알게 된다면 뒤질 만한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강혁은 자꾸 오락가락하는 수혁의 눈알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 제 말이 안 끝났습니다, 교수님.”
“아, 그래요. 네.”
아니, 이미 수혁의 시건방진 말에도 제대로 대응이 안 될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세상에 귀신에 씐 의사가 있을 줄이야.
이게 대체 말이나 된단 말인가.
“양이 원인을 제공했고…… 미약하지만 설사 증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의 증상 또한 설사와 발열인데…… 사실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성인의 경우에는 경한 설사죠. 그렇죠?”
“그렇죠. 심했으면…….”
가령 콜레라 따위의 질환이었으면 이런 부족의 경우엔 벌써 몇 명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괜히 콜레라가 돌 때 고대부터 사회의 위기가 찾아왔겠나.
설사라기보다는 그냥 물을 싸는 수준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이번 증상은 가히 가볍다는 말조차 가능했다.
“증상으로 질병 특정이 될 정도인가?”
“네, 사실 아주 드문 질환은 아니거든요. 물론…… 일부 샘플을 채취해서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긴 해야 할 겁니다만.”
“그건 당연하고요. 오토바이라도 탈까?”
“음……. 검체는 그렇게 운반해서 결과를 보는 게 좋기는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약도 가져오죠.”
“약…… 음,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수혁은 차량 위에 실려 있던 오토바이를 떠올렸다.
흔히 도로에서 볼 수 있는 것들하고는 좀 다르게 생긴 녀석이었다.
속도가 얼마나 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빠를 거 같았다.
“그 전에 대증적 치료도 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증적이면…… 지금처럼 설사 따라가는 걸 말하는 건가요?”
“네.”
“격리는 불필요합니까? 바이러스면…….”
“아, 원충입니다. 크립토스포리디움 파르붐(Cryptosporidium parvum)일 거예요. 아형까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말로 하면 작은와포자충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농장이 많은 지역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견됩니다. 근데 이 정도로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래서 아형일 거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하, 그거 다행이네.”
기생충은 바이러스와 달리 변이를 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아마 지금 의대생이 기생충학에 흥미를 느껴 교수님 찾아가면, 너 의사 할 때는 기생충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만 들을 터였다.
약 두 개로 다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기생충은 이미 인류가 거의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자꾸 먹지 말라는 걸 먹고, 병원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희귀 사례는 계속 보고되고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제때 진단만 되면 우환거리는 못 된단 얘기였다.
“약은…… 사실 필요 없긴 합니다. 대증적인 치료만으로도 충분해요. 아이들도 다행히 나이가 아주 어리지는 않고, 또 면역 저하를 보이는 사람도 없고요.”
“대부분의 설사병이 그저 대증 치료만 해도 좋아지기는 하죠.”
인류를 괴롭혀 왔던 콜레라도 그렇지 않나.
이 정도 설사면 사실 저절로 좋아지긴 할 터였다.
하지만 안심하는 강혁과는 별개로 수혁의 말은 계속되었다.
“상황을 보니 딱히 이 부족만 겪는 문제는 아닐 거 같습니다. 다른 부족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요. 면역 저하자들은 이걸로 죽기도 하거든요.”
“그럼 이번은 아니더라도 약은 구비해 놓는 게 좋겠네요.”
강혁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오토바이를 내리고 있었다.
수혁이나 문외한이라 알아보지 못했지만, 안대훈은 의외로 저쪽으로 취미가 있다 보니 몸을 움찔거렸다.
‘KTM 슈퍼어드벤처 1290? 저런 괴물이 여기 있어?’
대륙 횡단에 나서도 될 정도의 모델이었다.
강혁은 거기에 환자들 분변 봉투를 담고는 수혁의 말을 기다렸다.
나이가 70이라던데.
너무 멋져서 좀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nitazoxanide라는 약이 최근 개발되어서 쓰이고 있습니다. 평도 좋아요. 구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케이. 다녀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