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화 백강혁 (3)
미친 사람인가?
이게 이수혁과 바루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외상 외과 사람이 이비인후과 수술하겠다고 설치는 것도 신기한데 그걸 30분 만에 끝내겠다고?
말이 되나?
[수혁, 일단 그런 말은 자리나 피하고 하세요.]
‘어? 나 언제 여기 서 있어.’
[홀린 듯이 왔습니다. 잘생긴 사람의 마력일까요?]
‘아니…… 아니 그런 걸 아닐걸. 아니지 않아?’
[글쎄요. 주변에 잘생긴 사람이 있어 봤어야 알죠.]
‘음.’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안대훈.]
‘아.’
네 명 다 참 그랬다.
물론 수혁도 외모로 어디 가서 부심 부리기엔 많이 모자란 사람이지만, 저들 넷과 비교하면 제일 나았다.
심지어 젊은 시절로 보정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현종은 지금이 더 나았다.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덥수룩한 머리에 검정 안경을 고집하고 있었으니까.
지이익.
그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수술이 시작되었다.
여느 수술이 다 그러하듯 절개부터였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절개 부위가 예상과 많이 달랐다.
귀 수술이라면 보통 귀 뒤를 째고 들어가는데 강혁은 귓구멍을 째고 있었다.
메스를 요상하게 들고서였다.
[수혁, 잘 봐야 될 거 같습니다.]
‘드문 건 아니잖아, 이 절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진단명과 백강혁이라는 의사의 전문 과를 생각해 보면 더없이 드문 조합입니다.]
‘그것도 그렇네.’
[게다가…… 피가 안 나요.]
‘아.’
요상하다는 생각이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절개 부위에서 피가 거의 안 나오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현미경을 보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벌릴 거.”
“네.”
강혁은 그렇게 귓구멍에 세로로 절개를 넣고는 강제로 쭈욱 벌렸다.
그러자 귓구멍이 확 확장되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시야였다.
요즘에야 따로 검색을 해 보면 이런 정도의 화면을 얼마든지 볼 수야 있겠지만 수혁은 일단 내과 의사이지 않나.
[데이터화 시작합니다.]
‘좋아.’
바루다가 녹화에 들어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영상을 보는 것과 눈앞에서 직접 보는 건 일단 생생함부터가 달랐다.
“다시 칼.”
“네.”
“잘 봐. 이제 고막 뚜껑 따고 안으로 들어갈 거야.”
“아, 네.”
강혁은 그렇게 시야를 확보하고선 수술실 간호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시선은 수혁을 향하고서였다.
아까처럼 수혁의 눈을 볼 수는 없었다.
수혁이 현미경에 두 눈을 딱 붙이고 서 있었어서였다.
지이익.
하여간 강혁은 방금 자신이 말한 것처럼 고막 뚜껑을 따기 위한 절개를 넣었다.
아까 절개를 세로로 넣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가로였다.
그렇게 만든 절개 틈새로 기구를 넣어 툭툭 밀어내는가 싶더니 결국, 훅 하고 뒤집어지는 순간이 왔다.
손상은 없었다.
정말로 뚜껑 따듯 열렸을 뿐이었다.
“오…….”
“이 안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아, 네……. 처음입니다.”
“사실 나도 직접 해 보는 건 처음이야.”
“네?”
중이, 그러니까 가운데귀를 처음으로 보는 소감은 꽤 특별했다.
사실 이비인후과 영역은 관련 과가 아니고서는 평생 대학 병원에 있다 해도 별로 볼 일이 없지 않겠나.
근데 이걸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이보다 놀랄 일은 드물겠다 싶었는데, 바로 더 놀랄 일이 튀어나왔다.
‘직접 해 보는 게 처음이라고?’
[거짓말이죠. 말이 됩니까? 지금 수술 시작하고 5분도 안 지났어요. 근데 일단 수술 부위까지 접근이 끝났습니다. 이런 부위 수술이 보통 이런 접근에만 20, 30분 걸린다는 걸 생각해 보면 밥 먹고 이 수술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에요.]
‘그, 그렇지? 말이 안 되지?’
[네. 근데…….]
‘근데 뭐.’
[제 분석상으로는 거짓말을 말하는 얼굴은 아닙니다.]
‘미친.’
바루다의 말에 수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루다의 제어가 없었다면 그대로 현미경도 흔들어 댔을 터였다.
그만큼 놀란 상황이었다.
‘흐음……. 꽤 신체 움직임이 정교한데? 근데 걷는 거 보니까 딱히 계속 그런 거 같진 않고…….’
강혁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 확실히 이놈이 뭔가 있다는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자신 정도는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세상에 한 명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 않나.
‘솔직히 나는 신이 몰아줬지.’
일단 외모만 봐도 그랬다.
누가 강혁을 보고 일흔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나.
그저 마흔이나 됐나 하지.
하나 강혁이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진짜 주어진 선물은 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발전하고 있는 수술 실력이 진정한 선물이었다.
“앰부 세게 짜 봐요.”
“아, 네.”
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수술은 빈틈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술 안 했으면 큰일 났겠네요.]
‘그러게. 저건 무조건 수술로 막아야 해.’
수혁 또한 수술 부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취과 의사가 수동으로 앰부를 짜면 어떻게 되겠나.
안에 압력이 순간적으로 올라가게 될 터였다.
그럼 이왕 깨진 곳에서는 물이 더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단번에 어디가 깨졌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긴데, 그 양이 적지가 않았다.
“여기만 막으면 끝이네.”
보통 의사 같으면 인상을 쓸 만한 상황에 강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그리 어렵지 않게 균열을 덜컥 막아 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끝.”
시계를 돌아보니 정말로 30분도 채 안 걸려서 끝나 버렸다.
아니, 30분이 다 뭔가.
이제 고작해야 20분이 흐른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혁은 워낙 빠르게 흘러가는 수술에 집중하느라 다리가 아파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때? 수술도 재밌지?”
“아, 네. 대단하십니다.”
“뭐…… 그쪽도 어지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냐?”
강혁은 그런 수혁을 내내 관찰해 온 참이었다.
분명 자신과 같은 제어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확실히 특별한 지점이 있었다.
‘아까 림프액 흘러나올 때…… 움직임을 다 따라갔어. 심지어 현미경에서 눈이 꽤 떨어져 있었는데…….’
뭔가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강혁은 왜 그런지 알 거 같았다.
‘나랑 같을 거야.’
이런 동질감은 처음이었다.
“어‥….”
“배고프지? 밥 먹자고.”
해서 강혁은 저도 모르게 수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수혁은 팔이 아니라 강철을 두른 듯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세상에 이게 사람 팔이란 말인가.
대체 얼마나 단련을 해야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아까 수술복 입고 있을 때도 대강 알아보긴 했지만, 어지간한 헬스장 트레이너도 이럴 거 같진 않았다.
‘뭐야……. 벌써 의기투합한 거야?’
‘괴물들끼리 알아본다 이건가.’
하지만 수혁이 놀란 건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었다.
신현태와 이현종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우리 수혁이 안 괴롭히는 건 좋은데…….’
‘너무 저러니까 또 살짝 빈정상하려고 그러네.’
‘형은 역시 기준에 좀 모자라서 그렇게 갈궜나 보다.’
‘이 새꺄, 너는 아예 갈구지도 않았거든? 그때 뭐라고 했더라? 아, 맞아. 의학 발전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할 테니 너는 가정이나 꾸리라고 했잖아.”
‘그래서 가정 잘 꾸려서 잘 살았지, 뭐.’
‘와……. 묘하게 열 받네.’
기껏해야 2주였다.
그들이 강혁과 함께했던 건.
하지만 그 2주가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던가.
신현태야 옆에서 구경만 했으니 잘 모르겠지만, 이현종이 프락치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다 백강혁 때문이었다.
“마침 다 모여 있네. 들어가서 같이 먹지.”
“아, 네. 좋습니다.”
“한국에서 온다고 우리가 특별히 이 근처 부족 중에 제일 좋은 고기 생산하는 사람들한테 얻어 온 거야, 이거.”
“아……. 오.”
신현태와 이현종이 그러거나 말거나 강혁은 수혁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안에는 아들, 조카 걱정에 수술실 주변을 배회하던 이현종, 신현태를 제외한 태화 식구들 전부와 태화 울란바토르 진료소의 핵심 인력들이 모여 있었다.
강혁은 수혁을 자리로 돌려보낸 후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주방 한켠에 쌓여 있는 고기를 가리켰다.
“양고기 못 먹으시는 분은 미리 말씀하세요. 근데, 참고로 여기 양은 누린내가 거의 없어요. 정말 맛있으니까…… 한 점씩은 다 드셔. 먹으면서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들으면 됩니다.”
“네. 교수님.”
“이야, 신 교수. 원장이라고 했죠?”
“네네. 덕분에.”
“잘됐네. 하여간…… 일단 먹어요. 먹는 건 여기서 먹고, 굽는 건 저 밖에 화로가 있으니까 거기서 구워 드릴게. 우리 바비큐 전문 셰프가 계시거든.”
전문 셰프란 말에 다들 푸근한 인상의 몽골 아저씨를 떠올렸다.
하지만 밖에 서 있는 건 말쑥한 인상의 한국인이었다.
심지어 어디서 본 거 같았다.
[마취과 교과서에 나오던 사람 아니에요? 마취과 학회장도 했던?]
‘아……. 설마 박경원 교수님? 근데 왜 여기서……?’
[아마 백강혁 제자일걸요.]
‘마취과인데?’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허…….’
너무 의외의 인물이 튀어나온 셈이었다.
벌써 몇몇 마취과 교수들은 버선발로 뛰쳐나가서 박경원 교수가 들고 있던 집게니 뭐니 하는 것들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백강혁 쪽을 한번 훔쳐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할게. 나 잘 구워, 알잖아.”
“아니, 그거야 알죠. 그래도 이게.”
“어허. 자네들 이럴 거야?”
“아니…… 아닙니다. 네.”
그렇게 바비큐 파티가 시작되었다.
‘존맛. 미쳤다.’
[그러니까요. 아니……. 뭔 고기가 이래?]
‘몽골 더 있고 싶다.’
[저도요. 더 있읍시다. 휴가 붙여서 내죠.]
고기는 백강혁이 장담한 것보다도 더 맛있는 느낌이었다.
“와, 이건 미쳤다. 역시 미식가는 미식가야.”
“늙어도 똑같구나.”
“솔직히 우리만 세월을 맞았나…… 얼굴 고대로 같은데.”
심지어 내내 침울해 있던 이현종, 신현태, 김승규마저 즐거워진 마당이었다.
그렇게 다들 신나 있을 때, 강혁이 입을 열었다.
“자, 먹으면서 들어요. 뭔 일 해야 하는지 말씀드릴 테니까.”
마이크를 잡은 것도 아닌데 무슨 수를 쓴 건지 몰라도 다들 똑똑히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수혁은 그저 고기 먹는 데 집중하면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게 만족스러울 뿐이긴 했다.
[딴 데 주의 집중하지 마세요. 지금은 이 맛을 기억하는 데 최선을 다합시다.]
‘너 이건 왜 데이터화가 잘 안 되니.’
[감각을 다 극도로 끌어올려서 하려면…… 다른 걸 줄여야 해요. 의학적인 바보를 택할까요?]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자주 먹자.’
[네, 그게 좋겠죠?]
강혁은 잠시 게걸스러운, 살짝 자신의 기대와는 엇나가 있는 수혁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일단 오는 환자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다 봅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가 유목민들이 아직도 많다는 거예요. 여길 와 주면 좋은데 경로가 안 겹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이쪽에서 가야 됩니다. 그편이 몽골 현실을 여러분들이 더 잘 알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고 해서. 일단 조를 불러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