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화 백강혁 (1)
신사의 말투는 꽤 충격적이었다.
니들 오랜만이라니.
바루다를 탑재한 이후로 놀랄 만한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예외였다.
말투만 그랬으면 아마 차라리 나았을 터였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반응 또한 놀라웠다.
“네네, 교수님.”
“하하……. 별일 없으셨죠?”
“아유, 피부 좋으신 것 좀 봐. 몽골 음식이 잘 받으시나 보다.”
마지막 말은 무려 김승규가 내뱉은 말이었다.
저만큼 낯간지러운 말을 일상 속에서 들을 만한 일이 얼마나 있겠나.
근데 그걸 김승규가 했다고?
한마 바키의 하나야마 카오루가?
펠로우나 레지던트들은 그런 김승규를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외과 애들은 아예 할 말을 잃고 이 진귀한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중 영웅 같은 이들, 그러니까 안대훈 같은 놈은 무려 폰을 꺼내서 동영상까지 찍었다.
“야, 너 뒤질려고…….”
“뭘요, 여기 신경도 못 쓰고 있는데요.”
“음. 그렇긴 하네. 근데…… 김승규 교수님이 왜 저러시지? 그렇게 무섭나?”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백 교수님 겪은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다들 말을 아껴서요. 저로서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레지던트가 이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이나 치면 될 일이었을 터였다.
네까짓 게 뭔데 ‘저로서도’와 같은 말을 쓴단 말인가.
하지만 안대훈은 달랐다.
자격이 있었다.
이 녀석의 정보망은, 적어도 태화 의료원 내에서만큼은 상당히 쓸 만했으니까.
‘제가 교주님의 출생이 불분명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습니다요.’
심지어 수혁이 보육원 출신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현종이 생물학적인 아빠가 아니라는 것 정도야 옛날옛적에 알았고.
문제가 있다면 안대훈의 머리가 이쪽 방면으로는 거의 돌아 버린 지 오래라, 이러한 사실 관계를 자꾸 이상한 쪽으로 왜곡해서 해석한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신의 아들…….’
부모를 알 수 없다면 그냥 고아인 갑다 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방식 아니겠는가.
하지만 안대훈은 달랐다.
그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 대외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하여간 그랬다.
“아, 맞아. 천재 하나 있다며. 이현종보다 낫다고?”
“아, 네. 그, 근데 저희 병원의 희망이라.”
“아, 알지. 나도 통화했어. 이유원이랑.”
“이유원……? 아, 회장님이랑…… 네네.”
“안 뺏어 가니까 걱정 마. 그냥 여기 있는 동안 좀 써먹으려고 그래.”
그사이에도 백강혁과 이현종, 신현태, 김승규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백강혁이야 여유가 넘치는 얼굴이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진땀 나는 순간이었다.
설마하니 회장하고도 통화가 될 정도였을 줄이야.
역시 백강혁 뒤에는 뭔가가 있다는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었다.
유명인이니만큼 원래 나무위키도 있고 다 있지 않았나.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싹 다 지워지기 시작하더니, 행적이 묘연해졌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른 모양이었다.
“쓸 만할 거 같던데. 벌써 오면서 한 건 했다며.”
“네? 아, 누가 말씀드렸나?”
“응.”
“누가…… 여기 우리 말고는 교수님하고 대화 나눈 사람이…….”
“아, 너네 말고. 기장이. 몽골 왔다 갔다 하는 한국인 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 거의 없어.”
“아.”
비행기 건까지 벌써 넘어갔다니.
이현종은 역시 어떻게든 수혁을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오죽하면 김다현도 이런 말을 남겼겠는가.
‘이정복 회장님 때부터 백강혁 교수님은…… 장난 아니었던데요? 괜찮겠어요? 이현종 교수님…… 프락치에 집착하게 된 것도 그 사람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악명이 대단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쥐락펴락하는 집단인 태화에서조차 거물로 인지하고 있는 ‘개인’이라니.
“오라고 해 봐.”
“아, 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수혁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희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사람도 늙기는 했을 거야. 그럼 기량이 조금이라도 떨어졌겠지.’
겉으로 볼 때는 솔직히 머리 하얗게 된 거 말고는 잘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게 염색인가 싶기도 했다.
보통 흰머리 염색하면 겉이 까맣고 뿌리는 하얗지 않던가?
이 인간은 어찌 된 게 그 반대였다.
하지만 의학에서 나이는 깡패였다.
노화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진시황도 속절없이 죽었는데 백강혁이라고 다를 거 있겠나.
‘게다가 수혁이는 진짜 천재야. 아니, 괴물이야. 적어도 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수혁은 천재였다.
진짜 천재.
그렇다면 드디어 백강혁의 콧대를 꾹 눌러 줄 수도 있을 터였다.
“아……. 이게 이수혁이구나.”
불려 갔더니, 백강혁은 마치 노예 상인이라도 된 것처럼 수혁의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아마 이 개수라도 세어 봤으면 영락없이 로마 시대였을 터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군요.]
‘그러니까. 의사 맞아?’
사실 수혁도 의사치고는 이런저런 거물들을 끊임없이 만나 온 참이었다.
아랍 왕자, 싱가포르 로열패밀리, 태화의 사장, 여당 대표 등등.
다들 나름의 관록이 있고 또 나름의 압박감을 주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선 백강혁은 한 차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생긴 것만 봐서는…… 그렇게 똑똑할 거 같지 않은데…… 그래도 깡이 좋네.”
“네? 무슨 깡이.”
“얘도 날 살피잖아. 니들은 김승규 말고는 아무도 못 그랬어. 그마저도 악수하고 나서는 눈 피했지.”
“아…….”
강혁의 말처럼 수혁이 딱히 깡이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바루다 때문에 처음 보는 현상이 있으면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을 뿐이었다.
한 사람의 인간에게 현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진짜 과한 일이긴 하지만, 백강혁은 그래도 될 거 같았다.
[눈이 좀 이상합니다.]
‘눈? 아…… 뭔가…….’
[이현종도 관찰력이 좋은 편인데,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상대를 살피지는 않았어요.]
수혁은 바루다 덕에 아주 세밀한 부분도 분석이 가능하지 않나.
그렇게 바라본 강혁의 눈은, 홍채부터 달랐다.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움직였다.
오버 스펙의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묘한데? 이 자식, 왜 나랑 비슷한 느낌이 들지?’
그 비슷한 느낌을 강혁도 받고 있었다.
수혁의 눈이 강혁의 그것처럼 정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재밌네. 이번 봉사팀은 재밌겠어.’
수혁이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강혁이 실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은 순간이었다.
‘얼굴 고수네. 부럽다.’
[인정합니다. 이 얼굴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면 얼추 드라마랑 상황이 다 맞아떨어지겠네요. 가령 우하윤의 손을…….]
‘닥쳐.’
별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 질투심 때문이었다.
좀 구차하긴 해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감정 중 하나 아닌가.
충분히 이성을 억누를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환자 있지 않나?”
“아, 네. 혹시 괜찮다면 울란바토르 병원 말고…… 교수님 병원에서 봤으면 합니다.”
“문제없지. 우리가 보는 게 환자 예후에도 훨씬 좋을걸.”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환자 보는 게 내 일인데.”
상대의 변화를 감지한 강혁은 아까부터 하려던 말을 꺼냈고, 바루다 덕에 평정심을 어지간하면 지킬 수 있는 수혁은 그 말에 즉시 화답했다.
옆에서 보기엔 정말 이상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오라고 하더니 갑자기 깡이 좋다고 하고, 이제는 환자 얘기야?
둘은 정식으로 자기소개도 나누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여간 얘는 진짜 내 아들이라니까.’
‘그러니까…… 아니, 어쩔 때는 형보다 더 이상해.’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저렇게 쫄지도 않고 얘기하지? 그때 우리보다 지금 이수혁 교수가 더 어리지 않나?’
그걸 보면서 이현종, 신현태, 김승규는 혀를 내둘렀다.
괴물들의 대화라 그런가. 확실히 일반인들이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어서였다.
물론 여기서 제일 처지는 신현태도 영재고, 김승규는 천재고, 이현종은 불세출의 기인이긴 했지만.
백강혁, 이수혁이 궤를 달리하는 사람들이라 가능한 생각이었다.
“환자는 아, 저긴가?”
“네. 발살바로 인한 외림프 누공 발생을 의심해서…… 스테로이드 주사했고, 일단 머리 높여서 경과 관찰 중입니다.”
“외상성이라는 건가?”
“네.”
“흐음.”
둘은 남들이 어쩌거나 말거나 대화를 이어 나갔다.
환자에게 다가가면서였다.
“어지러워요?”
“아, 아뇨.”
강혁은 환자에게 가까이 가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환자는 고개는 고정한 채 아니라고 했다.
세반고리관에서 물이 림프액이 빠져나온 탓에 평형기능이 약화되어서 그랬다.
함부로 고개를 흔들거나 하면 엄청 어지러울 터였다.
“이수혁 선생.”
“네?”
“잘 봐.”
수혁도 환자에게 절대 고개 움직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둔 참이었다.
한데 강혁이 갑자기 환자의 머리를 잡았다.
잘 보라고 하면서였다.
“으어어.”
그리곤 고개를 돌렸다.
당연하게도 빙글빙글 도는 어지럼증이 발생했고, 환자는 비명을 질렀다.
[뭔 미친.]
딱히 환자를 사람이라기보다는 케이스로 보는 편인 바루다도 놀랐을 정도로 우악스러운 진료 방식이었다.
“잘 보라고, 환자 눈.”
“아니, 이게.”
“또 흔들어야 돼. 잘 봐.”
“아, 알았어요.”
상대가 백강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말렸을 터였다.
하지만 백강혁에게는 왜인지 모를 위엄이 서려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거역할 수 없는 느낌이랄까?
아니, 지금은 오히려 시험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뭐가 됐건 눈을 보죠. 이미 벌어진 일이고…… 사실 이런 식의 증상 유발은 예후에 악화를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아, 알았어.’
해서 눈을 보았다.
안진이 있었다.
눈이 튄다는 뜻이었다.
“정도가 어떤 거 같아.”
“네? 심한데요?”
“안진 강도를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확히……? 설마…….”
“그래, 그 설마.”
강혁은 수혁의 눈동자 움직임을 따라가는 거 같더니만 무언가 기대에 찬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쩐지 반드시 부응해 주어야만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수혁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대략 40도/초의 강도로 튀는데요.”
“오.”
비디오 안진 검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가 그냥 육안으로만 봤는데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긴 했지만, 강혁과 수혁만큼은 아닐 터였다.
둘은 거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
‘맞혔네. 얘도 나처럼 눈알이 예민한가?’
‘이 사람은 이걸 안다는 건가? 설마 이 인간도…… 바루다가?’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