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35화 (635/1,303)

635화 몽골로 (2)

수혁의 목소리가 대훈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컸던 모양이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 중 몇몇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상대가 수혁이라는 걸 확인한 이후에도 그런 얼굴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적어도 태화 의료원 내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흠흠.”

“으음.”

“음음.”

다들 불편하다는 시늉만 했을 뿐, 별말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그 정도만 해도 수혁에게 압박이 되기는 했다.

자기 잘못은 원래 자기가 제일 잘 아는 법이었다.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자.”

“아, 네. 그…… 몽골 음식 중에 그래도 괜찮은 것들이 있던데요? 일단 백 교수님이 완전 미식가래요. 그래서 주말에 좀 불편해도 따라붙으라던데.”

“그래?”

해서 화제를 바꾸려 했더니 안대훈이 귀신같이 음식 얘기를 꺼냈다.

하루 이틀 같이 지낸 것도 아닌 데다가, 늘상 수혁바라기로 있던 만큼 수혁이 뭘 제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덕이었다.

늘 그렇듯 수혁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기 시작했다.

[오호! 몽골은 유목 민족의 나라죠. 고기가 맛있겠죠?]

바루다도 마찬가지였다.

안대훈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몽골 음식의 기원, 변화 그리고 현재에 대해 끝도 없이 떠들어 재꼈다.

벌써 1주일 전부터 공부를 해 왔기에 대화가 끊기질 않았다.

비행기가 뜨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재미난 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 어…….”

그때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마침 앞을 지나던 승무원이었다.

비행기가 각 국가 간 이동에 있어 가장 간편한 이동 수단이 됨에 따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비행기에 타는 인구가 늘어난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그렇다 보니 승무원들은 자연히 각종 사태에 대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있었다.

그중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의료적 응급 상황이었다.

“괜찮으세요?”

승무원은 우선 환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 어지…… 어지러…… 으, 으아.”

환자는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말도 더듬고 있었는데, 이게 머리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다른 증상 때문에 이러는 건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지금 증상을 호소하고 있는 환자가 혼자가 아니란 점이었다.

바로 옆에 보호자가 동승하고 있었다.

“혹시 고객님이 기저질환이 있으신가요?”

“아, 아뇨. 딱히 먹는 약은…….”

승무원이 보기에도 기저질환이 있을 것 같은 몰골은 아니었다.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사십이나 되었을까?

‘닥터 콜을 해야겠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나이가 젊다고 해서 심혈 관계 질환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 다른 항공기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해 회항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환자는 고작해야 22살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의사 불러오겠습니다.”

“네, 네네. 빨리 좀.”

승무원은 승객에게 그리 말한 후, 부리나케 앞으로 달렸다.

상황을 전달받은 기장은 즉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기장입니다. 승객 중 의료적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십니다. 혹시 의사분 계시면 승무원이 바로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손들이 들려 올라갔다.

손을 들면 바로 그쪽으로 달려가 과를 물으려 했던 승무원들이 당황했을 지경이었다.

“왜 그래? 아무도 없어?”

기장은 잠시 마이크를 끄고 물었다.

승무원 중 단 한 명도 움직이질 않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물론 돌아온 답은 정반대였다.

“아뇨, 너무 많아요.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지…….”

“우리나라 의사 10만 명이래. 많지, 뭐.”

“수십 명인데요?”

“아, 그래? 고등학생들이 있나? 장난하면 안 되는데. 다시 방송할게.”

기장은 재차 마이크를 들고 방송을 이어 나갔고, 오히려 손든 사람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어…….”

“저희 태화 의료원 사람들입니다. 봉사 가는 중이에요. 아, 저는 감염내과 전문의 신현태입니다.”

덕분에 벙 찐 얼굴이 된 승무원에게 신현태가 다가가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제야 승무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상황 파악이 되는 동시에 잘되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 내가 나설 일은 없겠지.’

신현태도 마음이 가볍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잘 알아서였다.

심장엔 이현종, 호흡기 질환에는 홍창기를 비롯해 그 외 내과 분과들, 성형외과, 안과, 마취과, 정형외과 등이 있지 않나.

이 사람들이 있는데도 처치가 안 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내가 가서 보지.”

몸을 일으키던 이현종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옆을 슬쩍 보니, 이륙하기 전부터 신나게 떠들던 수혁과 대머리는 잠든 모양인데 굳이 깨울 필요도 없어 보였다.

‘심장이지, 뭐.’

비행기 관련 응급 상황의 종류가 꽤 여러 개인 건 맞았다.

하지만 대개 심혈관 질환 내지 만성 폐 질환 선에서 정리되곤 했다.

실제로 이거 두 개 말고는 딱히 비행기를 돌려야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보면 좋았다.

그렇지 않겠나.

“환자분.”

그리고 심장은 이현종만큼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해서 이현종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환자를 불렀다.

“으으.”

환자는 답을 해 오는 대신 눈을 질끈 감고는 신음을 흘렸다.

무언가 아주 고통스러운 증상을 견디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역시 심장인가.

“제세동기! 환자 눕히고! 복도 싹 비워!”

느낌이 딱 오자마자 이현종은 필요한 물품을 요청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전기로 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심장의 리듬을 보기 위해서 달라고 한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승무원은 정말이지 나는 듯이 달려 제세동기를 들고 왔다.

“헉, 헉…… 여기.”

오히려 의료인이 아니어서 더 빠릿한 느낌이었다.

하긴 눈앞에서 사람이,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이 죽어 가는 건 처음이지 않겠나.

그런 상황에서 내 일 아니랍시고 느긋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다른 승객들도 처음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기도하는 이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좋아. 음.”

이현종은 홍창기 등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복도에 눕힌 참이었다.

뿐만 아니라 웃옷은 숫제 찢다시피 해서 가슴을 노출 시켰다.

덕분에 이현종은 제세동기가 오자마자 바로 가슴에 부착하고 리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

빈맥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빈맥이라고 말하기도 좀 애매했다.

빠르긴 한데 100 내외를 오가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맥박도 잘 잡히고……?’

심장에 그 외에 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단지 빠르게 뛰고 있을 뿐, 정상이라는 얘기였다.

빈맥은 어찌 설명할 거냐는 문답은 필요치 않았다.

그저 통증이 있으면 심장이 빨라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워낙에 흔한 일이란 얘기였다.

“잠시만요.”

자연히 이현종은 뒤로 빠지고, 홍창기가 앞으로 나섰다.

어느 틈에 챙겨 왔는지, 청진기까지 들고 있었다.

“교수님은 혈압이나 재 줘요.”

“어? 어어.”

수술실에서는 직급과 관계없이 집도의가 왕이란 말이 있지 않나.

내과 쪽에서는 그게 완전히 진리로까지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로 진료 보는 사람이 왕인 법이었다.

해서 이현종은 기껏해야 기조실장인 홍창기의 명을 따라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140에 80. 이것도 증상 떄문 같은데.”

“네네.”

“호흡음은 어때?”

“조용히 하셔야 듣죠.”

이때다 싶었는지 홍창기는 일부러 좀 까칠하게 굴었다.

자신도 있었다.

심장이 아니라면 분명 폐일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새끼가.’

이현종은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긴 해서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누가 옆에서 청진하고 있는데 떠들면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고.

“흠.”

게다가 홍창기라면 실력은 믿을 만하지 않나.

해서 뭔가 나와도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흐음.”

하지만 시간이 얼마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홍창기의 감은 눈은 떠질 줄 몰랐다.

손은 아까처럼 환자 가슴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이현종이 보기엔 어쩐지 갈 곳을 잃어 그런 거 같았다.

“흐으음.”

“야, 눈 떠. 정상이지?”

“아, 네.”

해서 찔러 보았더니 대번에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홍창기는 괘념 쩍은 얼굴로 눈을 뜨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이로써 심장도, 폐도 아니게 된 셈이었다.

‘그럼 대체 뭐지?’

멀쩡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까지 심한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 뭐가 있을까.

유발인자라고는 고작해야 이륙밖에 없는데.

“회항…… 해야 할까요?”

고민에 빠진 그 거물에게 승무원이 물었다.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었고, 동시에 항공사에는 부담이 되는 질문이었다.

한번 떴다 내리는 데 소모되는 기름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물론 여기서 소모되는 기름값을 의사에게 청구하는 일은 없었지만.

하여간 은근히 그러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는 건 대강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이현종이 뭐라 입술을 달싹거리려는 순간, 신현태가 나서서 손을 들었다.

“왜, 왜.”

“수혁이 있잖아. 내가 깨워 올 테니까…… 그사이에 다른 과 선생님들도 한번 봐요.”

“아니, 저는 성형외과…… 어어, 밀지 마요. 내가 왜.”

수혁이라는 비밀 병기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그 전에 혹시 해결될 수도 있으니 다른 과 의사들도 투입시켰다.

하필 그게 성형외과였는데, 그는 이현종, 홍창기 등과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그냥 지나쳐 반대편으로 가서 쭈그렸다.

“아, 나도 안과라고. 아씨. 환자분 안 보여요? 환자분? 아니잖아.”

안과도 마찬가지였다.

각 과의 쓰임새가 다 있고,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리는 건 우스운 일이라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마이너 과의 역할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어어, 쭉정이들은 비켜. 조커 온다.”

“또 밀어요?”

“비켜, 인마.”

“네네.”

그렇다 보니 이현종이 민 데 또 밀어도 별로 할 말이 없었다.

하릴없이 밀면 밀리는 대로 주루룩 이동해서 구석에 쭈그리고 있어야 했다.

“왔어?”

“네.”

성형외과, 안과가 화장실 앞에서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된 동안, 수혁이 천천히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하도 오랫동안 안대훈에게 얘기를 들었더니만 아직도 골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지쳐서 잠깐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생겼을 줄이야.

‘내 업보인가?’

[그거 미신입니다.]

‘근데 진짜 생겼잖아?’

[둘 사이에 정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중요해? 환자가 있다는 게 중요하지.’

수혁은 일말의 책임감과 함께 환자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홍창기와 이현종이 앞다투어 자기가 본 소견을 읊어 주었다.

“심장이랑 호흡기는 아냐.”

“음. 그거 두 개만 배제돼도 큰 거 하신 거죠. 환자분?”

수혁은 그걸 데이터화하면서 환자를 불렀다.

환자의 얼굴 등을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면밀하게 살피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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