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20화 (620/1,303)

620화 이번엔 이비인후과인가 (4)

안대훈은 그야말로 결연함의 화신이 된 채 CT 촬영실로 향했다.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여유롭기 그지없는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환자는 이미 이송 요원의 손에 이끌려 CT 길로 향하는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에 탄 참이었다.

낮이면 거기 낑겨서라도 타는 게 좋았을 테지만 지금은 밤 아닌가.

일반 엘리베이터도 여유가 흘러넘쳤다.

굳이 환자, 보호자 마음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대체 뭐지……?’

결연한 얼굴과는 달리 안대훈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분명 수혁의 얼굴을 보면 이거 알아야 하는 거 같아서 그랬다.

심지어 아까 내시경 화면을 통해서 본 소견은 꽤 특이하지 않았나.

이럴 만한 질환이 흔할 거 같진 않았다.

‘뭐야, 시발.’

따라가는 이비인후과 신도라고 해서 심정이 남다르진 않았다.

아니, 안대훈보다 훨씬 더 초조한 상황이었다.

안대훈이야 내과고 이런 질환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텐지만 자신은 이비인후과 의사지 않나.

이비인후과 관련한 증상으로 입원한 환자고 내시경상에서도 이상한 게 보인 환자인데 정작 이비인후과 의사인 자신은 아예 감도 못 잡고 있었다.

‘4년 차들은 알려나? 펠로우 샘들은 알 것도 같은데.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아직 3년 차라 그래요 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내과나 외과와 같은 메이저 과에서는 4년도 모자란다고 하지만, 이비인후과 교수들은 욕심이 과한 편이라 그랬다.

아예 요새는 4년 차 호칭을 펠로우 0년 차로 바꿔 부르고 있지 않나.

3년이면 기본적인 이비인후과 전문의로서의 소양은 다 떼야 하고 4년 차부터는 분과 전문의 정도의 지식을 조금씩 습득해야 한다는 말을 해 대면서였다.

‘말이 되냐, 시바. 어떻게든 더 부려 먹으려고…….’

그럴싸한 헛소리란 생각만 들기는 했으나 어쩌겠나.

일개 레지던트가 과의 분위기를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띵.

한편 옆에 엘리베이터를 탄 프락치 레지던트 심정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쪽은 4년 차라 오히려 더더욱 초조했다.

‘와……. 이거 진짜 모르겠네? 근데 펠로우라고 이걸 알아? 솔직히…… 최지은 교수님도 모를 거 같은데…….’

뭔가 아는 게 더 있다 보니 오히려 이 케이스의 수준이 더 보여서 그랬다.

3년 차들이야 펠로우 0년 차, 0년 차 해 대는 게 진짜 미친 짓거리라고만 생각이 들겠지만.

4년 차쯤 되어 다른 병원 이비인후과 4년 차들과 교류를 하다 보면 확실히 태화에서 수련 받는 건 축복이었다.

일단 전공의 시험부터 태화, 칠성, 아선 세 곳이 상위권을 독식하지 않나.

희귀한 케이스를 볼 기회가 있다는 건 기본이거니와, 다른 곳에서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케이스나 수술을 여기서는 매주 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세 병원 간의 묘한 경쟁의식 때문에 4년 차 때부터 이미 전문의 시험공부도 하고 있었다.

띵.

뒤늦게 따라붙은 프락치보다는 아무래도 수혁 일행이 먼저 지하 1층에 닿을 수 있었다.

별관에는 CT실이 없어서 여기서부터도 꽤 걸어야 했다.

그 말은 곧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힌트 좀 줄까?”

수혁은 그의 기준으로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잘 모르겠단 얼굴만 하고 있는 안대훈을 향해 말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자존심 상할 만도 한 얘기였다.

문제 내놓고서 힌트라니.

그래도 안대훈이 3년 차, 그러니까 내과 기준으로는 치프 아닌가.

게다가 지금 3년 차 중에서는 제일 뛰어난 인재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네, 교수님.”

하지만 상대는 수혁이었다.

이제 이현종을 뛰어넘을 만한 천재란 평까지 듣고 있는, 일종의 괴물이었다.

게다가 안대훈은 아마 수혁이 지금 이 바보야 아직도 몰라? 좀 알려 줘? 뭐 이런 말투를 사용한다 해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아, 이제 우리 사이가 나름 장난도 주고받는 사이가 됐구나 라고 하면서 기뻐 날뛸 놈이었다.

해서 안대훈은 수혁을 보며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따르던 이비인후과 신도도 덩달아 가까이 오더니 귀를 기울였다.

“일단 아까 내시경 사진 말야. 그 텍스처…… 덩이 같아 보이디?”

“네? 그…… 음. 후두개 상부에서 튀어나온 덩이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질문은 바꿔 보자. 거기에 덩이처럼 자라는 질환이 있기는 한 거야? 비인두 부근도 아니잖아?”

“아.”

덩이라는 것은 곧 종양을 의미했다.

이론적으로 종양은 우리 몸 어디서건 생길 수 있다지만, 확률적 차이 또한 엄연히 존재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루어 볼 때, 후두개보다 위쪽에서 뭐가 자라난다는 건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눈에 보이게 된 이상에야 이러한 추정은 다 필요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수혁이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점막이나, 점막하 종양과 같은…… 소프트 티슈 병변일 거 같냐는 거야.”

“아……. 그럴 가능성은 무척 적어 보입니다.”

“그렇지? 거기 무슨 면역 세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잇몸처럼 지속적인 염증이나 손상, 재생이 이루어지는 곳도 아니지.”

“아, 그럼. 잠시만요. 알 것도 같은데.”

“일단 들어가지. CT실이야.”

“아, 네. 교수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암센터 지하 1층이었다.

별관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아는 사람만 올 수 있을 만큼이나 꼬불꼬불한데, 그걸 지나면서 한 번도 자각을 하지 못한 셈이었다.

그만큼 안대훈은 케이스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여간 이 대머리가 꽤 태도가 좋습니다.]

‘그래, 뭐…… 따로 공부 계속하는 게 얘네 연차에서는 얘뿐이잖아?’

[또 있기는 한 겁니까?]

‘하윤이. 걔도 장난 아니래잖아.’

[아……. 그렇죠. 우창윤이 계속 아선으로 오라고 꼬시고 있다는데…….]

‘글쎄 교수님들이 그렇게 둘까? 가정사가 되어서 어쩔 수가 없나?’

그런 모습은 당연하게도 바루다를 통해 분석되었다.

덕분에 둘은 설령 답을 내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이건 일개 레지던트가 답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이지 않나.

솔직히 말해서 단숨에 진단해 낸 수혁이 괴물이라고 봐야 했다.

심지어 괴물인 수혁조차 지금 자기 자신을 아주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

태연한 척하는 건, 수혁 안에 내재한 나르시시즘 때문이었다.

더더욱 칭송받기 원하는 마음에서 발로한 쓸데없는 짓이랄까?

“자, 환자분 거기 누우시고요. 네. 이거 들어갈 때 좀 화끈할 수 있는데…… CT 찍어 보신 적 있으세요?”

“네.”

“그때 뭐 부작용 없으셨죠?”

“네, 괜찮았습니다.”

수혁 일행이 촬영실에 들어서는 동안, 방사선사는 CT실에서 환자 포지션을 진행했다.

이미 위에서 다 묻고 왔겠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인 알레르기 반응에 관해 재확인하면서였다.

“분명 점막이 양성 종양처럼 아주 매끈하게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그사이 안대훈은 계속 고민을 이어 나갔고, 그 결과 꽤 의미 있는 추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래. 매끈했지. 그럼?”

“점막과 점막하 종양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 뒤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뼈죠.”

“그래, 정확히 말하면?”

“척추…….”

“그래. 그럼 거기서 자라 나올 수 있는 구조물을 지칭하는 말이 뭐지?”

“골극…….”

“그래, 그게 맞는지 확인해 보자고. 아, 뼈 보려는 거긴 한데, 아닐 수도 있으니 조영증강은 해 보도록 해요.”

냅다 촬영을 진행하는 대신 수혁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방사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CT는 MRI와는 달리 꽤 촬영 속도가 빠르다 보니 영상 넘어오는 속도도 빨랐다.

위이잉.

기계 돌아가는 속도와 함께 환자의 몸이 몸통에 들어갔다 나왔고, 수혁과 그 일행이 마주하고 있던 모니터에는 영상이 주르륵 떴다.

처음부터 수혁과 안대훈의 관심을 뼈에 있었기에 차분히 기다렸다.

옆에 있던 이비인후과 신도 또한 매한가지였다.

그럴싸한 다른 가설을 수립하는 데 실패한 그는 그저 둘의 이야기가 맞겠거니 하고 있었다.

“아, 이거.”

“그래, 골극이 형성되어 있어.”

“근데…… 척추에 왜 이런 골극이 형성되어 있죠?”

“척추에 형성되는 것 자체는 드물지 않은 일이지.”

“아, 그건 그런데…….”

골극이란 뼈가 기계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부위에서 자라 나온 구조물을 말했다.

다시 말해 자극을 받다 보니 비정상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그게 지금 눈앞에 놓인 것처럼 기다랗게 나오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사실 골극이 있다고 해서 증상이 있기도 어려운 일 아닌가.

적어도 안대훈이 배우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러했다.

“너무 크다는 거지?”

“네.”

“이거…… 삼킬 때는 후두개의 위치까지 바꿀 정도잖아요.”

“그래, 아마 저 환자 수면 무호흡도 있을걸. 바로 누웠다고 생각해 봐. 이게 숨을 방해하지.”

“아……. 음.”

“자, 그럼 이렇게까지 자라게 된 이유는 뭐가 있을까?”

“그건…….”

안대훈이 내시경 소견과 환자 증상 그리고 수혁의 조그마한 힌트를 가지고 골극까지 유추했으니, 그것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더 나아가야 했다.

“그건…….”

“뭐야?”

안대훈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원래 뭔가 알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모르고 있으면 당황스럽지 않은가.

근데 수혁이 보고 있다 보니 교감 신경이 더더욱 미친 듯이 활성화되었다.

“그건…….”

“어, 야. 앉을래? 너 머리가 빨갛다가 하얗게…… 어어. 얘 좀 잡아!”

남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던데.

안대훈은 머리가 하얗게 탈색이 되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다행이라면 촬영실이 비좁아서 바로 바닥에 꼬라박지는 않았단 점이었다.

게다가 방사선사나 신도도 안대훈의 급변하는 얼굴을 보면 긴장을 하고 있던 덕에 불상사는 없었다.

“이게 뭔 일이니, 대체.”

“아이고.”

“깨어나면 바로 말해 줘야겠네.”

덕분에 환자가 올라간 다음에도 일행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대체 왜 안 나오는 거야?’

밖에 있어 상황을 알지 못하는 프락치로서는 그저 답답한 상황이었다.

원래 이수혁 교수 특성상 영상을 보면 바로 그렇다 아니다를 말해 주지 않던가.

그거 보고 노티를 하려 했는데, 아예 나오질 않고 있었다.

‘개구멍이 있나? 아닌데?’

해서 혹시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기까지 했다.

물론 죄 헛짓이었다.

수혁은 창백해진 대훈을 의자에 앉히고 있었다.

“으.”

“정신이 드냐?”

“아, 네. 무슨 일이…….”

“나도 모르겠다, 이건.”

바루다도 수혁도 얘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대단한 놈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이 둘이 모를 만한 의학적인 일은 거의 없는데, 그걸 몸소 보여 주지 않았나.

하여간 수혁은 여기서 또 질문을 했다간 어레스트라도 날 거 같단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해서 부리나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 환자 골극이 자란 건 포레스티에병 때문이야.”

“네?”

“또 기절하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 테니까. 어어, 눈알, 눈알 돌아간다! 이 새끼 오늘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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