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15화 (615/1,303)

615화 천재면 다래 (1)

수혁을 떠나보내고, 조근호는 생각했다.

참 기분이 나쁘다고.

따지고 보면 조근호 교수도 천재과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수재급 이상이 아닌 이상에야 태화 의료원에 남지도 못하지 않았겠나.

그중에서도 조근호는 그 어렵다는 소아외과를 세부 분과로 정하고 국내 제일의 칼잡이로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의 연례 행사처럼 돌아오는 고객의 목소리와 전공의들의 불만을 병원에서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근데 말이 돼…… 이 환자 하다드라고 했나? 그게 맞는 거 같아.’

평소 같았으면 일단 소리부터 질렀을 터였다.

이 새끼, 네가 뭔데 와서 지랄이냐고.

하지만 상대도 상대이거니와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심지어 그 덕에 환자가 살게 된 마당이었다.

환자를 생각해도 다행이거니와 자신을 생각해도 다행이었다.

뭐가 되었건 담당 환자가 잘못되는 건 좋지 못한 일 아니겠나.

이제 와 지금껏 쌓은 명의로서의 평판이 설마하니 이거 하나로 흔들릴 일이야 있겠느냐마는, 그럴 수 있을 만한 여지 자체를 꺾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근데 그래도 기분은 나쁜데.’

좋은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근호 교수가 그냥 일반적인 사람 정도만 되었어도 고마워하고 말았을 터였다.

하지만 조근호는 기본적으로 그리 좋은 인간이 못 되었다.

그리고 병원 내에는 비슷한 인간들이 꽤 있었고, 저들끼리는 친했다.

“네, 최 교수님.”

“어, 조 교수. 웬일이야?”

해서 조근호는 일단 김병길을 털었다.

아까 수혁이 말했던 것처럼 칭찬해 줘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어찌 악명이 생겼겠나.

‘신경외과 통해서 들었습니다. 외과 예열로도…… 엄청나다고…….’

조근호는 김병길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최낙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은 나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데다가, 둘 다 힘있고 돈 있는 사람과 친해지기를 무엇보다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쿵짝도 잘 맞았다.

고급 단지에 억지로 전세살이 하는 것도 통한 데다가, 단지 내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니 뭐니 하는 친목회가 있으면 앞장서서 달려가는 것도 통해서였다.

“글쎄 제 환자를 이수혁 교수가…… 저한테 말도 없이 진료를 해서요.”

“그래?”

“듣자니, 교수님 환자도…… 그랬다던데요?”

“응? 나는 이현종 교수님이 봤다고 들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는데.”

“그게 아니래요. 레지던트 조져 보니까 딱 답 나오던데.”

“하, 이거…… 진짜 천지 분간 못 하고 까부네.”

그 외에도 앞서 나가는 듯한 사람이 보이면 뒷담화 나누는 것도 즐겨 하고 있었다.

또 이러한 모임이 으레 그러하듯, 점조직 형태로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

“일단 내 방으로 모여 봐. 또 비슷한 사례 있는지 보자고.”

“네네.”

“네, 교수님.”

해서 싹 불렀는데, 의외로 모인 게 많지는 않았다.

수혁에게 불만 있는 인간이 적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대놓고 나설 수 있을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와……. 이 새끼들 이거. 내가 주선하는 골프 대회는 안 빠지더니, 이런 자리는 귀신같이 빠지네.”

최낙필 교수는 후우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톡방에는 스무 명 가까이 있는데, 지금 연구실에 온 건 소아외과 조근호, 비뇨기과 교수 둘 그리고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에서 각각 하나씩이었다.

그러니까 다 해서 7명이 모였단 얘기였다.

북두칠성도 아니고 이 커다란 병원에서 이런 인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까요. 인간들이…… 기회주의자네.”

“비뇨기과는 왜 둘뿐이야? 거기 사이 완전 틀어졌던 거 아냐?”

혼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였다.

해서 최낙필은 죽은 아이 불알이라도 만지는 심정으로다가 비뇨기과를 바라보았다.

원래 비뇨기과에서 둘이나 왔으면 꽤 많이 왔다고 봐야 했다.

마이너 과지 않나.

비율로 따지면 말도 안 되게 많이 온 셈이었다.

“그, 그렇긴 한데…… 무섭나 봅니다.”

“무서워? 아니, 우리끼리 모이는 건데 뭐가 무서워?”

“그게…… 그…….”

하지만 최낙필 교수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비뇨기과야말로 본보기로 밟혀 버렸던 과이지 않나.

직접 밟힌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나머지 교수들도 딱히 통합진료센터에 호의적이진 않았다.

지금껏 그날 이후론 단 한 건의 협진 요청도 없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쉬이 가늠이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최낙필은 이현종 눈치 보느라 이따금 협진을 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오늘의 참석률은 저조해도 너무 저조하다는 얘기였다.

해서 한번 다그쳤더니만, 비뇨기과 교수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연신 안과, 이비인후과 그리고 산부인과 쪽을 힐끔거렸다.

“이현종 교수님 말이에요.”

상대가 그러니까 괜히 최낙필도 불안해졌다.

켕기는 게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제아무리 최낙필이 신경외과라는 돈 잘 버는 과 과장이고 또 그 안에서 끗발 날리는 시니어 교수라고 해도 이현종은 무서웠다.

‘하필 숨겨 둔 아들한테 고아라고 해 가지고 말야…… 아직도 그게 좀 이상하단 말야.’

진짜 아들은 맞나 싶기는 했으나, 이제 와 그따위 질문을 던진다면 두들겨 맞을 게 뻔했다.

보통 나이가 들면 부드러워진다고 하던데 이현종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원장님 왜.”

해서 호칭을 슬그머니 원장으로 바꿨다.

비뇨기과 측과 마찬가지로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안과 쪽을 바라보면서였다.

“네, 원장님이…… 프락치 엄청 심어 두시잖아요. 여기서야 그럴 리가 없겠지만…… 불안한가 봐요. 아무래도 전에 진짜 개망신당했으니까…….”

“아, 프락치. 에이 설마. 아무렴 우리끼리. 우리끼리 돈 홀만 해도 108홀이 넘는데?”

“그러니까요.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요지부동이에요. 이현종 모르냐고. 약간…… 정신과 진료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현종 원장님 얘기만 하면 벌벌 떨어요.”

“거참……. 거…… 아니지? 아무도 아니지?”

말도 안 된단 생각부터 들었지만.

상대는 이현종이었다.

미친놈이란 소리였다.

그런 주제에 수완도 좋지 않던가.

본래 정치질하고는 거리가 멀더니만 자식 새끼 때문에 대오각성이라도 했는지 엄청난 무리를 끌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에이, 아닙니다.”

“하하, 저 이현종 원장님…… 에휴, 아시잖아요.”

“실력은 인정해요. 인정하는데…… 대를 이어 내과 원장이라니, 욕심이 과했죠. 이러다 차기 원장 이수혁 되는 거 아니냔 말까지 나온다니까요.”

최낙필과 눈이 마주친 세 과 교수들은 전부 손사래를 쳤다.

전부 한마디씩 주절거리면서였다.

“하긴 우리끼리 의심하면 안 되지. 이현종 원장님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이렇게까지 의심의 씨앗을 심어 두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무튼, 아직은 케이스가 두 개고…… 하필 성공을 해서…… 이렇게 하지.”

“네, 교수님.”

“최대한 외과계 쪽 환자 무단으로 진료하는 거…… 다 모아 봐요.”

“근데 이것들이 레지던트 선에서 연락이 가는거라…… 성공하고 나야 귀에 들어올 거 같은데요.”

“흠.”

최낙필은 ‘레지던트 선’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나 때는 안 그랬는데 하더니 말을 이었다.

“요새 애들이 참 달라지기는 했지. 스승 알기를 말야.”

“그러니까요. 주 88시간이니 뭐니 하면서 더 개판이에요. 쩍하면 집에 간다고 그러고. 레지던트가 왜 레지던튼데. 병원에서 먹고 자는 거주민이라는 뜻 아닙니까?”

“전공의 특별법…… 그거 이수혁 교수 그레이드가 주도했었지?”

“하나 위에서 했는데, 이수혁 교수 3년 차 때 협조한 거죠. 미친 거예요. 다 끝난 상황에서 그걸 왜 협조해?”

“하여간 마음에 드는 게 없네.”

최낙필은 쯧쯧 하고는 수혁 욕을 좀 더 내뱉었다.

나머지들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두 마디씩은 보태었다.

망할 놈이니 뭐니 하면서였다.

그렇게 한참 떠들고 나서야 속이 좀 시원해졌는지, 최낙필을 아까 하려던 말을 했다.

“아무튼, 레지던트랑 친한 교수들 있을 거 아냐. 치킨을 사 주든 뭘 하든 해서 구슬려 보라고. 아무리 그래도 다른 과 교수보다야 같은 과 교수가 의지가 되지. 막말로 내과 교수가 우리 과 애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 있어.”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여기 모인 과만이 아니라, 다 해 보자고. 내가 외과나 흉부외과 쪽 연락해 볼 테니까.”

“네, 저는 그럼 성형외과랑 정형외과 쪽 말해 보겠습니다.”

“그래, 좋아.”

하여간 결론은 금세 지어졌다.

어차피 수혁은 이제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않나.

아마 여기서 케이스 모아서 찔러 봐야 외과계 정도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뿐, 그 외의 징계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만큼 이수혁, 이현종 그리고 신현태를 필두로 하는 내과의 힘이 대단했다.

외과계 교수들로서는 그러한 현실도 불만이었다.

때문에 다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최낙필 교수 연구실에서 나와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한 명만 조금 다른 원인으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는데, 다름 아닌 비뇨기과 교수였다.

‘회개합니다, 수멘.’

속마음은 달랐더라도 감히 수혁의 아버지인 이현종을 욕하는 데 동참했다는 이유 때문에서였다.

하여간 비뇨기과 교수 한석준은 잠시 회개를 한 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 안대훈 선생?”

“네, 한석준 교수님. 동생분은 괜찮으세요?”

“어? 어어. 덕분에. 전에 이수혁 교주님께 큰 빚을 졌어.”

“아닙니다, 교주님은 환자 보는 거 좋아하십니다.”

“하긴 조태진 선배한테 들었어. 아무튼, 할 말이 있어서 말야.”

“네, 말씀하십쇼.”

상대는 이현종이 아니라 안대훈이었다.

이현종이 병원 내 권력을 이용해 세를 불리고 있다면, 안대훈은 신앙을 이용해 세를 불리고 있었다.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조태진에 이어 김진실 교수까지 이수혁에게는 뭔가 있다는 말을 하자 절박한 사람들이 하나둘 붙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한석준이었는데, 어김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이제는 프락치를 자처하고 있었다.

“네? 그런 일이 있습니까?”

“응, 한동안은 좀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네,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또 얘기 있으면 말해 줄게.”

“네.”

안대훈은 전화를 끊자마자 후다닥 달려 수혁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현종 연구실에 같이 있었다.

아니, 공교롭다기보다는 그게 일상이기는 했다.

이기자 교수만 아니면 이현종이 늘 아들 수혁과 같이 있고 싶어 했으니까.

‘아이고, 원장님까지?’

들어오래서 들어가니까 신현태도 있었다.

“너 웬일이냐?”

데면데면한 수혁과는 달리 신현태, 이현종은 안대훈을 몹시 반겼다.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안대훈이 수혁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것 정돈 알고 있어서였다.

“왔어? 웬일이야.”

“앉어, 앉어. 안 그래도 밥 먹으려고 하던 참인데.”

“네네. 감사합니다. 근데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래? 뭔데?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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