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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14화 (614/1,303)

614화 이제 외과 계열에서도 (6)

수혁은 안대훈이 말로는 안 될 놈이라는 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었다.

“수미타불? 수미타불?”

“억억. 성은이…….”

“미친놈이.”

해서 때려 봤는데 이것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안대훈은 진짜 세게 맞으면서도, 심지어 몇 대는 지팡이로 때렸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만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

아마 이곳이 신생아 중환자실만 아니었으면 저 눈물이 고통의 눈물로 화할 때까지 팰 수도 있었을 텐데.

이게 때리려니까 한 방에 힘을 실어야 해서 그런가. 때리기도 힘들도 보는 눈도 많고 해서 관두기로 했다.

절로 한숨이 덜컥 나왔다.

다행이라면 아직 김병길이나 간호사 모두 하다드 증후군에 꽂혀 있다는 점이었다.

“교수님, 저 설명 좀 더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제가…… 선천성 중심성 저환기 증후군 자체가 좀…….”

아니, 처음 듣는 질환이 좀 있는 모양이었다.

김병길은 이제 간절한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도 신규 레벨은 아득히 뛰어넘은, 시니어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만 거의 10년은 넘게 일했을 텐데 그럼에도 처음 보는 질환이었기에 그랬다.

그럴 만도 했다.

진짜, 진짜로 드문 형태의 질환이었고 심지어 진단도 꽤 어려웠다.

이걸 여기서 해낸 바루다가 미친놈이었다.

“아, 그래. 선천성 중심성 저환기 증후군은 말 그대로야. 그냥 타고나기를 호흡하는 데 있어 노력을 기울이질 않는다는 거야. 중심성 무호흡은 들어 봤지? 요새 수면 무호흡이 워낙 대세니까 들어 봤을 텐데. 과가 달라도.”

“아, 네. 어디서 듣기는 했습니다. 네, 확실히.”

대꾸하는 걸 보니 딱히 들어 본 적은 없는 거 같았다.

외과 레지던트니 무리는 아니었다.

자기 일하는 것도 바빠 뒤지겠는데 왜 이비인후과도 아니면서 이런 걸 떠들어 보겠나.

‘다행히 저 대머리는 아는 거 같고?’

[확실히 공부 열심히 하긴 합니다.]

게다가 수혁에게 중요한 건 자기 레지던트지, 외과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안대훈은 더더욱 중요한 인물이었다.

뭐가 되었건 이놈을 통합진료센터 차기 교수로 키워야 하니까.

미친 짓을 너무 많이 하는 게 단점이긴 한데, 최근 병원 분위기를 보면 그게 또 아주 큰 단점은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천재는 미쳤다’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퍼지고 있지 않나.

“일반적인 폐쇄성 무호흡은 기도가 막혀서 내가 호흡 노력을 하는데도 숨이 안 들어와서 못 쉬는 거지?”

“네.”

“반대로 이건 호흡 노력 자체가 없는 거야. 특히 잘 때 주로 발생해. 심각한 형태인 경우엔 깨어 있을 때도 그런데…… 그건 더 드물어서 일단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자고.”

만약 깨어 있을 때까지 호흡 노력이 없어지는 형태의 질환이라면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라고 봐야 했다.

어떻게 숨을 쉬지 않는 사람이 살 수 있겠다.

물론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호흡을 보조해 줄 수 있는 장치들이 나왔고, 그중에는 심지어 집에서도 사용 가능한 것들이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그런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네, 교수님.”

“그럼 이 아이 깨울 때로 돌아가자. 그때 의식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황에서 CPAP까지는 괜찮았지?”

“네.”

“아, 아! 저 알겠습니다!”

심각한 생각을 하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안대훈이 끼어들었다.

잘못은 아니었다.

배우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보면 이럴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럼 표정 푸세요. 왜 생각이랑 얼굴이 반대로 나가?]

‘얘는 그런다고 상처 안 받잖아.’

[그걸 어떻게 확신…… 네, 분석 결과 그런 거 같습니다. 멘탈 튼튼하네요.]

‘그렇다니까.’

수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다가, 물었다.

“뭘?”

“중심성 수면 무호흡증도 결국 치료가 CPAP 또는 그 상위인 SIMV나 CMV 등으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어, 그렇지.”

“그렇다면 깨우다가 발생한 에피소드 자체가 이 아이가 중심성 저환기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 맞아.”

놀랍게도 안대훈은 아까 수혁이 했던 추론을 고대로 해냈다.

배경 설명이 좀 더 자세하기는 했으나, 하여간 해냈다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키울 맛이 나긴 나겠는데.’

수혁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 지경이엇다.

“하하하하하!”

안대훈이 광소를 터뜨린 순간, 역시 쟤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어도 태화 의료원 내과에는 저만한 인재가 없었다.

한스럽게도 그랬다.

“그러니까, 이 환자 일단 이비인후과에 의뢰해서 기관 절개술을 하자.”

“아…….”

“하루 이틀 가지고 있을 게 아냐.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저환기 증후군이 호전되기도 하거든? 하지만 그게 수개월, 수년 안에 이루어질 일은 아냐. 그 기간 동안 삽관할 수는 없어.”

“아, 네. 근데 이게. 그거 하려면 부모님이 설득이 되야…… 할 거 같습니다.”

기관 절개술이라는 게 병원에서는 워낙 자주 하는 수술이기는 했다.

게다가 의학적으로 볼 때 오히려 삽관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깔끔했으며 덜 불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목에 칼을 대야 하는 수술이었고.

동시에 목에 구멍이 난 채로 있어야만 했다.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끔찍하게만 여겨졌다.

“아, 부를까.”

“아마 여기 계실 겁니다.”

김병길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바깥 호출 버튼을 눌렀다.

원칙은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때만 있어도 되지만 부모 중 누구 하나라도 반드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쉴 수 있는 부모는 없는 법이니까.

“들어오신답니다.”

“음, 그래요. 근데 내가 설명해도 되나? 조근호 교수님은 어쩌고?”

“그건…….”

“껄끄러우면 내가 말해 줘도 되는데.”

수혁은 진심이었다.

상대가 누구라 해도 별상관 없었으니까.

어차피 의학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렸다면, 그게 설령 이현종이라 해도 할 말은 할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성군…… 성군이시다.’

‘와……. 조근호 교수님한테 직접?’

특히 조근호를 직접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수혁의 뒤로 살짝 후광이 비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실제로는 뒤에 있던 안대훈 머리가 비친 거지만 아무튼, 느끼는 사람 마음이 중요한 거 아닌가.

“그래, 전화 줘 봐요. 내가 말할게.”

“어……. 이 시간에 응급 아닌데 전화하시면…….”

“화낸다고? 에이, 환자 얘기하는 건데. 게다가 디시젼 메이킹 관련한 건데 화를 내시려고.”

“그…… 어…….”

김병길은 너무도 감사하고 또 당황스러운 나머지 폰을 들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또다시 안대훈이 나섰다.

“드리시지.”

여유로운 말투로 이렇게 말하면서였다.

이번엔 아까처럼 미쳤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이 나오진 않았다.

수혁을 몸소 겪고 보니 왜 안대훈이 충신을 넘어 광신을 자처하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아서였다.

“야, 뭔데.”

하여간 수혁은 레지던트 전화를 반쯤 뺏어다 전화를 걸었다.

대뜸 뭔데라는 말이 날아왔으나 당황하지 않았다.

[수혁 백이 누군데요. 아무도 못 건드립니다.]

‘그렇지.’

이미 여러 번 사고를 친 경험도 있는 데다가, 사실 조근호 교수 따위라고 해도 좋을 만큼 끗발 날리는 사람이 바로 수혁 아니겠나.

레지던트들이야 아직 수혁이 나이도 어리고 하니 그냥 천재성 하나로 교수 어거지로 된 줄로만 알지만 교수들은 아니었다.

대놓고 윗선에서 밀어준다는 것 정도는 다 알았다.

심지어 이번 학회 초청 행사에 갔다 온 사람들 말로는 그 외에도 인맥이 미쳤다지 않던가.

일단 이기원 원내대표 선에서 어지간한 교수들은 깨갱이었다.

“아, 저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누구? 이거 김병길 폰…… 아니, 잠깐만. 누구시라고요?”

이상하게 나쁜 놈들일수록 강자에게 약한 경향이 있지 않나.

본인들이 약자를 짓밟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러나?

하여간 자신이 더 약하단 판단이 서면 여지없이 굽실거렸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아, 네! 저 소아외과 조근호입니다.”

집에서 넷플릭스 보면서 소파에 모로 누워 있던 조근호는 자세까지 바로했다.

마치 조선 시대 전화 예절이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주구장창 두고 보고 싶은 광경도 아니었기에, 수혁은 이내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김혜진 아기 환자 말입니다.”

“아, 네네. 말씀하시죠.”

김혜진 아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김병길 이 새끼가 가서 몰래 의뢰를 했구나 싶었지만.

조근호는 여전히 굽신거렸다.

화를 낼 대상이 따로 있지 않나.

이수혁은 떠오르는 별 정도가 아니라 이미 태양이었다.

“아이, 하다드 증후군이 의심이 됩니다.”

“어, 네?”

“하다드 증후군이요.”

처음 든 생각이 이 사람이 뭐라고 하나였다.

하다드?

어디 이슬람에서 지은 이름인가?

하마드도 아니고 하다드?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쉬고 있다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라 정신도 없는데 이상한 말까지 듣고 있다 보니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Hirschsprung 병에 Congenital central hypoventilation syndrome이 동반된 증후군입니다.”

하지만 수혁의 말을 더 듣고 보니 뭔가 알 듯 말 듯 한 기분도 들었다.

태화 의료원이라는 곳이 교수를 들들 볶는 곳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곳 아닌가.

매주 컨퍼런스가 있고, 또 학회 행사도 많았다.

잡일도 많다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모든 행사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는 얘기였다.

“아아……. 그게.”

“이 두 개는 이론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만, 치료는 그렇지 않죠. Hirschsprung 병에 대해서는 외과적 처치를 하시고 저환기 증후군에 대해서는 기관 절개술을 하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네네. 그럼 제가 내일.”

“아뇨, 제가 부모님께 설명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빨리하고 발관 하는 게 아이에게 좋죠. 신생아인데…… 벌써 4일째 삽관이지 않습니까? 시간 더 지체되면 기관지 손상 진행되어서 추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 네. 그럼…… 아이고. 제가 지금 갈…….”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정식으로 협진 의견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김병길 선생이 참 똘똘하던데 칭찬 한번 해 주시죠.”

“아, 네네.”

수혁은 그렇게 전화를 마치곤, 부모님에게 설명을 했다.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진 않았다.

아이가 정체 모를 병으로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뭐가 되었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지 않나.

세상 어떤 부모라도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

덕분에 수혁은 감사 인사까지 들으며 중환자실을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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