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화 환자가 머리가 아프대요 (5)
당직이 신도라.
아무래도 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교주라고 불리는 사람으로서 이걸 과연 좋아해야 하는 일일까?
[당장은 잘된 일 아닙니까? 안과가 어디 바로 이렇게 협진을 봐주는 과던가요? 아직 일과 시간인데요.]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다.’
환자 보는 입장에서 마이너과에 협진 내놓고 기다리는 일만큼 짜증 나는 일도 드물었다.
그나마 마이너과 중에서 사람이 좀 있는 과들은 나았다.
이비인후과만 해도 보건복지부-이비인후과 학회에서 전문의 제한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태화 의료원 이비인후과는 연차 당 5명을 뽑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하나쯤은 늘 협진방을 지키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안과는 모든 인원이 수술실이나 외래 또는 병동에 묶여 있었다.
그러니 협진을 내면 회신은 무조건 모든 일과가 끝난 후에나 받을 수 있었다.
그런다고 다른 과 입장에서 협진 하나 봐 달라고 더 뽑으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레지던트 숫자는 레지던트가 필요해서 뽑는 게 아니라, 전문의 숫자를 고려해서 뽑는 거니까.
‘아마 신도 아니었으면…….’
[빨라야 오늘 밤 9시 이후? 아니면 내일 밤으로 밀렸을걸요? 안과는 항상 협진 밀리니까.]
‘평균 협진 회신 일자가 3일이라더라.’
[그거 못 고친대요?]
‘글쎄. 우리처럼 사람이 그래도 좀 많은 과가 아니라…….’
수혁이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한 채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귀신같이 그의 얼굴을 읽고 슥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신도 덕을 직접 보는 건 거의 처음 아닌가.
주교 입장에서 아까부터 입이 근질거렸더랬다.
‘이놈들아, 이게 수혁교의 위력이다.’
게다가 지금 뒤따르고 있는 두 불신자에게도 뭔가 보여 주고 싶었다.
안 그래도 안과 협진이 전화 한 통에, 그것도 교수급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내과 3년 차의 전화 한 통에 처리된다는 사실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지 않나.
이럴 때 한 번 더 언급해 주면 둘 중 하나 정도는 전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교수님.”
물론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함부로 교주, 교주 하지는 않았다.
일단 수혁이 발작할 정도로 싫어하는 데다가, 얼마 전 신현태가 불러서 주의를 준 적도 있어서였다.
‘다 좋아. 다 좋은데…… 이상한 소문 돌게는 하지 말자. 그거 내가 승인한 모임인데…… 수혁이한테 해가 되면 안 돼.’
해가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수혁을 따르는 모임인데, 그깟 소문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안대훈에게 신현태는 꽤 특별한 존재였다.
원장이라거나 전직 과장이라서는 아니었다.
수혁이 삼촌이라 부르는 존재 아닌가.
“어, 왜.”
“안과 신…… 아니, 그 지금 협진 봐주는 친구 말입니다.”
“어, 웬일이래? 이게 그냥 하고 싶다고 봐줄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아…… 안과가 원래 수술이 많지 않습니까? 오래 걸리는 수술 말고 짧게 걸리는 수술이.”
“그렇지.”
마이너과들은 보통 다 그런 편이었다.
1시간 좀 넘는 수술을 하루에 6, 7개 이상 처리하기도 하지 않나.
얼핏 생각해 보면 8시간짜리 수술보다는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편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는데, 수술이라는 게 딱 수술하는 시간에만 일하는 게 아니다 보니 오히려 이게 더 힘들었다.
환자 들어왔다 나갔다 할 때마다 기구 다 치워야 하고 환자 들고 날라야 하고, 하여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중간에 나와서 봐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가야 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까 전화는 수술방에서 받았더라고요.”
“허……. 진짜? 그거 꼴랑 10분일 텐데?”
“네. 그만큼 진심이라는 거죠.”
“그…… 그래, 고맙네.”
수혁은 그저 고맙다고 하고 말았지만.
뒤에 있던 신경외과 측은 눈이 동그래졌다.
같은 수술 과로서, 수술 중간에 나온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서였다.
게다가 지금은 점심때였다.
밥 먹을 시간에 다른 과 환자를 봐주러 왔다는 얘기였다.
물론 안과야 다음 수술 끝나고 먹어도 되기야 하겠지만, 이건 보통 희생이 아니었다.
‘헐……. 저 인간이었어?’
‘왜 아는 얼굴이야?’
‘완전 말리그예요. 지금 4년 차 중에 제일 악마. 진짜…… 저 인간한테 욕 들어 먹은 것만 생각하면…….’
‘근데 지금 봐준다고?’
‘약점이라도 잡았나.’
‘아까 신도 어쩌구 하지 않았냐.’
심지어 눈앞에 나타난 안과 의사는 진짜 지옥 같은 인간이었다.
그 과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과 모든 사람들이 다 말리그라고 욕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합리적인 노티를 해도 지랄이고 꼬투리 잡을 게 있다고 하면 너 잘 걸렸다고 나오는 타입.
뭐 이런 인간이 의사랍시고 꺼드럭거리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생각보다 레지던트 땐 그런 인간이 많았다.
워낙 여유가 없다 보니 인간성이 마모되어서 그랬다.
“아, 형님.”
“에이, 나이는 제가 아랜데요.”
“나는 순서가 중한가요. 들어간 순서가 중하지.”
그런 인간이 환자를 보겠답시고 수술 중간에 나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심지어 하나 아래인 안대훈을 더없이 극진한 태도로 환영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되게 착한데?’
‘어디 들어갔다잖아요. 뭐야, 어디야.’
‘넌 몰라? 레지던트들끼리 통하는 얘기 같은데.’
‘형……. 저 신경외과잖아요.’
‘아, 그래. 미안.’
어디 들어갔다는데 도통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신경외과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병원 모든 소식에서 뒤처지는 과 아닌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바빠서 그랬다.
솔직히 신경외과 입장에서 보면 이비인후과나 기타 과들이 바쁘다고 말하는 게 우습지 않겠나.
네가 뭐가 바쁘냐고 하면서 뒤통수 후려도, 때린 놈이 신경외과인 것을 확인하면 그냥 갈 길 가야 했다.
“아이고, 교주…… 아니, 교수님.”
“하.”
“정말 영광입니다. 이 환자인가요?”
“아, 그래요. 음.”
안과 말리그는 수혁에게도 깍듯이 인사했다.
그리곤 아이를 가리켰다.
수혁과 대훈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그리 친절함이 뚝뚝 묻어나진 않았다.
제아무리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본성을 억누를 수는 없는 법 아니겠나.
‘안과에서도 교주 소리를 듣네.’
[좋은 게 좋은 거죠. 환자 설명이나 합시다.]
‘음, 그래.’
수혁은 그런 말리그를 보면서 잠시 침음을 삼키다 이내 입을 뗐다.
뭐가 되었건 간에 바루다 말이 맞기는 하지 않나.
여기까지 온 이상 환자에 관해 더 알아야 했다.
“동정맥 기형이 있던 아인데…… 부모님은 눈이 좋거든요? 근데 아이는 눈이…….”
“아이고, 되게 두껍네. 안경 낀 지 얼마나 됐어?”
“2년이요.”
“2년……? 이상하네. 너무 짧은데요?”
말리그도 4년 차 되는 동안 환자를 안 본 건 아니지 않나.
친절하지는 않아도 안과 의사로서 환자 보는 법 정도는 어느 정도 훈련이 된 모양이었다.
나나와 대화를 잠시 나누더니만 대번에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그걸 보면서 수혁과 바루다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아, 안경을 언제부터 꼈는지도 물었어야 하는구나.’
[하나 배웠네요.]
언제 또 안과 관련한 환자를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통합진료센터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보지 않겠나.
그렇다면 이런 건 기억해 두는 것이 좋았다.
“어디…… 눈을 좀 볼까…… 혹시 산동액 뿌렸어요?”
“아, 네. 제가.”
“잘하셨습니다.”
말리그의 말에 안대훈이 수혁에게 윙크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망막을 보기 위해서는 동공을 확대시켜야 하는데, 약을 뿌린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었다.
아마 안대훈이 뿌려 두지 않았다면 기껏 여기까지 와 놓고 아무것도 못 할 뻔했다.
‘새끼…….’
[잘하긴 한다니까요?]
‘이걸 나는 왜 놓쳤지?’
[교주 소리에 정신 팔려서?]
‘방해도 하고 도움도 되고. 여러 가지 하네.’
[좋게 갑시다.]
말리그는 수혁이 고뇌에 빠진 사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으음?”
그리곤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 소견이 있는 듯했다.
신경외과 쪽보다도 좀 더 뒤떨어진 채 따라왔던 부모들의 얼굴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일단 입원하래서 입원하는데 뭔가 계속 새로운 문제가 보이지 않나.
지금 나타나는 문제들도 무섭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몇 개월을 그저 허송세월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더더욱 그랬다.
특히 수술을 괜히 받은 거라면 어쩐단 말인가.
머리를 밀고서 나나가 억지로 웃음 짓던 날은 둘 다 남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거 같았다.
“어…… 이거 이상하네.”
그동안 몇 번이나 나나의 눈 속을, 그러니까 망막을 들여다본 말리그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는 말도 참지 못하고 내뱉으면서였다.
그러다 망막 사진을 찰칵 찍고는 화면을 띄워 주었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이 중 이 사진이 의미 있게 느껴질 만한 사람은 수혁 하나뿐일 터였다.
제아무리 안대훈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안과 질환은 정말 안과 말고는 잘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 뜬 사진은 누가 봐도 좀 이상했다.
“망막 혈관이 왜 이렇게 구불구불하죠?”
“그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거…… 음. 잠깐.”
다들 이게 뭔가 싶어서 사진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평소 영상이라거나 사진을 찍으면 제일 앞장서서 보던 수혁만 오히려 따로 뒤로 빠져 있었다.
이미 지금 본 소견을 토대로 바루다와 토론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한동안은 수혁의 머릿속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틈 따위는 없을 터였다.
‘망막 혈관도 저래. 머리도 그렇고. 입천장…… 코 바닥도 그렇지.’
[동정맥 교통의 양상도 모두 비슷합니다. 전부 같은 원인에 의한 거라고 봐야 합니다.]
‘이 정도면 꽤 특징적인 소견 아닐까? 지금 알아낸 것만 가지고도…… 진단이 될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다만 문제는…… 아직 이쪽으로는 데이터가 없습니다.]
‘공부 좀 더 할걸.’
수혁은 예전 같았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뿐더러, 생각지도 않았을 법한 소리를 해 대며 한숨을 쉬었다.
바루다는 하마터면 그걸 보면서 비아냥거릴 뻔했으나 인공지능다운 인내심을 발휘했다.
[저도 더 푸시 했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논문 서치 하시죠.]
‘오케이.’
수혁은 기계적으로 움직여 안과 병동에 비어 있던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나머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수혁은 그대로 펍메드에 접속하고는 본인이 지금껏 확인한 문제 목록을 주르륵 쳤다.
그러자 꽤 특징적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결과가 떴다.
별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어지간한 질환명은 수혁과 바루다가 다 알고 있어서였다.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결과를 소거해 나가던 수혁의 손이 멈췄다.
한 게시물 위에서였다.
‘와이번 메이슨 증후군…… 이건 처음 보는 건데.’
[눌러 보죠.]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