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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84화 (584/1,303)

584화 바로 이것이 일타 강의입니다 (2)

죽은 사람도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나.

학술이사를 비롯한 수혁 반대파들은 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소원은 금세 이루어졌다.

사실 발표라는 게 아무리 잘하는 발표라고 해도 끝이 있기 마련이라 그랬다.

“질문…… 있으십니까?”

수혁은 뒤쪽에 서 있는, 그러니까 그냥 사심 없이 들어와서 너무 훌륭한 발표에 감동해 버린 이들을 먼저 돌아보다가 이내 앞쪽에 주르륵 앉아 있는 일종의 적들을 바라보았다.

발표를 듣기는 한 건가 하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냥 기를 쓰고 어떻게든 어려운 질문을 하려고 골몰하고 있다 보니 처음이랑 지금이랑 표정이 달라진 것도 없다, 이 말이었다.

“네, 저는 창이 병원 심장내과 리우입니다.”

그중 하나가 수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때다 하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심장 내용이어서 그런가, 심장내과 사람이 나섰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천하의 수혁을 상대하는 일인데 그럼 최선을 다해야지, 안 그러면 되겠나.

아마 다른 이가 나섰다면 오히려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을 터였다.

“훌륭…… 한 발표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있는데요.”

“네, 교수님.”

덕분에 수혁은 여유로운 얼굴로 질문을 받았다.

해 볼 테면 해 봐라 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보니, 수혁 반대파 측에서는 열이 확 올랐다.

물론 이건 그들만의 얘기였고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는 반대파가 고깝게만 보였다.

“솔직히 이만큼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니까, 나도 이제 이런 환자 오면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딱 들잖아.”

“응, 눈앞에서 환자 본 거 같어.”

“꼰대들이 그런 게 눈에 들어오겠냐…….”

그렇다 보니 뒤에서 웅성거림이 잔뜩 일었다.

수혁에게도 들릴 정도로 시끌시끌했으니 당연히 지금 질문 던지려는 이에게도 들렸다.

민망하단 생각이 안 들으면 사람이 아니었으나, 일단 지금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마당이었다.

“일단 이 진단의 단초가 숨찬 증상을 심장 원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숨찬 증세를 일으킬 수 있는 심장 질환은 모두 해서 무엇이 있습니까?”

해서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방금 심장에 생긴 암에 대해 발표를 했는데 영 엉뚱한 질문이지 않나.

게다가 모두라니?

말이 되나 싶었다.

젊은 의사들의 불만을 순식간에 최고조에 닿게 만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부정맥, 판막질환들……. 그러니까 승모판막협착, 승모판막폐쇄부전, 승모판막탈출, 대동맥판막협착, 대동맥판막폐쇄부전, 우심계판만증이 있겠죠. 확장형 심근증, 비대형 폐쇄증 심근증도 있을 수 있고. 또 심방중격결손, 심실중격결손도 가능합니다. 더 할까요?”

마치 질문을 미리 알고 있었고, 답을 써 놔서 그걸 읽기라도 하는 듯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민망함을 넘어 미안해질 정도로 완벽한 답이었다.

물론 모든 질환을 말한 건 아니긴 했지만, 여기서 더 하라고 하는 건 정말이지 꼴사나워지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침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하려고 했던 질문은 애써 이어 나갔다.

“아, 아뇨. 그…… 그래요. 그럼 그걸 보고…… 초음파를 보셨죠.”

“네, 초음파 영상도 보여 드렸습니다.”

“네, 그 초음파에서 덩어리가 보이는데……. 심장 내 덩어리가 보일 수 있는 질환이 뭐뭐가 있습니까? 바로 림프종으로 직진했는데…… 과정이 좀 이상해서요.”

“감별 질환에 대해서 말씀드리긴 했는데……. 초록만 보셨나요? 맨 앞에 앉으셔서 발표 잘 들으실 줄 알았는데.”

“그…… 하여간 설명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 하다가 또다시 침몰할 뻔했다.

하도 질문할 거리만 골몰하고 있다 보니 정작 발표를 안 들어서 그랬다.

수혁은 비틀거리는 교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 제일 흔하게 보이는 것은 역시 혈전입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혈전을 배제하기 위해 추론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외에는 정액종이 있을 수 있겠죠.”

“그 둘을 어떻게 감별했습니까?”

“초음파를 보시면 알겠지만…… 덩어리가 아주 큽니다. 이 정도로 큰 혈전은 형성되기도 어렵거니와 이렇게 됐으면 벌써 날아가서 어디를 막았겠죠? 실제로 당시 우리 병원도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했고, 다행히 신경학적 증상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저, 점액종은요?”

“점액종은 천천히 자라는 종양입니다. 저렇게 크게 자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심장 내에 저만한 방해물이 오래 있었다면 당연히 심부전이 왔을 겁니다. 근데…… 심전도를 보시면 좌심실 비대가 두드러지게 보이질 않죠. 심초음파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뭔가 더 빨리 자라는 종양일 거란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건 다 추론이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수혁은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듯 보이는 교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열 받으라고 더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다가, 목소리도 질질 끌고 있어서 교수는 평소보다 더 화가 난 상황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는 못했다.

수혁의 심리적은 인공지능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일반인으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고단수의 수가 많았다.

“그, 그! 추론에 어떻게 이렇게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흐음.”

수혁은 버럭 소리를 지른 교수와 그 교수를 보고 있는 맨 앞자리 일행을 돌아보았다.

하찮은 무언가를 보는 표정을 짓고서였다.

“저저.”

“저놈, 저거.”

너무 노골적으로 지었다 보니 다들 기분이 나빠졌다.

한편 뒤에 있던 이들은 왠지 모를 시원함을 느꼈다.

한국인이 있었다면 이게 바로 사이다라고 알려 줬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은 수혁뿐이었다.

“그럼 이 추론에 대해 반박해 보시겠어요? 교수님뿐 아니라 다른 분도 좋습니다.”

수혁은 그 사이다를 농축시킬 요량으로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교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골탕 먹일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다 보니 자기도 뭐라 반론을 펼쳐야 할지 전혀 몰라서 그랬다.

수혁도 그런 생각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이 추론을 확신할 수 있었냐고 물으시는 걸 보니……. 다른 가설을 가지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그렇죠?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죠.”

쐐기를 박기 위함이었다.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까 수혁이 한 답은 정말이지 사려 깊은 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다른 가능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추론만으로 얼렁뚱땅…….’

비록 내과 진단에 있어 추론 과정이 키 역할을 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현대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추론보다는 객관적 검사의 결과들이 더 중요해지고 있지 않나.

무언가 허점이 있어야만 했다.

그게 옳았다.

“아, 아.”

“네, 말씀해 주세요.”

“초, 초음파 영상 다시 보여 주세요.”

“얼마든지요.”

“그래, 여기 보면…… 이거 종양이라기보다 벽의 비후로도 보이지 않습니까? 사실 덜렁거리는 게 아니라 벽이 두꺼워진 모양이지 않나요?”

“비후성 심근 병증을 얘기하시는 건가요?”

“가능성은 의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수혁은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린 후, 그러니까 너가 대체 뭔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후 어제 만든 또 다른 피피티를 띄웠다.

“어.”

그와 동시에 교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였다.

“이게 보통 심근병증의 초음파 소견입니다. 아까 보신 거랑은 많이 다르죠? 심근병증은…… 그중에서도 비후성은 어디 한 지점이 이렇게 불룩 튀어나오는 양상이 아니라 다 같이 비후해지는 병이니까요. 대답이 되었나요? 심장내과 리우 교수님.”

“후.”

학생 수준은 아니지만 펠로우나 레지던트 수준의 렉처로 격하된 느낌이었다.

리우 교수는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옆을 돌아보았다.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사실 자신은 심장내과에 학술이랑 같은 병원이라 불려왔을 뿐, 애초에 수혁과 싸울 생각은 없었던 사람 아닌가.

그걸 꼬드겨서 이 꼴이 나게 만들었으면, 양심이 있다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샤삭.

하나 대부분 고개를 돌림으로써 그의 구원 요청을 외면했다.

그중에는 자기와 딱 같은 연차의 교수도 있어서 정말이지 이루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 내가 그럼.”

그때 학술이사가 나섰다.

반갑기도 했지만 좀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교수님은…… 심장내과가 아니잖아요?’

의사들에게 있어 연차가 굉장히 중요한 지표인 것은 맞았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제일 똑똑한 1년 차보다, 제일 멍청한 2년 차가 잘한다.

하지만 전문의를 따고 난 후에는 어떤 경과를 밟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기 마련이었다.

특히 세부 전공이 다르면 아예 다른 과 의사처럼 지식과 경험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저도 처발리는데……?’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학술이사쯤 되면 학회 내에서 위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좋은 싫든 일단 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으음.”

해서 리우 교수가 앉고 학술이사가 일어났다.

리우에게 건네받은 마이크를 들고서였다.

“심초음파 소견을 두 번이나 보여 주셨는데…….”

불안한 시작이었다.

심초음파로 질문했다가 처발렸는데, 또 심초음파?

리우는 차라리 자기가 계속 서서 준비했던 질문을 더 던졌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술이사는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 점액질과 혈전 모두 초음파 소견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지금 이것도 비슷합니다.”

“뭐……. 그렇죠.”

“그런데 조직검사도 없이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맞았지만, 아니었으면 환자는 큰일 났을 겁니다. 추론을 통해 알아냈다는 말만 하지 말고…… 심장 수술이라는 중차대한 결론을 내린 근거를 내려 주세요. 보통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히 학술이사 짬바가 어디 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전공이 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까 리우 교수가 했던 것보다는 질문의 수준이 더 나았다.

하지만 수혁의 예상을 빗나가지는 못했다.

“심초음파 소견이 비슷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비슷하다는 게 반드시 같다는 말은…… 아니죠.”

“아……?”

설마하니 이현종이나 수혁이 경험이 몇인데 진짜 추론만으로 심장을 깠겠는가.

아마 그렇게 주장했다고 해도, 흉부외과 교수가 반대했을 터였다.

일단 CT를 찍는 것도 근거를 요구하는 학풍이 태화에는 자자하지 않은가.

당연히 뭔가 있었다.

수혁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초음파는 2D, 즉 단층 이미지를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점액종과 혈전은 모양만으로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비슷하다기보다는 같다는 얘기입니다.”

“네.”

“하지만 심발 원발성 림프종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자, 보시죠. 이게 점액종, 이건 혈전 이건 림프종입니다. 우선 위치가 다르죠. 심근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심근 비후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잘 보면 영상에서 움직임이 없죠? 심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디…….”

“여기요. 느리게 재생한 버전을 보시죠. 익숙지 않은 모양인데.”

“아.”

“드디어 알게 되셨군요. 답변이 되었길 바랍니다. 자,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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