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화 으음? (3)
2주 전에 만나서 입에 물도 못 댔다라.
단순히 목이 마르지 않아서 그랬을까?
그랬을 수도 있기는 했다.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일은요?”
“음…….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 왔어요. 꽤 오래 있다 오길래……. 뭐, 용변 보다보다 했어요. 근데, 이제 보니…….”
“어떤 거 같나요.”
“토라도 하곤 온 건가 싶네요.”
“물을 안 마셨다고 했는데, 입술은 어땠나요?”
“입술이요?”
“네. 바짝 말라 있었다거나…….”
“아, 그랬던 거 같기도……. 근데 이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게 명확해 보이는 아들은 아버지와 꼭 닮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다려진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자세도 단정한 것이 모범생 같아 보였다.
발음도 아주 좋아서 알아듣기도 좋았다.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부류에 대해서는 바루다가 나름 분류한 바가 있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불확실한 말은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그나마 문진이 정확할 수 있다는 얘긴데.’
[반대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응, 그래.’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대화하면서 보호자에게 좀 더 다가갔다.
본격적으로 아는 걸 다 캐내기 위해서였다.
“이분 무척 말라 보이는데, 원래 이랬나요?”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럼 언제부터 살이 빠진 거 같나요?”
“글쎄요. 제가 인지한 건 한 3개월 정도 됐습니다.”
보호자의 말에 따라 수혁은 지금 환자의 체중을 가늠했다.
[대략 45kg 정도 되어 보이는군요.]
‘키가 거의 180은 될 텐데?’
[네. 이만한 체격에서 살이 빠지는 걸 인지했다면……. 눈썰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5kg 정도 빠졌을 때 비로소 겉으로 볼 때 티가 났을 겁니다.]
‘그렇군. 그럼…… 3개월 전에 5kg이 빠졌다고 상정할까?’
[오류가 있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오케이.’
대강 또 생각을 정리한 수혁은 보호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환자 몰골을 보면 그랬을 거 같지는 않지만, 의도적으로 뺐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다이어트를 하겠다, 뭐 이런 말은 안 했나요?”
“네? 다이어트요? 아뇨. 뭐…… 딱히 자기 관리는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뭔가 원인이 있어 빠졌다는 얘긴데…….”
역시 기저에 있는 병은 암일 거 같았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김진실 교수는 옆에 있던 레지던트에게 초음파를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술을 이렇게나 마셔 댔으니 아마도 위암이기는 할 텐데, 그래도 초음파를 봐주긴 해야 할 거 같아서였다.
‘간도 정상은 아니겠지.’
하여간 복부 초음파로 뭐라도 정보를 알게 되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했다.
그렇게 후방이 부산스러워진 동안에도 수혁은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후로도 계속 살이 빠졌나요?”
“아, 네. 2주 전에 봤을 땐……. 음, 이것보단 많이 나가 보이긴 했는데……. 누가 봐도 사실 아파 보이긴 했어요.”
“그래요?”
“네. 신고…… 했어야 할까요?”
“글쎄요. 그거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아무리 미워했던 혈육이라고 해도 죽음을 눈앞에 두었거나 또는 그렇게 보인다면 또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수혁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흔들리고 있는 아들의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적어도 이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진 말자고.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아무리 슬픔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글쎄 옛말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다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럼 3개월 전에 봤을 땐 대략 몇kg 정도로 보였나요?”
“네? 아……. 음. 그냥 좀 날씬해졌다, 뭐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 전에는 체형이 어땠죠? 사진이 있을까요?”
“사진…… 사진…… 음. 최근 사진은 아닌데 괜찮나요?”
“네, 좋습니다.”
수혁은 잠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환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보호자가 들이민 핸드폰에 시선을 두었다.
“음……. 대량 70kg은 되어 보이네요.”
“네? 아, 네. 근데 이게 10년 전이라서요.”
“10년 전이라…….”
10년 사진에서는 그래도 둘 다 웃고 있었다.
아마 같이 웃고 있는 여자는 어머니일 터였다.
딱히 묻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나.
“체형이 중간에 바뀌었나요?”
“한동안 저도 안 보다가 보는 건데……. 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비슷했어요.”
“네.”
지금 바루다가 추정하는 환자의 몸무게는 45kg.
평소 몸무게가 70이었다면 25kg이 빠졌다는 얘기가 되었다.
무슨 200kg에서 25kg이 빠진 것도 아니니, 정말 엄청난 체중 손실이었다.
‘암은 확실히 있겠어.’
[그렇다면 의식 변화는 전이 때문일까요?]
‘가능성이 있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김진실 교수는 환자의 배에 초음파 프로브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응급실 레지던트는 문진을 넘어 시술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저어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왕팡과 양이 설득에 나서자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야, 알지?”
“나도 듣기는 했어. 말이 안 되긴 하더라.”
“영광으로 알어.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하긴…….”
응급실 레지던트는 안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위 불신자라 아직 수혁에 대한 광신적인 신앙은 없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여기 와서 보여 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차치해 두고서라도, 둘이 낸 논문 리스트만 봐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저 어린 교수는 하나만 내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NEJM에 벌써 여러 개를 냈고, 김진실 교수 또한 비슷했다.
‘미친 병원 아냐?’
싱가포르 국립 병원 전체를 통틀어도 이 둘만큼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한데 이 둘이 그 병원에서는 상위권에 들지언정 아직 논문 실적이 최고는 아니라 하지 않았나.
왜 여기까지 와서 협약을 맺어 줬나 싶을 지경이었다.
“아, 여기 전이가 있네.”
김진실 교수가 창을 캡처하며 말했다.
즉시 수혁은 보호자와의 대화를 멈추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전이라는 말은 무시하기가 어려운 말이어서 그랬다.
“아……. 그렇네요.”
“응, 오리진은…… 위일 거 같아. CT 찍었나?”
“아직입니다. 머리 때문에…….”
“아, 머리. 아까 의식 변화했다고 했지.”
“네, 복부 CT도 찍어 볼까요?”
“내시경도 어레인지 하는 게 좋겠는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짐진실 교수는 복부 초음파만으로 이리저리 전이된 임파선을 잡아냈다.
그리고 간경화가 아주 심하다는 사실과 비장이 꽤 커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신장에도 약간 물이 차 있다는 것까지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이 환자는 위암도 있고 간경화도 있을뿐더러 일부 신장 기능 결손도 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술을 그렇게 마셨다면 달리 이상할 일도 아니긴 했다.
거의 자해 수준으로 마셔 오지 않았나.
그렇다고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일단 머리 쪽 검사했던 걸 볼까요?”
수혁은 마음을 새로이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양이 보호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더 문진은 필요 없으시고요?”
“아, 응. 보호자분 감사했습니다. 혹시 또 부를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네, 뭐. 오늘은 일단 여기 있으려고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언제든 다시 부를 수 있으니 병원에 대기하라는 요청은 어찌 보면 참 무리한 부탁이기도 했다.
특히 지금 이 보호자처럼 환자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보호자는 수혁의 용어 선택에 의해 조금이나마 호감이 쌓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미움이 쌓였다 해도 보호자의 나이는 이제 고작해야 10대 중반이었다.
다 죽어 가는 아버지를 보면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네, 그럼 영상 보죠. 교수님도…….”
“응. 나는 뭐 복부 전문이기는 한데.”
“그래도 많이 보셨잖아요.”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보호자가 처치실 밖으로 나가는 동시에 김진실 교수도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말이야 겸손하게 했지만, 뭐가 되었건 전문의를 따기 위한 4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머리도 지겹도록 들여다보지 않았나.
솔직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잘 봐야 했다.
‘수혁이보다는 아닐 수도.’
물론 수혁이 때문에 가능성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하여간 뭐라도 도움을 줄 수는 있을 터였다.
“CT에서는…….”
“음. 정말 이상이 없네? 뇌가 좀 작기는 한데 이건 알코올 때문이야. 만성 변화고…… 이거 떄문에 지금 저런 변화가 올 수는 없는데.”
“네, 이상이 없어 보여요.”
“MRI는 어떻지?”
아주 작은 출혈이라도 있으면 잡아낼 자신은 있었다.
복부를 세부 전공으로 잡았다고 해도, 대학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가게 되면 모든 영상을 다 봐야 하지 않나.
그중에서도 출혈과 경색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소견이어서 그랬다.
한데 보이지 않았다.
수혁과 같이 봤는데도 그랬다.
둘이 놓쳤다고 보는 것보다는 정말로 출혈이 없다고 보는 게 옳았다.
“여깄습니다.”
“흐음……. 음.”
MRI는 일단 영상 컷 수부터가 CT보다 훨씬 많은 검사이지 않나.
게다가 CT보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기도 했다.
해서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김진실 교수는 영상의학과라 더더욱 책임감이 느껴져서 더 그랬고, 수혁도 이 자리에 있는 내과 중에서는 제일 높은 사람이란 생각 때문에 더 꼼꼼하게 봤다.
“경색, 출혈은 없어.”
“전이도…….”
“응, 전이도 없어. 그렇다고 농양이 있거나 한 것도 아냐. 측두엽 쪽이 확실히 위축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만성 병변이야. 원래부터 말투가 이상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으음.”
급작스러운 의식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상태는 사실 꽤 있기는 했다.
특히 알코올 의존 장애가 있거나 암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일단 출혈, 경색이 흔했고, 전이나 떨어진 면역 때문에 농양도 발생할 수 있었다.
한데 아무리 봐도 그런 흔적이 없었다.
“머리는 왜 이러지?”
“정말 이상하네…….”
“흐음…….”
“음.”
그렇다 보니 두 교수도 허탈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CT실에서 오랍니다.”
“아, 그건 찍어야지.”
물론 아무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급한 불로 여겼던 머리 쪽은 여전히 물음표로만 남아 있었지만, 배 쪽은 의심되는 질환이 나오지 않았나.
이것도 이것대로 충분히 심각한 질환인지라 일단 알아봐야 했다.
그렇게 CT실로 이동했던 환자가 돌아온 것은 20여 분이 흐른 다음이었다.
그동안 수혁은 김진실 교수와 더불어 머리를 계속 굴렸는데, 그랬음에도 변화는 없었다.
“하씨 모르겠네.”
“내시경실 연락 왔습니다.”
“아, 그것도 해야지. 보니까…… 위암은 확실해. 조직검사랑 그레이드 정하려면 가야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시경은 아무래도 CT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지 않겠나.
그동안 고민을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해야만 했다.